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 / 0150 ----------------------------------------------
상황은 변하는 거 아니겠어요?
진혁은 괴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환자들의 상태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어떻게 보긴. 내가 중수법에 당해서 내상을 입은 걸로 보았지.”
괴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걸 대충 보는 것처럼 하면서 다 알아낸 걸 보면 괴의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혹시 환자들의 내공이 어떤지도 살펴보셨습니까?”
“환자들의 내공?”
괴의는 잠시 갸웃거리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나를 어떻게든 현혹하려는 생각이로구나. 내가 너 같은 놈들 속을 모를 성싶으냐.”
“그렇습니까?”
괴의는 그래 봤자 소용없다고 말했지만, 진혁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본문의 내공은 일반적인 문파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터라서 말씀 드린 것인데..”
“일반적인 내공이 아니다?”
괴의가 관심을 보였다. 이제 절반 정도는 된 거다.
괴의는 자존심이 강하고 외골수인 자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새로운 병이나 증상. 자신이 모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은 자에게 큰돈을 받는 것도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함일 거다. 그렇다고 돈 때문에 그렇다는 취급을 받기는 싫으니 다른 핑계를 만들어서.
그러니 현천문의 내공이야말로 괴의에게는 꼭 살펴보고 싶은 연구대상일 거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걸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
‘워낙 괴팍해서 다른 사람이 옆에서 자꾸만 거들면 오히려 하기 싫어하니까.’
애들 같은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스스로 호기심이 일어서 달려들게 해야 효과가 좋다. 아니나 다를까 괴의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내공이 거의 없는 것 같던데..”
당연한 일이다. 내공이 아니라 마나였으니까.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성질이 더 많다.
“다시 한 번 살펴보시지요. 직접 확인하시는 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진혁은 괴의를 존중하는 척했다. 이런 사람일수록 대접받는 걸 좋아하니까. 괴의는 냉큼 달려가더니 맥을 짚었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안으로 옮겨서 치료를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한참 있다가 괴의가 나오자 온미령이 부탁하듯 말했다. 아버지와 사형제들이 걱정되어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질겁했다.
어허. 이 여자가. 이 노친네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오히려 역효과 난다고.
“일단 좀 두고 보세.”
역시나 괴의는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보더니 안으로 홱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알아낼 수도 없겠지.
그저 이상한 성질의 내공이라는 것만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마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원덕강이 해결방법을 찾았을 거다. 원덕강은 천재 중의 천재였으니까.
의술에도 상당한 식견이 있었고, 연단이나 연금과 관련된 것에도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현천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고, 알아보지 않은 게 없다고 보면 된다.
역시나 바로 다음 날, 괴의는 계속해서 마차에 붙어 있었다. 계속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괴의는 무언가 속임수가 있는 게 아닌지 그걸 걱정하는 듯했다. 만약 그런 속임수에 걸려들었다고 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으니까.
그래서 조심하는 듯한데. 거기에 진혁이 기름을 좀 부었다.
“환자의 상태가 워낙 위중한지라.. 이만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어허. 이런 증상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의원이 어디 있다고..”
괴의가 진혁의 손을 붙잡았다. 어딜 가느냐고. 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정중하게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허.. 이런.. 에이. 모르겠다. 전부 안으로 옮기세.”
괴의는 아직도 뭔가 석연치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안으로 환자들을 옮겼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역시 괴의라는 말이 나왔다. 그가 치료를 시작하자 온 문주와 두 사제는 하루가 다르게 상세가 좋아졌다.
뛰어난 의술에 고절한 내공까지 퍼부어가면서 고치니 내상으로 인한 건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괴의는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허어. 뭔가 이상한데..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마나 때문에 괴의는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현상들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그걸 보고 있으니 환장하는 거다.
그런 괴의 옆에서 진혁이 여러모로 더 헷갈리게 했다. 도와주겠다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주었는데, 그게 괴의를 더 혼란스럽게 한 거다.
“괴초라는 풀이 있습니다. 그게 괴물들이 싫어하는 향을 뿜는데, 사문의 내공과 흡사한 점이 있는 것 같더군요.”
“괴초? 그런 풀이 있어?”
“예. 제가 사주에 가면서 거기 약초꾼에게 들은 건데 어떻게 좀 구해다 드릴까요?”
괴의는 반색을 하면서 좋아했다. 구해다주기만 하면 사례는 톡톡하게 하겠다고 하면서. 진혁은 겸손한 자세로 거절했다.
“문주님과 사제들을 치료해주시는데 그런 걸 어찌 바라겠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구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구하는 건 아주 쉽다. 철각패도의 몸으로 구해서 아공간에 넣고, 진혁이 꺼내기만 하면 끝이다. 물론 괴초를 구한다고 하고는 다른 걸 좀 알아보러 다녔다.
현천문을 공격한 사주한 자들이 누구인지, 배후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진혁이 직접 움직일 수는 없으니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의뢰자의 신분을 비밀로 하는 방식이라 조금 큰 금액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돈이야 뭐 많으니까.
‘그놈들인 건 확실한데 배후에 소림과 광흥 표국이 연관된 것 같다고?’
소림이야 어느 정도 연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소림보다 종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종남은 무림맹에 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것보다는 광흥 표국이 연관된 것 같다는 정보가 좀 의아하다 싶었다.
‘광흥 표국이면 4대 표국의 한 곳인데 현천문 같은 곳을 왜?’
알 수가 없었다. 엄청난 부와 권세를 자랑하는 곳이 4대 상단과 4대 표국이다. 돈황으로 가는 새로운 길은 엄청난 이권이 걸린 일이니 성흥 상단 같은 곳이 덤벼드는 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현천문은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곳이다. 뛰어난 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파의 재산이 많으냐? 그것도 아니다.
‘광흥 표국. 표국주는 벽력도 왕자청. 하남에 근거를 두고 있고, 소림 속가 출신이 많고.’
그런 생각은 들었다. 이번에 연합해서 현천문을 친 곳이 대부분 소림과 연관된 곳이다. 그래서 우연히 광흥 표국의 한 사람과 연결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뭐. 더 자세히 알아보면 되겠지.’
진혁은 다시 의뢰를 넣고는 곧바로 괴의의 거처로 돌아왔다. 아공간에서 꺼낸 괴초를 가지고서.
“이게 그 풀인가? 괴초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없는 것보다야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 암튼 고맙네. 내 자네 도움은 잊지 않겠네.”
괴의는 당장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겠다고 하면서 괴초를 가지고 나갔다.
‘고생 좀 하시겠어요.’
섞여 있었다. 마나를 품은 것과 아닌 것이. 어떤 실험을 하든 결과가 다르게 나올 거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결과에 혼란스러워할 테고.
사실 제대로 된 걸 가져다줘도 뭔가를 알아내기란 어렵겠지만. 어쨌든 난 거짓말은 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는 거라고 했습니다.”
***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확실히 괴의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온위립은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거동은 물론이고 몸 상태도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사제 두 명도 비슷했고.
“그런데 이번에 다녀오면서 기연을 얻었다고?”
“기연이라기보다는 단초를 얻은 것 같습니다.”
“단초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무나.”
진혁은 자신이 알아낸 걸 적당히 버무려 말해주었다.
“지금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괴물들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있습니다. 그 기운이 현천문의 내공과 성질이 같습니다.”
“뭐라? 괴물의 기운과 우리 문파의 내공이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온위립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기야 나 같아도 믿을 수 없겠다.
“괴물을 잡으면 그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고 내공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괴물을 잡으면 내공이 늘어난다? 허어..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말이냐?”
온위립은 헛웃음을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누가 믿겠느냐면서.
상식에 벗어난 이야기. 무림인이 아는 내공은 자연의 기운을 몸속에 축적하는 거다. 그런데 괴물을 잡기만 해도 내공이 늘어난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이야기다.
“확인하면 당장 알 수 있는 일인데, 제가 뭐하러 그런 걸 속이겠습니까.”
“하기야. 네가 이유 없는 헛소리를 할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진혁의 됨됨이를 아는 온위립이었지만, 그래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날은 그렇게 운만 뗀 것으로 마무리했고, 그다음 날 모두를 모아놓고 이야기를 했다.
“대사형. 그게 정말입니까?”
넷째인 유호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내공이 없다고 얼마나 무시를 당했던가. 그런데 내공을 늘릴 방법이 있다고 하니 희열에 찬 얼굴이었다. 방법 같은 건 상관없다는 표정.
반면 둘째인 호승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공이 느는 건 좋은데 진혁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도 진혁에게 반감이 많은 녀석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다. 셋째인 온미령과 막내인 안규림은 진혁의 말을 믿는 쪽이었다.
평소에 진혁을 잘 따르기도 했고, 괴한들을 제압한 걸 직접 보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제각각의 반응. 그리고 진혁의 눈에 보이는 글자.
- 성장 가능 등급 : 미정.
모두 미정이었다. 진혁은 다들 성장할 수 있다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확인을 시켜주기로 했다. 직접 확인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건 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융중산 근처에도 괴물이 나오는 지역이 있었다.
하기야 괴물이 없는 지역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지만 당장 사냥을 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괴물을 사냥하려면 정보도 필요하고 안전 확보도 중요하다. 게다가.
“당분간 이곳에 있는 게 어떤가? 아직 치료가 덜 끝나서..”
괴의가 들러붙었다. 계속 연구를 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괴의에게 실험체 취급을 당하면서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셨다고 해서요. 더 있는 건 폐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어허. 상태는 의원이 내가 가장 잘 알지. 아직은 아니야.”
괴의가 억지를 썼다. 진혁을 공략하다가 잘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문주인 온위립을 다이렉트로 치고 들어왔다. 공략 포인트를 잘 아는 걸 보니 확실히 나이를 다른 데로 먹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알아보니 문제가 좀 많다고 하던데.. 그걸 해결해주지. 어떤가?”
괴의의 영향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듯했다. 온 문주는 괴의의 제안에 솔깃하는 듯했다. 하지만 진혁의 말을 떠올리고는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죄송하지만 저희 문파의 일은 문파 내에서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게. 내 입으로 이런 말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나와 좋은 인연을 만들어 놓으면 좋지 않겠나.”
괴의는 늙은이의 소원이라면서 온위립의 손을 잡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저런 짓까지 하다니. 한마디로 연구에 미친 늙은이였다.
하지만 온위립은 흔들리지 않았다. 괴물을 잡아 내공을 늘리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사실 그랬다. 현천문 사람들은 전부 오성이 뛰어났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나 깨달음은 다들 높은 경지였다. 내공이 없어서 삼류 취급을 받는 거지 내공만 받쳐주면 어떤 고수 못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걸 지금까지 봐온 문주의 마음이 어떻겠나. 본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뛰어난 제자들이 개무시당하는 꼴을 볼 때마다 속이 썩어들어갔다.
그런데 그걸 뒤엎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건 무조건 확인해야 했다. 그 열망은 너무나도 뜨겁고 강렬해서 괴의의 광기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현천문의 사람들은 괴의의 거처에서 나와 진혁이 미리 알아놓은 장소로 이동했다. 갈저가 종종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저놈을 잡으면 내공이 는다는 거지?”
온위립은 저 멀리 보이는 갈저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사제들도 다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혁은 조금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내일이면 세상이 달라 보일테니까요.”
진혁과 현천문 사람들은 갈저를 향해서 조금씩 걸어갔다. 어떤 일이 생길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