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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필요하세요?
모두의 관심이 현천문 사람들에게 쏠렸다. 하지만 온위립 문주는 그런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괴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작은 문파의 문주라면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기 어려울 것인데.. 역시 평범한 자가 아니야.’
제갈중택은 현천문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딸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관찰을 하면 할수록 기이한 일이라고 여겼다.
문주야 강호 경험이 많아 침착할 수 있다고 쳐도 제자들까지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다들 어려 보였는데, 모두가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호들갑을 떨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자도 없었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자도 없었다. 다들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눈에서 정기가 흘러넘쳤다.
제갈중택은 멀리 떨어져 있는 현천문의 제자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사형. 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느냐. 지금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기운을 다 소화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진혁은 입 열지 말고 차분하게 기운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공연히 딴짓했다가는 힘들게 들어온 기운 다 나가버린다고.
“대사형. 그런데 운기를 하는 게 더 좋지 않나요?”
“아니다. 그것보다는 지금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자연스럽게 있는 편이 더 좋다.”
막내가 궁금한 게 많은지 계속 질문을 했다.
마나는 내공과 성질이 조금 다르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받아들인 마나는 운기를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에 흡수되도록 하는 편이 더 좋다.
평소라면 문제 될 게 없었다. 받아들이는 족족 몸에 흡수되니까. 문제는 오늘 너무 많은 마나를 받아들였다는 거였다. 그래서 시간이 좀 필요했다.
“대사형 말씀이 언제 틀린 적 있었냐. 조용하고 정신이나 집중해라. 이 녀석아.”
넷째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현천문의 다섯 사형제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넘실거리는 힘이 자신의 내부로 계속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눈에서는 정광이 흘러나왔고 그들의 얼굴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어렸다. 그걸 본 제갈 세가의 무사들이나 무림맹 사람들은 다들 수군거렸다.
한편 방에 들어간 온위립은 괴의의 지시에 따라 제갈벽린의 몸을 갉아 먹고 있는 기운을 살폈다.
“확실히 느껴집니다. 차가운 기운과 붙어 있는 또 다른 기운이 있군요.”
“오.. 역시 곧바로 알아차리는군.”
괴의는 그 기운에 접근해서 조금씩 움직여보라고 했다. 온위립은 집중해서 시키는 대로 기운을 사용했고, 괴의가 옆에서 세심하게 반응을 살폈다.
“이렇게 말입니까?”
“두 기운을 나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보겠나?”
둘은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작업을 했고, 그 옆에서 당추엽도 도왔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어떻습니까?”
제갈중택이 초조하게 지켜보다 질문을 했다. 온위립은 무척이나 지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괴의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생각한 것보다는 쉽지 않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온 문주가 제어할 수 있다는 건 확인을 했네.”
“그렇습니까.”
제갈중택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쾌차할 수 있다는 답변을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건 다행이었다.
같은 작업이 그다음 날도 이어졌다. 온 문주가 어느 정도 활약을 할 수 있는지 가늠이 되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실을 남궁표는 듣지 못했다. 영약을 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다가 돌아온 남궁표는 현천문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는 막아섰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냐?”
“볼 일이 있어서 왔네. 그러는 자네는 누군가?”
온 문주가 나서며 말했다. 남궁표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온 문주를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당신들. 여기에는 접근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나는 자네가 누구인지 물었네. 그리고 이곳이 자네 집인가? 왜 자네가 오고 말고를 결정하는 건가?”
온위립은 남궁표를 지나쳐 괴의의 처소로 들어갔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온 문주의 한방이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남궁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온 문주를 낚아채려고 했는데, 괴의와 제갈중택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이 온 문주를 반겼기 때문이었다.
“어서 드시지요.”
제갈중택이 정중하게 말했고, 온 몬주도 예를 다해 인사를 받았다. 온 문주와 현천문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남궁표가 다가와 물었다.
“가주님. 저들이 무슨 일로 온 겁니까?”
“벽린이의 치료에 필요해서 불렀네.”
“아니. 저런 엉터리 같은 자들이..”
남궁표가 보기에는 실력이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문주라고 하는 자도 자신보다 훨씬 아래로 보였고. 그런데 제갈중택이 왜 이렇게 예를 갖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의 어르신과 당 숙부님도 인정을 한 일이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게.”
제갈중택은 엄히 말했다. 그러면서 현천문 사람들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제 보았을 때와는 또 분위기가 달랐다. 어제는 상당한 기세를 느꼈는데, 오늘은 아주 평범해 보였다.
‘기세를 갈무리했다. 대단한 자들이야.’
어제 흘깃 본 거라면 혹시 잘못 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정말 유심히 살폈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기세가 상당히 지워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기세를 조절할 줄 안다는 이야기. 어지간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제갈중택은 현천문과는 이 일이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제갈중택의 착각이었다. 현천문 사람들은 주술사를 연이어 잡고서는 몸에 마나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지가 높아 보였던 거다.
그런 상태를 마나 샤워라고도 하는데, 그걸 알 리 없는 제갈중택이 오해를 한 거였다. 그 오해가 그에게는 오히려 복이 되었지만.
제갈중택은 그리 얘기하고는 괴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계속해보세.”
괴의가 시작하려 하자 온위립이 말을 걸었다.
아. 그 전에 누굴 좀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만..“
“누구를 말인가?”
온위립은 진혁을 부르자고 했다. 자신은 의술에 관해 잘 모르고, 괴의는 현천문의 내공에 관해 잘 모른다.
“대제자인 진혁이 의술을 잘 아니 부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 흐음..”
괴의는 당추엽과 제갈중택을 쳐다보았다.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진혁이 부름을 받고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괴의가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제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했던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자네가 의술도 좀 안다지?”
“기본적인 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괴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진혁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의술에서 사용하는 혈도의 위치나 인체 관련된 질문에도 일체의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괜찮구먼. 그래. 자네가 옆에서 좀 돕게.”
진혁은 일종의 통역사 노릇을 했다. 괴의가 이야기하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온위립에게 어떤 식으로 기운을 움직이라고 말했다. 의술과 마나를 동시에 알고 있어서 가능한 거였다.
“승장혈에 기운을 넣어서..”
“한기와 분리를 하려는 것이니 늘어 붙은 걸 천천히 떼어낸다는 느낌으로..”
괴의가 이야기를 하면 온위립이 알아듣기 좋게끔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까지 알려주었다.
괴의나 온위립이나 어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편하게 작업을 했다. 괴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필요한 걸 대부분 알 수 있었다.
“자네. 나중에 치료를 할 때도 있어야겠구만.”
“그러게 말일세. 이 친구 아주 용하군 그래.”
괴의와 당추엽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둘은 제갈벽린을 치료할 때 반드시 옆에 있으라고 말했다.
특히 괴의는 쉬러 잠시 밖으로 나간 온위립, 진혁과 함께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천문의 내공의 성질에 관해 궁금한 게 많았던 거였다.
온위립은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어정쩡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거짓을 섞어 둘러댔고. 괴의는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아니. 정종의 내공이 통하지 않는다니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남궁표는 이번에 영약을 구하면 온 문주가 치료를 도울 거라는 제갈중택의 말에 흥분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내공이야말로 정종이고 심후하니 효과가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당추엽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어찌 남궁 세가가 있는데 저런 이상한 문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느냐는 뉘앙스였다.
사실 당문이나 제갈 세가나 무공이나 내공이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오대 세가 중에서 그래도 심법과 내공이라면 남궁 세가를 쳐주었다.
하지만 그건 당추엽이나 괴의를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괴의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돌팔이란 말이냐?”
“어르신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남궁 세가의 내공이 더 효과가 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궁표는 자신이 직접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제갈중택이 승낙했다.
“좋네. 한번 자네 내공으로도 효험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지.”
제갈중택이 그리 나서자 괴의나 당추엽도 어쩔 수 없었다. 남궁표를 데려다가 같은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제갈중택은 어찌 되었든 좋았다. 오대 세가라고는 하지만 가장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건 당문과 남궁 세가였다. 나머지 셋은 두 세가의 위세만 못했다.
‘녀석의 내공이 효과가 있어도 좋고, 아니어도 남궁 세가에게 추궁을 할 수 있으니 좋고.’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괴의와 당추엽이 어디 그리 허술한 사람들인가. 의술로는 제일가는 명숙들이다. 남궁표는 지금 질투와 자만심에 사로잡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을 최고의 자리만 차지해왔으니 그럴 법도 하지. 게다가 벽린이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다. 남궁표의 내공은 아무런 효험도 나타내지 못했다. 오히려 내공을 과하게 쓰다가 한기를 자극할 뻔하기도 했다.
“이제 인정하겠나?”
제갈중택의 말에 숨을 헉헉대던 남궁표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있는 남궁표에게 괴의가 쏘아붙였다.
“어린 녀석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오늘 일은 네 녀석 조부에게 따질 것이니 나중에 보자. 크흥.”
그제야 남궁표는 난처해 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심법이야 말로 정종이고 뛰어난 것인데, 왜 효과가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했다.
그런 남궁표에게 온위립이 다가가 따끔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주변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왜소하게 만들고, 주변을 힘들게 하는 법이지. 나 또한 오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현천문이 무시당한 일을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당추엽이 다가가서는 남궁표를 작은 소리로 꾸짖었다.
“이 녀석아. 무림이 어떤 곳인데 아직도 그 성질을 못 버린 게냐. 겸손함이 없으면 크게 될 수 없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그 성질머리부터 바꿔!”
그 모습을 본 제갈중택은 혀를 찼다. 자신도 알고 있지만 저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남궁표가 성장해서 제갈 세가에 좋을 게 없으니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사람들은 제각각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꾸지람을 들은 남궁표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러면 저자가 벽린의 몸을 주무르는 걸 봐야 한단 말입니까?”
당추엽은 남궁표가 계속 나선 게 그 문제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여자 몸을 다른 남자가 주무르는 게 싫었던 거다. 하기야 그런 걸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치료를 하려면 혈도를 주무르거나 몸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제갈중택도 그것이 마냥 좋을 리는 없다. 남궁표는 제갈중택에게 다가와서는 이야기했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가주님. 벽린이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제갈중택은 손을 들어 남궁표의 말을 막았다.
“아니. 나는 저자에게 맡길 생각이네.”
제갈중택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괴의와 남궁표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현천문 사람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