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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자란다.
진혁은 일행을 이끌고 평소보다 조금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처음에는 본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동료들이 걱정했다. 본대가 가는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다. 거기서 멀어진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진다는 뜻.
“확실하게 조사를 해 놓는 편이 좋습니다. 저번 같은 습격을 받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진혁의 말에 동료들이 수긍했다. 당강의 습격을 받아서 큰 낭패를 볼뻔하지 않았나. 다행히 죽은 사람 없이 막아냈지만, 잘못하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좀 더 조사 범위를 넓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진혁이 이렇게 자꾸만 멀리 끌고 가는 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이 사람들을 제대로 굴리려면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지역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런데 데리고 갈 방법이 만만치 않았다.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지역은 가장 안쪽이라고 보면 된다. 조사단이 가는 길은 가장 바깥쪽이고.
외곽에 있는 놀이 가장 약한 몬스터이니 그쪽으로 길을 뚫은 건 당연한 일. 그러니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위험한 안쪽 지역까지 가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어쭙잖은 이유는 통하지 않을 거다. 너무나도 위험한 지역이니까. 그래서 습격을 받은 걸 핑계로 점차 안으로 이동한 거였다.
‘게다가 지금 바로 미노타우르스와 붙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미노타우르스는 철각패도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과 붙인다? 보자마자 다들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그만큼 미노타우르스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다. 오크나 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마물.
그래서 생각한 게 영약이다. 이들이 지금 부족한 건 내공이었으니까 영약을 통해서 내공을 좀 높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디 보자... 저쪽에 마나가 좀 많이 모여 있는데...’
진혁은 계속해서 마나를 감지하면서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방향은 영약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영약이 있는 데를 어떻게 아느냐. 그건 진혁이 마나를 잘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영물은 자연의 기운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지. 그래서 영물이 있는 곳은 다른 곳보다 기운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가 많아.’
그러면 영물은 모든 기운을 다 빨아들이느냐. 그건 아니다. 영물마다 속성이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기운만 흡수한다.
음의 속성인 영물은 음의 기운만 흡수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연스럽게 주변에 양의 기운이 넘치게 되지. 양의 속성인 영물은 그 반대로 주변에 음의 기운이 많을 테고.’
그래서 그 남는 기운을 흡수하려는 영물이 하나 더 자리 잡기도 한다.
무림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면 그런 얘기가 많다. 어떤 영물을 발견했는데, 그 주변에 다른 속성을 가진 영물이 치키고 있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
‘만년설삼을 발견했는데, 근처에 양의 속성을 가진 이무기가 지키고 있더라는 식이지.’
저런 경우 설삼이 자연의 기운을 끌어당기고 그중 음의 기운만 흡수한 케이스다. 그럼 주변에는 양의 기운이 넘치게 되고, 그 기운이 필요한 이무기가 자리 잡은 경우.
이무기는 설삼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설삼을 캐려는 자들을 공격하는 거다.
그렇다면 마나는 어떨까?
‘마나도 자연의 기운 중 하나.’
이곳에 있는 기운은 아니지만, 마나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래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영물 대부분은 마나를 흡수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모여있는 장소. 그곳에 영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진혁은 마나를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다.
“잠깐 쉬었다가 갈까요?”
“그러지. 자. 이곳에서 쉴 테니까 주변 경계하고 뭐 있는지도 좀 살피고..”
무사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쉴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소리를 냈다.
“어? 이거.. 하수오 같은데?”
주변을 살피다가 우연히 하수오를 발견한 거였다. 진혁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수오 맞네요. 그것도 한 백 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요?”
“백년하수오?”
무사들이 모두 놀랐다. 하수오는 약재로 쓰이는 식물인데, 오래 묵은 하수오는 내공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백년하수오가 틀림없으면 내공이 몇 년은 늘 수 있다. 잘하면 십 년 정도의 효능을 볼 수 있으니 영약이라고 부를 만했다.
무사들은 재빨리 주변을 뒤졌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하수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어.. 이런 일이..”
“그러게 말이야. 나는 이런 거 처음 봐.”
그저 하급 무사나 낭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영약이라는 걸 구경이나 해봤을 리가 없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걸 먹으면 내공이 늘어난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먹는지, 먹고 나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그런 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다른 약재와 함께 달여서 환을 만들면 좋겠지만, 그런 수는 없고..”
진혁이 중얼거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진혁에게로 향했다.
“마.. 맞다. 하 표사는 이.. 이거 어떻게 먹는 건지 알지?”
“예. 저도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책에서 봤습니다.”
사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하수오에 있는 기운을 그대로 몸 안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냥 생으로 먹고서 운기를 통해 기운을 흡수하면 된다.
다만 기운을 흡수하기 좋게 좀 손을 볼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좋을 만큼의 양을 먹는 것도 중요했고.
“제가 손을 좀 볼까요? 양은 넉넉할 것 같은데 번갈아 가면서 먹고 운기를 하죠?”
진혁의 제안에 무사들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그러고 싶었다. 영약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공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늘 수 있으면, 그럴 수만 있다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러면 일단 반씩 나누죠? 먼저 먹고 운기를 하는 동안 나머지가 호법을 서고, 그 후에는 반대로 하고요.”
“좋아. 그렇게 하지.”
무사들은 두 무리로 나뉘었고, 선후를 정했다. 대표가 나와서 충권으로 선후를 가렸는데, 적을 상대할 때보다도 긴장한 듯 보였다.
충권은 가위바위보랑 비슷한 것이었는데, 결과가 나뉘자 무사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긴 쪽은 환호했고, 진 쪽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다들 조금이라도 빨리 영약이란 걸 먹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준비를 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진혁이 준비를 하는 동안 무사들은 운기를 할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운기 도중에 습격이라도 받으면 큰일이다. 그래서 주변에 괴물이 없는지 자세히 살핀 거였다.
괴물은 없다. 이미 진혁이 살펴본 후였다. 하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영약을 먹게 되어 흥분한 상태이니 약간 긴장해서 그걸 완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진혁은 잘 손질한 하수오를 무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무사들은 긴장을 한 채 심호흡만 계속 했다.
“그러니까 이걸 삼키고 천천히 운기를 하면 된다 이거지?”
“예. 하수오가 뱃속에 들어가면 약간 배가 더워지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때부터 운기를 하면 됩니다.”
각자의 내공 심법이 다르니 뭐라고 이야기를 해 줄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이들이 흔한 내공 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거였다.
시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삼재 심법 같은 것들이다. 이런 심법의 특징은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무척 안정적이다.
그러니 운공을 하다가 문제가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효율이 떨어져서 내공이 많이 늘지는 않을 거다.
무사들이 하나둘 하수오를 삼켰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천천히 시간이 흘렀다.
‘잘들 하고 있네.’
지루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호법을 서는 일은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다. 하지만 무사들은 집중해서 운기를 하는 자들을 살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듯이.
하지만 영약이라고 말하기도 약간 어색한 백년하수오를 먹고 엄청난 일이 생길 리가 없다. 공중으로 떠오르지도 않고, 오색 창연한 빛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무사들은 집중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쉽사리 물어보지도 못했다. 운기를 하는 다른 무사들이 있었으니까.
“어땠어? 뭔가 느껴져? 어?”
“그냥 좀 몸이 따뜻해진 거? 그리고 약간 간질간질하던데?”
“나는 좀 답답하더라고. 뭔가 불편하고 막힌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무사까지 운기를 마치자 갑자기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몇 명은 진혁이나 한천위를 붙잡고 잘못된 건 아닌지 묻기도 했다.
“다 정상입니다. 평소보다 많은 기운이 혈도를 타고 지나가면 열이 발생하고 간지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거다. 작은 구멍으로 많은 기운이 지나가려니 답답함을 느끼는 거다. 진혁이 설명하자 무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보니 평소보다 내공이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3~4년 정도 늘었다. 다음 차례의 무사들도 비슷했다.
시간이 늦어 곧바로 야영 준비를 했는데, 무사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처음 먹어 본 영약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뜨뜻한 게 스윽스윽 지나가는 느낌이 말이야..”
“내공이 움직이는 게 평소하고는 확실하게 다르더라니까?”
진혁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소풍 전날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뜨고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아이들. 진혁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별동대는 며칠 후에도 하수오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진혁이 이끄는 곳으로 가다가 발견한 거였다.
“그런데 하 표사는 정말 먹지 않아도 돼?”
“저는 먹어도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무사들은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영약을 먹고 내공이 느는데, 진혁만 그걸 못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하수오 발견한 것도 다 하 표사 덕분인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아니 하 표사는 뭘 먹어야 하는 거야? 어? 뭔지 알려주면 우리가 좀 찾아라도 볼게.”
무사들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였다.
“저에게 맞는 게 있겠죠. 나중에 알게 되면 얘기할 테니까 그때 구해 주세요.”
담담하게 웃는 진혁을 보면서 무사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들은 해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은 없었다. 무공도 지도해서 높여줘, 영약도 찾아서 내공도 늘려줘.
“저기.. 꼭 얘기해. 그게 아니더라도 부탁할 거 있으면 꼭. 내가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무사 한 명이 진혁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래. 나 한테도 얘기하라고.”
“나도. 나도. 하 표사 부탁이라면 돌이라도 씹어 먹을 테니까.”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순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떤 사람들은 남의 것을 빼앗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데, 주는 걸 받으면서도 뭘 이리도 미안해하는지.
“아.. 알았어요. 빨리 준비들 하세요. 이거 손질 하고 나면 기운 날아가기 시작하는 거에요.”
뻥이었다. 기운이 날아가 봐야 아주 약간? 하지만 무사들은 화들짝 놀라서 다들 자리를 잡았다.
하여간 착해빠져서는. 그러니까 평생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면서 살지. 이 사람들아 정신 차려.
진혁은 조용히 운기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래. 그렇게 내공을 높여야 미노타우르스한테 간다고. 음.. 내일은 한 번 구경을 시켜 줄까?’
진혁은 이 정도면 한 번 테스트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모르고 무사들은 진혁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얼굴로 인사를 했고.
‘뭐. 각자한테도 좋은 거니까. 내일부터는 좀 구릅시다. 오케이?’
하지만 아무도 진혁의 속마음은 모른 채 운기에만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