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는 표사-99화 (9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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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합시다. 실력!

을지검군 주복형은 다시 물었다.

“뭐라? 직접 오라고?”

“예. 그렇습니다. 사겠다는 사람이 직접 와야 팔겠다고..”

아니. 이런 미친놈을 봤나. 차라리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건 이해가 된다.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니까. 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을 봐야 판다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아니 누가 사려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주복형은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지 그랬냐고 다그쳤다.

“네가 필요해서 사는 거라고 그랬어야지.”

그는 속가제자인 중년인에게 말했는데,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당연히 그리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다가 쓸 거냐고 하고 계속 질문을 하는 통에..”

꼬치꼬치 캐물었단다. 그러자 주복형은 조금 의심이 되었다. 사혈련과 척을 진 곳에는 팔지 않겠다는 건가 하고.

그렇다면 무림맹에는 팔지 않을 것 아닌가. 주복형은 조금 걱정을 하면서 물었다.

“혹시 어떤 사람에게는 팔지 않겠다는 말을 하던가?”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황제라도 직접 와야 한다고..”

“미친 작자 같으니라고..”

종잡을 수 없는 인간. 하지만 급한 건 이쪽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철각패도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거였다.

“허창이라면 평정산에서 얼마 걸리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군.”

주복형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원칙적으로 토벌전 참가자는 외부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뒷문은 존재하는 법. 화산파 장문인 정도 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사람이 있었다. 문승강의 연락을 받은 진혁은 곧바로 준비를 했다.

“당신이 검을 사겠다는 사람이오?”

“그렇소이다.”

주복형은 철각패도를 마주하고는 상당히 놀랐다. 사파의 거물이라는 건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 존재감을 뿜어낼 줄을 몰랐으니까.

문파의 원로 중에서도 이 정도의 위압감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철각패도는 자신이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고수였다.

“흠.. 꼭 화산파의 장문인처럼 생기셨구려.”

“크흠..”

알고서 놀리는 것이리라. 무림맹의 주요 인사가 사혈련의 장로인 철각패도를 이렇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기선을 제압해서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생각일 수도 있고. 하지만 주복형은 검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맞소이다. 본인이 을지검군 주복형이오.”

구파일방의 장문인인데도 철각패도는 지나가는 사람 취급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러냐고 하고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구려. 그런데 검은 왜 필요하시오?”

“괴물을 처치하는 데 이유가 있소이까. 당연히 천하의 안위와..”

철각패도는 피식 웃으며 말을 잘라버렸다.

“개소리할 거면 꺼지고.”

“크흠..”

언제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있던가. 주복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급한 건 자신이다. 어떻게든 검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번 토벌전에서 이기기 위해서요.”

“그래. 그렇게 솔직해지니까 훨씬 좋네. 그런 욕망이 뭐 나쁜 건가?”

철각패도는 그런 욕심 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주복형은 조금 의아했다. 정파 인물이 그런 걸 욕심낸다고 비웃을 줄 알았으니까. 혹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롱하는 건가 살피기도 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 검은 모두 몇 개가 필요하시오?”

“흠.. 백 명이 사용할 것인데, 개중에는 검을 사용하지 않는 인물도 있으니..”

백오십 개를 이야기했다. 싸우다가 검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 정도면 당장에라도 가능하지. 가격이야 미리 이야기를 했고..”

철각패도는 바로 물건을 넘겨줄 듯 말했다. 주복형은 조금 의아했다. 이럴 거면 자신을 왜 보자고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이럴 거면 내 속가제자와 이야기를 끝났어도 그만인데 왜 나를 보자고 한 거지?’

토벌전에서 이기기 위해서 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아니. 그거야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철각패도는 그 후로도 계속 잡다한 이야기를 했다. 아니 수다를 떨자고 모인 것도 아닌데, 저런 이야기를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두 시진 이상은 흐른 듯했다. 해가 벌써 지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뭐라고 하겠나. 닥치고 검이나 내놓으라고? 아쉬운 입장이니 그냥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슬슬 마무리를 하지.”

정말 감격스러웠다. 얼굴도 더럽게 생긴 놈하고 마주앉아서 두 시진이 넘게 대화를 하다니. 차라리 괴물들과 싸우는 게 훨씬 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돈 문제였다. 제법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그 정도는 낼 수 있었다. 문제는 혹시라도 가짜를 넘기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검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정 불안하면 확인하고 돈을 보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조건이었다. 이렇게 되면 믿을 수밖에 없다. 확인을 해보고 돈을 주는 것이니 가짜를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철각패도는 검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수레에는 목곽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 안에 전부 검이 들어 있었다.

“정말 돈은 확인 후에 드려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누굴 사기꾼으로 보는 건가?”

흠칫 놀랐다. 계속 편하게 이야기를 해서 좀 적응이 되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철각패도가 인상을 쓰니 거센 압박이 느껴졌다.

말과 인상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기세라도 끌어 올리면 무시무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복형은 사혈련의 다른 놈들이야 무시하더라도 철각패도만큼은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문파에 꼭 이야기해야겠어. 이자를 만나면 조심하라고.’

그래도 무사히 거래가 완료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복형은 건물 밖으로 나가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철각패도가 갑자기 그를 불렀다.

“이 정도면 내가 상당히 편의를 봐준 것 같은데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파의 인물에게 한다는 게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주복형은 포권을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호의에 감사드리오.”

“알았네. 가서 검은 잘 쓰게.”

철각패도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주복형이 갈 때까지 지켜보면서 가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가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장문인께서 오셔서 그만큼 예의를 차리는 것 아닐까요?”

주복형을 보필하고 있는 속가제자가 이야기했다. 자신에게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처럼 대해서 숨도 쉬기 어려웠다면서.

“그런가? 그럴 작자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주복형도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물건도 받았고, 돈은 나중에 확인하고 주면 된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물건을 바로 받았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뭐. 생각보다 괴팍한 자는 아닌 것 같군. 어쨌든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야.”

주복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길을 재촉했다.

한편 철각패도는 기감을 끌어올리고 있다가 피식 웃었다.

“이제 떠났군. 무공 그놈한테 가서 전부 이야기하겠지?”

철각패도는 피식 웃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그러니까 을지검군이 철각패도와 만났고 두 시진 이상이나 같이 있었다?”

무공대사는 앞에서 보고하는 심복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감시하는 통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무언가를 받아왔다고 합니다.”

심복은 수레에 목곽을 실은 채 떠났는데, 밖에 나와서 인사를 나누는 것이 무척 친밀해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을지검군 주복형이 인사를 올렸는데 철각패도가 웃으면서 받았다. 철각패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니. 무슨 연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니.”

“그만큼 각별한 사이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공대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건 확실했다.

“일단 목곽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아봐야겠군. 이거 왜 자꾸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무공대사는 골머리가 아프다고 중얼거렸다.

비장의 무기인 검을 사용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비밀리에 물량을 준비했고, 성과를 냈다. 검을 사용하고 전투에서 1위를 했을 때 이제는 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난데없이 세가 연합이 1위로 치고 나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너무나 복잡해서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게 되었다.

“황서군과 장세문의 싸움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남궁표가 나오고, 게다가 호승렴이라..”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산의 문승강도 활약이 대단했다.

“허어.. 이거 갑자기 난장판이 된 느낌이구만.”

그래도 견제를 해야 하는 건 세가 연합보다는 오대검파였다. 무공대사는 목곽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사전에 이야기가 되지 않은 물건이라서..”

주복형은 감독관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무기를 바꾸는 거야 문제가 될 게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무기를 전부 교체한 쪽도 있고 말입니다.”

감독관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공대사는 을지검군이 들여가려는 물건을 일단 막아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명분이 없었다. 다른 곳도 들여갔으니 우리도 하겠다는 걸 어떻게 막겠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무공대사가 나타났다는 거였다.

“무슨 일인가?”

“물건을 반입하려는 시도가 있어서 자세히 알아보던 중입니다.”

을지검군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공대사는 수레 곁으로 와서는 물건을 쓱 훑어보았다.

“이게 뭔가?”

“보시다시피 검입니다.”

무공대사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시기에 검을 교체한다? 그리고 철각패도에 대한 정보도 떠올랐다.

‘이거 우리랑 같은 검이구나. 괴물을 베는 보검.’

그게 아니라면 지금 검을 들여올 이유가 없었다. 큰일이었다. 오대검파가 이 검을 사용하게 된다면 결과는 자명했다.

표정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안면 근육이 경직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갑자기 무슨 검인가?”

“사용하던 무기에 문제가 좀 있어서 바꾸려고 합니다.”

주복형은 슬쩍 소림의 일도 이야기에 끼워 넣었다.

“날이 무뎌진 무기는 바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에서 효과를 본 걸 보고는 저희도 무기를 교체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말입니다.”

너희도 한 일이니 막을 명분이 있겠느냐는 말. 무공대사는 입맛이 썼다. 이걸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명분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걸 문제 삼으면 자신들의 무기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무언가 꼬투리가 없을까 살펴보았지만,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거야 내가 결정할 문제인가.. 감독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무공대사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감독관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주복형은 무기를 가지고 들어갔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후우.. 일단 결과를 보고 생각해야겠지. 효과가 없었으면 좋으련만..”

심복의 말에 무공대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일도 있었다.

“뭐? 오대검파가 그러고도 밀렸다고?”

오대검파가 가지고 간 검이 자신들의 검과 같다면 결과는 뻔했다. 당연히 성적이 좋았다. 문제는 그 검을 사용했는데도 세가 연합의 성적이 더 좋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그 검을 사용한다는 건데..”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세가 연합이 검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공대사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이렇게 가면 세가 연합이? 그렇게 되면 무기의 출처를 가지고 해도 소용이 없는데..”

그 시각, 진혁도 결과를 확인하고는 속으로 웃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세가 연합의 성적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리고 호승렴을 도검당주로 밀 수도 있고.

설사 호승렴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로 성적이 좋은 온위립을 당주로 밀 수도 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대로만 가자. 실력으로만 우리가 따지면 밀릴 게 없지.”

하지만 문제가 생길 거다. 권력을 가진 놈들은 자신의 권력을 쉽게 내놓지 않는다.

“그러면 그때가 대박 칠 찬스지.”

진혁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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