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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합시다. 실력!
괴물과의 전투는 사흘에 한 번꼴로 이루어졌다. 비교적 안전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장은 전장이다. 사상자가 나오는 피와 죽음의 게임.
무인들은 싸우는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퍼부어야 한다. 체력, 정신력, 내공 모든 것을. 그렇게 전투를 치르고 나면 녹초가 된다.
그래서 다음 날까지는 쉬고 그 다음 날에는 정비를 한다.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몸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다.
“그런데 괜찮을까? 이번에 진형을 바꾼다는 거 말이야.”
“아마 나을걸? 원래 제갈 세가에서 제안한 게 있었는데, 남궁 세가에서 거절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된 거라잖아.”
세가 연합의 성적은 정말 처참했다. 다른 두 팀에 비해서 비교적 열세라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적은 내야 한다.
신진을 주축으로 구성했더라도 성적이 너무 좋지 않으면 발언권이 약해진다. 무림맹의 한 축을 유지하려면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다른 세가에서 불만이 점점 커졌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제갈 세가가 힘을 덜 쓴 이유도 있었다.
제갈 세가와 현천문은 거절당한 후 적당히 싸워왔다. 굳이 최선을 다해서 남 좋은 일 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줘야겠네요.”
제갈벽린의 말에 제갈중선이 슬며시 웃었다.
“기회는 위기이기도 하니까. 이번에 성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남궁 세가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잘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제갈중선은 이번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혁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문주와 사제들도 모두 전력을 다할 거다. 호승렴이야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전력을 다해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힘을 아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를 거다. 그리고 그 효과가 어떤지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벌어진 전투에서
“좌측 지원하고 빠지세요!”
“오른쪽으로 돌면서.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춰!”
제갈벽린과 진혁은 날카롭게 전장을 쳐다보면서 계속해서 지시를 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는 못했다. 손발을 맞춘 적도 거의 없고 훈련을 할 시간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법이 적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벽린이 만든 진법을 제갈 세가의 사람들까지 전부 달라붙어서 보완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역시 진법은 제갈 세가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야.’
팔진도에 제갈 세가에 전해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진법들을 접목했는데, 진혁이 놀랄 정도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잠깐 진형이 흐트러졌다. 그러자 그 사이로 오크가 들어오려고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시도에 그쳤다. 진혁이 바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 퍼어엉!
장력이 오크를 덮쳤고, 놈은 몸 전체를 들썩이며 뒤로 쭉 밀렸다. 그러자 진은 이전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오케이! 이제 이대로만 가면..’
구성원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진법이었다. 체력 소모는 적은 반면, 괴물을 처치하는 속도는 빨랐다.
이전 전투와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의 안정감과 속도. 이렇게만 가면 일을 낼 것 같았다. 다들 정말 잘해주고 있었다.
“더 끌어들여야지. 확실하게 들어왔을 때 공격하라고!”
취소다. 아직은 미숙한 점이 많아서 불안하다. 실수하는 걸 보니 갑자기 물가에 어린 애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진혁은 호승렴을 슬쩍 보았다. 여전히 엄청난 기세를 뽐내면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전장에서 보여주는 녀석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소림 쪽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진법에 전력을 다한 세가 연합이 과연 새로운 검을 사용하는 소림 쪽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전투가 끝난 후, 제갈중선이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감독관의 천막으로 향했다.
“흐음.. 허어.. 이게 정말인가?”
감독관의 수장인 협개가 결과를 받아들고는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감독관들도 놀란 표정이었는데,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공대사는 소림 쪽이 당연히 1위라고 생각했는지 웃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격차가 너무 커서 감독관들이 저러는 모양이라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세가 연합이 가장 많은 괴물을 처치했네.”
결과는 놀라웠다. 세가 연합이 첫 전투에 이어서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아슬아슬한 것도 아니고 상당한 격차가 났다.
무공대사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검을 바꾸었는데, 세가 연합이 자신들을 앞질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아아!!”
“했어요. 우리가 또 했습니다!”
제갈중선과 세가 연합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남궁 세가의 장로는 약간 묘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기뻐하기는 했다. 반면 소림 쪽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대검파는 얼굴이 전부 흙빛이 되었다. 꼴찌.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결과였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다섯 문파가 고르고 고른 정예를 보냈는데 꼴찌라니. 소림 쪽과도 격차가 제법 났다. 세가 연합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벌어졌고.
이 결과로 토벌전에 참가한 각 문파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가장 생각이 복잡한 곳은 아무래도 남궁 세가였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호승렴이라는 놈이 너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그놈으로 대표를 바꾸자는 말이 나올까 무서워요.”
설마 그렇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나이도 그렇고 문파도 그렇고.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성적이면 아예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장세문이나 황서군보다 못할 게 없어요. 아니. 오히려 조금 나은 정돕니다.”
그 말에 모두들 놀랐다. 장세문이나 황서군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실적을 쌓은 자들이다. 하지만 호승렴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을 만든 결과.
“아니. 그 정돕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남궁표를 쳐다보았다. 남궁표는 화가 나면서도 민망한 표정이었다. 어쩔 줄을 모른 채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오늘 보니까 딱히 호승렴이라는 아이에게 몰아주고 그러는 것도 없더이다. 양쪽을 적당히 잘 조율하던데..”
“나도 유심히 살폈는데, 딱히 트집을 잡을 거리가 없더이다.”
남궁 세가의 사람들은 전투할 때 유심히 관찰했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그걸 빌미로 다시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그런 거였다.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 진법을 적용시키지 않았을 때와는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1위를 한 것이겠지만. 다른 세가도 다들 칭찬만 했다. 힘은 덜 들고 성과는 좋았으니까. 게다가 다치는 일이나 전투 중에 불안한 경우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
“허어.. 이러다가 세가 연합이 수위라도 차지하게 되면 정말 복잡해지겠구려.”
“하지만 오대검파나 소림 쪽이 가만히 있겠소이까.”
그들의 말대로 그 두 무리도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오대검파는 특히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소림 쪽은 검을 사용해서 그런 것이고, 세가 연합은 진법이다?”
“예.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무당의 현허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아니 소림 쪽이야 그렇다고 쳐도, 세가 연합은 이상하지 않소?”
“맞습니다. 세가 연합의 실력이야 뻔한 것인데, 진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이런 결과라니. 분명히 이거 말고 다른 뭔가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황서군을 도검당주로 만드는 일은 물 건너가게 생겼다.
“일단 알아봅시다. 그리고 소림에서 사용하는 그 검. 그것도 좀 알아보고.”
현허진인의 말에 화산의 장문인 을지검군 주복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맹주님. 제가 검과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오. 주 장문인. 그래. 어떤 이야기요?”
현허진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무림인 치고 소림이 사용하는 검에 관심이 없는 자는 없을 것이다.
“본문의 제자 중에 문승강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오. 잘 알지요. 이번에도 황서군과 거의 대등한 성적을 재고 있다면서요.”
대등한 성적이라는 건 화산의 위신을 살려주기 위함이다. 황서군과는 차이가 제법 났다. 하지만 문승강은 기를 쓰고 괴물을 잡고 있어서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예. 그 아이가 검과 관련해서 아는 것이 있답니다. 그 아이가 사용하는 검이..”
주복형은 문승강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검을 구했는데, 그것이 소림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말을.
“아니. 그게 정말이오? 그 검은 어디서 구했다고 합디까?”
“그것이..”
주복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했다.
“아는 사람이 구한 출처를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출처가..”
“출처가 어디요?”
“흠.. 그게.. 철각패도라고 합니다.”
“철각패도? 아니. 그자에게서 검을 구했다는 거요?”
주복형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문승강은 아는 사람에게서 받은 거라고.
“그런데 그 검이 정말 효과가 있더이까?”
“저도 오늘 전투가 끝나고 들은 터라서 확인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현허진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난감한 일 아니오. 하필 철각패도라니. 그 무도한 사혈련의 주구가..
잠시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런저런 말이 계속 오갔다. 효과만 있다면야 검을 구하고 싶은데, 상대가 사혈련의 인물이니 찝찝했던 거였다.
“일단은 확인을 해봅시다. 그러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다들 동의했다. 하지만 확인을 하고 나자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를 어쩐다..”
검은 효과가 있었다. 당연한 거였다. 문승강에게 준 사람은 진혁이었으니까.
“검을 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철각패도는 무림맹과는 사연이 많지 않소.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될 터인데..”
주복형은 은밀하게 제안을 했다.
“그럼 다른 사람을 통해서 구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럽니까. 그걸 무공 그 땡초가 어떻게든 알아낼 테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무공대사는 감찰권이 있다. 만약 오대검파가 1위를 한다면 무공대사는 검의 출처가 어디인지 악착같이 찾아낼 거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물고 늘어질 것이니 그걸 어찌할지 고민인 거였다.
“제가 한 번 다른 사람을 통해서 구해보겠습니다.”
“주 장문인이요? 허어.. 그러다가 잘못되는 날이면 큰 문제가 될 텐데요..”
주복형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현허진인 정도 되는 사람이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걸까? 아니다. 누군가 나서서 먼저 그 역할을 자청하길 바라는 거다.
그리고 계속 반대하고 주저하다가 조건부로 승낙할 거다. 모든 책임은 그 사람이 지는 걸로. 주복형의 생각대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현허진인은 계속 뜸을 들였고, 주복형은 발각되어도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꺼냈다.
“주 장문인의 충정은 잘 알겠소이다. 정 그렇다면 주 장문인이 알아서 해보시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주복형이 그 말을 하고 나가려 하자 현허진인이 그를 잡았다.
“주 장문인이 이렇게 나서주시는데 모른척하는 건 또 예의가 아니지요. 있어보자..”
“음.. 이번에 무림맹에서 군부와 같이 토벌대를 조직하는데 거기 수장 자리를 맡아보시는 게 어떻겠소?”
주복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주신다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군부와 함께 움직이는 자리다. 그것도 상당히 큰 규모의 일. 이권도 많이 얽히고 짭짤한 자리에 내 사람들을 넣을 수도 있다.
게다가 괴물을 토벌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에 끝나겠나. 심각한 타격을 받은 화산파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다. 주복형의 입가에 미소가 달렸다.
“그러면 검은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주복형은 그때만 해도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라던가.
“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라고?”
“아니.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검을 사러 온 사람에게 철각패도가 말했다.
“중요하고 말고는 내가 정하는 거지. 야. 이거 살 사람이 직접 오라고 전해.”
안 오면 검은 구경도 못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철각패도는 사람을 내쫓으며 말을 툭 내뱉었다.
“싫으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