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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마니 교육시키기.
정말 원 없이 얻어맞았다. 인간이면 이러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손을 썼다. 자존심? 그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하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자존심.
“이야기 하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를 했을 건데..”
“그게..”
문승강은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리라고 생각한 적이 언제 있던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은 화산파의 적전제자이자 사룡의 일원이다.
신진 고수 중에서 손꼽히는 자. 무림맹이나 화산파에서 한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인물. 그런 이야기만 듣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그건 아닌데..”
“말투가 어째 기분 나빠하는 것 같다?”
“아.. 아닙니다.”
죽고 싶었다. 이렇게 비참한 꼴이라니.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이상하게 숨이 찼다. 한없이 깊은 무저갱에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
“에이.. 아닌 것 같은데.. 기분 나쁜 것 같은데?”
“정말 아닙니다.”
진혁은 문승강이 입술을 깨무는 걸 보았다. 인간의 몸은 무의식중에 움직일 때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거다.
‘아직도 죽지 않았네? 그래. 사고 더 쳐라.’
진혁은 그 정도로 다독이는 걸 끝냈다. 어차피 적당히 날뛰어 주어야 이용해 먹기 좋다. 너무 기가 죽어서 쥐죽은 듯이 지내면 오히려 곤란하다.
“좋아. 한 번 더 믿어보지. 그건 그렇고 내가 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지?”“그.. 그렇습니다.”
살짝 더듬었다. 고민한다는 뜻. 오케이. 그 정도는 봐주지. 진혁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일을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좀 아까웠다.
사룡 중 한 명인데 좀더 큰 판에서 쓰는 게 좋았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문승강 정도면 써먹을 일이 넘친다.
‘무림맹 도검당주를 놓고 벌이는 토벌전 같은 때가 제격이지.’
세 무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다. 황도 방어를 위한 이번 토벌로 조금 미루어지기는 했지만, 곧 시작될 거다. 당연히 문승강은 무당파가 이끈느 오대검파 소속으로 나설 거고.
자신과 현천문은 오대세가 쪽에 있을 거다.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겠는가. 정보를 빼내오는 것부터 잘못된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고. 그쪽에 해가 되는 행위를 시킬 수도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끝장을 낼 거라고 했다. 아무도 모르게 죽여서 파묻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긴 했는데 문승강은 굴복하는 척만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눈빛이나 여러 가지 보면 알지 뭐. 이럴 때는 원덕강이나 사혈련 장로의 기억이 도움이 많이 된다. 워낙 오래 살고 험하게 살아온 자들이라서 이런 거 파악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문승강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예의 깊게 주시했다. 물론 진혁의 몸만으로 한 건 아니다. 진혁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는 다른 몸도 적절히 활용했다.
“특별한 일은 없고?”
철각패도의 말에 흑수 갈맹이 눈빛을 번득였다.
“요즘 그쪽에 부쩍 관심을 많이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시는 자라도..”
“그쪽 일이 어찌 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테니까.”
갈맹은 그런 것치고는 이상한 데 관심을 둔다고 생각했다. 저번에는 갑자기 번을 서는 데 손을 써달라고 했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부탁이었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사혈련과 두궐륭 대장군의 친분이야 군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고, 그동안 기름친 것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번을 세울 계획표를 가져왔고, 철각패도가 고치는 대로 해주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딱히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낌이 왔다.
“화산파 말씀인데..”
화산파라는 말에 철각패도가 반응을 보였다. 분명했다. 화산파와 어떤 원한이 있는 게 분명했다.
흑수 갈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림의 무공대사를 때려눕혔고, 종남의 분광검 은태명과 청강검 은홍명을 아주 떡으로 만들었다.
사실 그 두 문파만 해도 버겁다. 소림과 종남은 같은 무리라서 그쪽에 뭔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데 이번에는 화산파까지.
이러면 구파일방을 전부 원수로 만드는 셈이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꿈도 꾸지 못할 일. 아니 강심장이어도 이런 짓은 못할 거다.
“그쪽 장수가 말하는데, 화산에서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몇 명을 교체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러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겠나?”
“막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면 공짜로 할 수 없다. 그런 사소한 일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 가면서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철각패도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데리고 교육을 시켜야 할 때다. 지금 빠져나가면 금방 회복이 될 테고, 그러면 공들인 게 날라간다.
“막게. 대신 검을 조금 더 빨리 주겠다고 하고.”
“그런 조건이라면야 그쪽에서도 받아들일 겁니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알고 나는 가겠네.”
흑수 갈맹은 급히 철각패도를 잡았다.
“련주님이 좀 뵙자고 하셨습니다. 상의할 일들이 많다고..”
“됐다. 알아서 하면 되지 내가 무슨..”
어차피 자신은 필요한 것만 하라고 전하면 끝이다. 가봐야 이런저런 게 필요하다면서 도와달라고 할 거 아닌가. 그런 건 딱 질색이다.
그거 아니더라도 할 일이 쌓였다. 철각패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바로 나가버렸다.
***
“에이. 이 사람이 무슨 농을 그렇게 하나.”
“아니. 정말이라니까.”
문승강은 가슴을 탁탁 쳤다. 사실을 말해줘도 믿지 않으니 속이 썩어서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그것도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새나가면 곤란하니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한 거다.
“저번 전투에서도 위기에 빠진 동료들을 구하는 걸 여럿이 봤다고. 나도 직접 봤는걸.”
“그게 다 위선이라니까 그러네.”
“무슨 소리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데 그런단 말인가?”
동료는 믿지 않았다. 문승강은 이를 갈았다. 어쩌면 저렇게 사악할 수 있는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믿었을 거다.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의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무서웠다.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러는 것인지.
‘악귀가 이 세상에 나타난 거야. 지옥에 있어야 할 악귀가.’
그는 동료를 보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악귀의 현혹에서 벗어나라고. 하지만 동료는 웃으면서 일어나버렸다.
‘야. 씨발 진짜라니까.’
속으로 외친 말은 가슴에서 맴돌았다. 공허한 마음만 더 쓸쓸해졌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괴로움은 그를 지치게 했다. 문승강은 그저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러면 무슨 수를 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일어났던 동료가 다시 돌아왔다.
“교체 신청 했었지?”
“아. 그게 결정이 났나 보군.”
“그게.. 교체는 불가하다고 연락이 왔는데?”
“뭐? 아니 왜?”
문승강은 어쩐지 불안해졌다. 그는 후다닥 뛰어나가서 번을 서는 차례를 확인했다. 상대가 진혁이었다.
‘이런 씨발. 걸렸구나.’
문승강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한쪽으로 언뜻언뜻 붉은 기운이 보였다. 해가 저물면서 구름이 붉게 칠해진 거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진혁이 저 멀리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았다.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뭘 어쩌겠나. 맞아야지.
“배신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는 그 정도였다.
“그래? 몸이 좋지 않아? 내가 의술도 조금 아는데 말이지..”
진혁은 팔을 걷어붙였다.
“여기 누워봐. 당분간은 몸 안 좋다는 말 안 하게 해줄 테니까.”
“아닙니다. 이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진짜야. 내가 의술 좀 안다니까?”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문승강은 누울 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일단 아혈을 막았다.
“이게 소리가 나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어서..”
“읍우어으으..”
문승강의 눈이 커졌다.
“괜찮아. 다 몸에 좋은 거야.”
“우얼으어이.. 엉응아.. 으아어엉..”
진혁이 혈도를 누르기 시작했다.
“우에에에에에!!”
***
다행스럽게도 오래지 않아 괴물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오히려 토벌대가 활약을 해서 뒤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황도로 진행하던 괴물들은 정리가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물론 피해도 꽤 있었다. 무리하게 괴물을 격퇴하려다 병사와 무인들이 많이 상했다. 죽어도 그 자리를 사수하라는 두궐륭 대장군의 명령 때문이었다.
“하 표사. 정말 고마웠어.”
“그래. 꼭 연락 하라고.”
사람들이 아쉬운 듯 진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쪽으로 가게 되면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라고. 내가 근사하게 대접할 테니까.”
진혁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많은 무인들이 진혁 주변에 있으려고 해서 강제로 무리를 나누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드디어.. 드디어..!”
문승강은 주먹을 쥔 채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흘렸다.
괴물보다 진혁이 더 무서웠다. 무슨 이상한 짓을 시킬까 두려워서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차라리 뭐라도 시켰으면 덜 불안할 텐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니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제 끝이 났다. 다시는 진혁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이제는 자유를 만끽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껏 기뻐하고 있는데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다가왔다. 진혁이었다.
“기쁘신가봅니다.”
진혁은 보는 눈이 있으니 평소처럼 행동했다.
“하하. 뭐.. 나는 바빠서..”
문승강은 내빼려고 했지만, 진혁은 그보다 한발 앞서 붙잡았다.
“어딜 가시려고. 얘기는 하고 가셔야지..”
진혁이 웃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문승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보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이제 돌아간다는 사실 기뻐하면서 짐을 싸기 바빴다. 진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물론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얼마 있으면 무림맹 도검당주를 결정하는 토벌전이 있는데 알고 있지?”
“알고는 있는데 그건 왜..”
진혁은 작지만 확실하게 강조해서 말했다.
“당연히 거기 참가하겠지? 화산파 대표로?”
문승강은 눈치챘다. 거기서 뭔가 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그게.. 제가 몸이 워낙 좋지 않아서..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문승강의 몰골은 상당히 초췌했다. 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보였다. 동료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문승강은 그럴 때마다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고 넘겼다.
“그래? 그럼 내가 좀 고쳐줄까? 반각이면 나로 낫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걸 또 당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당했던 어떤 짓보다도 끔찍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다가 여기저기 물어뜯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당시를 생각만 했는데도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럼 그때 볼 수 있겠네?”
“그.. 그럼요..”
대답만 이렇게 하고 오지 않을 생각 같았다. 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그를 데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다들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어서 둘이 사라진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잘 봐.”
진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낙양의 구석진 장소.
철각패도는 곧바로 몸을 바꾸었다. 또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흐억..”
문승강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공에서 머리부터 사람이 생기는 광경은 낮인데도 전율이 일게 했다. 문승강은 진혁이 악귀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사람이 아니라 악귀. 사람이 악귀를 어떻게 이기겠나. 자신이 이렇게 당하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올 마음이 좀 생기지 않아?”
“예. 그럼요. 무조건 가겠습니다.”
진정성이 보이는 대답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혹시라도 안 오면 직접 찾아가지.”
문승강은 허공에서 갑자기 진혁이 나타나는 상상을 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너는 내 똘마니다.”
“똘.. 마니?”
또 튀어나왔다. 안 쓸려고 노력하는데도 예전 쓰던 단어가 툭툭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이 있다. 음.. 상하관계. 뭐 그런 거야.”
“아. 예..”
문승강은 어쩐지 좋은 의미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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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쓰고 한 몇 시간 여유가 생기니 정말 좋네요..
몇 시간 쉬는 게 이렇게 좋은 거라니.. 크핫핫핫..
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일도 일해야 하죠. ㅠㅠ
일주일에 하루만 쉬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