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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괴물을 알아?
살기 어린 시선이 왕칠에게 꽂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인물들인가. 각 문파에서 실력으로나 직위로나 손꼽히는 사람들이다. 장문인도 막말을 하지 못할 만한 위치에 있는 자들인 거다.
그런데 어디 하급무사 따위가 모욕을 하다니. 만약 매화일검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났을 거다.
하지만 매화일검이 목세강을 부르자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왕칠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잠깐 나 좀 보지.”
“알겠습니다.”
매화일검과 목세강은 일행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 목세강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매화일검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들 말이야. 그동안 괴물과 한 번도 조우하지 않은 겐가?”
“그럴 리가요. 계속 싸우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매화일검은 목세강의 말을 쉼사리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 싸우면서 왔다면 이렇게 멀끔할 리가 있는가. 어서 말해보게. 연유가 무엇인지.”
“정말입니다. 계속 싸우면서 이곳까지 온 겁니다.”
목세강은 다른 점이 있다면 괴물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매화일검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사실을 말한 것이니 당연한 일. 물론 대부분 갈저와 당강을 처리하면서 왔으니 조사단의 일정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이상한 술법을 쓰는 놈이 좀 걸리적거리기는 했는데, 그 또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혁이 재빠르게 놈을 죽여서 피해가 없었던 거다.
“경험이 많다? 그런 걸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저런 떨거지들을 데리고 몰고 다녔는데, 경험이 많아서 무사했다?”
“그 험난한 사주 남로를 개척한 자들입니다. 괴물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요.”
목세강은 눈을 부릅뜨고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누가 저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저들이 만든 결과를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목세강은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강조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저들을 조사단에 합류해야 한다고. 하지만 조사단은 그걸 거절했고, 결정의 대가가 바로 지금 상황이라고 말했다.
“뭐라? 그 말은 내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말인가?”
“결과가 그렇지 않습니까.”
매화일검은 차갑게 목세강을 노려보았다.
“많이 컸구나. 내 앞에서 그렇게 조잘조잘 말대꾸를 하고.”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진실을 말하는데 거리낄 이유가 없지요.”
매화일검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잠시 목세강을 노려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그는 조사단의 수뇌부와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자네 기분은 이해하지만, 말하는 건 조심하는 게 좋겠어.”
목세강은 왕칠에게 조심하라 일렀다. 보통 사람들이 아니니 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건 없다면서. 하지만 왕칠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이고. 제가 언제 그런 말 해보겠습니까. 이럴 때나 해 보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마주칠 일도 없는데요. 뭐.”
이번 일만 마치면 장안에서 사주까지 오가는 상행의 호위 무사를 할 거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사람과 마주칠 일을 거의 없을 거라는 게 왕칠의 말이었다.
“에이. 이 사람아. 그래도 조심해야지. 저 사람들 아까 표정 봤어?”
“그래. 사람 여럿 잡을 눈빛이더구만.”
남로무사단의 무인들은 왕칠을 걱정했다. 하지만 왕칠은 속 시원하다고 했다.
“기분 나빴겠지. 하지만 내 말이 사실이잖아. 우리는 항상 그런 얘기 들으면서 살잖아. 한 번 정도는 우리도 그런 말 할 수 있는 거 아냐?”
남로무사단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침울해졌다. 왕칠의 기분이 어떤지 그들도 공감했으니까. 사실 아까 좀 시워하기는 했다.
저들은 정말 자신들을 인간 취급도 안 했다. 저들에게는 여기 있는 무사들보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더 중요할 거다. 그런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딱히 불만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런 취급 당하는 게 익숙했으니까. 그래서 아까 왕칠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을 때 웃음이 났다.
“자. 자.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쉬는 게 좋겠습니다.”
진혁이 분위기를 바꾸었다. 이곳에서 야영한다고 하니 일단 식사부터 하자면서. 그렇게 그날은 저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충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올라가는 길목에?”
“예. 그렇습니다. 저희가 확인을 했습니다.”
일행 대표로 조사단 회의에 참가한 목세강이 먼저 도착해서 조사한 바를 말했다.
“교충과 싸워봤나?”
“아닙니다. 멀리서 관찰만 했습니다. 워낙 무시무시한 놈이라서..”
목세강은 교충에게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 어마어마한 덩치, 쳐다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엄청난 위압감.
하지만 목세강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교충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
“제가 한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직접 보시죠. 그편이 더 빠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좋겠네. 일단 상대가 어떤 놈인지 확인을 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하지.”
매화일검을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목세강은 진혁을 불렀다.
“교충을 직접 보고 싶다니까 안내를 좀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진혁은 사람들을 데리고 교충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그런데 왜 이쪽으로 돌아가는 거지? 아까 있던 곳에서 직진을 했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바람을 맞으면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녀석이 먼저 알아채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내는 게 아니냐고 말했는데, 잠시 후 그 말은 쏙 들어갔다. 트윈헤드 오우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말을 잊었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압도적인 모습 앞에서 사람들은 다들 움츠러들었다. 이건 뭐 말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멀리서 관찰만 하다가 거대한 나무를 뿌리째 뽑는 걸 보고는 그길로 돌아왔다.
“허어.. 어쩌자고 그런 괴물이 인세에 나타났단 말인가..”
“나무 뽑는 거 보셨소이까? 나 원.. 우리 목을 뽑는 건 일도 아니겠더이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당강이나 그런 괴물들과 비슷할 거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트윈헤드 오우거는 완전히 종류가 다른 놈이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이건 상대가 되지 않겠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했다. 공포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 걸 훌쩍 뛰어넘는 느낌을 받은 거였다.
“왜 화산이 그리 큰 피해를 입었는지 오늘에야 확실히 알겠소이다.”
매화일검은 씁슬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산의 일원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편할 리 없으니까.
“그나저나 어찌하면 좋겠소. 놈과 맞붙자니 역부족일성싶고,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직접 맞붙을 필요는 없지 않겠소이까. 어차피 연화봉에서 나오는 빛의 정체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니.”
수뇌부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피해서 연화봉 정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같은 시각, 진혁도 연화봉 정상에 오를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붙으면 어떻게 될까?’
미지수였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방어력이나 공격 속도 등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무척이나 빠르고 예민한 놈이었다.
관찰하다가 놈이 사냥하는 걸 보았는데, 정말 움직이는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가 얼마나 빠른지 무림 고수라도 놈에게서 도망치지 못할 듯싶었다.
게다가 주변에 접근하는 것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진혁은 몰래 녀석에게 접근을 해보았는데, 오십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데도 진혁의 접근을 느끼는 듯했다.
마나 때문인지 생명체의 접근 자체를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에게 들키지 않고 근처를 지나간다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상황을 봐서 시도해보자. 어차피 도망 정도는 가능할 것 같으니까.’
만약 조사단이 뻘짓을 해서 놈의 시선이라도 끌어준다면 손쉽게 정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그래서 진혁은 일단은 돌아가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조사단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준비를 더 해야 한다면서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람이 도착하려면 대략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
“일주일 넘게 시간만 죽이고 있을 수야 없지.”
진혁은 철각패도로 몸을 바꾼 뒤 장안으로 향했다. 사혈련주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장안을 향해서 날아가다가 갑자기 팔찌에서 엄청난 빛이 나는 게 아닌가.
철각패도는 바로 멈추었고, 그의 눈에 드디어 원하던 메시지가 보였다.
- 2단계 포인트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 3단계가 진행됩니다.
“아. 이런 쓰.. 이게 끝난 게 아니었잖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3단계가 또 있다는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2단계만 해도 포인트를 채우기가 쉽지 않았는데, 3단계는 오죽하겠나.
그런데 메시지는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 3단계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 3단계가 완료되면 귀환을 위한 포인트 수집이 종료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힘들긴 하겠지만, 다음 단계가 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이것만 모으자. 이것만.’
그리고 잠시 지직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또 메시지가 보였다.
- 3단계 진입. W#Fr* pe)$$가 해제됩니다.
그것만 간신히 보이고 나머지는 도저히 어떤 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아. 설명은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제발 제대로 보이기라도 좀 해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말 게임이었으면 칼을 들고 회사로 찾아갔을 것 같았다.
“그래. 관리자라는 놈을 빨리 만나야겠어.”
관리자는 알려주겠지. 철각패도는 바로 진혁으로 몸을 바꾸어 연화봉 정상으로 갈까 생각을 했다.
아냐. 침착하자. 아직 3단계 포인트도 모아야 하고 확인할 것도 있어. 어디 보자. 포인트는 생각한 대로 거의 차지 않는 것 같고.
팔찌를 보았는데, 선하나가 보였다. 정말 가느다란 선 하나. 하루 정도를 기다렸다. 얼마나 포인트가 차는지 확인하려고.
“이게 뭐야? 그대로잖아?”
포인트가 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갔다가는 십 년이 지나도 포인트를 다 모으지 못할 것 같았다.
“일단 포인트는 모아야 해. 그걸 다 모으지 않으면 다른 걸 다 준비해도 소용이 없지.”
우선은 포인트를 팍팍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정리를 해 보자. 긍정적인 감정을 모아야 한다. 존경이나 감동이나 그런 거.”
그리고 대상이 확실하고 감정의 정도가 클수록 포인트는 많이 들어왔다. 진혁이나 철각패도인지 확실하게 알아야 더 많이 받고, 감동을 크게 할수록 포인트가 많이 들어온다.
“진혁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
철각패도가 움직여야 할 타이밍. 그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철각패도는 곧바로 장안으로 향했다.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면 장안과 낙양이다. 큰 도시라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뜻. 철각패도는 장안과 낙양을 노리기로 했다.
그날 저녁 철각패도는 사혈련 조무래기를 통해서 흑수 갈맹을 불렀다.
“어쩐 일이신지..”
“장안과 낙양에서 가장 강한 녀석이 누구지? 무림맹에 소속된 놈들 중에서.”
“무림맹 중에서라..”
흑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장안에서는 아무래도 백령진인이겠지요.”
“백령? 백령이라면 도검당주 아닌가?
“예. 맞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장안에 그가 와 있습니다.”
도검당주면 무력을 담당하는 곳. 그런 곳의 수장이니 무력이야 말할 것 없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인물이겠지만, 그가 장안에 와 있는 이상 백령진인이 무림맹 인사 중에서는 가장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낙양은 좀 모호하기는 한데..”
흑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가 있다면 그가 가장 고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흑수 갈맹은 원로원을 대표하는 개방의 협개를 지목했다.
“협개? 그 거지가 낙양에 있다고?”
“낙양에 거처를 튼 지가 조금 되었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가 없어서.. 만약 협개가 없다면 분광검 은태명이 가장 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광검 은태명? 그놈은 종남의 장문인인데?”
흑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태명은 얼마 전부터 낙양에 머물고 있습니다. 관과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것 같더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철각패도는 씨익 웃었다.
“얼마나 강한지 내가 한 번 확인을 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