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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변하는 거 아니겠어요?
괴의는 진혁에게 연구에 필요하니 괴초를 좀 더 구해다 달라고 했다.
“괴초요? 예. 더 구해다 드릴게요.”
“그래. 고맙네.”
진혁은 혹시나 해서 어제 일을 물었다. 그리고 괴의에게서 제갈 세가의 사람들이 왜 융중산에 온 것인지 들을 수 있었다.
“조사를 하기 위해서 그런 거지. 최근에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났거든.”
“이상한 괴물이요?”
괴의는 전에는 잘 볼 수 없었던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했다. 진혁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얼마 전에 갑자기 괴물들이 몰려나온 이후로 그런 것 같단 말이야.”
“예? 얼마 전에 괴물들이 몰려나왔다고요?”
괴의는 그걸 몰랐냐는 듯 물었다.
“얼마 전에 그 난리가 났는데 몰랐나?”
“아뇨. 저는 사주에 다녀와서.. 그런데 사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진혁은 그 일이 일어난 게 언제인지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구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데 비슷한 때에 그런 일이 생겼다니 말이야.”
“그러니까요. 혹시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괴의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알아는 봐야겠구만. 하기야 괴물이 나타난 것도 거의 비슷한 시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진혁은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영감이 알아본다고 한 것과는 별개로 따로 정보를 수집해야겠어.’
이건 분명히 무언가 있는 거다. 게다가 현천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단서는 있을 것이다.
예전에 괴물이 나타났고, 그걸 해결한 것이 현천문이니까. 진혁은 현천문으로 돌아가면 자료들을 싹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단 사람들을 레벨업시키는 게 중요했다. 이들이 커질수록 자신이 편해지니까. 그래서 정말 대차게 굴렸다.
“허억.. 어헝.. 허억.. 으응.. 진혁아. 이거 당강은 좀 벅찬 것 같은데..”
온위립이 야릇한 소리를 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갈저와 당강은 전투력에서 차이가 났다. 당연히 당강을 상대하는 게 더 힘들었다. 그걸 연속적으로 했더니 사람들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지금 그렇게 안이한 소리를 하실 땝니까. 문주님.”
진혁은 다가가 온위립을 잡아 일으켰다.
“지금까지 현천문이 왜 그런 수모를 당했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한시라도 빨리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으켰다.
“다들 일어나라. 지금 이 정도로 주저앉으면 영원히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고는 뛰어가서는 오크를 끌고 왔다.
“허억.. 허억..”
“하아.. 죽을 것 같아..”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크가 그들을 죽일 테니까. 현천문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싸웠다. 악전고투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뼈에 사무치도록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하겠어..”
“우에에엑~”
막내는 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오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들이 직접 처리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일명 막타 치기.
이건 우연히 발견한 방법인데 마지막에 누가 몬스터를 죽이느냐에 따라서 마나가 움직였다. 마지막에 죽인 사람에게 가장 많이 이동했다. 그렇다고 공격을 하나도 하지 않다가 막타만 치면 효과가 별로였다.
그래서 진혁은 사람들과 적당히 오크를 상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거의 쓰러질 때까지 오크와 싸운 현천문 사람들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러면.
“어흐응.. 으흥..”
마나를 흡수하게 된다. 마나를 흡수하면 기력이 조금 회복된다. 그러면 또 싸운다. 이런 지옥 훈련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잠깐 쉬었다가 할까요?”
대답 대신 전원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서 있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진혁은 사람들의 상태를 살폈다.
- 안규림 (남, 19세) 내공 수위 9년
- 성장 가능 등급 : 절정 고수 +
막내는 내공이 6년이 늘었다.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성과를 낸 거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조만간 다들 삼류 소리는 면할 거다.
‘이류까지야 어렵지 않고.. 하지만 일류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마나는 내공과 달라서 10년 단위로 쌓아야 하는 양이 확 달라진다. 10년까지는 정말 순식간에 쌓인다.
예를 들어 10이라는 마나를 축적하면 수위가 10년이 된다고 치자. 그런데 수위가 20년이 되려면 10이라는 마나만 더 축적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마나를 축적해야 한다. 대략 40 정도?
30년은 그보다 훨씬 더 늘어나고.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나의 특성인 것 같았다.
20년 정도의 수위가 되는 거야 금방이다. 며칠 잡으니 6년의 수위가 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게 30년 이상의 내공을 쌓아 일류 무인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도 내공보다는 나아. 괴물을 계속 잡으면 되는 거니까.’
진혁은 이런 식으로 일 년 만 굴리면 다들 내공 수위가 40년은 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저기.. 대사형. 오늘은 가만하면 안 될까요?”
“예. 내공이 느는 것도 좋지만, 너무 힘들어요.”
다들 눈이 퀭해서는 진혁을 쳐다보았다. 간절함이 뚝뚝 떨어졌다.
“흐음.. 그렇다면..”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딱 한 번만 더 잡고 그만하자. 딱 한 번만.”
“으아악!!”
“악마!”
사방에서 난리가 났지만, 진혁은 오크를 몰고 왔다. 오크는 가슴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크워어억!”
“닥쳐!!”
하지만 분노한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오크의 생은 그렇게 끝났다.
***
“빨리 이쪽으로 옮기거라. 어서!”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다. 갑자기 괴물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3봉 중 한 명이 제갈벽린이 크게 다친 거였다.
“할아버지. 괜찮죠? 그렇죠?”
옆에 있었던 당소혜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당추엽은 신중하게 제갈벽린의 상세를 살폈다. 그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상태가 무척 나빴기 때문이었다.
“어떤 괴물이 공격을 했느냐.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 말하거라.!”
무사 하나가 부복하며 말했다.
“갑자기 당강보다 조금 큰 괴물들이 나타났는데, 어찌나 강한지 무사들로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진법을 활용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뒤에서 커다란 지팡이를 든 괴물이 무어라 소리를 쳤단다. 그러자 푸른빛이 제갈벽린을 때렸고,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거라고 했다.
제갈벽린은 그냥 보아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도 파리하고 입술은 보랏빛이었다. 손톱과 손가락도 보라색이었고.
“괴물이 법술을 사용한단 말이냐. 이거 큰일이구나.”
“할아버지. 벽린이는 어떤데요? 예?”
당추엽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한독이 스며들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한독이.”
세가 연합의 미래라고 불리는 세 명의 기재. 남궁표와 당소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제갈벽린이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당주님. 이게 무슨..”
남궁표가 숨을 헐떡이며 날아왔다. 그는 제갈벽린을 보더니 무사들을 거칠게 나무랐다.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벽린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얼 하고 있었어?”
그는 무섭게 무사들을 다그치고는 당추엽의 옆으로 왔다.
“치료는 가능하겠죠? 당주님? 그렇죠?”
“열양기공을 읽힌 내공의 고수가 있다면 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다룰 수 있는.”
하지만 당추엽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고수는 천하에 열을 넘지 않을 거라면서. 그리고 이 근처에는 그런 고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일단 괴의에게로 가자. 지금은 그 방법밖에는 없다.”
괴의라는 말에 남궁표와 당소혜가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당추엽과 괴의 진부가 얼마나 앙숙인지 잘 알았으니까.
무림맹의 식약당주인 당추엽은 괴의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이었다. 아주 젊었을 시절에는 같이 공부한 사이였는데,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겨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거였다.
어떤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둘이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괴의에게 가자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제갈벽린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였다. 남궁표가 바로 제갈벽린을 업고는 바로 내달렸다.
그 시각 진혁은 괴의와 만나고 있었다. 괴초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허어. 이거 매번 고마우이.”
“뭘요. 연구에 도움이 되신다면 저도 기쁘겠습니다.”
진혁은 아무리 연구해도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자신했다. 마나를 품은 것과 아닌 걸 적절히 섞어서 주었으니까.
그걸 모른 채 괴의는 요즘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실험 결과가 계속해서 달라진다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면서.
“괴의 어르신. 괴의 어르신!”
갑자기 허공에서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남궁표가 땅에 떨어졌고, 제갈벽린을 마루에 눕혔다.
“넌 누구냐?”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올릴 터이니 상태를 먼저 봐주셨으면 합니다. 한시가 위급합니다.”
괴의 진부는 누워있는 여자를 슬쩍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괴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황급히 맥을 잡고는 생태를 확인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어떤 일이 있었던 게야?”
괴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공중에서 떨어진 다른 사람이 대답을 했다. 바로 무림맹 식약당주인 당추엽이었다.
“괴물에게 당했네. 그것도 술법이었다고 하더군.”
괴의는 당추엽을 노려보았다. 둘은 잠시 눈싸움을 했지만, 이내 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놈도 알겠지만, 한독에 당했다. 그런데 어떤 성질의 한독인지 알 수가 없어.”
괴의는 아는 대로 전부 말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서.
“당강보다 조금 큰 괴물이라더군. 산휘인 것 같기도 하고.”
“갈저나 당강을 부리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당추엽의 말에 남궁표가 재빨리 아는 바를 덧붙였다.
‘가만. 오크나 그보다 약간 놈들을 부린다. 크기는 오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크고 피부는 녹색? 설명만 들으면 홉고블린하고 비슷한데..’
홉고블린 주술사에게 당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진혁은 말을 자세히 들었다.
“쉽지 않겠어. 강한 양기가 필요한데..”
“그런 약재가 없나?”
당추엽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카인 제갈벽린이 아니었다면 괴의와는 말도 섞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벽린의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괴의도 그런 걸 아는지 당추엽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당장 버틸 약재밖에는 없어. 그리고 어지간한 걸로는 힘이 들 텐데..”
“그럼 어떤 약재를 구해야 합니까?”
남궁표가 어떤 약재든 구해오겠다고 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제갈 세가에도 약재가 어느 정도 있을 테고, 남궁 세가의 힘을 사용하면 어지간한 약재는 구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만년삼왕이 있으면 가장 좋은데..”
“그거야 인세에 보기 드문 영물 아닌가.”
괴의의 말에 당추엽이 면박을 주었다.
“삼목혈섬도 치료가 가능하겠지.”
“그것도 만년삼왕하고 비슷하지.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이번에는 당추엽의 말을 괴의가 반박했다.
“화리의 내단이나 화정. 태열쇄양 같은 게 있어야 할 게야. 그 정도가 아니면 치료를 힘들어.”
그중 진혁이 들어본 게 있었다. 태열쇄양이라는 영약이었다.
‘저거 돈황에 있는 건데..’
쇄양은 사막의 인삼이라고 불리는 약초다. 쇄양이 오래 묵어 영물이 되면 양기를 품게 되는데,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태열쇄양이라고 한다.
쇄양은 돈황 부근의 특산품이었다.
“화리나 화정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태열쇄양도 마찬가지고.”
당추엽은 크게 낙담한 듯 이야기했다. 그도 모르는 게 아니다. 조카인 제갈벽린이 죽어가는데고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서 내뱉은 탄식이었다.
‘이걸 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 말아?’
진혁은 고민했다. 자신들을 무시한 걸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남궁표도 꼴보기 싫었다. 하지만 당추엽이나 제갈벽린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도와주면 이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우는 거다.
‘아니다. 일단은 두고 보자. 굳이 지금 나설 거야 없지.’
하지만 태열쇄양이 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진혁은 철각패도의 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슬그머니 괴의의 거처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