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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괴물을 알아?
진혁 일행은 일부러 조사단과 멀리 떨어져서 움직였다. 진혁이 진행할 코스를 생각해서 적당한 장소를 정했다. 연화봉으로 가는 그나마 괜찮은 코스였다.
혈도 임평백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목세강을 비롯한 남로무사단 전원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하에게 슬쩍 물었다.
“선두에 있는 저 진혁이라는 자.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그냥 평범한 이류 무사 정도로 보입니다. 행색이 무인보다는 관리나 문인처럼 보이긴 하지만, 무공을 익힌 건 틀림없습니다.”
임평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절정 고수인 목세강부터 그보다 고수인 남로무사단의 무인들이 그를 따르는 걸까?
“길 찾기에 재주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마다 재주는 다른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저들이 보여주는 신뢰는 단순히 길 찾기를 잘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자들은 어떠냐?”
“목 대협의 경우는..”
“목 대협은 빼고.”
하수가 고수를 평가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 경지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으니 뜬구름 잡는 말만 나오기 일쑤다.
목세강은 자신이 상대하기에도 다소 버거울 것 같은 상대였다.
진검승부야 찰나 간에 목숨이 오가는 것이니 누가 이긴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수가 이긴다.
아주 작은 차이인 것 같아도 그걸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목세강은 자신보다 적어도 반수 정도는 앞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고수를 수하들이 언급한다? 웃기는 일이다. 그래서 말을 자른 거였다.
“나머지는 엇비슷합니다. 이류 중에서도 상급 정도. 일류에 이제 발을 디뎠거나 얼마 되지 않은 자들로 보입니다.”
“그렇지? 이상하군. 목 대협 정도 되는 고수라면 이런 인원으로는 무리라는 걸 잘 알텐데..”
무언가 성과가 있어야 해서 따라오기는 했다. 괴물하고 미친 듯이 싸워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보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퇴각한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혈도 임평백은 유심히 관찰했다. 다들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별다른 경계도 하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명승지를 유람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괴물이 우글우글한 곳.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로무사단 사람들은 여유롭다 못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크게 두 조로 나누었다는 거군요. 한천위가 이끄는 조와 목 대협이 이끄는 조.”
“그렇지. 두 조가 번갈아 가면서 상행을 나가기로 했네. 이번에는 천위가 이끄는 조가 먼저 가게 되었고.”
진혁과 목세강은 그동안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하면서 걷고 있었다. 불안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진혁이 어떤 식으로 이끄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현천문의 내공이 좀 특이해서 괴물을 잘 감지했다. 그러니 진혁이 길을 안내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안에서 사주까지 오가면서 정말 숱하게 경험한 일. 진혁이 선두에 섰는데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유의 머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직까지는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것 같아. 무림맹 수뇌부나 고위 관료 같은? 황제에게 진상한다는 말도 있고, 상단에서 보물로 계속 가지고 있을 거라는 말도 있고.”
아직 확실히 방향을 정하지 못한 듯했다. 이게 두 개라서 그렇다. 한 개라면 오히려 처분하기가 쉬울 건데, 두 개라서 서로 견제를 하느라 쉽게 내보이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예를 들어서 한쪽에서는 승상에게 보였는데, 다른 쪽에서 황제에게 진상한다면? 승상에게 간 쪽은 망하는 거다. 그런데 이게 또 미묘하다.
꼭 황제에게 진상한다고 좋으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적당한 권력자에게 가는 편이 더 유용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황제의 권위가 약할 때는 더.
“두 대장군이나 채공공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 둘이 실세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여유롭게 움직이던 진혁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자신의 감각에 무언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십오 장 정도. 진혁은 주먹을 쥔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남로단무사들이 멈추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뒤따라오면서 조금 경계심이 흐트러졌던 혈도 임평백과 수하들은 흠칫 놀랐다.
‘갑자기 기세가 변했다. 이전과는 다른 자들 같아.’
경계 태세를 취한 남로무사단 무인들의 기세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냥 날이 예리한 것이 아니라 묵직하고 진중한 가운데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그 모습만 보아도 실전 경험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타난 당강을 처리하는 모습은 훨씬 놀라웠다.
“타앗!”
- 촤아악~
이류 무사라고 생각했던 진혁도 일검에 당강의 팔을 날렸다. 왕칠이나 다른 무사들도 엄청난 활약을 했다. 당강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듯 손쉽게 처리했다.
그래서 자신들도 쉽게 처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어? 이거 검이..”
검이 안 들어갔다. 가죽이 아니라 갑옷을 베고 찌르는 것 같았다.
“에잇!”
혈도 임평백은 강기를 끌어올려서는 위기에 처한 수하를 구했다. 수하를 공격하면 당강의 목을 날려버렸다.
“조심해라. 보통 놈들이 아니다.”
수하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력을 다했고, 그제야 당강에게 밀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임평백은 남로무사단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실력을 숨긴 자들이다.”
“맞습니다. 모두가 한 단계 이상 숨기고 있었습니다.”
수하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가장 아래라고 생각했던 자들이 자신들과 동급 정도였다. 나머지는 그보다 훨씬 윗줄이었고.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당강을 손쉽게 처치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도 전력을 다해 괴물을 베어봐서 잘 안다. 어느 정도 공력과 무공이 있어야 이놈을 죽일 수 있는지.
“무서운 자들입니다.”
“하긴 그런 실력이 있으니 새로운 길을 만들었겠지.”
임평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자들이 백 명이 넘는다면 무시무시한 무력 집단이다. 적어도 구파일방의 한 곳과는 자웅을 겨룰 만한 전력.
그렇다는 건 사혈련의 세력과도 대등하다는 말이다.
“일개 중소 상단이라고 들었건만. 분명히 배후가 있을 거다.”
“그럴 것 같습니다. 중소 상단이 꾸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혈도 임평백은 머리를 굴려봤지만, 강호에서는 그만한 세력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일류 무인이 이백 명 정도에 절정 고수가 십여 명이라. 마교인가? 아니면 황실?’
두 곳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일류 무인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틀에 넣고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사람 가운데 상위 소수만 밟을 수 있다는 경지. 그래서 일류 무인이라고 하면 강호 어딜 가든 인정받는다.
그런 일류 무인이 이백 명이 넘는다? 소림이나 무당 정도가 넘을 것이고, 나머지 구파일방이아 오대 세가는 그에 미치지 못할 거다. 사혈련도 그와 비슷한 정도일 거다.
‘돌아가면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무림에 새로운 세력이 탄생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모른 채 진혁과 목세강은 연화봉으로 향하는 경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쪽으로 보통 다녔다고요?”
“그래. 저기 밑에 길 보이지? 거기서 위로 올라갔지.”
진혁은 목세강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는데, 무척이나 강한 마나가 느껴졌다.
‘하아. 이 정도면 트윈헤드 오우거가 틀림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마나. 미노타우르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트윈헤드 오우거일 것이다.
“왜 그러나? 뭔가 짐작가는 거라도 있는 건가?”
“아무래도 대단한 놈이 있는 것 같아서요. 길목에 딱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목세강의 눈빛이 변했다. 어떤 놈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잡을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인원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노타우르스를 잡을 때도 이 인원보다 많았다. 그러니 지금으로써는 무리.
물론 진혁이 전력을 다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거기다가 목세강과 임평백이 도와준다면 잡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질 거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다. 자신이 전력을 다할 이유도 없었고. 그 말을 듣자 목세강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무모하게 뛰어들 그런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무모한 자였다면, 지금까지 복수를 위해서 칼을 갈아 올 수도 없었겠지.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짧다고 하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하지만 원수를 지척에 두고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비참해지는군.”
그는 자신이 더 강해졌더라면 복수를 할 수도 있지 않았겠냐며 힘없이 웃었다.
“내가 다 게으른 탓이지. 재능이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워낙 게을러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진혁이 보기에는 재능도 뛰어났고 항상 수련에 매진했다. 오히려 지나쳐서 너무 오버페이스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재능 없고 노력하지 않는 자가 절정 고수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복수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거였다.
저 자책이 분발로 이어질 것이고, 목세강은 더욱 성장하겠지. 하지만 어지간히 성장해서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상대할 수 없을 듯했다.
지금 전해지는 놈의 위압감은 몸이 살짝 떨릴 정도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이 정도이니 가까이 붙으면 훨씬 무시무시할 거다. 어지간한 무인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을 정도로.
‘미노타우르스 때도 얼어붙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저놈은 훨씬 더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굳이 저놈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연화봉에 올라가서 물건만 가져오면 되니까. 진혁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조사단을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조사단? 후후.. 내가 알기로 그분들은 말이지. 괴물을 상대한 경험이 거의 없어.”
목세강은 아마 좋은 경험을 했을 거라면서 웃었다.
“처음 상대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피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만 모였는데 무슨 일이 있으려고.”
목세강은 크게 혼이 나는 정도일 거라 말했다. 하지만 진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내가 왜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조사단이 택한 쪽에는 주술사들이 있었거든.’
조사단이 택한 길은 거리상으로는 연화봉까지 가까웠지만, 가는 길이 험난할 게 보였다. 홉 고블린 주술사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술사는 무인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다. 제아무리 절정 고수라고 하더라도 쉽게 상대하기 어려울 거다.
그리고 진혁의 예상대로 조사단은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놈들!!”
매화일검 우영덕이 급히 강기를 날렸지만, 제자가 다치는 걸 막지는 못했다. 매화검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의 제자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팔과 몸 여기저기에 큰 상처가 난 채로.
매화일검은 이를 까드득 갈면서 뛰어 나갔다. 제자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는 다른 무림맹 고수들과 힘을 합쳐 겨우 제자를 살릴 수 있었다.
“저놈들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가 있는데.. 지팡이를 든 이상한 괴물 때문에..”
홉 고블린은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주술사였다. 주술사가 지팡이를 들 때마다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조사단은 급히 퇴각해서 겨우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런 낭패가!!”
매화일검은 입술을 깨물며 탁자를 내리쳤다. 교충과 같은 무시무시한 괴물이야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괴물은 가능하면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못한 괴물들은 자신들이 조심만 하면 얼마든지 상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벌써 중상을 입은 자가 셋이나 나왔다.
“고정하시지요. 괴물과 싸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희가 이 정도면 아마도 저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을 겁니다.”
무림맹 인사의 말에 매화일검은 화를 다독였다. 그나마 자신들이니까 이 정도인 것이라고. 다른 자들이었으면 몰살했을 거라고. 하지만 며칠 후 목세강 일행을 만났을 때 조사단 사람들의 표정은 일제히 일그러졌다.
“어이고. 안녕하십니까?”
목세강의 일행은 모두가 멀끔했다. 다치거나 한 사람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행색도 처음과 별다를 게 없었다. 반면에 조사단은 거지꼴이었다. 워낙 험난한 전투를 치르며 연화봉 근처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왕칠이 조사단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어디를 갔다 오셨는데 이러신대? 중간에 괴물 말고 다른 거라도 만나셨어요? 우리는 괴물밖에 못 만났는데?”
왕칠의 말에 조사단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