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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이라도 해석은 다를 수 있다.
동창은 더러운 일을 하는 곳이다. 황제를 위하는 일이다. 천하의 평안을 위해. 이런 식으로 아무리 포장해도 지저분한 일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진독평이 진혁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하지만 속은 쓰레기인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자들을 신물이 날 정도로 상대하는 게 진독평의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의협심이 넘치고 협객다운 풍모를 지닌 사람을 봤으니 마음이 어떻겠나.
“너무 위험한 일이오. 다시 생각해봄이 어떻겠소?”
“아닙니다. 이대로 갔다가는 사기가 말이 아닐 겁니다.”
진혁은 누군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적임자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럴 필요성이야 있다만, 나 역시 권하고 싶지 않구나.”
온위립도 말렸다. 간신히 현천문 사람들이 안전하게 될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한 명만 위험한 곳에 간다고 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안 좋았던 것이다.
부대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가장 위험한 부대는 괴물을 유인하고 선봉에서 싸우는 부대였다. 진혁이 가고자 하는 부대가 바로 선봉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부대.
그에 반해 가장 안전한 곳은 본진이었다. 위험에 빠질 염려거 거의 없는 곳. 제갈 세가와 현천문이 있는 곳이었고, 진독평이 머무는 부대였다. 그러니 걱정이 된 거였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고두고 말이 나올 겁니다.”
“대사형만 계속 그러라는 법 있소. 이번에는 내가 가겠소.”
호승렴이 나섰다. 다른 사제들도 걱정이 되는지 말렸다. 하지만 진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를 상대로 이기는 자가 있으면 내 양보하마. 어디 덤벼 보겠느냐.”
“좋소. 내가 대사형을 이겨보겠소.”
호승렴이 나섰다. 그가 나서자 다른 사제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호승렴이 진혁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자라는 걸 모두 인정했으니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대사형.”
“그랬으면 좋겠구나.”
진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알고 있었다. 호승렴이 진혁을 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자신은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거저 얻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호승렴이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자신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거다.
이들의 대화에 진독평도 관심을 보였다. 서로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가겠다는 마음이 부럽기도 했고.
‘동창에서도 말로는 이리 나서는 자가 있겠지만, 이들처럼 진심인 사람이 있겠는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로다. 부럽구나.’
진독평은 자신이 심판을 보겠다고 나섰다.
“내가 지켜보다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겠소. 만약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둘 다 부대를 옮기는 것을 허럭하지 않을 것이오.”
진독평은 둘을 아끼는 마음에 그리 말했다. 하지만 둘이 겨루는 걸 보고서는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 파아앗!
- 취이이이잇~
일단 기세와 움직임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서로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움직이는 자들 같았다. 그런데 서로의 공방이 너무나도 현묘했다.
‘이런 무공이 있었던가?’
천하의 무공을 모두 아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무공은 안다고 자부하는 진독평이었다. 하지만 지금 둘이 펼치는 무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승무공이라는 건 확실했다. 괴랄한 초식으로 허점을 찌르려는 게 아니라 무척이나 기본기에 충실한 무공이었다.
그런데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대부분은 의미를 알 수 있는 진행이었다. 그런데 가끔 전혀 예상치 못한 동작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동작들이 상당한 깊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진독평도 절정에 이른 고수. 무공에 관해서는 조예가 깊은 자이다.
그러니 둘의 공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둘의 공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호승렴의 검이 진혁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혁의 신형은 서서히 사라졌다.
“어?”
진독평까지도 비명을 질렀다. 진혁의 모습을 놓치고는 사고가 생긴 줄 알았던 거다.
- 퍼어억!
진혁의 신형이 호승렴의 등 뒤에 나타났고, 당수로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호승렴은 바닥에 쓰러졌고 안간힘을 썼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둘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걸 보여준 장면.
“많이 늘었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다.”
호승렴은 분한지 흙을 움켜쥐었다.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 원래는 자신이 대사형이었다. 현천문을 이끌어 갈 대사형.
그런데 갑자기 진혁이 나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도처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앞 저 멀리에 있었다. 미친 듯이 따라잡으려 했다.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진혁을 이기기 위해서 미친놈처럼 괴물들과 싸웠다.
“대사형이 사람이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지?”
호승렴이 울부짖었다. 신기루를 따라가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랄까. 잡겠다고 아무리 달려가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기분.
“아직 어리지 않느냐. 너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게다.”
“웃기지 마시오. 지금도 한참 봐준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그게 더 기분 나빴다. 전력을 다해서 한방에 때려눕혔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그런데 꼭 이랬다. 지도를 해주는 것처럼 공방의 요결을 알려주었다.
“누가 그런 거 알려주라고 했소?
호승렴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셋이었다. 당사자인 진혁, 그리고 온위립과 진독평. 나머지는 호승렴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짐작은 했지만.
자신이 아는 것만큼 보이는 법.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알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지금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 소협이 가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 같소이다.”
진독평은 진혁의 실력을 인정했다. 어디 가더라도 괴물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그러면서도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하 소협이 온 문주보다도 경지가 높은 것 같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진독평은 진혁의 제안대로 부대를 옮기기로 했다. 다만,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다고 판단되면 즉시 원대복귀 시킨다는 게 조건이었다.
그렇게 하면 특혜라는 반발도 무마할 수 있을 것이고, 채 공공의 명령도 잘 수행하는 것이 되니까.
“어떻겠소. 내 제안대로 따르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 대인.”
진혁이 대답했고, 온위립과 현천문 제자들도 다 만족스러워했다. 진혁이 무사하리라는 믿음도 있었고 만약의 경우까지도 대비되어 있었으니까.
진독평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금까지의 일을 적으면서 현천문 사람들에 대해서 감탄한 내용을 자세히 기술했다.
제독동창과 채 공공에게 전달될 보고서였다.
***
“뭐라고? 사혈련 애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철각패도는 말에 흑수 갈맹이 급히 이야기했다.
“이번에 토벌에 추가로 파견할 녀석들이었는데, 오다가 갑자기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지역이었는데, 그날따라 괴물이 출몰했다는 거였다. 아마도 이번에 마나 폭발이 일어나면서 무언가 변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몇 명이 빠져나와서 소식을 전한 건데 어찌 되었는지는..”
“야.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야? 위험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바로 달려가야지?!”
철각패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게 만만치가 않아서.. 이곳에서 하루 거리인데 이미 가망성이 없을 수도 있고..”
철각패도는 그 말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흑수 갈맹은 조금 뒤로 물러서면서 급히 이야기했다.
“무림맹 놈들이 이곳을 노리고 있는 터라 많은 인력을 빼기가..”
- 퍼억!
철각패도의 손바닥이 흑수 갈맹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아마 잘하면 피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더 큰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었으니까.
- 쿠다당!
사혈련의 장로 흑수 갈맹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혈련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모두 벌벌 떨었다.
“당장 전 인원은 준비한다. 지금 바로 구하러 간다.”
“저기.. 경계 인원은..”
철각패도는 말을 한 놈을 째려보더니 소리쳤다.
“야. 이 병신아. 몇 명 남겨 놓는다고 여길 지칠 수 있겠어? 몽땅 간다.”
철각패도는 바로 준비를 하라고 하고는 흑수 갈맹에게 걸어갔다.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려는 갈맹에게 철각패도는 말했다.
“야. 이놈아. 애들 다 죽이고 여기 지키면 속이 편할 것 같으냐?”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갈맹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여기야 얼마든 차지할 수 있다. 무림맹 놈들이 자리 잡으면 또 몰아내면 되지. 하지만..”
철각패도는 갈맹의 손을 잡고 벌떡 일으켜주었다.
“애들은 죽으면 끝이잖냐. 우리는 무림맹 애들처럼 머리 굴리고 그러지 말자.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하고 이딴 얘기 하지 말자고.”
갈맹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같이 가자. 죽었으면 시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그런 짓 한 괴물 새끼들 싹 쓸어버리자.”
“대장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이상해졌었나봅니다.”
철각패도는 웃으면서 갈맹의 등을 펑펑 쳤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가자. 애들 구하러. 우리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냐.”
철각패도는 인원을 수습하러 밖으로 나갔고, 흑수 갈맹은 그런 철각패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갈맹의 검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빨리 이쪽으로 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혈련 무인들이 아직 올라오지 못한 동료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 새꺄. 그냥 가. 다 같이 죽을 거야?”
아래 있던 무인이 숨을 헐떡이다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차피 끝났어. 저기 올라가기는 글렀다고.”
이상한 술법을 사용하는 괴물만 없다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 놈들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직 괜찮아. 빨리 오라고.”
위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래 남은 무인들은 결심을 굳혔다. 그들은 괴물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검을 고쳐쥐었다.
힘이 다해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힘을 짜낼 생각이었다. 그래야 동료들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갈 테니까.
“이 산만 넘으면 괜찮겠지?”
“아마도. 관도가 나오니까 거기까지는 괴물들이 가지 않겠지.”
그들은 동료들이 산을 넘어가길 바랐다. 그들이라고 죽고 싶을까? 그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빨라도 지금 쫓아오는 괴물들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까.
지금도 바로 지척이다. 가봐야 조금 더 가다 잡혔을 거다. 산을 넘으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고. 그러니 이게 최선이다.
포기하니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정말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괴물 한 새끼라도 죽이는 게 소원이었다.
이상하게 생긴 저놈들 목덜미나 심장에 칼을 꽂을 수만 있다면 정말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땅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뭐야?”
“니들이 왜 와?”
위에 있던 자들이 내려와서 합류했다.
“산이 너무 높아. 넘어가기 힘들겠더라고.”
“이런 병신들. 그러니까 평소에 다리 운동하라고 했잖냐.”
무인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었다. 괴물들이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기 때문이었다.
“키이이이익!”
“크어어어어어~”
온갖 괴성을 지르면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몽땅 뜯어먹겠다는 기세로. 그런데 그때였다.
- 퍼어어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괴물들이 뭉개져 날아갔다. 땅바닥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남았고,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는 거구의 사내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무사들은 전부 놀란 얼굴로 철각패도를 쳐다보았다.
“뭘 봐? 이 잡놈들아. 괴물 오잖아. 검 들어.”
철각패도의 말에 사혈련 무사들은 화들짝 놀라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런 무사들을 뒤로하고 철각패도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으아아아아압!!”
- 퍼어어어어어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터져나갔다. 그 근처에 있던 괴물들은 몸뚱이가 갈라진 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철각패도는 뒤쪽을 향해서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빨리 와!! 늦는 놈은 내가 따로 교육을 시키겠다!!”
“우아아아아!!”
위쪽에서 엄청난 함성과 함께 사혈련 낙양지부의 무인들이 달려왔다. 그 엄청난 기세에 달려오던 괴물들이 주춤거렸다.
그 모습을 본 철각패도는 씨익 웃으면서 주먹을 말아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