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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49화 (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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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지배자.

“무슨 짓이냐?”

고수 중 한 명이 사납게 노려보며 외쳤다. 그는 당장에라도 철각패도에게 칼을 휘두를 듯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렇지만 철각패도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 정도 기세는 애들 장난. 그는 오히려 두 고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뒤에 있는 나이 든 놈이 훨씬 고수군. 적어도 목세강 아저씨 정도는 되겠는데?’

사혈련의 세 장로와도 좋은 상대가 될 법했다. 그렇지만 두 고수는 철각패도의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손을 쓰면 둘이 함께 덤벼도 막지 못한다. 버티면서 시간을 버는 정도가 고작.

예전의 사혈련 장로의 몸이라면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어려웠을 거다. 내공은 많았지만, 정순하지 못했으니까. 닥치는 대로 영약을 먹어 늘린 이른바 잡탕 내공.

게다가 무공에 대한 깨달음도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천문의 원덕강이 지닌 지식과 깨달음이 합쳐지자 무시무시한 고수가 되었다. 눈앞에 있는 절정고수 둘 정도는 손쉽게 누를 정도의 고수가.

‘오히려 핫산이란 자가 흥미롭군.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이라니.’

핫산은 여유를 잃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절대로 평범한 자는 아니었다. 철각패도는 가볍게 웃고는 검을 바닥에 푹 꽂았다. 애초에 핫산을 베거나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좋은 걸 보여주려고 했더니 너무 호들갑을 떠는군.”

“뭐야?”

철각패도의 말에 젊은 고수가 발끈했다.

“좋은 거라.. 기대가 되는군요.”

“그런데 준비해야 할 게 좀 있는데..”

핫산은 뭐든 말만 하라고 했다. 어떤 거라도 준비할 수 있다는 듯이. 철각패도는 여유롭게 몸을 뒤로 젖히면서 말했다.

“당강 한 마리가 있으면 좋겠군.”

“호오. 당강을..”

당강이라는 말에 핫산의 눈이 번득였다. 뭔가 감이 온 모양이었다.

이놈도 머리 좋은 놈이군. 아니면 촉이 좋은 놈이거나. 그나저나 당강, 아니 오크를 당장 데려올 수는 있는 건가?

데려왔다. 서역으로 가져갈 상품인지, 아니면 핫산의 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곧바로 오크를 대령했다.

오크는 발버둥 쳤지만, 굵은 쇠사슬을 끊지는 못했다. 재갈이 물려 있어 소리도 지르지 못했고.

“자. 당강을 데려왔으니 이제 좋은 거를 보여줄 차례인 것 같은데..”

“좋아. 보여 주지.”

철각패도는 꽂아 놓은 칼을 집으려 했다. 그러자 고수 두 명이 다시 움직였다.

“흐음.. 내가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군.”

철각패도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보통 칼로 오크를 쳐보고, 그다음 내가 가져온 칼로 똑같이 해봐. 그러면 내가 이 칼을 왜 가지고 왔는지 알 테니까.”

말이 끝나자 젊은 고수가 앞으로 나섰다.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젊은 고수는 먼저 자신의 칼로 오크를 내리치려 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는 듯 아주 강하게.

그가 막 공격하려는데, 철각패도가 맥을 탁 끊었다.

“비싼 놈인 것 같은데 살살 하라고. 흠집 나면 곤란하지 않겠어?”

“네놈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젊은 고수는 까칠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철각패도의 말을 의식한 듯 힘을 많이 빼고 내리쳤다. 촤악 하는 소리가 나며 가죽에 얕은 흔적이 생겼다.

젊은 고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놈. 이거 몬스터는 한 번도 상대해보지 않았구만? 하기야 호위만 했을 테니 괴물은 본 적도 거의 없겠지.

그래. 그 정도면 당강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올 줄 알았겠지. 그런데 고작 얕은 자국만 났으니 쪽팔릴 거야. 하지만 그게 정상이다. 이놈아. 몬스터들은 마나 보호막이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연출이 되었다.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철각패도는 말을 툭 내뱉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져온 검으로 해 보지. 똑같은 힘으로.”

젊은 고수는 철각패도를 한 번 노려보더니 바닥에 꽂힌 검을 뽑았다. 그리고 거의 똑같은 힘으로 당강을 베어 갔다.

- 치이익

“어?”

젊은 고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든 검과 당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강의 가슴이 쫙 갈라지며 녹색 피가 뿜어져 나왔으니까.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철각패도뿐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철각패도 대인.”

핫산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괴물들을 상대하는 데 효과가 큰 보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호오.. 괴물을 잡는 보검이라..”

핫산은 젊은 고수를 불러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젊은 고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핫산의 귀에다 대고 뭐라 말했다. 검과 당강을 몇 차례 손으로 가리키면서.

핫산은 적극적으로 나왔다. 하기야 이런 걸 보고도 미적미적 댄다면, 그건 상인이 아니겠지.

“이 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군요. 깊이 있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 전에 나도 듣고 싶은 게 좀 있는데..”

기세 싸움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 처음에 허공섭물로 칼을 끌어온 것도, 당강을 데려오게 해서 칼의 위력을 보여준 것도 전부 주도권 싸움이다.

초반 기세 싸움은 중요하다. 거기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이후에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결정되니까.

“듣고 싶은 게 어떤 겁니까. 대인.”

봐라. 핫산이 먼저 숙이고 나오지 않나. 이렇게 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편한 거다.

“검은 형제단에 관한 것도 있고, 토번왕에 관한 것도 그렇고. 들을 게 좀 많을 것 같은데..”

핫산은 웃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철각패도는 알 수 있었다.

핫산은 이 시점에서 눈치깐 거다. 아. 저놈도 알 만큼 알고 왔구나. 그래서인지 시원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아시겠지만, 이곳 사주에는 여러 세력이 있지요.”

딱히 어떤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형국. 하지만 강성한 곳은 있다. 바로 4대 상단 연합과 검은 형제단이었다.

둘이 손을 잡게 된 것이 서역의 상단들 때문이었다. 서역 상단이 공세적으로 나오자 중원의 4대 상단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검은 형제단과 혼을 잡은 거다.

물론 겉으로는 아닌 척했다. 그걸 가장 주도적으로 이끈 곳이 바로 성흥 상단이었고. 그들은 알게 모르게 뒷공작을 하며 상당한 이익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번왕을 밀어준 거군.”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검은 형제단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서역 상단들이 지원해서 토번왕이 급격하게 세를 불린 거다. 그리고 여기저기 첩자를 심어 놓고 정보를 모았고.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천수에서 남쪽 길을 개척하다니. 정말 대단한 일 아닙니까.”

핫산은 크게 웃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북쪽 길은 중원의 4대 상단이 꽉 잡고 있다. 서역 상단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남쪽 길이 새로 생긴다면?

“그래서 적당히 손을 좀 썼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들과 협상을 하려면 그 정도 호의는 베풀어야지요.”

가만히 놔두면 성흥 상단에게 남쪽 길도 빼앗긴다. 그건 막아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철각패도가 끼어들어서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린 거다.

“원보 상단에 선은 넣어 놓았습니다. 교섭을 해야겠지요.”

핫산은 서로 이득이니 원보 상단은 자신의 손을 잡을 거라고 했다.

“물론 방해하려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검은 형제단이나 중원의 나머지 상단이나. 그래서 말인데..”

이게 본론이다. 철각패도는 핫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혈련도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것 같은데 서로 돕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서로 공동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검은 형제단과 중원의 상단. 같이 그들을 도모하시지요.”

핫산은 힘을 합치면 그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주의 패권을 쥐게 되면 이익을 나누자는 거였다.

“어떻습니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핫산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했다. 철각패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거절하지.”

당황한 표정의 핫산. 왜 거절을 하느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그놈들은 이쪽에서도 처리할 수 있다. 굳이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광오한 이야기. 검은 형제단과 중원의 나머지 상단은 결코 만만한 세력이 아니다. 하지만 핫산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더 어려워질 거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보다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난 거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상대하려면 피해가 클 겁니다. 그러니 힘을 합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상황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어차피 손을 잡기는 잡을 거다. 미쳤냐? 그놈들은 혼자서 상대하게? 그것도 여기 사혈련 덜떨어진 놈들을 데리고? 어림도 없는 일이다.

뭐. 혼자서 어찌어찌하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도 들고. 그러니 이들과 협력하는 게 좋다.

“생각하는 바가 있으신지..”

“너무 급하군. 세부적인 건 차차 이야기하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아쉬워하는 게 보였다. 핫산은 잠시 망설이다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그 검에 관한 건..”

“그것도 다음에 이야기하지.”

어차피 검은 몇 개 없다. 마련하려면 시간도 걸린다. 게다가 이렇게 애를 닳게 해야 값이 올라간다.

철각패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한참 지나서 연락할 생각이다. 검은 형제단의 수뇌부 몇 놈을 제거한 후에.

그래야 말빨이 더 선다. 아. 정말 혼자서도 검은 형제단 밀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협상에서 더 유리하다.

‘사주를 통째로 먹는다. 이권 같은 건 나눠 가지라고 하고 사주 전체의 지배권을 움켜쥐는 거다. 그래야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검은 형제단을 해체하고 거기 조무래기들을 사혈련이 흡수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바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원보 상단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조사단의 핵심 인원이 모인 자리. 하지만 진혁은 불편하기만 했다. 원래는 이런 자리에 낄 위치가 아니었으니까.

“일단은 천문 상단과 만나볼 생각이에요.”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 상단과는 인연도 있고, 그나마 평판도 나은 곳이니.”

홍 무관이 거들고 나섰다. 서예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물었지만, 별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 표사님은 어떠신가요?”

서예주가 갑자기 진혁을 지목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이곳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상단 쪽 일은 잘 몰라서..”

“아는 바가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어떤 생각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이야기해 보세요.”

이제는 살짝 귀찮을 정도다. 원래 까가 빠로 변신하면 정말 무섭다고 하는데 진짜로 그랬다. 반짝반짝하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는데 부담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이쪽으로는 경험이 일천해서 오히려 누가 될까 걱정입니다.”

계속 회피하자 서예주는 살짝 서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표정 하지 말라고. 난 그냥 하급 무사라니까. 왜 수뇌부 회의에 부르냐고. 그리고 무슨 말만 하면 우와. 대단하세요. 우와 놀라워요. 이런 말좀 하지 말라고. 원래 하던 대로 해! 이런 말이 속에서 맴돌았다.

“어허. 그래도 아무 말이라도 해 보게. 판단이야 들어보고 나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홍 무관이 보다못해 서예주를 거들고 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라며 부추겼고.

사장한테 잘 보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인간들 같으니라고. 여기나 예전 세상이나 똑같다. 똑같아. 하지만 계속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저는 서역 상단도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목이 마른 자들이니까요.”

“아.. 그렇네요.”

서예주는 또 바로 알아들었다. 아니. 그 몇 마디만 듣고 어떻게 아는 거야? 저런 인간들은 머리에 다른 게 들어 있나?

“우와. 역시 대단하세요.”

그만해라. 다른 사람들까지 이상한 눈빛으로 날 보잖아. 저거 봐. 뭔가 대단한 사람 보는 것 같은 눈빛. 아니야. 난 미리 만나보고 사정 다 들어서 아는 거라고.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

“서역 상단도 만나보는 게 좋겠어요. 하 표사님은 저랑 같이 가시죠?”

“예? 제가요?”

제가 왜요? 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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