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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좀 해라. 이것들아.
광흥 표국은 낙양에서 철수했다. 그냥 있다가는 정말 험한 꼴을 당할 듯싶어서였다. 철각패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일시적인 일이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무림맹 낙양지부는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상황이 극도로 좋지 않았다.
무림맹은 난리가 났다. 특히나 소림은 다른 문파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낙양과 소림사가 있는 숭산은 정말 지척이었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도대체 보낸 고수들이 전부 어디로 사라졌단 말입니까?”
무공대사는 격노해서 소리쳤다.
“그게.. 지금 조사 중이긴 한데 아무래도 모두 당한 것 같습니다.”
당했다. 금검 교무국이 이끄는 사혈련 정예 무인들에게. 무공대사는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자책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당할 정도라면 누구겠나. 사혈련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사혈련이 감히 중간에 습격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동안 사소한 충돌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담한 짓은 벌이지 못했다. 사주에서 철각패도라는 미친놈이 한 짓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무공대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조급하게 굴었다. 옆에 있던 소림의 인물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철각패도가 가장 문제 아닙니까. 그러니 그자를 상대할 사람을 보내는 것이..”
“참 답답한 소리를 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당장 보냈지요.”
이번에 보낸 사람들도 철각패도를 상대하라고 보낸 자들이 아니었다. 낙양 태수에게 압력을 넣을 만한 자들을 보낸 거였다.
철각패도의 무서움은 자신이 직접 겪어서 잘 안다. 맹주인 무각대사가 가지 않는 이상 어려울 거다.
“허어.. 어쩌다가 그런 불학무식한 자가 그런 무공을 지녀서는..”
철각패도는 정말 미친놈 같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계산이 되어야 어떻게든 협상이라도 하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인 데다가 무공으로는 상대할 자가 없으니.
“사파라고 해도 고수의 반열에 오르면 그래도 품격이라는 걸 지키지 않소이까.”
“그러니까요. 그런데 그자는 그런 게 없어요. 무슨 정신 나간 놈도 아니고..”
정말 괴팍한 인간. 게다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는 광대처럼 이상한 짓을 했다.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하고는 건물을 부수고.
하여간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짓을 하는 자였다.
“그래도 원로 분 중에는 그자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내려주실 분이 계시지 않겠습니까?”
없었다. 원로 중에서 가장 고수라고 하는 협개가 개박살 났다. 물론 상대를 할 사람이 없지는 않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 전대 고수인 청광진인이나 자하검선이 있다. 그 둘이라면 철각패도를 물리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둘은 오대검파 소속이다. 소림의 일에 발벗고 나서줄 리 만무하다. 평소라면 어떤 대가를 약속하고서라도 부탁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무림맹주 선출이 바로 앞이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 조건을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호법대주님.”
무공대사는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은 낙양에서 사람들을 나오게 해라.”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림맹주인 무각대사의 말과 사람들의 인사가 겹쳤다.
“사형. 그건 안 됩니다. 낙양이 어떤 곳입니까. 소림의 코앞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사혈련 놈들을 들이다니요.”
무각대사는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묵직한 목소리가 방안을 부르르 떨게 했다.
“그럼 방법이 있느냐? 지금 천하 사람들이 무림맹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낙양을 잃는다는 건 소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무각대사도 호통을 쳤고, 무공대사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하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제의 말을 존중해 주었지만, 이번에는 맹주도 단호했던 거였다.
“무조건 버틴다고 능사는 아니다.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무각대사는 형형한 눈빛을 빛내면서 이번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노라고 공언했다.
“길지 않을 게다. 낙양에서 사혈련을 반드시 몰아낼 터이니 이번에는 사람들을 물리거라.”
“알겠습니다. 맹주님.”
무공대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각대사는 사람들을 물리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에 보낸 사람들은 낙양에 도착했어도 소용이 없었을 게다.”
무각대사는 두궐륭이 손을 써서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설마. 황실과 토벌단을 꾸린 것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지금은 물러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면 토벌을 취소하면..”
무각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건 무당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느냐. 그리고 두궐륭과 가까이하자고 태후전과 척을 지자는 말이냐?”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토벌은 계속되어야 했다. 무각대사는 상황이 이러하니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했다.
“방법이 있겠느냐?”
“두 가지 아니겠습니까. 두궐륭과 손을 잡던가..”
그렇게 해서 두궐륭 대장군이 사혈련과 손을 떼도록 만드는 방법. 그게 아니면 채 공공과 손을 잡는 방법이라고 했다.
“둘 다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사혈련 놈들이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일단은 그게 결정되어야 토벌을 더 빨리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하겠구나.”
무공대사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둘 다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두궐륭 대장군은 사혈련과 상당히 가까웠다. 게다가 이번 일로 무림맹은 찍힌 상태.
그걸 뒤엎으려면 어마어마한 돈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 거다. 그렇다면 채 공공에 선을 댄다? 그것도 어려웠다. 원체 권력자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인물이라서 그랬다.
그것이 채 공공 나름의 생존법. 권력자들과 가까이하면 의심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황제와 태후라는 든든한 줄이 있는데 뭐하러 그러겠나.
그러니 채 공공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그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하아. 이거 큰일이네. 이대로 흩어져 있다가는 정말 피해가 클 텐데..”
철각패도의 일은 잘 진행되었다. 낙양에서 사혈련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
거대 상단과 표국들이 모두 사혈련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철각패도는 큰 명성을 얻었다. 낙양에서 그가 행한 일이 큰 화제가 된 거였다.
사람들은 모두 철객패도를 칭송했다. 전에는 의적 일을 하더니 이번에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들을 혼내주었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죄를 말하고는 시원하고 통쾌하게 때려 부수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무슨 방법이 생길까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방법이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토벌 일정이 당겨졌다. 그리고 제갈 세가와 현천문 사람들이 같이 싸우게 해달라고 탄원을 해보았지만, 무시당했다.
뻔했다. 이렇게 해놓고는 정말 위험한 곳으로 밀어 넣겠지. 그러면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이런 행태도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들이 당한 일에 더 흥분했다. 그래서 이곳의 일은 서서히 묻히는 느낌이었다.
“말 좀 묻겠네. 여기가 현천문의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인가?”
“예. 그렇습니다만..”
진혁은 갑작스러운 방문에 의아해 하면서 대답했다. 이곳은 토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일반인은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온 문주님을 뵈러 왔는데 안에 계시느냐.”
“예. 계십니다. 누구라고 여쭐까요?”
그러자 말을 건넨 사람이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소 얇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나눈 오랜 친구라고 전해주게.”
환관이었다. 진혁은 안으로 들어가서는 온위립에게 그대로 전했다.
“마음을 나눈 오랜 친구? 설마 그 친구가?”
온위립은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손님들이 있는 곳을 보더니 후다닥 달려갔다. 상대도 온위립을 보더니 급히 다가왔고.
“문주. 정말 오랜만이오.”
“공공.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구려.”
둘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맞잡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에서 친밀한 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막역하다 못해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것 같은 그런 눈빛.
침묵이 이어졌지만, 둘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그런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온위립이었다.
“내가 이야기하던 내 친우니라”
“아. 황실에서 일하신다는..”
“그래. 그 사람이다. 나와는 아주 젊었을 적부터 교분이 두터웠지.”
온위립은 제자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제자들이 모두 헌앙허이. 참 뿌듯하겠구려.”
“자네 위사들도 모두 출중하구만. 대단한 고수들 같은데..”
진혁이 보기에도 엄청난 고수들이었다. 이런 고수를 대동하고 다니는 자라면 공공이라는 자도 엄청난 신분일 것이다.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눌 터이니 너희들은 이곳에 있거라.”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걸어갔다.
“공공. 일전에 보내준 목걸이와 귀걸이는 잘 받았소이다.”
“아. 그거 어떻소? 빛깔이 참 곱던데..”
“딸아이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역시나 공공의 안목은 틀림없더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색이 밝아서 피부가 조금 짙은 편이 더..”
둘은 웃으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이야기를 언제 누구와 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둘은 오랜만에 편하게 대화할 상대를 만나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이 세계에서는 배척을 받았다. 배척이라는 말로는 약했다. 사람들의 경멸과 조롱을 받았다. 심하면 맞아 죽기도 했고.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숨겼다. 그런데 젊었을 적 둘은 운명적으로 만났다. 대번에 알아보았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좋았다. 이야기가 통하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공공의 이야기는 가끔 들었소이다. 그래도 그 자리까지 오르다니 정말 대단하오.”
“이게 다 온 문주의 도움 아니오. 문주가 무공을 알려주고 위험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요.”
둘은 젊었을 적 일을 생각하며 크게 웃었다. 나의 모든 걸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듣자 하니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아. 무림맹의 일 말이군.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온위립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추려 설명했다. 그러자 채 공공은 크게 화를 냈다.
“아니. 그렇게 치졸한 자들이 있단 말이오. 내 당장 이야기를 해서 현천문은 이번 일에서 빼도록 하겠소.”
“허허. 공공. 그럴 것까지는 없소이다.”
온위립은 말을 할까 말까 주저하다가 살짝만 털어놓았다. 내공을 늘릴 방법을 찾았고, 그러려면 괴물을 죽여야 한다고.
“그게 정말이오? 진정 축하하오. 내공이 없다고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이제야 빛을 보는 모양이구려.”
채 공공은 연신 축하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주겠다면서.
“현천문과 제갈 세가가 함께 모여서 싸울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죽을 곳으로 일부러 가라는 것만 없으면 되오.”
온위립은 현천문과 제갈 세가가 합치면 어떤 괴물이라도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혹시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이 나올지라도 도망 정도는 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괴물을 많이 잡을 기회도 그렇게 흔치 않다. 그러니 이 기회에 실력을 더 키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알겠소이다. 내 그리 이야기를 하겠소.”
“감사하오. 공공.”
“아니오. 온 문주. 우리 사이에 어찌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둘은 그 이후로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