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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필요하세요?
“아니.. 가주님..”
남궁표가 뭐라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제갈중택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현천문에 관해서 조금 알아보았다.”
제갈중택은 사람을 보내 조사를 시켰다. 사실 조금 경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의 작은 문파. 하지만 사람들이 가져온 내용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제갈중택은 정보를 가져온 무사를 불렀고, 조사한 바를 말하라고 했다. 현천문 사람들은 따로 떨어져 있었고, 이 정도 거리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는 이상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현천문은 사협 인근에 있는 작은 문파인데, 내공이 쌓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무사는 현천문 사람들의 됨됨이를 말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 왔던 수많은 일화.
사람들은 감탄했다. 내공이 약하다는 건 무림 문파로서는 치명적이다. 힘이 약하다는 소리. 그런데도 불의에 맞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알유를 상대했다는 말도 사실일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진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로부터 협객 중의 협객이라는 칭송을 듣는다는 말.
사주로 향하는 조사단에 참여했는데, 거기 사람들이 진혁이라면 다들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는 이야기. 게다가 알유를 잡았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알유의 머리를 가져왔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그런가? 허어. 가서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당추엽이나 괴의나 알유의 머리라는 말에 혹했다. 신기한 것을 연구하는 걸 좋아했고, 당추엽은 괴물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을 연구하는 터라 더했다.
반면에 남궁표의 인상은 구겨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는데, 실제로 그런 괴물을 상대했을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제자들도 전부 성품이 곧았습니다. 그리고 현천문이 인근에서 유명한 것이 점혈 때문인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 점혈을 가르치면서 어떤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 그런데 유독 현천문에 여제자들이 점혈을 배우러 모인다는 거였다.
“온 문주가 점혈을 가르치면서 이상한 소문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멀리서까지 일부러 점혈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불의에는 당당히 맞서고, 약자를 보호하는 성품. 단호하고 엄격한 성격. 점혈을 가르치면서도 자그만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 온 문주에 대한 평가가 그러했다.
“벽린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기왕 누군가가 손을 대야 한다면 온 문주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갈중택의 말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허어..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당추엽의 말에 괴의도 동의했다.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괴초도 계속해서 구해다 주더군.”
괴의는 괴물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면서 쉽지 않은 일을 한다며 칭찬했다. 진혁이 들었다가는 코웃음을 쳤겠지만.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현천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괴의도 당추엽도, 무림맹과 제갈 세가의 지위가 있는 무인들도.
***
제갈벽린의 치료를 위해서는 영약이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영약이라는 게 그리 쉽게 구해지는 것이던가.
일단은 준비는 모두 해 놓은 상태에서 영약을 구하기만 기다리고 했었다. 그 와중에 제갈중택은 현천문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세가의 수뇌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그런데 내공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던데..”
장로 한 사람이 말하자 제갈중택이 대답했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아마도 사협 표국의 일이 있기 전이 아닐까 합니다.”
제갈중택은 사협 표국에서 진혁이 표두를 이긴 걸 예로 들었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으니 진혁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였다.
“이미 그 일이 있기 전에 어떤 방법을 알아낸 것 같더군요. 물론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을 테고..”
“내공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손 치더라도 밖에다가 떠벌릴 바보가 어디 있을까.”
당연한 일이다. 강호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건 미친 짓. 한두 수 정도는 다들 감추고 있다.
“그러면 진혁이라는 대제자가 활약을 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상회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사주로 가는 동안에도 명성을 얻었다는 분석입니다. 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제갈중택의 말에 다른 장로들도 동의했다. 그러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현천문이 어디랑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던가요?”
“소림하고 종남 쪽과 악연이라고 하더군요.”
“딱이군요.”
소림과 제갈 세가는 모두 무림맹 소속이다. 하지만 사이가 친밀한 건 아니었다. 그걸 이해하려면 무림맹의 세력 관계를 이해해야 했다.
제갈 세가가 속한 세가 연합은 무림맹에서 가장 약한 세력이었다. 소림을 위시한 세력과 무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무림맹을 양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이 나타난 이후로 세가 연합의 세력이 조금씩 커져 이제는 발언권이 제법 커진 상황. 권력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이 사이가 좋을 리 없다. 겉으로야 웃고 있지만.
그런 관계가 최근 더욱 예민해졌다. 곧 있으면 무림맹주를 새로 뽑기 때문이었다. 일 년 이상 시간이 남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각 문파와 세가들이 세력을 불리고 있었다.
전초전 격인 도검당주의 선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난리였다. 도검당주에 어느 세력의 인물, 어떤 문파의 사람이 뽑히느냐에 따라서 향후 권력구도가 판이하게 바뀔 수 있다.
그러니 각 세력들은 덩치를 키우고 자금을 모으느라 난리였다. 특히 소림 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였다. 아마도 최근에 현천문의 재산을 노린 것도 그런 움직임의 일환인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라 현천문만 피를 본 게지요.”
“그쪽하고 대놓고 맞서기는 어려웠을 테니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구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현천문이 이번에 당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내공이 늘어났어도 그 두 문파와 척을 지는 건 어려웠을 테니까.
지방의 작은 문파가 구파일방의 한 곳에 어떻게 대적하겠는가. 구멍가게가 대기업하고 맞서는 꼴이다.
“독특한 내공이라는 것도 연구 가치가 있고, 여러 가지로 제갈 세가와는 잘 맞는 것 같군요.”
“문제는 무공인데, 그것도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식이나 여러모로 볼 때 상승무공이라고 판단되더군요.”
“그렇다면 벽린의 일과는 상관없이 현천문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는 걸로 합시다.”
제갈중택의 의견에 다들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서로에게 이득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부족한 걸 메우고 그들은 울타리를 얻고.”
제갈 세가는 항상 무력이 고픈 세가였다. 머리 좋고 진법과 기관에 능했지만, 무력은 항상 부족했다. 그러니 현천문 같은 문파와 연합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는 거였다.
“어차피 드러난 곳은 우리가 손을 쓰기 어려워요. 다른 곳에서 내버려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으로써는 현천문이 가장 좋은 선택지 같습니다.”
제갈 세가는 그렇게 현천문을 선택했다. 이런 사실을 다른 세가에서도 알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현천문은 아주 미약한 세력에 불과했으니까.
“제갈 세가와 긴밀한 관계를 말입니까?”
온 문주는 제안을 받고서 어리둥절해 했다. 제갈 세가라면 그래도 구파일방의 주도적인 세력 중 한 곳이었다. 가장 말석이긴 했지만.
그런데 그런 곳에서 연합 제안을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번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 현천문이 세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워낙 창졸간에 들은 말이라.. 생각을 좀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온위립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제갈중택이 뜻밖의 말을 해왔다.
“오늘도 융중산에 가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 그러면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갈중택은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했다.
“융중산 인근에서 색공을 익히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예? 색공이요?”
제갈중택은 세상이 어지러우니 별일이 다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야릇한 신음 소리를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며 혀를 찼다.
“그런 사악한 무공을 익히는 자들이 대단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네.. 그렇죠..”
온위립은 말을 더듬었다. 색공을 익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였다.
그랬다.
***
‘하아. 색공이라니..’
진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자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현천문 사람들은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와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혈관이 툭툭 튀어나왔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냥을 쉬지는 않았고, 사람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너무 순조로워서 무료할 정도. 지금도 무난하게 사냥을 하고 괴의의 처소로 향하고 있었다.
“진혁아. 오늘 영약이 도착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들었습니다. 오늘이면 그 소저도 일어날 수 있겠군요.”
온위립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갈 세가와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협력하기로 했다. 자세한 내용이야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기본적인 틀은 합의한 거였다.
제갈 세가가 주도적인 위치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인정해야 했다. 규모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괴의의 처소에 가까워지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삼의 효능이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급하게 준비를 하느라 효능이 제대로 된 걸 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혁은 괴의가 고개를 젓는 걸 보았다.
“이걸로는 불가능해.”
당추엽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시 영약을 구해야 한다. 문제는 제갈벽린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상황이라는 거다.
‘흠.. 그렇다면 그걸 쓸까?’
태열쇄양은 이미 아공간에 고이 모셔 두었다. 꺼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 진혁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온 문주를 밀어주자고 생각했다.
‘그래. 온 문주 이미지도 좋은데, 여기에 영약까지 구해서 주면 확실하게 제갈 세가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겠지.’
어차피 온 문주가 좋은 소리 들으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진혁은 슬그머니 구석진 곳으로 가서 재빨리 태열쇄양을 꺼냈다.
‘자. 이제 이걸 온 문주에게 건네면..’
그런데 그 순간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원덕강의 기억이었다. 주로 선물과 관련된 기억이었는데, 아주 깊이 감추어져 있던 기억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기억.
‘뭐지? 온 문주가 왜 이렇게 선물을 많이 주는 거지?’
온 문주는 원덕강에게 선물을 무척 많이 주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원덕강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은 듯했다.
‘아.. 온 문주는.. 온 문주는..’
믿을 수 없었다. 온 문주는.
게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 꿰맞춰 지는 것 같았다.
‘여자에게 아예 관심이 없으니 점혈할 때..’
원덕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절한 거나, 거의 매일 원덕강의 위패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라. 가만. 제자들이 다 잘생긴 것도?
의심이 들었다. 인근에서 현천문의 제자들은 잘생긴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제자들이 다치고 들어오면 온 문주는 구파일방과 관련이 있더라도 가서 따지고 들이받았다.
‘설마.. 아니겠지?’
진혁은 온 문주의 성품이 올곧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뭘 들고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게냐?”
“예? 아.. 이건..”
온위립의 질문에 진혁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태열쇄양이며 사주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구했다고 이야기했다.
“오. 그게 정말이냐? 그거 다행이구나. 마침 그런 영약이 필요했는데..”
온위립은 크게 기뻐하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진혁이 제갈벽린을 위해 그 물건을 구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제갈 세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할 게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내일처럼 생각하고 지나치지 않다니. 참 자랑스럽구나.”
온위립은 진혁을 살짝 안으며 어깨를 두드리려고 했다.
“저.. 저기.. 물건 여기 있습니다.”
진혁은 태열쇄양을 건네주면서 재빨리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진혁은 온위립과의 거리를 3척 7촌으로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