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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50화 (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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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지배자.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연락이 온 곳이 있어요. 바바 상단이라고 하던데 알아보니 꽤 영향력이 큰 상단이라고 하더군요.”

바바 상단은 핫산이 주인인 상단이다. 진혁은 서예주를 비롯한 몇 명의 사람과 핫산의 천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갈저나 당강이 거래되고 있다니.”

“그러니까. 하이고. 저것들 상대하면서 온 생각을 하면..”

사람들은 암시장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면서 이동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진혁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철각패도를 마중 나왔던 남자였다.

“원보 상단의 분들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서예주가 인사를 받았다.

아마도 암시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켜보는 눈이 있었을 거다. 아니면 숙소에서 나왔을 때부터 따라온 자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남자가 진혁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전에 뵌 적이 있던가요?”

“아니요. 여기 처음입니다.”

딱 잡아뗐다. 왜 그런 걸 물어봤는지가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그 누구도 절대로 알 수 없는 일. 남자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길을 안내했다.

‘여기서 무기는 두고 가라고 하겠지?’

“이곳입니다. 무기가 있으시면 저에게 잠시 맡기시지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했다. 똑같은 어조로. 로봇 같았다. 사람들은 철각패도와는 달리 무기를 순순히 맡겼다.

“어서 오십시오.”

핫산이 크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진혁은 눈에 띄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이야기는 훈훈하게 진행되었다. 어떻게든 남쪽 길을 사용하고 싶은 핫산, 바바 상단과 같은 큰 세력과 손을 잡고 싶어 하는 서예주. 둘이 만났으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어떻게 그 험한 길을 헤치고 오셨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안전한 길을 확보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계속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았다.

“돌아갈 때 동행하는 건 좀 곤란합니다.”

“저희도 안전한 길인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관계와 신뢰가 두터워지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서예주가 좀 밀렸다. 아무래도 핫산이 경험이나 지위나 여러모로 나았으니까. 핫산의 요구는 조금 무리한 거였다. 새로 개척한 길을 거저 알려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길만 제대로 알고 나면 오히려 잡아먹힐 수도 있다. 서예주는 그건 불가하다고 말했지만, 핫산은 계속해서 압박했다. 그러다 좋은 조건을 하나씩 꺼내기도 했다.

상단 규모가 커서 그런지 제안하는 물량이 상당했다. 누가 들어도 혹할 만한 거래 제안.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냥 무료했다.

‘원래 다들 밖에 나간 사이에 사혈련에 갈 생각이었는데..’

이곳에 잡혀 오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다. 원래 수뇌부가 여기저기 다니는 시간이 아랫사람들에게는 자유시간 아닌가. 그랬는데 다 틀어졌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하지만 서예주도 녹녹하지는 않았다. 미숙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녀는 다른 곳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어차피 첫 만남은 탐색전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만나야 하겠지. 그때는 나 안 데리고 오면 좋겠는데. 하지만 불안했다. 서예주가 요즘 너무 잘해주려고 해서.

“아직 제안하지 못한 내용도 많으니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예. 오늘 이야기 나누게 돼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갔다.

“아.. 혹시 원보 상단과 사혈련은 관계가 어떻습니까?”

“사혈련과는 특별한 관계는 아닙니다만..”

딱히 관계가 없었다. 상단은 대부분 특별한 세력과 척을 지지 않으려 한다. 세력과 문제가 생기면 장사하는데 곤란하다.

사혈련도 마찬가지다. 거대 상단들이 정파나 무림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사파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피곤해지니까.

“이건 호의로 알려드리는 거니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핫산은 이곳은 무림맹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사혈련의 세력이 부쩍 커지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니 무림맹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게다가 사혈련의 일도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예주는 허투루 듣지 않았다.

사실은 핫산은 넌지시 큰 정보를 준 거다. 철각패도와의 일을 말할 수는 없으니 평범한 말속에 숨겨서. 거기다가 진혁도 처음 듣는 정보까지 핫산은 말했다.

“오늘 사혈련의 장로 한 명이 더 이곳에 왔다고 하더군요.”

뭐? 사혈련의 장로가 한 명 더 와? 진혁은 깜짝 놀랐다. 누가? 왜?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유익한 시간 되었으면 좋겠네요.”

서예주는 호의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첫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빨리 사혈련에 가서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진혁은 볼일이 있다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어떤 놈이지? 장로급이 이곳에 올 리가 없는데?”

이곳은 사혈련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다. 거리도 거리고 기존 세력이 워낙 강성했으니까.

철각패도는 나는 듯이 달려 사혈련 지부에 들이닥쳤다.

“장로님. 오셨습니까.”

조무래기들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그러자 안에서 걸어 나오는 자가 있었다.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면서.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어..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

금검 교무국. 사혈련의 세 장로 중 한 사람이 맞았다.

혹시나 했다. 이야기가 잘못 전해진 게 아닐까 하고. 철각패도는 자리에 앉아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었다.

“원래는 청해 쪽을 돌고 있었는데 소식을 받고 급히 오는 길입니다.”

“제가 바로 전서구를 날렸읍죠. 헤헤..”

지부장이 히죽히죽 웃었다. 잘하지 않았느냐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는 되었다. 사혈련은 무림맹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9파 1방 중 세가 약한 곳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니 말 다한 거다.

그러니 무림맹 세력이 강한 곳에서는 힘을 못 쓴다. 그런 곳에서는 음지에서 조심조심 움직이고, 무림맹 세력이 약한 곳을 중점적으로 키운다.

청해가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돈황에 철각패도가 나타나서 엄청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거다. 그래서 바로 방향을 틀었고, 이렇게 도착했다는 거였다.

“소식을 듣고 오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혼자서 그런 일을 하시다니.”

금검 교무국은 성흥 상단의 일은 정말 통쾌했다면서 크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는 자네 혼자서 온 건가?”

“수하들 몇 명과 같이 오기는 했습니다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사혈련에서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라고 했다. 가뜩이나 돈줄을 어떻게든 만들려는 중이었는데, 철각패도가 큰 건 하나 했다는 분위기란다.

하기야 큰 이권은 무림맹이 꽉 쥐고 있으니 돈 벌기가 어디 쉽겠나. 그래서 냉큼 달려왔단다.

‘금검 교무국이라..’

세 명의 장로 중 가장 음험한 자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을 하는 인간. 정파에서도 이런 내용은 잘 모른다.

사혈련의 장로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 그러니까 금검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거다. 살인귀 이미지였으면 금검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테지.

‘가만. 이놈 무공은 쓸 만하지. 그렇다면..’

금검 교무국은 살인을 좋아하는 놈이다. 피에 굶주린 인간. 전혀 그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살인을 꾸준히 해왔다.

철각패도는 사혈련 장로의 기억을 뒤져 금검 교무국의 정보를 좀 더 살폈다. 미친 살인귀였다. 수법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 새끼. 가만히 보니까 사이코패스 같은데?’

소름이 끼쳤다. 이런 고수가 사이코패스면 정말 난리가 날 것 같았다.

‘나보다 하수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교무국은 은근히 철각패도를 어려워했다. 하기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인 혈도 임평백이 잘근잘근 다져지는 꼴을 직접 봤으니.

‘가만. 검은 형제단 작업할 때 이놈을 쓰면 딱이네.’

악을 잡을 때는 정의로울 필요가 없는 법이다. 오히려 악은 악으로 잡는 게 더 좋을 때가 많다.

‘살인마 집단의 머리를 제거하는 데 사이코패스를 이용한다? 괜찮은데?’

철각패도는 잠시 생각하다 교무국에게 제안을 했다.

“이곳에 검은 형제단이라고 있다. 알고 있나?”

“들었습니다. 일전에 사혈련의 형제들을 도륙했다는 일도 있었다더군요.”

“그렇지. 이 놈들을 그냥 둘 수는 없어. 그래서 말인데..”

이곳에 있는 다른 세력과 힘을 합쳐 검은 형제단을 완전히 뿌리 뽑을 거라고 했다. 그 작업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고수 몇 명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했고.

“내가 놈들을 제거할 테니 자네가 이곳을 좀 관리하게. 본거지를 비우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잘 되었군.”

철각패도의 말에 교무국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제안을 해왔다.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이유가 있습니까. 그 일은 저에게 맡기시지요.”

“무슨 말인가.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를 해야지.”

철각패도는 관여할 생각 말고 자신의 말대로 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교무국은 초조한지 입술을 핥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밑에 놈들이 비웃습니다. 제가 이곳에 왔는데 어찌 그런 잡일을 직접 하시려고 하십니까.”

금검 교무국은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온갖 이유를 끌어다가 붙였다.

‘옳거니. 물었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만 하고 있으면 되었다. 교무국은 열과 성을 다해서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런가? 그렇게 해도 큰 문제는 없기는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돌아선 척을 하자 교무국은 더 환장해서 달라붙었다. 조금 더 애를 태우다 마지 못하는 척하며 이야기했다.

“대신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네. 공연히 경각심만 심어 주었다가는 낭패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마치 상관과 수하의 대화 같았다. 교무국은 그런 것도 모르고 자신이 일을 맡았다며 좋아했다. 그걸 본 사혈련 녀석들은 중얼거렸다.

“금검 장로님도 저렇게 어려워하는 걸 보면 철각패도님이 대장로이신가봐.”

“그렇지?”

***

금검은 준비를 한다고 신 나서 돌아다녔다. 그래도 정보도 필요하고 토번왕의 협력도 있어야 했다. 그 일은 전부 핫산에게 일임했다.

핫산은 그 정도는 자신이 맡아야 한다면서 열심히 움직였다. 사혈련이 단독으로 검은 형제단을 없애버리면 자신의 입지가 약해진다고 생각해서였다.

철각패도는 갑자기 일이 없어졌다.

“검이나 좀 만들어 놔야겠어.”

만드는 과정이 좀 복잡하기는 했다. 마나 스톤을 녹이는 건 진혁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실을 들키면 곤란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일을 진행 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저번에 만든 검은 너무 성능이 뛰어났다.

핫산에게 준 코딩한 검. 그것보다만 조금 나은 정도가 좋다. 그러려면 비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체크해 봐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돈황의 외곽으로 움직였다. 몸을 바꾸기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방향을 바꾸어 보았는데, 틀림없었다. 자신을 따라오는 거다. 이리저리 틀어도 계속 쫓아오는 걸 보니. 무리를 지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명이었다.

‘어떤 미친 녀석이지?’

현재 돈황에서 철각패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무시무시한 고수이고 걸리면 박살 난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런데 어떤 놈이 쫓아오는 걸까?

철각패도는 속도를 늦추었다. 어떤 놈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혹시 토번왕이라는 가르랑다? 무공이 뛰어나고 호승심이 강하다고 했으니 그 자일 가능성도 있었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한 명이 철각패도 앞에 내려섰다. 처음에는 어떤 놈인지 한 번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팔에 자신의 것과 똑같은 팔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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