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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자란다.
원래는 두 번째로 하수오를 복용하고 난 다음 날 미노타우르스와 인사를 시키려고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근처에서 오크들이 얼쩡거려서 그걸 정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다시 하수오를 발견했다. 다른 영물은 없는 걸로 보아 이 지역에서는 주로 하수오가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걸 또 복용하고 나자 다들 내공이 늘었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5년 정도였고, 내공이 거의 10년 가까이 늘어난 무사도 있었다.
‘약간 으쓱하는 기분?’
이제는 자신들도 제법 고수가 되었다는 착각? 그런 기분이 조금 든 듯했다. 걸어 다닐 때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눈에도 힘을 잔뜩 주고 다녔다.
무협영화 보고 나온 직후의 남자들 같은 모습.
‘난생처음으로 겪은 일이니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착각은 밸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혁은 지금이야 말로 미노타우르스를 보여 줄 때라고 판단했다.
“이거 가다가 또 뭐 나오는 거 아닌가?”
“이번에는 산삼 같은 거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다들 희희낙락하면서 이동했다. 이제는 놀이나 오크나 뭐가 나와도 자신 있다는 듯이. 한천위마저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 근처에는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한 무사가 우리가 온 줄 알고 다 도망간 것 같다며 웃었다. 지금 약간 긴장하고 있는 건 단 한 명. 진혁 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어.’
자신이 실력을 전부 드러내면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미노타우르스에게 데려온 의미가 하나도 없다.
위태로운 상황이 되면 나서서 막기는 하겠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조금 위험할 수는 있지만, 한 마리이니 어떻게든 할 수는 있을 듯했다.
진혁은 그들을 점점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무사들은 점점 깊은 곳으로 가는 데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영약이 있을지 모른다며 좋았다. 하지만.
“쿠우우어엉!!”
우측 뒤쪽에서 난 엄청난 소리가 폭풍처럼 별동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소리. 무사들은 그 자리에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크워어어어어어엉!!”
굵직한 저음에 무사들의 몸 전체가 덜덜덜 떨렸다. 온몸의 털이 전부 직립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분명히 소리만 났는데 무사들은 쾅하고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저.. 저거..”
간신히 고개를 돌린 무사 한 명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다른 무사들은 쉽사리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공포. 두려움. 그런 단순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칠 듯한 감정에 온몸이 지배당했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심장은 헐떡거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컥컥대는 사람도 있었다.
“정신 차려!!”
한천위의 일갈이 아니었다면 미노타우르스가 올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으아아아악!!”
“저.. 저게 뭐야? 괴..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본 무사들은 손발을 덜덜 떨었다.
거대한 몸집에 무지막지한 도끼를 든 괴물. 키가 무사 둘을 세운 것보다도 더 큰 미노타우르스의 압도적인 모습에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허둥거렸다.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뒷걸음질 치는 무사들을 향해서 진혁이 소리쳤다.
“다들 도망쳐. 저 밑으로!!”
이건 뭘 해보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아예 움직이지조차 못하니 내버려 두면 떼죽음만 당한다. 진혁은 사람들의 등판을 강하게 때리면서 계속 외쳤다.
“빨리 움직여! 아래쪽으로! 어서!!”
그제야 무사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뒤를 돌아다보지도 못했다.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거대한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만 들려도 몸을 부르르 떨면서.
“쯧. 아직은 무리인가?”
이래서는 훈련이고 뭐고 할 수가 없다. 하기야 자신들과 비슷한 크기의 괴물만 보다가 4미터가 넘는 놈을 보았으니 압도당할 만도 했다.
진혁은 검을 들고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달려갔다. 일단은 녀석이 동료들을 덮치는 걸 막아야 했으니까. 별동대는 모두 아래쪽으로 피하고 있어서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지 못했다.
간혹 뒤를 돌아다 보는 무사도 있었지만, 그저 괴물이 쫓아오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생각했다.
다들 미쳐 있었다. 머리는 산발에 신발 한 짝을 잊어먹는 사람도 있었다. 땀 범벅에 숨을 헉헉 몰아쉬는 정신이 나간 사람들. 그들은 괴물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듣고는 그 자리에 모두 쓰러졌다.
진혁이 미노타우르스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고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단체로 실어증에 걸린 듯했다.
아니. 충격이 크다는 건 알지만, 또 이렇게 의기소침해지면 좀 그렇잖아? 이 아저씨들 너무 나약한데?
진혁이 입을 열었다.
“알유라는 놈인 것 같습니다. 구파일방의 장로도 상대하기 어렵다고 들은 것 같군요.”
하지만 별동대 무사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변변히 상대도 못 하고 도망만 쳤다. 어깨가 다들 축 늘어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 힘이 잔뜩 들어갔던 그 어깨가.
무사들은 자책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러면서 그렇게 잘난 척을 했다니. 패배자의 분위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아니. 다들 자신이 구파일방의 장로급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진혁은 사람들에게 힘주어 이야기했다.
“도망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놈은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느냐. 그냥 당연한 일이 벌어진 것뿐이다. 갈저나 당강을 보고 도망쳤으면 웃음거리가 되었겠지만, 저 괴물은 도망치는 게 당연한 거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니까요. 아까 보았던 그런 괴물에게 무작정 달려든다거나 하는 그런 행동!”
그런 사람은 개죽음당한다고 이야기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다들 적어도 한두 번은 있었다. 무사들은 고개를 들고 진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려워만 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습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오늘을 향해서 함께 달려오지 않았나요?”
진혁은 강조했다.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아니.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무사들은 하나둘 떠올렸다. 그동안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다. 고생스럽고 참혹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견디고 이곳까지 왔다.
“다들 일어나세요.”
몇 사람은 벌떡 일어났다. 몇 명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패잔병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일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짊어지고 있던 공포와 무기력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일어서 있다는 것을.
***
그날도 무사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걸 경험했다.
“이봐. 아까 당강하고 싸울 때 말이야.”
“어? 자네도 혹시?”
“그래. 뭔가 좀 싱겁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 느꼈지?”
무사들은 당강을 상대하는 게 너무 손쉬웠다고 말했다. 다들 신기하다며 중얼거렸다.
‘미노타우르스를 봤으니 오크 따위는 우습게 보인 거지.’
게다가 정신적인 충격도 극복했다. 나름대로 성장을 한 거였다.
‘뭐. 실력이 좋아졌다기보다는 멘탈이 단단해졌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만.’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깨달아 나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하나하나 일러주면서 가르쳐줄 수는 없다.
“자. 어서 이동하자고.”
무사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움직였다. 전투를 마친 후 무사들의 표정이 확실히 밝아졌다. 오크를 상대하고는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그렇게 몇 차례 놀이나 오크와의 전투를 치르자 무사들은 완전히 예전의 기세를 회복했다. 그리고 늘어난 자신의 내공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보급을 받기 위해서 본대에 들렀을 때 나타났다.
- 삐이익~
보급품을 챙기던 진혁과 몇 명의 무사는 호각 소리에 밖으로 뛰어 나갔다. 당강의 습격이었다.
“하압!!”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당강의 팔이 잘렸다.
“크와아아악!”
왕칠은 요란한 소리를 지르는 당강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당강의 몸을 관통하는 검.
왕칠은 발로 당강의 몸을 차면서 검을 빼냈다. 그리고 다른 적을 찾아 움직였다. 이전보다 한층 나아진 모습. 그건 함께 온 다른 별동대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들에게 오크 정도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너무나도 손쉽게 오크를 쓰러뜨리는 모습에 다른 상단의 무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제가 말씀드린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실력을 숨긴 겁니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군.”
호위단장의 말에 진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이 아니라 누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 지금까지는 실력을 숨겼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상식적이었으니까.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무공이 갑자기 확 늘었다고 누가 생각하겠나. 상단의 무사들은 조사단 무사들을 부러워했다.
무인들은 강한 자를 동경한다. 조사단의 무사들, 그들이 남로무사단이라고 부르는 무인들을 동경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왕칠을 비롯한 별동대 무사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어허허.. 이거 기분이 좀 이상한데?”
“그러니까. 자꾸 쳐다보니까 이거 참..”
진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깨 펴고, 가슴 쭉 내밀고. 당당하게 행동하세요. 남로무사단 아닙니까. 괴물을 짚단처럼 베어 넘기는 남로무사단.”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왕칠과 무사들이었지만, 보급품을 가지고 떠날 때에는 정말 당당하게 걸었다. 상단 무사들의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사들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말을 꺼냈다.
“저기. 그 알유라는 괴물 말이야..”
“어휴.. 그 괴물은 왜?”
알유라는 말에 다들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가 그거 혹시 잡을 수 없을까?”
“뭐? 그 괴물을?”
다들 손을 내젓는데 이야기를 꺼낸 무사는 말을 계속했다. 아까 보급을 받으러 같이 내려갔다 온 무사였다.
‘원삼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무사였는데,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무사 중 한 명.
“잘 생각해보니까 잡을 수 도 있지 않을까 해서..”
“에이. 야. 우리가 그 괴물을 어떻게 잡아?”
진혁은 그 무사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맞붙으면야 그렇겠지만, 생각해보니까 그놈은 혼자였잖아. 한 마리만 떨어져서 다니면 방법이 있지 않겠어?”
무사의 말에 동료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가만. 한 마리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그래. 덫을 만들어도 되고.”
무사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헛소리라며 들은 척도 안 하던 무사들이 자세를 잡고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조언을 좀 해줄까?’
진혁은 고민하다 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도전을 해보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미노타우르스는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니까.
하지만 무사들은 한 번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진혁도 당연히 동참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미노타우르스 사냥이 시작되었다.
무사들은 각종 덫과 장비를 만들고 준비를 했다. 진혁이 보기에는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실패는 즐겁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걸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사람들은 미노타우르스를 만났다.
“도망쳐!!”
미노타우르스의 괴력은 무사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무사들의 표정은 전과는 달랐다.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아쉬움이 가득했다.
진혁은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조금 더 성장했다는 걸. 그걸로 족했다. 조금씩만 더 나아지면 되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