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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이 높아지면 생기는 일들.
“우아아아아!!”
함성 소리가 가득했다. 눈앞에 즐비한 괴물들의 시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던 괴물들이 지금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대장로님 만세!!”
“대장로님 만세!!”
만세란 말은 황제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황제의 권위가 많이 약해진 지금은 알게 모르게 많이들 쓰고 있다.
사혈련의 무인들은 손을 번쩍 들고 철각패도를 향해서 뜨거운 함성과 시선을 보냈다. 죽게 된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격했겠나.
‘단순한 놈들..’
그냥 감동한 정도는 포인트가 몇 점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함 명당 무려 20점가량의 포인트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철객패도는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즐겼다. 그리고 사혈련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사혈련은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일까? 단순하게 말해서 명문 정파에 가지 못한 무인들이 모인 곳이다.
‘개중에는 정말 질이 나쁜 놈들도 있지만, 괜찮은 놈들도 있지.’
장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금검 교무국은 살인마다. 하지만 혈도 임평백은 싸움을 좋아하는 싸움꾼이고, 흑수 갈맹은 평범하다.
아마 흑수 갈맹 같은 놈은 명문 정파에서 시작했으면 거기서도 한자리했을 놈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질 나쁜 놈들이 더 많았지.’
하지만 괴물들이 나온 이후로는 정말 괜찮은 놈들도 많이 들어왔다. 세상이 험하고 각박하다 보니 어디라도 소속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그랬을 거다.
명문 정파는 아예 받아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세력이 약한 곳은 들어가나 마나이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혈련이다.
그래서 명문 정파에 악감정이 좀 많았다. 명문 정파에 다들 들어가고는 싶어 했지. 하지만 거길 아무나 갈 수가 있나.
근골과 오성이 좋아야 하고, 상당한 돈을 내야 한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어려운 집에서는 절대로 명문정파를 갈 수 없다는 말.
그래서 사혈련에 오게 되었으니 당연히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정파의 고수가 지나가다 마을에 들렀는데 천하의 기재를 발견하고 뭐 그런 건 다 지어낸 말.’
오는 사람도 다 받기 힘들다. 그리고 천하의 기재라는 말도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태양 무슨 지체. 이런 거 없다.
십 년 전 기록도 제대로 찾기 어려운데 백 년이나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허무맹랑한 소리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포인트 들어오는 게 거의 끝난 듯했다. 아주 가끔 메시지가 보였다.
이런 조루 같은 놈들. 더 뜨겁게 감동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건데 벌써 끝났냐? 토끼 같은 놈들.
“돌아가자!”
철각패도는 사람들을 이끌고 낙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진법이 이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괴물을 상대할 때 제갈 세가에서 만든 진법이 꽤 효과가 좋았다. 그 생각이 나서 사혈련 놈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걸 적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진법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고, 뭔가 이해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는데, 아무래도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뭐여? 이것들은?”
사혈련 낙양 지부는 무림맹의 낙양 지부를 고쳐서 쓰고 있었다. 좋은 자리를 얻기도 만만치 않았고,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해서.
그런데 낙양 지부에 오니 무림맹 놈들이 보였다. 간도 크지. 돌아올 거 알면서도 이런 짓을 했다. 이거네?
어처구니가 없었다. 철각패도라는 이름을 개똥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어. 어어..”
안에 있던 놈 중에서 한 놈이 말을 더듬었다. 철각패도와 사혈련 무인들이 몰려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에 있는 놈들은 놀란 강아지 마냥 도망쳤다. 아니 저렇게 놀라서 꽁지 빠지게 도망칠 걸 왜 왔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철각패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안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사람이 한 명 걸어 나왔다.
‘음? 저 노인네는?’
청광진인이었다. 이런 썅.
맞붙기 싫은 인간이 지금까지 딱 두 명 있었다. 청광진인과 자하검선. 둘은 철각패도보다 확실한 고수였다. 질 게 뻔한 데 싸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군. 하지만 기세에서 밀릴 수는 없지.
지금까지 겨우겨우 만들어 놓은 이미지다. 그걸 한순간에 싹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 뒤에서 뜨거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혈련 놈들 때문에라도 나서야 했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있는 건 실례 아닌가?”
철각패도가 앞으로 걸어가며 말하자 청광진인은 피식 웃었다.
“도둑질한 집을 자기 집이라고 우기는 겐가? 역시 사혈련 떨거지들은 참 뻔뻔하군.”
나이고 있고 지위도 있는 인간이 입이 참 더러웠다. 하지만 할 말은 그쪽만 있는 게 아니지.
“도둑질이라는 건 그동안 무림맹이 해 처먹은 정도는 되어야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지. 어디 이런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나.”
해 처먹었다는 부분을 엄청 강조했다. 청광진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 어. 이러다 바로 붙는 거 아냐? 그럼 좀 곤란한데. 철각패도는 고민이 되었다. 만약 여기서 붙었다가 떡이 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개망신 아닌가.
그래서 살폈다. 그동안 철각패도도 실력이 늘었으니 혹시라도 정보가 보일까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보인다. 보여.’
다 보이는 건 아니었다. 청광진인이라는 이름만 보였다. 그것만해도 어디냐. 예전에는 아예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격차가 좁혀졌다는 거 아닌가.
‘오호.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붙어서 쉽사리 승부가 나진 않을 거다. 지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을 겨룬 후에나 승부가 날 터. 그렇다면 쫄아 있지 않아도 되지.
“왜? 무림맹이 한 짓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아나보지?”
“네. 이놈.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말해도 좋을 무림맹이 아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참신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이봐. 아무리 사람들 입을 그렇게 처 막으려고 해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그렇게 쪽팔리면 그런 짓을 하질 말던가.”
철각패도의 말에 사혈련 무인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같이 환호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엄연히 우리 거다. 그러니 썩 나가!”
철각패도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청광진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기야 이런 상황에서 ‘아 그런가요?’ 하고 나갈 리가 없지 않나.
철각패도는 앞으로 다가서며 크게 소리쳤다.
“나 같으면 얼굴이 뜨거워서라도 이곳에 오지 못하겠다. 그러니 썩 물러가!”
“네 이노오옴!!”
청광진인의 얼굴이 마구 구겨졌다. 당장에라도 출수를 할 것 같은 기세. 하지만 철각패도는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럼 덤벼 보든가!!”
고함을 치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싸울 자세를 잡았다. 부릅뜬 눈에서는 날카로운 기세가 쏟아졌고, 끌어올린 내공 덕에 옷가지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철각패도가 강하게 나오자 청광진인이 오히려 당황했다.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저러는 건가? 사실 여기서 철각패도를 단숨에 때려눕히지 못하면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는 거다.
자신이 누구인가. 정파 최고수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청광진인이다. 그러니 사파의 장로라는 놈하고 붙어서 동수만 되어도 자신이 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저놈의 기세가 정말 놀랍지 않은가. 협개 그놈이 당했다고 했을 때 평수에 수련을 게을리 한 탓이라고 여겼거늘..’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놈이다. 협개가 쩔쩔맸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설마 자신보다야 경지가 높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쉽게 승부를 낼 수 없는 놈이라는 감이 왔다.
‘아. 괜히 왔구나. 이거 싸울 수도 없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고. 개망신이로고.’
난처했다. 천 초식을 붙어도 승부가 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대. 하지만 그대로 물러서는 건 더 치욕스러운 일이고.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해결책이 생겼다. 관리가 온 것이다.
“이게 무슨 짓들이오.”
누군가가 관청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무림맹과 사혈련의 충돌은 관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사안. 특히 태수가 사혈련을 잘 도와주라고 따로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소식을 듣자마자 관리가 허겁지겁 달려온 거다. 태수의 말이 없었다면 움직이지도 않았을 거다. 관리라는 족속이 원래 다 그렇지 않은가.
“허허. 네 녀석 운이 참 좋구나. 내 친히 가르침을 내려주려고 했거늘..”
청광진인의 말투가 바뀌었다. 철각패도는 그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새끼. 허세는.’
철각패도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영감. 조금 전까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우물쭈물하던 거 사람들이 다 봤어. 관리가 오니까 그 핑계 대고 지금 내빼려는 거잖아. 그러면서 무슨 개소리야?”
철각패도의 말에 청광진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사혈련 무인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폭소했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청광진인은 더 있어봐야 좋은 꼴 못 보겠다는 걸 깨달았는지 재빨리 관리에게 말을 했다.
“그저 잠시 둘러봤을 뿐입니다. 대인. 그럼 저희는 일이 있어서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청광진인은 어서 가자고 소리쳤고, 무림맹 사람들은 허겁지겁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청광진인 하나만 믿고 왔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다들 기가 팍 죽어 있었다.
청광진인은 경공을 사용해서 후다닥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경공을 사용할 줄 아는 자는 다들 청광진인의 뒤를 따랐고, 경공을 못 하는 자들은 이를 악물고 뜀박질을 했다.
“우아아아!!”
사혈련 무인들이 손을 번쩍 올리고 함성을 질렀다. 무림맹의 고수가 변변히 맞서지도 못한 채 저렇게 도망치는 걸 보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던 거다.
관리는 자연스럽게 해결된 걸 보고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사혈련 낙양지부장이 재빨리 붙었다. 이렇게 왔는데 그냥 보낼 수가 있나.
그래서 관리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갔는지야 뭐. 그랬다.
그 다음 날, 엄청난 소문이 낙양 전체를 휩쓸었다.
철각패도가 위기에 처한 사혈련 무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그래서 어렵사리 괴물들을 물리치고 무인들을 구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무림맹 사람들이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장은 청광진인이라는 정파 최고수였는데, 철각패도가 나서서 호통치니 대꾸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다.
철각패도가 싸우자고 했더니 다들 도망갔다. 이런 얘기였다. 중간에 빠지고 그런 게 좀 있긴 했지만, 소문이 다 그런 거 아닌가.
무림맹은 치졸한 짓을 하려다 본전도 못 찾은 곳이 되었고, 철각패도는 엄청난 인기인이 되었다.
***
괴물 토벌 시작되었다.
현천문 사람들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온위립을 비롯한 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괴물을 잡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힘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힘이 없으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번에 그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소림이나 무당에서 힘으로 눌러버렸다. 규칙을 바꾸고 그래도 안 될 것 같자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이게 다 힘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미친 듯이 괴물을 잡았다. 진독평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허허. 아니 현천문 사람들은 괴물을 잡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같지 않은가. 아니 그런가?”
“예.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자들입니다. 저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돕니다.”
진독평의 부하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하진혁이라는 친구도 잘하고 있다고?”“예. 그런데 그자는 약간 좀 다릅니다.”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
부하는 자신이 본 걸 이야기했다.
“그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주변의 동료를 구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