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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발휘 할 때가 되었습니다.
무공대사는 무림맹의 실세였다. 무각대사가 무림맹주이기는 하지만, 굵직굵직한 대소사에만 관여했다.
그것도 무공대사가 관계자와 조율을 한 대로 거의 흘러갔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호법대는 맹주의 경호뿐 아니라 감찰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다.
실려 막강한 권력. 그래서 실질적인 맹주는 무공대사라는 말까지 있었다. 모두가 무공대사를 어려워했고, 우러러보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이놈을..”
무공대사는 이를 갈았다. 철각패도에게 무참히 깨진 이후로 사람들이 시선이 바뀌었다. 겉으로야 여전히 머리를 숙였지만, 다소 우습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파의 인물에게 패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철각패도의 명성도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이익과 권력에만 열을 올리고 무공은 게을리하는 속물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았다. 지금이야 철각패도의 위명이 워낙 커져서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무공대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맹주가 바뀐다. 그런데 계속해서 일이 꼬였다. 무공대사는 이래저래 골치가 아팠다.
“부맹주님.”
무공대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자신이 심부름을 시킨 심복이 와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뭘 좀 알아냈느냐?”
무공대사는 철각패도에 관해 낱낱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그 정도 고수라면 분명히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정상인데, 과거 행적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무공이야 갑자기 기연을 얻었든, 산속에서 오래 수련을 했든 할 수 있다고 치자. 외모와 덩치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도 안 띌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무공대사는 분명히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철각패도를 감시하고 조사했다.
“과거 행적은 이번에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출신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출신지가 어디인 것 같더냐?”
심복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이야기했다.
“발해 부근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가끔 알아듣기 어려운 이상한 말을 사용하는데 물어보면 고향에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무공대사는 관심을 보였다. 철각패도에 관해서 알아낼 중요한 단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발해라.. 거기서 나고 자랐다면 중원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
“예. 그는 발해에서도 더 가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부맹주님 판단이 옳은 것 같습니다.”
발해라면 중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발해만 해도 그런데 게다가 거기서 가야 한다면 오죽할까. 무공대사는 철각패도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사람을 파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지방이라는 건 알아내지 못했느냐.”
“그것까지는.. 출신이 어디인지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그래? 흐음.. 놈의 외모나 하는 짓으로 보아 알만하다. 그곳에서 큰 죄를 짓고 도망친 거겠지..”
무공대사는 그렇다면 정보를 알기 조금은 쉽겠다고 생각했다. 죄를 지은 자야 많겠지만, 그런 외모는 흔치 않으니까.
“아무래도 그쪽에 사람을 보내서 좀 알아봐야겠구나..”
무공대사는 잠시 생각을 하다 다른 질문을 했다.
“원보 상단과의 관계에서 더 나온 것은 없고?”
“특별한 건 없습니다. 투자를 했다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접촉한 적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황실과 연관이 있는 상단인데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아니겠습니까?”
“황실은 무슨. 오히려 연관되었다가 피를 볼지도 모르는데..”
무공대사는 그건 아닐 거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해서 정보는 입수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수고했다.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거라.”
“그런데 미행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워낙 고수라서 원거리에서 미행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들켰다가는 더 낭패이니 걸리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심복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철각패도 정도의 고수는 미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게다가 이놈은 정말 신출귀몰했다.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행방이 묘연하다가 나중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야 어디에 있는 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심복은 뜸을 들였다. 무공대사는 개의치 말고 이야기를 하라고 손짓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조금 이상한 것이 보여서 말입니다.”
“이상한 것? 어떤 게 이상하다는 게냐?”
심복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천문의 하진혁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자와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무공대사는 자세를 바꾸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제가 조사하다 보니 둘이 연관된 일이 많았습니다. 일전에 현천문이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종남의 은홍명이 나서서 맞은 위기. 그런데 갑자기 철각패도가 나타나서 은홍명을 뭉개버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이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장안에서 사주까지 가는 데도 같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심복은 처음에는 원보 상단을 따라 움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괴물의 습격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철각패도가 도와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건 계속 지켜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긴 하구나. 하지만 상단을 계속 지켜본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느냐?”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복은 사주에서 둘이서 협상을 벌인 일을 말했다.
“철각패도의 심기가 무척 안 좋아서 말도 붙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진혁이라는 자가 들어가서는 협상을 했다고 하더군요.”
한 가지라면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둘 사이에 일이 있는 걸 보면 분명히 무언가 관계가 있는 거라고 했다.
“제가 알아보니 하진혁도 종종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계속 같은 장소에 존재했다. 둘 사이에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일들도 있었고.
“예. 맞습니다. 그 둘은..”
심복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고향이 같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분도 있는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럴 수 있지.”
“그러면 그 자를 무림맹으로 부를까요?”
무공대사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공연히 이목을 끌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요즘 부맹주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소림의 위세는 몇 년 전만 못했다. 게다가 성흥 상단까지 이번에 타격을 입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물론 사주에서의 일로 성흥 상단이 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피해가 있다는 건 사실. 반면에 무당 쪽은 승승장구였다.
이러다가 정말 차기 무림맹주는 무당에서 나올지도 몰랐다.
“은밀히 알아보도록 하자고. 지금은 그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접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복은 그 말을 남기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무공대사는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하진혁이라.. 그가 철각패도와 어떤 관계가 있다면 좋겠군..”
***
진혁은 다시 현천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 사람들과 이곳을 떠나야 한다. 무림맹의 도검각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토벌전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현천문 사람들은 이번에는 제대로 활약을 할 수 있겠다고 들떠있었다. 그런데 진혁은 뜻하지 않은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무림맹에서 오셨다구요?”
“그렇네. 나는 호법대를 이끄시는 무공대사님을 모시는 사람이지.”
그는 표식을 보여주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아 진짜일 것이다. 진혁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무림맹까지 사칭하면서 접근하겠나.
“그런데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렇다네. 잠깐 시간 괜찮겠나?”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있었고, 어차피 아니라고 해도 그냥 물러나겠나. 그러니 그냥 지금 얘기를 들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진혁과 무림맹 사람은 근처에 있는 객잔으로 갔다. 구석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 고향이 어디인가?”
“발해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고향을 묻는 걸 보고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
“발해에서 남쪽으로 한참 가야 나오는 작은 마을인데, 서울이란 곳입니다.”
“서울이라..”
무림맹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지금은 있지도 않을 테니 찾아봐야 소용없겠지. 그리고 설마 거기까지 가서 찾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진혁은 그건 왜 묻느냐고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 혹시 철각패도를 아는가?”
“예.. 알긴 압니다만..”
무림맹 사람은 몸을 조금 가까이 내밀면서 물었다.
“혹시 철각패도와 같은 고향 아닌가? 두 사람 다 가끔 이상한 말을 쓴다고 하던데..”
아차. 그런 걸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말하는 걸 조금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쩌겠나. 진혁은 아니라고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본 적이 없어서..”
“둘이 고향에 관한 말을 한 적도 없고?”
“예. 그런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습니다.”
진혁은 지금까지 철각패도와 만난 적이 두 번 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건 괴물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그때 거의 죽을 뻔하다가 도움을 받았는데, 상처가 심해서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가? 위험한 상황인데 철각패도 같은 자가 용케도 구해주었군..”
“아. 그쪽을 잘 모르시나 보군요.”
진혁은 무림맹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자 슬쩍 변명을 했다.
“괴물들이 나오는 곳에서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괴물에게 공격을 받고 있으면 무조건 도와야 한다. 물론 자신까지 죽을 것 같은데 그러라는 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괴물에게 습격받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괴물에게 당하고 있으면 돕는다고 했다.
관련된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 거다.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더니 조금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다음은 사주에서 협상을 할 때인데, 그때는 협상 관련해서만 이야기를 나눈 터라..”
“흐음.. 그러니까 그 두 번만 만났다? 동향인지는 알 수 없고?”
“예. 그렇습니다.”
무림맹 사람은 여전히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진혁을 쳐다보았다.
“아니. 제가 왜 그런 걸 속이겠습니까. 알아보시면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진혁은 자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진혁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사람의 몸이 두 개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게다가 진혁과 철각패도가 동일인이라는 건 짐작조차 못 할 거다. 성격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달랐으니까.
“그렇군. 알겠네. 혹시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물으러 오지.”
“예. 언제든 오셔도 좋습니다.”
진혁 캐릭터에 맞는 대답을 했다. 사실은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현천문으로 돌아온 진혁은 생각했다. 앞으로는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고. 절대로 들키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작은 실수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선물로 받은 게 떠올랐다.
“가만있어봐. 양의심공이 있지. 그걸 익히면 혹시..”
양의심공을 익히면 정신을 둘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두 개의 몸을 동시에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이건 정말 대박인데?”
진혁은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문까지 열고 밖에도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진혁은 자신의 방에서 아공간을 열었다.
양의심공만 후다닥 꺼낸 다음에 바로 닫아버렸다.
“양의심공이라..”
진혁은 빨리 이걸 익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