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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95화 (9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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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발휘 할 때가 되었습니다.

감독관들의 표정이 변했다.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건 자신들을 모욕하는 소리 아닌가. 항의하는 자들이 무림맹의 실세가 아니었다면 바로 검을 뽑았을 거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들인가?!”

감독관의 수장을 맡은 협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천막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협개의 위상은 다른 감독관들과는 달랐다. 무림맹의 실세들이라고 하더라도 협개를 무시하지 못했다. 원로들을 대표하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무림 맹주를 선출할 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왜 흥분한 이유가 뭐겠나. 도검당주를 뽑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토벌전의 결과 때문이다. 도검당주 자리에 이렇게 목을 매는 건 무림맹주 자리 때문이고.

“뭐가 잘못되었다는 게야? 지금 우리 감독관들을 전부 바보 멍청이로 아는 겐가?”

“선배.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할 결과 아닙니까?”

분광검 은태명이 이야기했다.

은태명은 백령진인이 가세한다고 하자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 전력을 최대한 끌어모았고, 오대검파의 동향도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 오늘 전투에서 내심 1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대검파 쪽이 다소 부진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도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차이가 나더라도 그리 큰 차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꼴찌라니. 처음에는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무슨 생각인지는 나도 아네. 하지만 결과는 정확해. 몇 번이나 확인을 한 것이고.”

“정말 세가 연합이 1위란 말씀이십니까?”

“나도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라네.”

당황스러운 건 오대검파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1위라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오늘 다소 고전을 했다. 그래서 2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림 쪽에게 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세가 연합이 1위라는 게 아닌가. 한 달을 기한으로 경쟁을 한다. 첫날의 결과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뜻밖의 변수는 언제나 골치 아픈 일이다.

“아무튼, 결과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니 그렇게들 알게.”

협개의 노한 목소리에 다들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날 바로 무리별로 회동이 이루어졌다.

“아니. 세가 연합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오?”

전금당주인 왕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는 무림맹에 있어야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평정산 부근에 와 있었다.

무림맹 실세들에게 토벌전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나. 모든 이목이 이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가 겹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인 듯합니다.”

“허어.. 가뜩이나 도검당주가 나서는 바람에 골치가 아픈데 갑자기 세가 연합까지..”

괴물과 싸운 경험을 한 무인은 그리 많지 않다. 가능하면 피했지 맞붙어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괴물 공략에 미숙했다. 그게 오늘 실패한 원인 중 하나였다.

“너무 여유를 부린 것 아닙니까?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인데..”

“여유보다는 괴물에 익숙치 않으니 탐색을 좀 한 게지요.”

왕표의 말에 을지검군 주복형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받아쳤다.

“여유든 탐색이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 사람이에요. 하지만 세가 연합에도 밀리고 소림 쪽과도 거의 차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왕표의 말에 주복형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결과는 그랬으니까.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무당의 황서군이 나서자 왕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시게. 무리를 이끄는 건 자네 아닌가.”

황서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 일에 저도 놀랐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서군은 오늘 여러 가지 실수가 있었다는 걸 자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순위보다는 내부적으로 추스르고 다음을 대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맞는 이야기일세.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것도 같은 이유였네.”

왕표는 믿음직하다는 듯 황서군을 쳐다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무인 출신은 아니었지만, 왕표는 무림맹의 전금당주이다. 돈으로 자리를 샀다는 비난을 듣고 있긴 하지만,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 역시 그런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이 자리에는 황서군과 무당의 현풍진인, 화산의 을지검군 주복형, 청성의 귀운자 임약풍이 있다. 오대검파 토벌단의 수뇌만 모인 자리.

“돈이 아무리 많아도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거 아실 겁니다. 그래서 전금당주 자리에 앉은 거 아닙니까.”

그는 살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 무림맹의 맹주 자리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주머니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를 열지 않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상인에게 돈은 검이지요. 여러분이 검으로 싸울 때, 나는 돈으로 싸웁니다.”

그는 이번에는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준비를 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감독관들을 매수라도 할 생각입니까?”

을지검군 주복형의 말에 왕표는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왕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단순한 수가 먹히겠나. 그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괴물을 잡는 거나 신경을 쓰시게.”

같은 시각, 소림 쪽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를 주도한 것이 호법대주인 무공대사라는 점만 빼면 오대검파의 대화와 대동소이했다.

세가 연합도 모이기는 했는데,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신들이 1위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세가 연합은 기분 좋게 대화를 하다 헤어졌다. 다들 제갈 세가가 활약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축하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다들 웃는 표정이었는데, 오로지 남궁표만은 종종 얼굴이 굳었다. 자신보다 현천문이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토벌전의 첫날은 파란 속에서 저물어갔다.

***

‘저기요? 관리자님?’

진혁은 몰래 밖으로 나와서는 관리자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고 누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아니.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야?”

분명히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생각하면 그게 관리자에게 전달된다고 했다. 갖가지 방법을 다 써봤다.

마나를 최대한 올려보기도 했고, 집중해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자만 오면 정말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도무지 만날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연락을 했으니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하여간 나오기만 해봐라.”

진혁은 그런데 왜 이놈은 나타나지 않는 거냐고 투덜거렸다. 문승강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각이 되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무조건 둘째 날 술시에 찾아오라고 했다. 방법이야 지가 알아서 찾겠지.

그런데 보이지 않아서 오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있었는데, 부스럭 소리와 함께 문승강이 나타났다.

“어. 이제 왔어? 이리 와.”

진혁은 자연스럽게 손짓으로 불렀다.

“그게.. 왜 보자고 했는지..”

평소 약간 거만하게까지 느껴지던 문승강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쭈뼛거리면서 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어허. 우리가 꼭 일이 있어야 보는 사이인가. 그냥 가끔 만나서 안부도 확인하고 그래야지.”

그 말을 들은 문승강은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흔적을 얼굴에서 지웠다. 이 악귀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진혁은 친근하게 어깨에 손을 얹고는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쪽 반응은 좀 어때?”

“그게.. 다들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하긴. 그렇게들 생각하겠지. 그런데 넌 어떻게 나왔냐?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나왔네?”

각 무리는 활동 범위가 정해져 있다. 일정 지역 밖으로 나가는 걸 원칙적으로는 금지했다. 감독관에게 걸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

“이쪽 정보를 좀 알아오겠다고 했더니 알아서 손을 써주셔서..”

진혁은 피식 웃었다. 하기야 세가 연합의 일이 궁금하긴 할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정보를 알아오겠다고 했으니 힘을 좀 써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그게.. 다음 전투가 예정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거기 대비를 하라고..”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몇 차례 갈저를 더 사냥해야 한다. 그런데 문승강은 갈저는 이제 잡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바로 당강으로 넘어갈 거라고..”

“그래? 흐음.. 그쪽이 무공 수위가 높으니까 유리할 거다 이건가?”

그런 속셈이었다. 오대검파는 전력으로는 자신들이 가장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강한 괴물을 상대해서 변수를 줄이고 격차를 벌리자는 속셈이었다.

원칙적으로야 안 되는 일이었지만, 왕표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황금의 힘.

“그렇다 이거지. 그렇다면 우리도 좀 준비를 해야겠는데?”

진혁은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낸 후에 문승강에게 무공을 펼쳐보라고 했다. 너무 일방적으로 착취만 하면 반발이 생기니 당근도 챙겨주려는 거였다.

“무공은 왜?..”

문승강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진혁을 쳐다보았다.

“다 좋은 거니까 일단 펼쳐 봐. 내가 손을 좀 봐주려고 그런다.”

“굳이 그런 수고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 새끼가 지 무공을 훔쳐가려고 하는 줄 아나. 불쌍해서 좀 도와주려고 했더니.

“펼쳐라. 좋은 말로 할 때 하자. 분위기 바뀌는 거 너도 원치 않잖아? 음?”

문승강은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흐음.. 확실히 기본이 잘되어 있네.”

명문 거파에서 착실하게 다져진 실력이라는 게 보였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벌써 더 높은 경지에 올랐겠지.

“잠깐. 거기서 멈춰봐.”

진혁은 동작을 멈추게 하고는 자세와 내공 운용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축이 되는 발이라고 무조건 힘을 주면 안 되지. 전체적인 흐름과 균형도 생각하고, 다음 동작과의 연계도 있잖아.”

“이 부분은 부드럽게 넘어가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내공도 왜 그렇게 짜내듯이 눌러서 보내? 그냥 물을 흘려보내듯이 하라고.”

진혁은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기다가 원덕강의 지식을 약간 보태서 설명을 덧붙였고.

문승강은 깜짝 놀라서 진혁을 쳐다보았다. 그가 한 이야기 중에는 자신의 사부가 했던 것과 비슷한 말도 있었다.

그런데 더 자세했고 더 많은 걸 이야기했다. 이건 화산파의 무공을 통달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였다.

“아니. 어떻게 이걸..”

“일단 해봐. 효과가 있나 확인해야지.”

진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고, 문승강은 설명 들은 걸 되새기면서 무공을 다시 펼쳤다.

‘어? 뭔가 조금 다른데?’

아주 미약하지만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느낌 자체가 달랐다. 이전에는 매화검법을 펼치면서 이런 기분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막히는 것 같으면 진혁이 나서서 지적을 해주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문승강은 시키는 대로 했고, 점점 검법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 화아악.

갑자기 매화 향기가 주변에 퍼졌다. 진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제대로 된 길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었다.

“이제 걸음마는 뗐네.”

문승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멈추어서 자신의 손과 검을 쳐다보았다. 옅은 매화향이 문승강과 진혁의 주변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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