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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78화 (7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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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야 하느니라.

진혁은 사색이 되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동안 무시당했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현천문의 제자들은 맹렬한 기세로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타아앗!”

호승렴의 일격에 홉 고블린의 가슴이 갈라졌다. 다른 제자들도 비슷했다. 매서운 기세로 홉 고블린을 몰아붙였다.

그동안 사냥을 통해 성장했으니 이 정도 녀석들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반면 제갈 세가의 무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몇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한 마리를 상대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다치는 자들이 나왔고. 일류 무사는 되어야 혼자서 홉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호오. 제자분들의 실력이 무척 뛰어나군요.”

제갈중택은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며 쾌재를 불렀다. 현천문의 제자들은 세가의 일류 무사보다도 뛰어나 보였다.

일류 무사가 어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경지인가. 일류 무사는 어디 가더라도 인정받고 환영받는다. 그만큼 수도 적고 오르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십 대 초반에 일류의 경지에 오르기란 더 어렵다. 구파일방 정도 되는 대문파에서도 그런 인재는 많지 않다. 그런데 현천문의 제자들은 전원이 일류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보였다.

제갈중택은 감탄을 하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면 온위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이가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거지?’

뭔가 움직임이 이상했다. 괴물을 상대한다기보다는 굉장히 분주하게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제. 적당히 상대하면서 제갈 세가의 무인들이 마무리하도록 유도해.”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들 무슨 말인지 알고는 안색이 돌변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흐응흐응 거릴 걸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섰다.

죽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현천문의 제자들은 힘을 빼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제갈 세가의 무인들이 막타를 칠 수 있도록 방어에 치중했다.

딱 한 명. 당소혜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호승렴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

“사제. 적당히 해.”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병신아. 너 이러다가 조.. 그거 된다고.

“사제. 내 말 들어.”

“으아아압!!”

가뜩이나 진혁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호승렴은 아예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괴물들을 단숨에 정리하는 멋진 모습만 상상하고 있었다.

- 챙!

진혁은 칼을 들어 호승렴의 공격을 막았다. 그 덕분에 홉 고블린은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고, 호승렴은 병신이 되는 걸 면했다. 하지만 호승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는 눈을 부라리며 대들었다. 하지만 진혁의 말을 들은 호승렴은 사색이 되었다.

“당 낭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신음 소리 내고 싶으냐?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마.”

“어헉.. 사형. 아닙니다. 안됩니다.”

호승렴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리고 괴물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호승렴은 후아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즈음 온위립도 진혁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허어.. 그런데 온 문주.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곳에서 색공을 익히는 자들이 있다니..”

“커헉..”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제갈벽린을 치료하고 제갈 세가와 연합 관련해서 요 며칠 이야기를 나눈 탓이리라. 사냥을 며칠 안 했더니 괴물을 잡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온 문주는 식은땀을 흘렸다. 잘못했으면 오늘 융중산의 비밀이 밝혀질 뻔하지 않았나.

‘진혁아. 네가 우리 현천문을 살렸구나. 장하다.’

하지만 아직 위기가 모두 지나간 건 아니었다. 막타를 치지 않아도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오기는 한다.

진혁은 돌아다니면서 가능하면 자신이 많은 마나를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제갈 세가의 무인이 괴물의 상처에 검을 찔러 넣었다. 홉 고블린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진혁은 넷째의 눈을 응시했다.

“사제.”

“대사형.”

진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파이팅.

참아야 하느니라. 안 그러면..

알고 있어요. 대사형. 참을게요.

눈빛 사이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홉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자 넷째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진혁은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런 광경을 제갈중택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다.

“허어.. 이거 제갈 세가가 큰 빚을 지고 있군요. 제자 분들이 일부러 양보를 해주시는구려.”

제갈중택은 연이어 감탄했다. 아까는 현천문 제자들의 실력에 감탄했다면, 이번에는 배려심에 감동했다.

현천문의 제자들 모두가 제갈 세가의 무인들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은 방어에 집중하면서 괴물을 상대하는 경험을 쌓아주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경험. 그걸 얻을 수 있도록 현천문에서 배려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거 정말 감탄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이렇게 해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제갈 가주. 당신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온위립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자들을 쳐다보았다. 괴물이 한 마리 쓰러질 때마다 제자들이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기운 내라. 참아야 하느니라. 너희들에게 현천문의 미래가 걸렸느니라.’

처음에는 간단하게 끝날 것 같았던 전투였지만, 그 과정 무척 힘들었다.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현천문의 제자들이 방어에만 치중해서 그런 거였다.

그날 전투가 끝나고 제갈 세가의 무인들은 현천문의 제자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했다. 위험은 도맡으면서 괴물을 공격하고 죽이는 건 제갈 세가의 무인에게 양보했다.

현천문 제자들의 실력은 같이 싸운 제갈 세가의 무사들이 더 잘 알았다. 자신들만 있었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퇴각해야 했을 거다.

땀에 젖은 무사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뜨거운 손을 내밀었다. 인사를 받는 현천문 제자들의 얼굴은 모두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랬다.

***

“소림에서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보검을 찾았단 말입니까?”

온위립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합니다. 보검을 만드는 방법도 알아냈다는 말이 있더이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제갈중택의 말에 당추엽은 좋아했다. 괴물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어떤 거라도 다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갈중택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당추엽은 세가 연합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무림맹 사람, 혹은 강호 협사 느낌이네.’

당추엽에 대한 진혁의 평가였다. 소림이 그런 보검을 만들어냈다면 그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무림맹주 선출에서 엄청난 카드로 작용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이미 나는 그거보다 더 좋은 물건 가지고 있는데..’

제갈 세가의 사람들은 몰랐지만, 지금 현천문 사람들이 쓰는 검이 그랬다. 어쩌면 소림사에서 만든 보검보다도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사실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도검당주를 새로 뽑게 됩니다. 서너 달 뒤였던가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무림맹주는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이 선출한다.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 아홉 명에게 있다.

부맹주와 여섯 명의 당주. 원로 대표, 호법 대주. 이렇게 아홉 명이다.

“도검당주도 그중 한 명이니 다들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요.”

“그렇겠군요.”

온위립은 정치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추엽은 이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에나 정신머리를 팔고 있으니 지금 강호가 이 모양 이 꼴인 거 아니냐.”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무림맹은 현재 아주 치열한 물밑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온 문주에게 하는 지 아십니까?”

“글쎄요. 사실 좀 의아하기는 합니다. 제가 무림맹과는 큰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갈중택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도검당주 선출에 각 세력이 뛰어들다 보니 너무 과열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하겠지요. 단순히 당주의 선출이 아니라 맹주의 선출과도 연관이 있으니.”

현재 역학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했다.

아홉 표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가지고 있는 건 무당이 이끄는 오대검파였다. 부맹주와 총관당주, 전금당주, 접객당주가 오대검파 소속.

아홉 표 중에서 네 표를 확보했다. 도검당주만 확보하면 무림맹주는 오대검파가 차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걸 다른 쪽에서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현재 도검당주와 원로 대표, 호법 대주가 소림 쪽. 그들도 도검당주 자리를 사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세가 연합이 가장 약하긴 합니다. 순찰당주와 식약당주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식약당주인 당추엽은 세가 연합이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중도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가 연합의 힘이 약함에도 식약당주가 될 수 있었다.

“맹주가 제안을 했습니다. 도검당주는 무림맹에서도 무력을 담당하는 곳. 그러니 그걸 증명한 사람에게 자리가 돌아가는 것이 옳은 것 아니냐고요.”

“증명이라고 함은 설마..”

“예. 맞습니다. 괴물을 처리하는 것으로 실력을 증명하자는 거지요.”

진혁도 대충 짐작은 갔다. 소림에서 그런 보검을 손에 넣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 같았다. 치졸하지만 명분도 그럴싸하다.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무림인으로서의 자세 아니겠느냐. 그러니 괴물을 처리하는 성과를 가지고 도검당주를 선출하자.

“그런데 오른 보니 현천문 분들이 실력이 아주 뛰어나시더군요.”

“과찬이십니다.”

오호라. 이 양반 보게나.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만.

제갈 세가는 세가 연합에서도 과히 좋은 대접을 받는 편은 아니었다. 무력이 그만큼 받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힘을 좀 보여주어서 연합에서의 입지를 강화하자. 뭐 이런 계산이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객관적으로 세가 연합의 괴물 퇴치 성적이 가장 좋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현천문의 가세로 그게 뒤집히기라도 하면 대박인 거다.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면 충분히 연합에서의 발언권은 좋아질 테고.’

생각외의 성적만 올려도 세가 연합에서의 입지가 달라질 거다. 현천문이 가세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고.

“저희야 괴물을 퇴치하는 거라면 환영입니다만..”

온위립은 말을 끌었다. 괴물을 잡고서 흐엉흐엉거리는 걸 보여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현천문 사람 중에서 그러지 않는 건 진혁 뿐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문의 문제도 해결을 해야 하고.”

온위립이 곤란해하자 진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런 문제라면 괜찮네. 당장 시작하는 건 아니니까.”

제갈중택의 말에 온위립은 안도했다. 다행이었다.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온위립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이야기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혁에게 질문을 했다.

“진혁아. 이게.. 그러니까 그게 언제쯤 안 하게 되는 것이냐?”

난들 아나. 모르는 일이었다. 평생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럴 때는 얼버무리는 게 상책이다.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듯해서 저도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온위립도 난처한 듯한 표정이었다. 좋은 기회이기는 한데 잘못 했다가는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큰 기회인 것은 분명했다. 진혁은 이 기회에 현천문이 더 큰 무대로 나가기를 바랐다. 그래야 뭘 해도 파급력이 클 테니까.

온위립이 지금보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지위가 높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현천문의 제자들은? 아마도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거다.

그 상황에서도 약자를 대변하고 불합리한 일에 의연하게 일어설 거고.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아시겠지만, 괴물을 상대하는 특별한 검은 저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에 그.. 소리를 내는 문제만 해결하면 현천문이 엄청난 일을 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진혁은 그 검을 만드는 건 현천문의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방법은 아직은 알려줘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자 온 문주가 말했다.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금전적인 이득 같은 걸 취하거나 그러지는 말자꾸나.”

하아. 역시 온 문주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딱 포인트 모이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니까. 진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힘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온 문주는 크게 기뻐했다.

아.. 그렇다고 가까이 오지는 마시구요. 거기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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