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7 / 0150 ----------------------------------------------
돌아왔는데 뭐가 이래?
철각패도는 자신을 향해서 절을 하는 병사들을 쳐다보면서 토번왕에게로 향했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나를 부처로 생각한다는 게냐?”
“그렇습니다. 예언 같은 것이 있었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부처라니. 솔직하게 말해서 철각패도의 비주얼이 부처와는 거리가 좀 있지 않은가. 아니. 좀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있다.
그냥 딱 보면 도적이나 흉악범을 떠올리게 되는 얼굴이다. 거기다가 어마어마한 거구였고. 어딜 봐도 부처로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사천왕이라고 하면 모를까.”
철각패도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온갖 말들이 생겨난 거겠지. 어려운 때일수록 뭐라도 의지하고 싶어 하니까.
그중 하나가 부처의 환생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할 거라는 예언이었다. 아주 영험한 무당이 한 얘기라는 데, 사람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고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저들이 왜 나를 부처라고 알고 있는 겐가?”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은 그쪽에는 발을 디딘 적도 없는데. 그런데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알려지게 한 주범은 토번왕이었다.
토번왕은 계속해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검을 내려준 그분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녔다.
‘섭혼술을 너무 과하게 썼나?’
토번왕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철각패도에게 제압당한 상태. 무조건 철각패도를 떠받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토번왕은 자신을 신의 사자로 알려지길 원했다. 그래야 사람들의 숭상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세력을 키우는 데 유리할 테니까.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허허.. 이거 참..”
몇 가지 일이 겹쳐서 철각패도는 부처의 환생이 되었다. 뭐 그거야 상관없다.
‘남들이 부처로 알든 신으로 알든 문제 될 거 없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그건 문제가 된다.
“뭐라? 그러니까 나보고 저들에게 설교 같은 걸 해라?”
“그냥 몇 마디 말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들이 감복할 겁니다.”
“네가 제대로 미쳤구나.”
철각패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친놈이다. 나보고 사기를 치라는 거 아닌가. 철각패도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믿음이 어쩌고 구원이 어쩌고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낯뜨겁고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그런 거 못 한다.
하지만 토번왕은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이러면 엄청나게 두들겨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달라붙었다. 철각패도는 의아한 눈으로 토번왕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사실은.. 전투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괴물을 상대로는 승승장구했다. 신의 사자라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도 많이 따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지역을 다스리는 나라에서 견제하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경계만 하는 정도였는데, 토번왕의 세력이 미친 듯이 불어나자 토벌에 나섰다는 거였다. 반역을 꾀했다는 핑계로.
“설마하니 군대가 공격을 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괴물만 물리치고 다니니 그런 자신을 군대가 공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거였다. 이런 멍청한 놈. 권력자들이 이렇게 갑자기 세력이 커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철각패도는 혀를 찼다. 이렇게 멍청한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섭혼술의 부작용이 조금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갑작스러운 공격. 게다가 괴물을 상대할 때와 군대를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괴물과의 전투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군대와의 전투도 비슷하게 하다가 크게 패한 거였다.
문제는 토번왕의 군대는 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토번왕은 신의 사자이고 그의 군대는 신의 군대이니까. 그래서 토번왕은 변명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패한 걸 전부 나를 제대로 떠받들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 거로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안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일구어 놓은 걸 모두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실제로 소문도 돌았다고 했다. 토번왕은 신의 사자가 아니라는 소문이. 뻔한 이야기였다. 그쪽 권력자들이 퍼트린 거겠지.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전력도 재정비하고 분위기도 바꾸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거란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면서 철각패도에 관한 말이 점점 더 커졌다. 눈 덩어리가 커지듯이.
‘칼만 아니었으면 그런 말이 먹히지 않았을 건데..’
칼이 문제였다. 마나를 머금고 있는 검과 그렇지 않은 검은 겉보기에는 똑같다. 하지만 실제로 괴물을 상대할 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병사들은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이다.
당연히 무언가 신비로운 힘이 있는 거다. 그래서 토번왕의 말이 먹혔고, 무당의 예언이 이루어진 거라고 병사들이 생각한 거였다.
병사들은 부처의 영험한 기운이 검에 서려 있어 괴물을 벨 수 있는 거라고 믿었다. 병사들은 철각패도가 준 검을 척사검이라고 불렀다.
검에도 그런 효과가 있는 것처럼, 철각패도의 가호를 받으면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사정은 알겠지만, 내가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구라를 치든 상관하지 않을 거다. 부처라고 하든 신이라고 하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설교 같은 걸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대인. 수많은 백성들이 폭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토번왕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면서 말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지만 그거야 토번왕의 사정이다. 설령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게 잘 될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거절했다.
“내 대답은 전과 같다.”
그리 말하고 철각패도는 문을 열고 나왔다.
“카르마파시여!”
“카르마파시여!”
병사들이 철각패도를 보자 일제히 그 자리에 엎드렸다. 정말 신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 하지만 철각패도는 무시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병사들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로부터 6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로부터 4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로부터 7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로부터 4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로부터 5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로부터 5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가 마구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1점씩 들어왔는데, 갑자기 점수가 팍 뛰었다.
‘대상이 나라는 게 명확해져서 그러는 건가?’
재물을 나누어 주었을 때도 그랬다. 누군지 알지 못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으면 1점씩 들어왔다.
‘가만. 토번왕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 포인트가 늘어날까?’
1점씩 들어오던 게 훨씬 더 많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사이비 교주가 된 것 같잖아?’
아무렴 어떠냐. 포인트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장땡이지. 철각패도는 다시 토번왕이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토번왕은 아직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느냐.”
“예?”
토번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뭘 그렇게 봐? 그냥 하는 것보다는 약을 좀 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서 연기 좀 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지 마라.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고,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
철각패도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다. 내 병사들 앞에서 말을 하지는 않겠다. 대신!”
토번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걸 보여주마.”
철각패도는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병사들이 다시 엎드리며 절을 했다.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바위벽을 쳐다보았다.
“흐아아아압!!”
- 콰아아아앙!!
우렁찬 기합과 함께 손을 뻗었고,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폭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위벽에 커다란 손자국이 나 있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손자국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철각패도를 보았다.
그들은 입을 떡 벌리고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철각패도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이적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아. 미치겠다. 이런 상황 딱 질색인데..’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이 느껴졌다. 병사들의 시선에서 그런 게 보였다. 철각패도는 곧바로 몸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카르마파께서 약속의 징표를 남겨주셨다!”
토번왕이 밖으로 나와 외쳤다.
“오오. 카르마파시여!”
“오오. 카르마파시여!”
병사들은 바위벽에 새겨진 손자국을 향해서 절을 올렸다. 경건한 자세로 정성껏 절을 했다.
그날 이후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내용은 이랬다. 부처의 화신이 세상에 나타나 약속의 징표를 남겼다. 그 징표를 보면서 정성껏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다.
***
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서 한동안은 돈황에 가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대신 상단 사람들에게 상당히 시달렸다. 어떻게든 진혁을 스카웃하기 위해서 두 상단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거였다.
“죄송합니다. 일단은 사문에 돌아간 후에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진혁은 사문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인 핑계였으니까. 진혁의 정중한 거절에도 두 상단은 끈질겼다.
“사문에도 따로 사례하겠네. 조건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말이야.”
진원휘 영감은 아예 매일같이 진혁을 찾아와서 공을 들였다. 조사단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게 분명했다.
미노타우르스를 잡을 때 진혁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말도 들었을 거고, 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집요하게 달라붙는 거겠지.
하지만 계속해서 정중히, 아주 정중히 거절했다. 여러 핑계를 대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뻥도 치면 는다는 사실을.
전에는 뻥을 칠 때는 다소 꺼림칙한 게 있었는데, 이제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기문둔갑 같은 황당한 말을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어지간한 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이곳 사람이었으면 당연히 받아들였을 거다. 조건이 정말 좋았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여기를 떠나야 할 사람.
그런 조건 같은 건 진혁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면 장안에 도착하면 바로 사문으로 갈 건가?”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진원휘는 못내 아쉬워했다. 현천문이 있는 사협 근처까지 따라갈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일이 있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그날 이후로는 조용한 편이라 다행이군 그래.”
“이제 천수도 지났으니 특별한 일은 없을 겁니다. 어르신.”
몬스터가 눈 돌아간 그 날 이후로는 정말 평온했다. 습격도 거의 없었고,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생기지 않았고.
게다가 천수를 지났으니 이제는 조금 안심해도 될 듯했다. 진혁은 천수에세 중급 마나 스톤을 녹일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포기했다.
대신 장안에 도착하면 곧바로 작업할 생각이었다. 중간에 사람을 나가라고 하는 등의 약간 번거로움이 있긴 하겠지만, 돈은 그런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
예상한 대로 장안까지는 별 탈 없이 도착했다. 두 상단은 원보 상단과 계약을 맺었고, 미노타우르스 머리 가격을 치렀다. 정확한 금액은 듣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을 거다.
서예주는 무사들에게 약속한 대로 임금 외에도 돈을 나누어주었다. 미노타우르스 머리를 판 금액 중 일부를 준 거였는데, 그 금액이 임금의 몇 배나 되었다.
“자네도 같이 일했으면 좋겠는데..”
왕칠이 못내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왕칠은 가족을 모두 장안으로 데리고 올 거라고 했다. 이제는 굶지 않고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서 무척이나 기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일단 사문에 들려서..”
“어? 자네 하군 아닌가. 현천문의..”
누군가 진혁을 알아보는 듯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협 표국 일을 할 때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큰일이 났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현천문 말이야. 큰일 났어!”
“예? 무슨 일이..”
“현천문 아예 망하게 생겼다니까? 사람들도 대부분 크게 다쳤어.”
“예?”
진혁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