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는 표사-68화 (68/150)

0068 / 0150 ----------------------------------------------

돌아왔는데 뭐가 이래?

진혁은 상황을 더 소상히 알려고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 무사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나도 사협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야. 객잔에서 밥을 먹는데, 현천문이라는 말이 들리잖아. 자네 생각이 나서 좀 물어봤지. 그게 다야.”

“감사합니다. 원래는 장안에서 좀 머물다 갈 생각이었는데,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네요.”

누구에게 당했는지, 얼마나 크게 당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저 현천문 망하게 생겼다. 다친 사람이 많다. 무사는 그 정도만 들었다고 했으니까.

“도대체 어떤 놈들이..”

생각해보니 많았다. 온위립과 사이가 틀어진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항상 바른말만 하니 겉으로야 어떻게 못 하겠지만, 내심 이를 갈고 있는 곳이 여럿일 거다.

진혁은 곧바로 현천문으로 달려갈까 하다가 일단 대장간에는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안에서야 작업을 할 대장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협으로 가서 그런 걸 했다간 소문이 다 날 거다. 굳이 그런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 이곳에서 일을 처리하는 편이 좋다.

‘게다가 한창 싸우는 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후이니..’

게다가 바로 갈 수 없는 이유가 또 생겼다. 장안 태수인 손제형이 진혁을 부른 거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진혁이 있는 객잔으로 관리가 와서는 소식을 전했다.

“시간이 되시면 내일 유시 경에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진혁은 어차피 내일 손제형을 만나고 출발해야 하니 오늘 중급 마나 스톤을 처리하기로 했다.

장안은 한때 왕조의 수도였던 대도시다. 수많은 사람들 살고 있고, 많은 물건이 오가는 곳이다. 대장간도 상당히 많은 수가 있다.

처음에는 진혁의 조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짓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듯했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셈은 넉넉하게 쳐드리겠습니다.”

진혁은 원래 금액보다 약간 높게 불렀다. 너무 큰 금액을 제시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돈이라면 대장간을 수백 개 사고도 남을 만큼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다가 대장장이가 술자리에서라도 말을 하게 되면 곤란하다.

그래서 적당한 금액을 제시했다. 뭔가 찝찝하기는 한데, 거절하기에는 아까운 정도의 금액을. 대장장이는 고민이 되는 표정이었다.

“곤란한데..”

“돈은 지금 바로 드리겠습니다.”

“셈을 먼저 치른다는 겁니까?”

대장장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돈을 먼저 준다니 혹했던 거였다. 게다가 진혁이 계속해서 정중하게 말을 한 것도 주효했다.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는 약간의 플러스 요소가 된다.

“만약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제가 다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대장장이는 결국 승낙했고, 진혁은 중급 마나 스톤이 들어간 상당한 양의 쇳덩어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일단은 사람들을 시켜 쇳덩어리를 나르게 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공간에 넣었다.

“이제 정말 당분간은 걱정 없겠다.”

이 정도 분량이면 적어도 서너 달 정도는 문제없을 듯했다. 안 그래도 토번왕이 검을 좀 더 요청해서 고민이었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번왕의 부대는 무서운 기세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괴물이든 군대든 가리지 않고 물리쳐서 신의 가호를 받은 부대라는 말까지 듣고 있단다.

그 덕분인지 토번왕의 주변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진혁에게 엄청나게 많은 포인트가 들어왔다.

“조금만 더 하면 열 칸이 모두 차겠어. 며칠이면 되겠지.”

그러면 레벨이 20이 되는 거다. 진혁은 제발 이번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칸 하나를 채우려면 무지막지한 포인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넘어가면 정말 포기하고 싶을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태수님을 만나러 가야겠군.”

진혁은 손제형의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다. 철저하게 원덕강의 제자로 코스프레를 해야 하니까.

‘하아. 정말 힘들다. 이거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배우나 해야겠어. 어지간한 배우보다는 내가 잘할 것 같아.’

***

“그런 일이 있었나? 허허. 진정 이 세상에는 신비한 일이 많군.”

손제형은 진혁의 말을 들으면서 연신 감탄했다. 듣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듣자하니 몇 차례 죽을 뻔했다면서?”

“워낙 위험한 곳이라서요. 다들 위기를 겪었습니다.”

진혁은 다들 겪은 일이라며 별일 아닌척했다. 손제형이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알아본 후일 것이다.

이럴 때는 티를 내지 않는 게 좋다. 그래야 손제형에게서 점수를 더 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지.”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다른 무사들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겁니다.”

“하하하. 덕강이 그 친구처럼 겸양하는 걸 가장 잘하는구만.”

손제형은 옛 친구가 떠올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자네 표정이 오늘 좀 어두워 보이는데..”

“그게.. 사문에 일이 있다고 들어서 그렇습니다.”

“현천문에 일이?”

손제형은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저도 어제 들은 이야기라 아직 확실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나가는 대로 바로 출발해서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래? 내가 공연히 자네를 잡아둔 게 아닌가 싶구먼.”

“아닙니다. 어차피 일이 있어서 오늘 출발할 생각이었습니다.”

장안 태수인 손제형은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억울한 일은 없게 해줄 수는 있네. 현천문은 내 친우의 사문 아닌가.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곳일세.”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됐다. 이런 말을 들었으니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른 때라도 찬스 한 번 정도는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손제형은 어서 가보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어떤지 알려달라고 했다. 진혁은 그러겠다고 하고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이제 짐을 챙겨서 현천문으로 가야 한다.

“사문이 일이 있으시다면서요?”

“나도 들었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 하게.”

객잔에 오니 서예주와 진원휘 영감이 진혁을 맞이하며 그리 말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내가 필요하면 부르게. 자네 일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우리도 부르라고. 바로 달려갈 테니까.”

목세강과 한천위, 왕칠과 남로무사단의 무사들. 모두가 진혁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습니다.”

진혁은 포권을 하고는 곧바로 현천문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누가 죽거나 하지는 않았어. 다친 사람만 있다고 했으니까.”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부터 말했을 거다. 그러면 된 거다. 살아만 있으면 된 거다. 망할 지경이라고 했는데, 그건 어차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래도 자신이 몸담은 곳이라 그런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천문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진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

생각보다 심각했다. 현천문이라고 새겨진 현판은 부서졌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대문도 엉망이었다.

“문주님! 사제들!!”

진혁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대사형!”

막내인 안규림이 놀란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울먹거리더니 진혁에게 다가왔다.

“문주님은? 다른 사제들은?!”

“다들 다치셔서..”

진혁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문주인 온위립과 둘째 호승렴, 넷째 유호군이 누워 있었다. 어디가 잘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안색이 파리한 것이 크게 다친 듯했다.

“대사형..”

간호를 하고 있던 온미령이 진혁을 보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문주님 상세가 어떠시냐? 사제들은?”

“내상을 심하게 입으셔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내상은 아무나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중수법에 당하면 일반적인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 내상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원이 필요하다.

“진혁이냐...”

문주인 온위립이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뜨는 것도 힘겨운 듯했다. 파리한 입술로 말을 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문주님. 어떤 놈이 이렇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흉수가 누구인지 몰랐으니까. 갑자기 복면을 한 자들이 쳐들어와서는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였다.

현판도 부숴버리고 문파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의심이 가는 자들이 있기는 했다. 사협 표국이나 무관이나. 하지만 증거가 없다.

“의원은 뭐라더냐?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느냐?”

온미령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있는 의원들은 다들 자신들이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는 거였다.

“그럼 다른 곳에서라도 의원을 모셔와야 할 것 아니냐. 아니면 환자를 옮기던가.”

“그게.. 사정이 좀..”

돈이 없다는 거였다. 내상을 치료하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한데 복면을 쓴 놈들이 돈이 될만한 건 전부 뒤져서 가져갔다는 거였다.

가문이 가지고 있는 땅이 조금 있으니 그걸 처분하면 되는데, 그것도 어려웠단다.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예. 대사형.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사려는 놈들은 거의 공짜로 내놓으라고 합니다.”

막내인 안규림이 화가 나는지 씩씩거렸다.

‘이거 작정하고 누가 손을 쓴 건데?’

아주 악랄한 방식이다. 아마도 일부러 죽이지 않았을 거다. 계속 고통을 느끼도록 손을 쓴 걸로 보였다. 그러면서 자금줄도 틀어쥐어서 치료도 받지 못하게 하고.

“내상을 치료할 만한 의원이 누가 있느냐?”

진혁은 자신이 돈을 댈 테니 어서 치료를 받자고 했다. 그러자 온미령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알아봤는데, 가까운 곳에는 그런 의원이 없다고 해요.”

서쪽으로는 장안에나 가면 있을 거라고 했다. 남쪽으로는 무당파에 가면 가능하다고 했고.

“융중산 근처에 명의가 계신 데 그분이 이쪽으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그럼 그분을 모셔오자. 어떤 분이신데?”

“진 의원님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괴의 진부. 무림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의원이지만, 아무나 치료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동해야 치료를 하는 괴팍한 성품의 소유자. 하지만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살 수 있었던 건 그의 무공과 의술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에게 치료를 받은 많은 무림명숙들의 비호를 받고 있기도 했고.

고수일수록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하기란 쉽지 않다. 내공과 무공에 관해 잘 알고 치료를 해야 하니까. 그런 의원은 많지 않다.

그래서 무림인들이 진부라고 하면 한 수 접어준다. 자신도 언제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니까.

“융중산으로 가자. 진 의원님이 이쪽에서는 최고니까.”

진 의원은 다른 곳에 가지 않는다. 치료를 받으려면 진 의원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진 의원님은..”

온미령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괴의 진부는 마음이 동해야 치료를 한다. 특이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병이나 증상에 집착한다는 소리다. 그런 병은 치료비를 받지 않고도 치료한다.

그러면 그렇지 않을 경우는? 간단하다. 그의 마음이 동할 정도의 금액을 제시하면 된다. 괴의 진부를 찾아올 정도의 고수라면 대부분은 돈은 넉넉한 사람들이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치료만 해주십사 하는 사람들.

진부는 그런 자들에게서 돈을 받아서 자신이 원하는 연구도 하고, 귀한 약초나 물품도 구한다.

“가자. 내가 어떻게든 치료를 받게 할 터이니.”

진혁은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일단 이 사람들을 옮기려면 마차가 필요했다. 그것도 두 대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마차부터 구해야겠다. 규림이는 나를 따라오고. 미령이는 떠날 채비를 하거라.”

진혁은 어떤 놈인지 걸리기만 하면 박살을 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확인만 돼 봐라. 바로 철각패도로.. 아.. 철각패도는 돈황에 있지?’

아무튼 어떤 놈들이 벌인 일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밝혀지기만 하면 당한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고통을 안겨줄 테니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급한 건 다친 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고. 진혁은 막내 안규림과 함께 밖으로 뛰어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