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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발휘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강이요? 당강은 한참 뒤에나..”
제갈벽린은 의아한 눈초리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소문이 돌더군요. 바로 당강을 상대하게 될 거라는..”
“그래요? 이상하네. 저는 그런 소문을 듣지 못했는데..”
진혁은 자신도 우연히 들은 거라고 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세가 연합이 가장 부족한 건 사실 아닙니까.”
“뭐.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죠. 두 곳은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분들까지 전부 끌어모았으니까요.”
“그래서 준비를 좀 하면 어떨까 해서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로.”
진혁은 진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갈 세가의 강점은 진법과 기관에 있다. 여기다가 기관을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진법은 가능하다.
“진법이요? 하지만 진법이라는 게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필요하고..”
“큰 기대를 하는 게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진혁은 앞으로는 크게 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나올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그런 걸 막아보자고 말했다. 제갈벽린은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다.
“그래요. 다치거나 죽을 수 있죠..”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이 크게 다친 사실을 떠올리는 듯했다. 깜빡했으면 죽을 뻔하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했는지 얼굴에 그늘이 나타났던 그녀는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좋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걸 이야기해드릴 테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감사하죠.”
진혁은 괴물과 싸운 경험이 풍부하다. 그걸 바탕으로 하면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다. 제갈벽린은 진혁과 함께 진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만든다고 하는 게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건 아니다. 진법이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수는 없다.
기존의 진법을 현재 상황에 맞추어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이다.
“쉽지 않네요.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진법 고르기가 어려워요.”
한동안 고민을 하던 제갈벽린이 토해낸 말이었다. 기왕이면 효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떠 올려 보았지만, 괴물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것이 많지 않았다.
“애초에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니까요.”
“집에 돌아가면 예전 진법도 좀 조사를 해봐야겠어요.”
무척 아쉬워하면서 그녀는 팔진도를 언급했다.
“그나마 팔진도가 가장 효과적일 것 같기는 한데..”
“그러면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좀 있어서요.”
어차피 팔진도를 제대로 펼칠 수는 없다. 팔진도를 기본으로 하되 최대한 단순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너무 단순화하면 효과가 떨어지니 보완을 해야 하는데..”
그 보완책이 진법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중간에서 조율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야 어느 정도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제가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소협이요? 진법을 잘 아시나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덕강은 진법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그 지식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는 안다.
“까막눈은 아니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해볼게요.”
제갈벽린은 진법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했는데, 거침없이 대답하자 난이도를 조금씩 높였다.
“진법 따로 공부하셨어요? 저희 세가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잘 아시는 것 같은데요?”
제갈벽린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물었다.
“사부님께 조금 배웠을 뿐입니다.”
“조금이요?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진법을 하는 사람들 기죽이는 거니까요.”
제갈벽린은 일반적인 무가에서는 이 정도로 진법을 알 수 없는데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진혁은 사부님이 워낙 다방면으로 박학다식하셔서 배울 수 있었다고만 말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조율하는 역할을 하면 될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제갈벽린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괴물에게 당한 이후로 생각이 조금은 변했다. 사람들이 괴물에게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 거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들 하느냐.”
제갈중선이 둘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다가와 물었다.
“토벌단이 사용할 진법이 없을까 해서요.”
“진법? 어디 나도 좀 들어보자꾸나.”
제갈중선도 진법에 관해서는 상당한 수준에 오른 사람이다. 상의한 내용을 보더니 대뜸 팔진도를 기본으로 했다는 걸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효과가 거의 없을 텐데?”
“그래서 중간에 보완을 하려구요.”
제갈벽린은 진혁과 자신이 보강하면 효과를 어느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제갈중선은 진혁이 진법까지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히 좋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은 생각인데... 이걸 받아 들여줄지가 또 문제구나.”
제갈 세가의 일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토벌단을 주도하는 건 남궁 세가다. 결정권은 그들에게 있다.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효과가 있다면 가장 좋은 건 그들이잖아요.”
“글쎄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제갈중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진혁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아니? 왜요?”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굳이 변화를 줄 이유가 있습니까?”
남궁표를 비롯한 남궁 세가 사람들은 제안을 거부했다.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번에 이동해서 당강을 상대해야 하니까..”
“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거 아닙니까.”
제갈벽린의 말을 남궁표가 잘라버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설득을 하려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제갈중선이 어깨를 잡았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좋은 방책이라 제안한 것이니 그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지요. 이런 제안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남궁 세가의 사람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고, 제갈중선도 미소 지었다. 하지만 돌아서 나오면서 제갈중선은 굳은 얼굴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우리 세가를 견제하려는 거다. 첫 전투 이후로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제갈중선의 말을 진혁이 받았다.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남궁표가 뒷전으로 밀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죠.”
“이해가 가네요. 거기다가 제갈 세가에서 진법까지 내놓았는데 효과가 좋으면..”
사람들은 남궁표 대신 제갈 세가를 기억할 거다. 그렇게 되면 만약 남궁표가 도검당주가 되더라도 좋을 게 없다.
그래서 진법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거부한 거다. 제갈 벽린은 바보 같은 선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도검당주와 같은 큰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이런 건 안고 가야죠. 그 정도 배포도 없으면서 무슨 도검당주를 하겠다는 거죠?”
진혁은 상당히 놀랐다. 남궁표 보다는 오히려 제갈 벽린이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성의 지위는 형편없다. 그나마 무인들은 나은 편이다. 무공이 전부이니 실력만 좋으면 어느 정도는 인정받으니까.
무림맹의 당주 중에서 여성은 딱 한 명이다.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고? 자세한 사정을 알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다.
‘한 명뿐이라는 게 접객당주니까.’
접객당주. 접객당은 말 그대로 손님을 안내하고 모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게다가 각 문파 배분을 하다 보니 그리된 거였다.
“괜찮을까요? 당강은 전에 상대했던 갈저보다 훨씬 강한데..”
제갈벽린이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진혁의 말대로 괜찮지 않았다.
장소를 이동해서 당강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남궁표는 자신의 지휘에 잘 따라달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진혁과 남궁벽린은 조금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강은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남궁표도 당강과 싸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싸워본 것과 지휘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투를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남궁표는 그런 것보다는 자신이 돋보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일부러 제갈 세가와 현천문 사람들을 후방에 배치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속셈. 하지만 그건 큰 패착이 될 것이다. 세가 연합의 전력은 그다지 탄탄하지 못했으니까.
‘그나마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인데..’
남궁표는 몰랐겠지만, 오크들은 후방에서 기습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가장 강한 놈들이 후방에 대거 포진해 있었으니 그쪽을 자신들이 방어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
호승렴은 후방에 몰아 놓았다고 투덜대고 있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표정이 바뀔 거다.
‘어? 이놈들이 생각보다 빨리 공격해 오는데?’
오크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진혁은 모든 움직임이 눈에 선했다.
분명히 공격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진혁은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준비들 해.”
“예. 대사형.”
사제들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진혁과 함께 사냥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제갈 세가의 무사들도 현천문을 믿었다. 그들도 준비를 서둘렀다.
“뭐야? 왜 이렇게 부산을 떠는데?”
남궁표는 제갈 세가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누가 토벌단을 이끄는지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갑자기 후방에서 당강이 튀어나왔을 때도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호승렴을 비롯한 몇 명이 당강을 막기 위해서 움직였을 때도 막지 않았다.
“저렇게 무모하게 움직였다간 큰일이..”
남궁표는 말을 멈추었다.
- 촤아악~
“쿠어어어어억!”
당강의 팔이 잘렸다. 여지인 온미령의 솜씨였다. 그 옆쪽은 더했다.
“이야앗!”
짧고 힘 있는 기합 소리와 함께 당강의 목이 공중으로 날았다. 현천문의 사형제들이 오크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렸다.
연이어 오크들이 몰려왔지만, 제갈 세가의 무인들이 뒤를 받쳤다. 진혁과 제갈벽린이 중간중간 지원을 했고.
남궁표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 정도 피해가 있기를 바랐는데, 너무나도 잘 막고 있었다. 이래서는 후방에 돌려 놓은 의미가 없다.
지금도 보라. 모든 무인들이 제갈 세가 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남궁표는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전원 돌격!”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무력이 가장 약한 제갈 세가도 저 정도인데, 우리는 그 이상을 할 수 있다는 판단. 하지만 그 명령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모두 미친 듯이 싸웠지만, 당강은 갈저와는 차원이 달랐다.
“빨리 막아! 막으라고!!”
남궁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를 지른다고 오크가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위급한 곳을 구원하기에 급급했다.
남궁표는 제갈 세가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쪽은 안정적으로 당강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치는 사람도 없고 잡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미약하기는 했지만, 진법의 힘도 있었다.
전투는 그렇게 제갈 세가만 안정적이고 나머지 세가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형국으로 흘라 갔다.
만약 제갈 세가가 먼저 정리하고 돕지 않았다면 다른 세가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 세가가 도와서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피해가 덜했다는 거지 없다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실적도 좋지 못했다. 이번에는 무당을 주축으로 하는 오대검파가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그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소림의 무리. 세가 연합은 전에 1위를 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처참한 성적을 냈다.
“잠깐 역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은 흘러갈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지요.”
부맹주 현허진인은 성적을 확인하고는 크게 웃었다. 그는 세가 연합이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급히 달려온 거였다.
“괴물을 잡은 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검당주는 가장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이 되어야지요. 암요.”
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무당의 황서군이 이미 도검당주가 된 것처럼 굴었다. 연이어 오대검파에 밀린 소림 쪽은 다소 침울해 있었고.
세가 연합은 초상집이었다. 낭굼표는 어쩔 수 없이 제갈 세가를 찾아와야 했다. 진법을 사용하자는 말을 하려고.
“그러기는 어렵겠습니다. 이번에는 저희가 거절해야겠군요.”
“예?”
제갈 세가의 거절에 남궁표는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