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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괴물을 알아?
철각패도는 그날 곧바로 백령진인을 찾아갔다. 무림맹 분타의 문지기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병사가 탱크를 가로막는 꼴이었다. 철각패도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사혈련의 장로씩이나 되는 분이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백령진인이 나와서 소리쳤다. 철각패도가 왔다는 걸 안 이상 다른 사람이 나서는 건 소용없는 일. 가장 지위가 높은 백령진인이 나섰다.
기억이 났다. 사협 표국의 일로 이곳에 올 때 본 얼굴이었다.
“실력을 겨뤄보러 왔는데 대접이 별로구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이렇게 쳐들어와서는 무공을 겨루자니요.”
백령진인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 시각에 와서 칼을 겨누자고 하는 겁니까?”
“생사결을 하자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실력을 한 번 보자는 게야.”
무림맹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혈련의 장로가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런데 말만 들어보면 비무를 하자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비무첩을 보내던가 하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할 거 뭐 있나. 그냥 가볍게 손속을 나누어 보면 될 것을.”
철각패도는 팔을 걷으며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무인이 서로 실력을 겨루는 게 뭐가 이상한가? 평소에 수련이라도 게을리해서 그러는 건가?”
백령진인은 이를 악물었다.
철각패도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소림의 무공대사와 종남의 은홍명을 이긴 자. 일신의 무력이 엄청나다는 소문이었다.
사주에서 성흥 상단과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검은 형제단을 단신으로 박살 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백령진인은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가 그대를 두려워할 줄 아시오?”
무공으로는 무림맹주도 두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승부에서 패한 적은 거의 없었다. 곤륜의 희망. 곤륜의 별. 백령진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무림맹은 혓바닥을 단련하는 무공이 따로 있나?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철각패도는 지금까지 만난 놈들 전부 말이 많았다며 투덜거렸다. 백령진인은 철각패도가 마음먹고 여기 왔다는 걸 확신했다.
자신이 거절한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손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바로 맞붙어 보는 편이 좋았다.
“좋소. 어디 어울려 봅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령진인의 몸이 앞으로 쭉 늘어났다. 엿가락처럼 주우욱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워낙 빠른 움직임이라 잔상이 남아 그렇게 보였던 거였다.
- 타닥. 타다닥. 타다닥.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손과 팔로 백령진인이 공격을 했고, 철각패도도 손을 사용해서 공격을 막았다.
‘오호라. 이 녀석 제법인데?’
지금까지 상대했던 무림맹 사람 중에서 가장 쓸만했다. 금검 교무국이나 혈도 임평백 보다도 반수 이상 위인 걸로 보였다.
‘무림맹의 도검각주라고 하더니. 거저 먹은 건 아니었군. 하지만.’
그래 봤자 사혈련주보다는 훨씬 아래.
철각패도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백령진인을 감쌌다. 거대한 몸뚱이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유연하고 매끄러운 움직임.
그의 두 팔이 백령진인의 양쪽을 점했다. 막아보려고 했지만, 모조리 차단당했다. 그리고 철각패도는 곧바로 두 손을 홱 돌렸다.
“엇차!”
백령진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날아갔다.
- 터어억. 지이이이익!
땅에 발을 디뎠지만, 회전하는 힘을 멈출 수 없었다. 백령진인은 몸을 틀면서 뒤로 주욱 밀렸다. 그러고 나서야 철각패도의 기운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백령진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수준의 차이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백령진인은 급히 몸을 옆으로 날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오는 걸 느꼈기 대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피한 자리에 나타나 주먹을 휘두르는 철각패도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을 거다.
백령진인은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
다음 날 장안에 소문이 났다. 사혈련의 철각패도와 무림맹의 백령진인이 붙었는데,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혹자는 철각패도가 압도적이었다고 했고, 혹자는 백령진인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진위야 어떻든 두 사람의 대결이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철각패도에 관한 말들이 많이 퍼졌다. 무시무시한 외모. 사주의 지배자.
사주에 사는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든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말 들었나? 협개가 철각패도에게 당했다는데?”
“정말?”
“무슨 소리야. 승부를 내지는 못했대.”
이번에는 낙양에서 전대 고수인 협개와 철각패도의 격돌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지만, 철각패도가 우세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리고 조금 다른 소문도 돌았다.
“자네도 들었어? 어제 여기 금 부자네가 싹 털렸다는 거.”
“에이. 이 사람아. 괜한 소리 하지 말라고.”
사람들은 소리를 죽이라며 야단쳤다.
“안 그래도 요즘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공연히 이상한 소리 했다가는 큰일 나. 이사람아.”
근래 부자들을 터는 도둑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재물을 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준다는 거였다.
다들 쉬쉬했다. 재물을 받은 사람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이럴 때 그런 사실이 걸렸다가는 죽은 목숨이라는 걸 아는 거다. 도둑과 한패로 몰려서 온갖 고문을 받다가.
그런데 특징이 있었다. 도둑이 턴 부자들이 모두 아주 지독한 악당이라는 거였다. 부자 치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중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금 대인은 평생 걷지 못할 거라던데?”
“하이고. 그렇게 못된 짓은 다 하더니만 꼴 좋다.”
그리고 그런 부자들과 거기에 동조해서 재물을 만지던 자들도 상당수 크게 다쳤다. 사람들은 누구인지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좋아했다.
그 의적이 계속 활약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복면을 써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고.
‘당연히 활동해야지.’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송 대인이라는 놈을 칠 생각이었다.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제대로 털어줄 거다. 몸도 평생 반성하면서 살 정도로 망가뜨려 줄 생각이었고. 그리고 오늘 정도 계획한 그걸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포인트가 많이 들어올 테니까.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철각패도는 송 부자의 집을 보면서 조소를 날렸다. 도둑이 들까봐 경비를 늘린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각패도가 움직이는데 그런 데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일을 처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이놈..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송 부자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놈들은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니들이 한 짓이 기억이 안나?”
철각패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남 그렇게 등쳐먹고 사람들 피와 땀을 쥐어짜서 배를 불렸으면 언젠가는 당할 거라는 것도 생각해야지. 니들은 평생 잘 먹고 잘살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놈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피해를 보고 당하는 건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여긴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도 마음 편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겠지. 철각패도는 이런 놈들을 때려잡는 일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통쾌했다. 이런 일이라면 매일 해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어디다가 숨겨 놨으려나..”
이제 재물을 수거 할 차례였다. 그리고 나눠주면 끝. 평소라면 그랬지만, 오늘은 한 단계가 더 남았다.
철각패도는 재물을 싹싹 끌어모았다. 숨긴 곳은 주인이나 관련자에게 물어서 알아냈다. 보통은 쉽게 입을 열지 않지만, 육체적인 대화를 조금 하고 나면 술술 불었다.
철각패도는 정말 말하지 않으면 죽일 것 같이 생긴 더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육체적인 대화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럼 슬슬 나눠주러 가 볼까.”
철각패도는 송 부자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가 주로 등쳐먹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당한 사람을 일일이 조사해서 나눠주는 건 불가능하다. 대충 뿌리는 거지. 철각패도는 무척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했다.
일일이 셈을 해서 나누어 주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던져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일반인이라면야 상당한 시간이 걸릴 일이겠지만, 철각패도와 같은 절정 고수에게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어디 보자. 지금 쯤이면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당연히 이런 놈들은 연관되어있는 무관이나 무력 집단이 있다. 그리고 일부러 연락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역시나 놈들이 오고 있었다. 엄청난 무리를 이끌고 오는 걸 보니 왜 이렇게 늦게 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가 겁난다 이거지. 그러니까 슬슬 시간을 끌다가 무인들을 잔뜩 모아서 이제 오는 것이고.’
상황이 끝난 후에 얼굴만 비치는 거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를 거다. 내가 다시 그 집에 갈 테니까. 철각패도는 재빨리 송 부자의 집에 들어갔다.
“허억.. 당신이 왜..”
송 부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졌다. 저승사자를 보았어도 이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왜냐니. 혹시나 숨겨 놓은 게 있나 싶어서 왔지. 아까 뭔가를 숨기는 것 같더라고. 더 있으면 어서 얘기하는 게 어때?”
복면을 쓴 철각패도가 다가서자 송 대인은 뒤로 물러섰다. 내공에 오장육부가 다쳐서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초인적인 힘을 내서 도망쳤다.
그는 마당으로 나가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급히 손을 흔들었다. 빨리 와서 자신을 살려달라고.
“김 관장. 성 대협. 나 좀 살려주시게. 나 좀..”
송 대인이라는 자가 부른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달려오다가 흠칫 놀랐다. 안에 그 유명한 도둑이 아직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덩치도 장난 아니었고, 풍기는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둘은 잠시 망설였지만, 자신들이 데려온 수하들의 숫자를 믿었다.
“쳐라.”
수하들은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적은 한 명. 게다가 도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인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다가왔다.
하지만 칼을 두 번 이상 휘두른 놈은 거의 없었다. 철각패도의 한 방에 그냥 거꾸러졌으니까. 이놈들은 조무래기들이라 그나마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
며칠 고생은 하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몇 놈을 공중에 날려버리니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네 이놈. 정체를 밝혀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수하들 틈에서 소리쳤다.
병신. 나와서 소리를 치든가 해야지 정말 없어 보인다. 저런 놈들은 일대일로는 제대로 붙지도 못하는 것들이다.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쓰레기들.
그래도 윗사람 대접을 받는 걸 보니 예전에 한가락 한 놈들인 듯했다. 지금이야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게 뻔하지만.
“당장 이리로 와서..”
너무 병신같아서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정체를 밝힐 거면 뭐하러 복면을 썼겠냐. 그리고 내가 그리로 왜 가? 애들 공중에 날려버린 실력 못 봤어?
철객패도는 복면을 잠깐 매만진 다음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
어색한 리액션 같은 반응이 이어지고 놈들이 쫓아 나왔다. 쫓는 척하는 거다. 실력을 봤으니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철각패도가 멈춰서 자세를 잡으니 오다가 자빠지고 난리가 났다. 놈들에게 용기를 좀 주기 위해서 몸이 불편한 척했다.
“놈이 다쳤다. 잡아라. 놈을 잡으면 큰 상을 내리겠다.”
뻥일 거다. 저런 놈들이 큰 상을 준다고? 큰 상이라고 했지만, 생색만 내고 사실은 별거 아닐 게 뻔했다. 그래도 큰 상이라는 말에 몇 놈이 달려들었다.
적당히 어울려주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구경을 했다. 됐다. 이제 판이 마련되었다.
“어이쿠!”
어디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복면을 슬쩍 흘렸다. 순간적으로 구경을 하던 몇 사람이 철각패도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철각패도는 급히 복면을 쓰는 척하면서 일부러 얼굴을 조금 더 보여주었다. 절대로 잊어먹지 않을 거다. 이렇게 더러운 인상을 가진 사람은 많이 않으므로.
복면을 다시 쓴 철각패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덤벼드는 놈들을 잘근잘근 다져주었다. 그리고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다음날. 갑자기 평소보다 많은 포인트가 들어왔다. 의적의 정체가 철각패도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철각패도는 슬쩍 복면을 흘렸던 그 곳을 지나갔다. 그러자 사방에서 수군거리를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저 사람이 철각패도라는 그 사람 맞지?”
“맞아. 틀림없네 틀림없어. 어제 그 사람이야.”
“아이고. 사람은 얼굴 보고는 모른다니까. 얼굴을 저렇게 흉측한데 글쎄..”
“그러니까. 얼굴이 어우.. 너무 무섭고 드럽게 생겨서..”
어이. 얼굴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라고. 기분이 드럽기도 하면서 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