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7 / 0150 ----------------------------------------------
실력으로 합시다. 실력!
남궁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거절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유가 뭡니까?”
“어제 자네도 보지 않았나.”
제갈중선은 진법에 문제가 좀 있다고 핑계를 댔다.
“어제 진법을 시험 삼아 적용 시켜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많더군. 역시 효과는 검증하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는 게 맞아.”
제갈중선은 전투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남궁표의 표정이 볼만하게 변했다. 이유야 뻔한 거 아니겠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은 남궁 세가에서 거절할 때 한 말이었다.
잘만 싸우더니 진법에 문제가 있다? 이건 대놓고 싸움을 거는 거다. 남궁 세가의 장로가 슬쩍 귓속말을 했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계속해서 피곤해질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도 없잖습니까?”
남궁 세가의 사람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이번 기회를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할 건가.
포기하면 모든 게 쉽다. 결정도 간단하고 위험할 일도 없다. 하지만 욕심이란 놈은 인간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더군다나 살짝 맛을 본 상태다. 1위를 한 번 했고, 잘하면 뭔가 될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욕심을 버린다? 그런 자라면 애초에 높은 자리를 노리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문제가 많기는 한데..”
제갈중선은 살짝 남궁 세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 말을 이었다.
“지휘를 우리 쪽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오.”
지휘를 한다? 그건 인원 전체를 마음대로 부리겠다는 거다. 남궁 세가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제갈중선은 태연했다.
“진법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며 남궁 세가 사람들이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과연 자네 말대로군.”
제갈중선은 진혁을 쳐다보았다. 주도권을 가져오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진혁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갈 세가도 머리로는 빠지지 않는 곳이다. 진혁의 아이디어를 듣고 요모조모 따져보았다. 그리고는 이번 기회를 살리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쩔 수 없겠지. 게다가 나중에 다른 세가로부터 받을 원망도 생각해야 할 거고.”
남궁표를 도검당주로 만들겠다는 욕망. 욕망의 불길은 쉽게 잡을 수 없는 법이다. 아예 불이 붙지 않았으면 모를까, 불이 붙은 이상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세가에서 알면 어떻게 되겠나. 제갈 세가에서 진법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을.
“피해를 줄일 방법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비난을 듣겠지.”
반발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지휘 권한을 내어 주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결정이겠네요.”
제갈벽린이 중얼거렸다.
“잘못하면 남궁 세가와 척을 질 수도 있는데 정말 괜찮겠소이까?”
온위립이 걱정이 된다는 듯 물었다. 제갈 세가와 항의해서 이미 결정을 한 사항이다. 하지만 일이 커지는 것 같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갈 세가는 영원히 다른 세가 밑에 있어야 할 겁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가주님과도 상의가 된 사항이니 걱정 마시지요.”
제갈 중선은 이번에 제갈 세가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머리만 좋고 무공은 약한 세가. 그게 제갈 세가 아니었습니까. 사실 세가 연합이라고는 했지만, 다른 세가들은 제갈 세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머리를 쓰거나 기관진식을 사용할 일이 있을 때나 써먹을 수 있는 부하 정도의 느낌? 지금까지 제갈 세가가 받은 대우가 그랬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힘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일어나려는 겁니다. 언제까지나 계속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수는 없으니까.”
“그 입장 이해합니다.”
온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천문은 더했다. 정말 온갖 수모를 다 겪었다. 쓰레기 문파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래서 이번 일을 함께하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현천문의 무공과 제갈 세가의 진법이 결합되니 정말 효과가 좋았다.
“제갈 세가와 본문은 여러모로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확실하게 밀어봅시다. 둘째 제자인 호승렴을요.”
괴물을 많이 처치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당연히 괴물을 잘 잡는 무인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당의 황서군이 그랬고, 종남의 장세문이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하지만 세가 연합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남궁표가 분전하기는 했지만, 압도적인 1위는 호승렴이었다.
애초에 두 곳은 한 사람을 밀어주기 위해서 단단하게 뭉쳤지만, 세가 연합은 세가 별로 움직였다.
“녀석 잘 할 수 있을는지.”
“그런 말씀 마십시오. 지금 호 소협을 주목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호승렴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혁이 주로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니 호승렴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
호승렴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감독관이 따로 찾아와 누구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남궁표를 비롯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적.
진혁도 호승렴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렴이라면 지금은 남궁표와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괴물 잡는 거만 보면 훨씬 뛰어나고. 아니. 남궁표가 비교 대상이 아니지. 황서군 보다도 나을 거다.’
그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제갈 세가에서도 이번 일을 밀어붙인 거였다.
“그나저나 남궁 세가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요.”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이었다. 바로 지휘권을 넘길지, 아니면 버틸지. 그런데 남궁 세가는 다음 전투 때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그래도 경험도 있고, 준비도 좀 해서 이전보다는 피해가 덜했다. 그래도 오대검파나 소림 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성적. 남궁 세가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휘야 내주더라도 전투에서 활약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상황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제갈 세가에서 내놓은 진형이 문제였다. 공격을 이끄는 사람들 두 명으로 배정했다. 바로 남궁표와 호승렴이었다. 둘이 이끄는 무리가 공격의 선봉을 맡은 거였다.
“아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린가?”
“뭐가 이상하다는 말씀입니까?”
남궁 세가의 장로는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을 했다.
“아니 선봉을 둘이 서는 법이 어디 있나. 그것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 하고.”
단지 선봉의 문제가 아니다. 지휘를 내주었으니 남궁표가 가장 돋보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도검당주의 후보로 인정을 받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선봉이 두 명이라니. 그것도 제갈 세가에서 데려온 인물에게. 이건 남궁표를 밀어내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갈 중선은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 괴물이 이름 따져가면서 공격합니까?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배치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실적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사실 실적을 들먹이면 남궁 세가가 할 말은 없었다. 가장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건 현천문의 사람들이었으니까.
남궁 세가의 장로는 가까이 다가와서는 으르렁거렸다.
“정말 이럴 건가?”
“저는 가장 효과적인 진형을 짠 겁니다. 효과가 없다면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요.”
진혁은 피식 웃었다. 효과가 없을 수가 없다. 이미 검증된 진법이고 진혁이 힘을 더 보탤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남궁 세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전투를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
“그래. 뭐 다른 소식은 없고?”
문승강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로 진혁에게 말했다.
“소림 쪽에서 이번에 검을 바꾼다고..”
“검? 설마..”
들은 적이 있다. 소림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검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나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었다.
“얼마나 바꾼다거나 하는 말은 못 들었고?”
“전부 교체를 할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소림도 검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소림 쪽이 뒤지고는 있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 장세문도 제법 활약을 하고 있고. 아무래도 백령 진인의 영향이 컸지.’
둘이 치열한 경합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림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검을 사용한다면 판도가 확 바뀔 테니까.
‘가만. 그렇게 놔둘 수야 없지..“
서로 치고받고 싸우면서 망가져야 세가 연합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무언가 변화를 주어야 한다.
“야. 소림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검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런 검을?.. 말입니까..”
문승강은 무척 어색하게 말을 했다. 말을 높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랬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려고 하겠지?”
“그거야 물론!.. 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검을 팔면 되겠어. 아냐. 그렇게 하면 무당 쪽이 너무 유리해지는데. 그래. 전해 주더라도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하는 편이 좋겠다.
진혁은 전투를 몇 번 하고 나서 검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두 쪽은 치열해질 거다.
그런데 생각하니 꼭 그런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만. 이 녀석을 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진혁은 일단 문승강의 무공을 봐주었다. 다른 때보다 훨씬 자세하고 공을 들여서. 문승강은 확실히 기재는 기재였다.
그간 벽에 막혀서 정체되어 있었지만, 진혁의 가르침을 받고 나니 봇물이 터진 것처럼 거침없이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인지 문승강도 은근히 진혁을 만나러 오는 걸 좋아했다. 전에는 죽지 못해서 왔다고 하면 요즘은 자신이 어떻게든 수를 내서 찾아왔다.
진혁은 무공을 봐주는 걸 마치고는 문승강에게 말했다.
“너 어떻게든 두각을 나타내라. 괴물 처치하는 실적에서 일등을 니가 먹어버려.”
“예? 아니 어떻게..”
황서군이 많은 괴물을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 탓이 컸다. 일종의 몰아주기를 하는 거였다. 적당히 상대해서 죽이기 좋게 한 다음에 가져다 바치는 식이었다.
그래야 단시간에 많은 수의 괴물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문승강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1위를 한단 말인가.
“그건 어려운데..”
진혁은 어떻게든 수를 내서 해보라고 했지만, 문승강은 곤란하다는 말만 했다. 대부분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이라 움직이기가 어렵다면서.
“아. 이런 건전한 새끼를 봤나.”
진혁은 상대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조건 일등 먹어라. 실력은 내가 최대한 끌어올려 줄 테니까.”
진혁은 손가락으로 목을 그으면서 이야기했다. 문승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검을 바꾼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아니. 이렇게 쉽다니.”
소림을 위시한 다섯 문파의 무인들은 새로운 검의 위력에 다들 신기해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런 보검이 있었다니. 진작 이 검으로 싸웠더라면 훨씬 좋은 성과를 냈을 텐데 말입니다. 허어엇!”
종남의 무인 하나가 기합을 넣으며 당강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예전 같았으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를 찢듯 검이 쑥 들어갔다.
새로운 검의 위력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전과 비교하면 괴물을 잡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던 거다.
그리고 그 결과 장세문이 이끼는 소림 쪽이 최초로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도 상당한 격차를 두고.
세가 연합은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제는 세가 연합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로 좋지 않았다. 남궁 세가는 결국 제갈 세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30일이 제 생일인 관계로 이런저런 일이...
그래서 98편은 31일 12시쯤 올리겠습니다. 죄송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