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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 자꾸 생기네요.
진혁은 왕칠을 뿌리치려 했지만, 왕칠은 진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무조건 같이 가자고만 했다. 진혁은 왕칠의 어깨를 거칠게 잡으면서 말했다.
“아저씨! 잘 들어요.”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비전이 있으니까 걱정 말고 먼저 가요. 준비되면 터트리라고 하고.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왕칠을 밀어버렸다. 저 멀리 나동그라지는 왕칠. 진혁은 괴물이 오는 쪽을 향해서 몸을 돌리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으아아앗!!”
아까보다는 현저하게 줄어든 빛의 덩어리가 날아갔다.
- 콰아아앙!!
괴물들의 한 무더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소리만 들으면 땅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일 법했는데, 땅에는 약간의 흔적만 있었다.
물리적인 공격이라기보다는 마나에 충격을 가하는 일종의 마법 공격 같은 느낌이었다.
“흐으.. 시간을 조금 벌긴 했는데..”
이제는 남은 마나가 거의 없었다. 진혁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무너뜨리기 바라면서.
뒤를 슬쩍 보니 무사 둘이 왕칠을 질질 끌고 가는 게 보였다. 왕칠은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걸로 보아 진혁의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하여간 쓰잘데기없이 정은 많아가지고..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빨리 터트리지.”
터트리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런데 폭발음은 들리지 않고 괴물이 달려오는 소리가 또 들렸다. 하아. 징그러운 놈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놈들이 이러지는 않았을 거다 이 정도 엄청난 공격을 받으면 놀라서라도 다른 곳으로 피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나 파동에 몬스터들이 미쳐있었다. 눈이 시뻘게져서는 오로지 진원지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만 했다.
‘당신들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정말 지금까지 당신들 키운 게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나 아니었으면 다 죽은 목숨이었다고.’
진혁은 멈춰 서서는 다시 검을 치켜세웠다.
‘그래. 이러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지. 그럼. 이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법이야.’
진혁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자꾸만 구차한 생각을 떠올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그냥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슬쩍 절벽 위를 쳐다보았다. 동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진혁은 슬그머니 웃고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모았다. 정말 쥐꼬리만큼 남은 마나를 쥐어짜서 앞으로 내질렀다.
- 콰앙!
작은 폭음이 들렸다. 몬스터 십여 마리가 터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폭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 퍼어어엉!!
- 콰아앙!!
폭약이 일제히 터지고 쿠르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절벽이 무너지며 바위와 흙이 쏟아지는 소리. 진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몬스터들이 진혁의 몸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바위와 흙이 진혁의 몸을 뒤덮었다. 진혁뿐 아니라 절벽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진혁은 그렇게 웃으면서 죽었다. 그리고 팔찌에 있는 숫자가 7에서 6으로 바뀌었다.
***
“하 표사. 어디 있어?! 어?”
왕칠이 실성한 사람처럼 바윗덩이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왕칠을 쳐다보았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아니까.
“인제 그만해.”
목세강이 왕칠의 어깨를 잡았다.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고. 사문의 비전이 있다고 했단 말이야!”
“하루가 지났어. 그랬으면 벌써 나타났겠지.”
그렇게 말하는 목세강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거기를 내려가서는..”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했다. 조사단 전체의 분위기가 침울했고, 상단 사람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조의를 표했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돌기는 했다. 사실 폭약을 터트리기 전에 엄청난 수의 괴물이 지나갈 뻔했다. 그런데 진혁이 내려가더니 폭음이 들리고 괴물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 친구가 뭔가 했겠지. 판단력 하나는 정확한 친구였으니까.”
한천위가 허망한 듯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소식을 전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고 계속해서 자책했다. 자신이 남아 있었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었을 거라면서.
조사단은 이미 하루 내내 이곳을 뒤졌다. 서예주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돌을 나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진혁의 모습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괴물들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서예주의 질문에 홍 무관이 대답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답니다.”
괴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어제의 일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너진 절벽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봉분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돌로 된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짧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자. 이곳에 잠들다.
다들 착잡한 표정으로 봉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시각, 진혁은 폭발의 진원지 근처로 움직이고 있었다. 육체가 아닌 영혼 상태로. 눈앞에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 되살아나시겠습니까?
그렇다고 생각만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령 상태가 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처음에는 정말 황당했는데..’
죽게 되면 육체가 사라지고 영혼 상태가 된다. 되살아나겠다고 하면? 죽은 근처에서 되살아난다. 죽기 전에 입었던 상처는 말끔하게 나은 상태로.
그리고 팔찌에 있는 숫자가 하나 줄어든다. 처음에는 9였는데, 지금은 6. 아직 여섯 번은 여분의 목숨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영혼 상태가 되면 좋은 점도 있지.’
벽이 있어도 지나갈 수 있고, 어떤 생명체도 알아채지 못했다. 영혼 상태인 진혁 역시 어떤 물리적인 힘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냥 볼 수만 있을 뿐.
그래서 폭발의 진원지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러 가고 있었다. 문제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거였다. 사람이 걸어가는 속도? 그 이상은 낼 수가 없었다.
‘아오.. 답답해 미치겠네.’
하루 종일 왔는데도 얼마 오질 못했다. 이러다가는 진원지까지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여기까지 온게 아까워서 계속 가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가 모여 있는 곳도 보았다.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어려웠지만, 한데 모여 살기는 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파동이 일어난 진원지였다. 그런데.
‘어? 이거 왜 안 움직여?’
갑자기 누군가가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해서 뒤로 움직여 보았다. 뒤로는 아무런 이상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앞으로 가려고 하면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갈 수가 없었다. 진원지로 추정되는 곳은 저 멀리에 있었다. 워낙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쪽에서 괴물들이 몇 마리 나타났다. 오크의 무리였는데, 놈들은 어리둥절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미노타우르스의 냄새를 맡았는지 혼비백산해서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꼭 저기를 통해서 괴물들이 나오는 것 같잖아?’
일종의 포탈?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살펴볼 수가 없어서 확실할 수는 없었다.
‘하이.. 이거 분명히 뭔가 있어. 정말 기회가 되면 확인을 해봐야겠는데?’
진혁은 잠시 앞으로 가려고 시도를 해보다 되살아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갈 수도 없으니 여기 있어봤자 알아낼 것 없었으니까.
되살겠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시야가 죽었던 곳으로 옮겨졌다. 절벽이 무너진 곳. 진혁은 사람들이 몇 명 모여있는 걸 보았다.
‘뭐야? 사람들이 왜 모여있지? 이거 좀 떨어진 곳에서 살아나야겠는데?’
일정한 범위 안에서 되살아날 장소도 정할 수 있다. 진혁은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을 마음속으로 정했고, 곧바로 그 장소에서 되살아났다.
되살아나는 것도 몸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벌써 그 장소에 있었다.
‘가만. 너무 멀쩡하면 이상하니까..’
약간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진혁이 되살아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몸을 바꾸면 그 순간은 피할 수 있다. 철각패도는 돈황에 있으니까.
문제는 다시 진혁 몸으로 돌아오면 같은 위치에 나타난다는 거다. 바윗덩어리에 깔린 채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죽는 걸 선택한 거였다.
‘흙 좀 묻히고 상처도 좀 내고.’
준비를 마친 진혁은 몸을 드러냈다. 약간 절뚝거리면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하아.. 또 쑈를 해야겠구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진혁은 자신을 알아보고 놀라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내지르고는 진혁을 향해 달려왔다.
눈물을 흘리고 진혁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가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진혁은 사람들에게 질문 공세를 받으며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본대로 돌아오니 더 많은 사람들이 진혁에게 몰려들었다. 엄청난 질문이 쏟아졌지만, 진혁은 미리 준비한 대답을 하며 빠져나갔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비기가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비전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진혁은 사문의 비전이라는 핑계를 댔다. 무림에서 비전은 만능키나 마찬가지다. 비전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꼬치꼬치 물어볼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약간의 양념을 더 쳐야 했다. 절벽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진혁이 살아난 것을 모두 반기면서도 다소 의아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술법이라는 카드였다.
“이게 기문둔갑 계열의 술법이라서..”
“호오.. 그래?”
무공이라고 하면 절대로 믿지 않을 거다. 세상에 절벽이 무너져서 바윗덩어리와 흙더미가 쏟아지는 데 살아남을 수 있는 무공은 없으니까.
하지만 술법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도술 같은 걸 믿었다. 뱀이나 여우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사람이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도 믿었다.
뭐. 믿지 않는 사람도 있긴 했다. 어디나 100%라는 건 없는 거니까. 하지만 진혁의 변명은 잘 먹혔다. 그리고 안 믿으면 어쩔 건데? 그냥 밀어붙였다.
‘하기야 저런 괴물들도 있는데 술법이라고 믿지 못할 건 없지.’
조사단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상단 사람들까지 전부 진혁을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다들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절벽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걸 보았다. 만약 괴물들이 통로를 빠져나왔으면 전부 죽은 목숨이었다. 그리고 그걸 막아낸 진혁.
다소 의문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가 큰일을 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원보 상단의 무사들이 그의 평소 행실을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었다.
그래서 진혁은 세상에 다시 없을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며, 타인을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도 생각지 않는 대협 중의 대협으로 불리게 되었다.
***
철각패도가 오랜만에 지부에 나타났더니 지부장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관해 보고했다.
“나를 찾는다고?”
“예. 장로님. 토번왕이 꼭 만나 뵙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요. 헤헤..”
검은 차질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토번왕은 그걸 가지고 괴물들을 처리하면서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나가고 있었고.
“무슨 일인지는 밝히지 않았더냐?”
“그건 직접 뵙고 말씀을 올러야 한다고 해서..”
지부장은 눈치를 보면서 쩔쩔맸다. 철각패도가 얼마나 괴팍하고 무시무시한 인간인지 옆에서 보아왔으니까.
꼬투리 잡히면 뼈도 못 추린다. 4대 상단의 사람들이나 검은 형제단이 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 토번왕은 어디 있다고 하더냐?”
“본거지에 와 있다고 합니다.”
“그래?”
이상했다. 남쪽으로 내려가 한창 세력을 넓히고 있었으니,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 보급 문제라면 수하를 시켜도 될 일. 게다가 그런 문제라면 철각패도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포인트 몰아주는 중요한 놈이니 가서 보기는 봐야겠는데..’
철각패도는 알았다고 하고는 시간을 따져보았다. 바위 지대에 있는 본거지라면 가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는 바로 토번왕의 본거지로 향했다.
바위 지대의 본거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철각패도가 도착하자마자 그를 본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카르마파!”
뭐야? 얘네들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