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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59화 (5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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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뭔가 바뀐다.

철각패도의 말에 금검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순순히 받아들일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하게 거부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혈련에 적을 두신 이상 련주님은 뵙는 것이 좋을 텐데요.”

그게 정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장안까지 갈 수 없다. 이곳에서 바바 상단의 핫산이나 토번왕 가르랑다에게 검을 전해 주어야 한다.

‘이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포인트가 얼마인데..’

특히나 토번왕을 통해서 들어오는 포인트가 아주 짭짤했다. 그런데 장안엘 가게 되면 그걸 다 포기해야 한다.

철각패도의 몸이 돈황에 없으면 괴물 잡는 검을 전해줄 수 없으니까. 뭐. 어찌어찌 하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편한 방법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사혈련이 나에게 오히려 빚이 있는 거 아닌가?”

금검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돈황을 접수하게 된 것은 모두 철각패도의 공이다.

“사혈련은 엄청난 수입과 함께 확실한 근거지를 얻지 않았나. 게다가 이미지도 좋아지고..”

“이미.. 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이게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말을 하다 보면 자꾸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철각패도의 딱딱한 안면 근육이 당황한 걸 잘 숨겨주었다.

“내 고향에서 쓰는 말이야. 평판이나 그런 뜻이지. 발해에서 더 가서.. 뭐 그런 데가 있어.”

“아.. 그렇군요..”

철각패도는 이곳에서 벌어진 건 사혈련이 만들어진 이래 가장 큰 성과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건 금검 교무국도 동의하는 바였다. 엄청난 성과.

그런데 정작 사혈련이 한 일은 없었다. 자신이 검은 형제단의 수뇌부 몇 명을 암살한 것, 사혈련 지부의 인원이 몇 가지 일을 한 것. 그게 전부다.

반면 철각패도는 토번왕과 서역 상단, 군 책임자인 이도걸을 만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검은 형제단과 성흥 상단의 일부 세력을 박살 냈고. 한 일로만 따지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금검은 고개를 내저었다. 폭군 같은 자였다. 패왕의 풍모가 물씬 풍겼다. 이런 자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전하지요.”

“알아서 해라. 나에게 큰 빚이 있다는 건 알아두고.”

금검은 잠시 망설이다 이야기를 꺼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련주님은 그리 참을성이 많으신 분이 아닙니다.”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잘 안다. 사혈련주가 어떤 인간인지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야심 큰 인물. 무공도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고. 생긴 것과는 달리 잔혹하고 무자비한 인간이다.

그리고 호승심이 엄청나게 강한 자였다. 무림맹에 엄청난 원한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특별한 원한은 없다. 단지 사혈련이 무림맹에 밀리는 걸 참지 못하는 거다.

“나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참고하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혈련주는 남 밑에 있지 못할 인간이다. 하지만 철각패도도 마찬가지다. 패도를 추구하는 강력한 우두머리. 그런 컨셉이니 지금처럼 행동하는 편이 어울린다.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금검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철각패도는 사혈련주에 대한 기억을 찾아보았다. 사혈련 장로의 기억 속에는 사혈련주에 관한 기억이 많았다.

기억 속 사혈련주의 무공은 무시무시했다. 그래서 사혈련 장로가 그렇게 영약을 많이 처먹은 거다. 사혈련주가 그만큼 무서워서.

돈을 그렇게 빼돌렸으니 들키면 죽을 거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이라도 치려고 내공을 마구 늘린 거다.

하지만 깨달음이 더해진 지금은 사혈련주와 최소한 동수는 이룰 수 있다.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몸 바꾸면 그만이지. 뭐.’

믿는 구석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다. 게다가 설마 직접 찾아오기야 할까. 철각패도는 당분간 사혈련주의 일은 잊기로 했다.

밖으로 나간 금검은 몸을 움직이며 지금 상황을 정리했다.

“철각패도. 사주의 실질적인 지배자.”

엄청난 인물이었다. 무공이 강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치밀하고 심계가 깊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겉보기에는 산도적처럼 생겼는데, 머릿속에는 여우가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다른 세력을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철각패도라면 절대로 남에게 굽히지 않을 인물이었다. 사실 사주에 있는 세력을 가지고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빨리 가서 보고를 해야겠어.”

금검 교무국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장안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철각패도도 두려운 자이지만, 사혈련주는 더욱 무서운 인간이니까.

***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검. 토번왕은 그 검을 가지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토번왕의 군대는 두어 달 사이에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다행이군. 생각보다 검의 소모가 크지 않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몇 달은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진혁이 장안에 도착하고도 남는다.

진혁이 장안에서 중급 마나 스톤을 녹인 쇳덩어리를 만든다. 그걸 아공간에 넣는다. 그러면 철각패도가 돈황에서 그걸 꺼내서 검을 만든다. 완벽한 시스템.

“오크 전사가 많지 않아서 그게 좀 문제기는 한데...”

그래도 중급 마나 스톤 한 개면 검을 백여 개는 만들 수 있다. 지금 진혁이 모아 놓은 중급 마나 스톤만 가지고도 충분했다.

게다가 조금은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진혁이 조사단 별동대 사람들의 무공을 봐주는데, 간혹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별동대 무사들도 이제는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그걸 봐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공부가 되었다.

“꿩 먹고 알 먹는 거지. 무공을 봐주면서 좋은 인상도 심어주고, 실속도 챙기고.”

게다가 실력이 쭉쭉 느는 동료들을 보니 기분도 좋았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철각패도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바위 지역. 그는 팔찌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휙 하면서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 잠깐 사이에 시야가 확 바뀌었다. 이 지역을 조사하겠다고 떨어져 나와서 잠시 몸을 바꾼 상태.

그런데 생각보다 돈황에서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진혁이 정신을 차리려는데,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그쪽 막아.”

“빨리 움직이라고. 지금 뭐하는 거야?”

멀리 떨어진 본대의 야영지에서 작은 소란이 이는 게 보였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오크가 습격을 했군.”

일부러 소수의 몬스터가 습격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래야 다른 상단 사람들도 정신을 차릴 테니까.

처음에는 괴물을 두려워하던 자들이 점점 그걸 잊어먹었다. 밖에서 괴물을 전부 막아주니까 그런 거였다. 그래서 일부러 틈을 만들었다.

“여전하네. 하기야 괴물을 상대하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

천문 상단과 동정 상단의 무사들은 무척 고전하고 있었다. 오크가 소수이니 망정이지 수가 더 많았으면 큰 변을 당했을 거다.

반면 조사단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다. 목세강이 워낙 고수인 것도 있지만, 검 자체가 달랐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전혀 몰랐다.

단지 조사단 무사들의 무공이 높고, 괴물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해서 그런 줄 알았다.

“어? 여기 있었어?”

“습격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막고 있네요.”

한천위는 저 정도 숫자에 당하겠느냐고 웃었다.

“그나저나 다들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 같아.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그럼요. 보면서도 놀랄 정도인데요.”

거의 매일 괴물을 상대했다. 그것도 갈저보다는 당강을 위주로. 오크 전사를 잡아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별동대 무사들은 거의 매일 치열한 실전을 경험했다.

틈만 나면 수련을 했고, 실전과 수련, 거기에다가 진혁의 적절한 지도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서 무사들의 실력은 콩나물이 크듯 쭉쭉 늘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할 거야?”

“예? 무슨 이야기인지..”

“장안에 도착해서 말이야. 그 후에 어쩔 거냐고.”

한천위는 임시로 고용된 무사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았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계속 하고 싶은데..”

왕칠이나 다른 무사들도 할 수만 있다면 원보 상단에서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도 좋고, 장래성도 좋은 것 같고.”

“저는 아직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진혁은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일단 사문에 돌아가서 상의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래? 잘 생각해 보라고. 다들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함께 할 수는 없다. 장안까지 가고 나면 아마도 이들과의 인연은 끝이 날 것이다.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렸다. 비상 상황이라는 신호. 진혁과 한천위는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런. 오크 무리의 습격이다!’

자신이 철각패도의 몸으로 있는 동안 오크 무리가 별동대에 접근한 모양이었다.

“빨리 가죠!”

진혁은 바로 신형을 날렸고, 한천위도 그 뒤를 따랐다.

- 카앙!

“뚫리지 않게 조심해. 진형이 무너지면 끝이야!”

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래쪽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몬스터의 수와 상황을 체크하고 전투를 했다. 당연히 적당히 물리칠 상대하고만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오크 무리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보기 힘든 오크 전사도 두 마리나 끼어 있었고.

“크아아아!!”

오크들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흉폭하게 별동대를 몰아붙였다.

‘너무 방심했어. 놀은 몰라도 오크는 공격해 올 수도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진혁은 자신을 자책하며 몸을 날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동료들에게 가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한천위가 보고 놀랄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천위도 그럴 정신이 없었다.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다. 지금까지 같이 웃고, 먹고, 잠자고, 수련하고, 괴물을 잡았던 동료들이. 그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차아아앗!”

둘은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엄청난 기합과 함께 검광을 뿌렸다. 진혁과 한천위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오크를 상대했다.

한천위는 공격 일변도로 거칠게 오크를 상대했다. 진혁은 무사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진형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방식은 달랐지만, 둘의 주변에 있는 무사들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 저기..”

진혁은 한 무사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왕칠이 오크 전사를 상대로 아슬아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안돼. 아직 오크 전사와 싸울 만한 실력이 아니야.’

왕칠의 실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크라면 몰라도 오크 전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진혁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 있는 곳에서도 몸을 빼기 어려웠다. 이곳도 진혁이 빠지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하지만 이대로 두면 왕칠은 죽는다.

“으아아아!!”

진혁은 갑자기 앞으로 달려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은은한 빛과 함께 검이 허공에 흩날렸고, 검의 궤적 안에 있던 오크들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어어어억!”

“크와악!”

무사들이 진혁을 따라 돌진하며 오크들을 베었다. 삽시간에 주변에 있는 오크가 정리되었다. 다소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무사들에게 진혁은 지시를 내렸다.

“저쪽으로 이동해서 사람들과 합류하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진혁은 왕칠에게 달려갔다. 왕칠은 어디를 다쳤는지 몸놀림이 이상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요. 왕칠 아저씨.’

진혁은 이를 꽉 깨물었고, 왕칠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런데 오크의 커다란 몽둥이가 왕칠의 머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머리통이 으깨지는 건 시간 문제.

하지만 왕칠은 모든 힘을 다 소진한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안돼!”

진혁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때, 왕칠의 몸이 스르륵 움직이며 검을 들어 오크 전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비스듬히 공격을 막으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흘러버렸다.

그리고 진혁의 눈에 새로운 메시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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