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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51화 (5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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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지배자.

“키야~ 아주 죽이네. 죽여.”

남자는 힘겨운 듯 숨을 헐떡였지만, 손가락으로 철각패도를 가리키며 킥킥 웃었다.

“끝내주는구만. 컨셉도 죽이고 말이야. 크크크.”

오랜만에 듣는 말투. 이곳 사람들은 절대로 쓸 수 없는 그런 말투였다. 워낙 오랜만이라 이제는 낯선 느낌까지 들었다. 철각패도는 조용히 남자를 쳐다보기만 했다.

돈황에 팔찌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저쪽 이름이야 다 소용없는 거겠고. 나는 이도걸이야. 여기 군대 책임자지.”

약간 건들거리면서 다가왔다. 철각패도를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돈황의 주요 세력 보고를 들을 때. 군 책임자인 장수 이도걸. 하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고 적당히 돈만 받아 챙긴다고 했지. 그래. 인사 정도는 해 주지.

“철각패도요. 사혈련의 장로이기도 하지.”

“크크크. 얘기는 들었지. 사혈련 지부장이 찾아와서는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지부장이면 그랬을 것 같았다. 철각패도는 이도걸을 유심히 쳐다보랐다. 무공 실력은 일류 초입? 자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뭘 믿고 저렇게 태연하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저 인간도 팔찌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도걸이라는 장수는 태연히 물었다.

“그래도 반갑군. 그래. 자네는 몇 년도 왔나?”

몇 년도? 이쪽으로 넘어온 연도가 다르다는 건가?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걸까? 그리고 이렇게 일부러 친한 척하는 게 의심스러웠다.

“그건 왜 묻지? 그런 게 지금 중요한가?”

철각패도는 아주 까칠하게 대답했다. 워낙 날을 세운 대답에 이도걸은 약간 머뭇거렸다.

그리웠을 수도 있다. 저 사람도 다른 세상에서 온 거라면 답답하기도 했을 거다. 그래서 반가워서 친한 척을 했을 수도 있지.

친해지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인터넷이나 영화 이야기 같은 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지금 처음 봤는데 저렇게 나온다?

반가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뭔가 노리는 게 있을 수도 있다. 조심하는 게 당연한 일. 이도걸도 상대가 경계하는 걸 알았는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렇지. 그런 거야 중요하지 않지. 하이고.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몸에 들어갔나? 어?”

이도걸은 킥킥대면서 철각패도의 여기저기를 뜯어보았다.

“나도 처음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자네도 깜짝 놀랐겠어. 그래도 무공이 높은 사람한테 들어갔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좀 수다스러웠다.

“그런 말을 하러 여기까지 온 건가?”

“아. 이런.. 뭐가 그렇게 까칠해?”

이도걸은 혀를 쯧쯧 차더니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 찾아 온 거라고 했다.

“그래? 그럼 이야기해 봐.”

“어허. 말하는 거 하고는. 그래. 알았네. 어.. 자네. 혹시 관리자하고 연락이 되나? 통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야.”

관리자? 그게 뭐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러운 건 철각패도의 낯짝이 워낙 두꺼워서 표시가 안 난다는 점이었다. 이도걸은 철각패도가 당황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맞아. 이게 몬스터가 나타나고 나서부터 안 보이는 것 같더라고. 자네는 어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적당히 받아주었다. 그래야 정보를 더 털어놓을 테니까. 그는 오크나 놀이 어쩌고 잡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계속 눈치를 살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무척 수상해 보였다.

“자네도 연락이 안 된다 이거지? 어이고. 나는 준비가 거의 되어 가니까 큰 문제는 아닌데.. 그래도 중간에 돌발 상황 같은 게 생기면 낭패인데..”

준비가 끝나 간다?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준비겠지?

“준비가 끝나 간다고? 좋겠군.”

지레짐작으로 대답했다. 무펴정한 얼굴로. 이럴 때는 철각패도의 외모가 도움이 된다. 워낙 험상궂고 표정이 없어서 무슨 상각을 하는지 상대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철각패도의 생각이 맞았는지 이도걸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겨워. 후우.. 이제는 여기 있고 싶지가 않아.”

성격이 휙휙 바뀌는 게 조울증인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해는 한다. 현대에 살다가 왔으니 죽을 맛이었겠지. 나 역시 참고는 있었지만,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아무리 무공이 높고 능력이 좋아도 즐겁지가 않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금광 발견하면 뭐하나. 그걸 가지고 나와야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런 곳에서 계속 살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도걸이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자네 돈 좀 있나?”

뭐지? 이 시츄에이션은? 갑자기 돈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헷갈리게. 그는 갑자기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마지막 물건을 준비하려면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말이야. 여기서 이래저래 받아 챙기는데도 영 부족하네.”

그는 돈 챙기러 일부러 이곳에 왔는데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이 새끼. 이거 사기꾼 양아치 아냐? 하는 짓이 딱 그런 부류의 인간처럼 보였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상대를 해주었다. 그래도 자신보다 무언가 더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돈이야 넉넉하게 있지.”

“그래? 그러면 좀 주면 안 될까? 내가 여기서 편의는 봐주지.”

이도걸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돈이야 넘치도록 있다. 그런데 이 자는 정말 돈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나에게 어떤 수작을 걸려는 것일까?

“편의? 재미있군.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이는데?”

“어허. 그래도 군대야. 대놓고 나서기 시작하면 무시할 수 없을 걸?”

그는 사혈련과 검은 형제단의 일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검은 형제단 일을 잘 봐주지. 내가 힘을 쓰면 그래도 도움이 될 거야.”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대놓고 깽판을 놓으려고 하면 피곤해지긴 하니까.

“군이 나서면 좀 편해지기는 하겠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정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도걸과는 친분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껴서 그리 대답했다. 관리자나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내고 싶어서.

“그래. 필요한 게 얼마 정도지?”

“음.. 그게.. 금자로 이백만 정도?”

금자로 이백만? 이런 미친. 한화로 따지면 6천억 원이나 되는 거금이다. 그런 돈을 일개 장수가 뇌물을 받아서 채우려고 했다고? 제정신이 아니다.

“하아. 그걸 받아 챙겨서 모으려고 했나?”

“에이. 그건 아니지. 여기서 그 큰돈을 어떻게 모으겠나.”

이도걸은 킥킥 웃으며 여기서 자금을 모아 위에다가 뇌물로 바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짭짤한 자리에 가서 한탕 하고. 그러면 그 정도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거였다.

“자네도 돈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어차피 돌아갈 때 싸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도걸은 계속 설득했다.

“내가 뒤를 봐주면 자네도 좋지 않아? 자네도 여길 접수해야 뭔가가 되니까 공을 들이는 거 아냐. 내가 도와준다니까? 어?”

일단 양아치 같은 태도는 그러려니 했다. 그거 말고 이 녀석이 말한 내용 중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것들만 추렸다.

“자네는 조건이 뭐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주고. 어?”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조건이 다 똑같은 게 아닌 듯했다. 그런데 내 조건이 뭔지는 왜 계속해서 떠보는 거지?

단순히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건 아닐 거다. 그걸 대답해 줄 만큼 바보가 아니라서 미안하군.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거지. 아무튼, 제안 자체는 흥미롭군. 내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지.”

“좋을 대로. 그래도 그 정도 자금이 있긴 있나 보군. 생각한다는 걸 보니.”

“있지.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만남의 시작과 끝이 모두 어색했다. 경계심이 있어서 심적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솔직히 이도걸이라는 자를 믿을 수 없었다.

“관리자가 한 명이 더 있다고 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이렇게 보니 신기하군.”

이도걸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민 가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같은 나라 사람이다. 낯선 장소. 외톨이가 된 느낌일 때 친한 척 접근하면 사기 치기 쉽기 때문이다.

‘이용을 해도 내가 해야지. 어설프게 수작 부리면 바로 쳐버린다.’

호의로 대하면 이상하게 호구로 본다. 대부분 그렇다. 그런 취급을 받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철각패도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이도걸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

‘서예주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거지?’

철각패도는 핫산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며 생각을 했다. 이도걸은 이쪽으로 부임하기 위해서 청탁을 했다. 황실의 실세에게. 그 과정에서 서예주와 만났다고 했다.

그 전에 서예주는 황궁에서 팔찌를 보았다고 했고. 아무래도 평범한 배경은 아니다. 황궁에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황실의 실세와도 연결되어 있고.

그녀에 관해 조금 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게 있었다. 이도걸이 한 말이었다.

‘분명히 관리자가 말을 했다고 했어. 한 명이 더 있다고. 그런데 몬스터가 나타난 이후로 관리자는 보지 못했다고 했고.’

그런데 자신은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그때 이곳으로 왔다. 그렇다면 나와 이도걸 말고 또 한 명이 있다는 건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런 걸 이도걸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핫산까지 문제가 생겼다며 불렀다.

“이곳입니다. 무기가 있으시면..”

“무기 여기 있네.”

똑같은 말을 하려는 걸 중간에 끊어버렸다. 철각패도는 칼을 건네주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오시라고 해서..”

“아직 할 이야기가 있나? 다 끝난 걸로 생각했는데..”

철각패도의 표정이 좋지 않자 핫산은 상당히 겸연쩍어하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토번왕이..”

핫산은 토번왕 가르랑다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난처해 했다.

“토번왕이? 이미 얘기가 끝난 거 아닌가?”

“그게.. 사혈련과 손을 잡은 걸 가지고 문제 삼고 나와서..”

스스로의 힘으로도 검은 형제단을 누를 수 있었는데, 왜 사혈련을 끌어들였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는 거였다.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고.. 자기들 이권을 더 늘리겠다는 속셈인가?’

핫산은 정말 곤란한 모양이었다. 토번왕은 여차하면 손을 떼겠다고 강하게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토번왕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서 통제가 안 된다는 거였다.

사실 토번왕이 없어도 검은 형제단을 잡을 수는 있다. 그런데 걱정되는 건 검은 형제단과 사혈련이 싸우고 있을 때, 토번왕이 뒤에서 덮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정말 낭패.

“그러면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지.”

돈황을 확실하게 잡으려면 토번왕도 저렇게 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인.”

“교육을 시켜야지. 사람을 배워야 하는 법이니까. 토번왕이 있는 곳이 어디라고?”

핫산은 장소를 말해주면서도 조금 염려를 했다. 토번왕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고 하면서.

“상관없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중요한 시기다. 이도걸을 만나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포인트를 모아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일단 돈황을 삼켜야 한다. 그게 지금으로써는 최선.

“그걸 방해하는 놈들은 가만히 둘 수 없지.”

철각패도는 곧장 토번왕이라고 자처하는 가르랑다를 만나러 움직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철각패도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면 되는 거다. 철각패도 컨셉이 그런 거 아닌가. 무자비한 폭군. 그걸 뼈마디에 심어주면 된다.

배신? 그런 거 하면 더 좋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면 되니까.

“안 그래도 지금 머리가 아픈데 꼬장을 부려?”

철각패도는 눈을 치켜뜨고는 토번왕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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