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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라는 건 적당히가 없는 거다.
중급 마나 스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크 전사에게서만 나왔는데, 오크 마을을 통틀어도 두어 마리 있을까 말까 했다. 아예 없는 마을도 있었고. 아마도 지역 특성인 것 같았다.
“이쪽에는 유독 중급 몬스터가 적었어.”
중급 마나 스톤이 대량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진혁은 시간이 되면 지역별로 어떤 몬스터가 잘 나오는지도 체크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단은 이곳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
- 중급 마나 스톤
중급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나 스톤.
고열을 가한 상태에서 마나를 불어넣으면 녹는다.
다른 물질과 잘 섞이는 특성이 있다.
진혁은 중급 마나 스톤의 정보를 확인하고 시뻘건 쇳물을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 같은 열기를 품은 끈적한 액체.
“자. 어디 되는지 보자.”
일하던 사람은 밖으로 나가 대장간 안에는 진혁 혼자만 있었다. 쇳물을 만들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더니 미친놈이라고 했던 사람. 돈을 넉넉하게 내미니 바로 고개를 숙였다. 언제든 해줄 수 있다면서.
대장간 안은 한여름의 사막보다도 뜨겁게 느껴졌다. 숨을 쉬면 가슴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느낌. 진혁은 재빨리 쇳물에 마나 스톤을 툭 던졌다.
잠시 지켜봤지만,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푸른색이 조금 더 선명해진 정도? 이제 확인을 해야 할 타이밍. 진혁은 마나 스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호!”
효과가 있었다. 마나를 불어넣으니 변화가 일어났다. 마나 스톤이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해지더니 스르륵 녹았다.
푸른빛이 나던 돌이 액체로 변하더니 이내 투명해졌고, 쇳물에 스르륵 스며들었다. 보기만 해서는 평범한 쇳물과 다르지 않았다.
“이걸로 무기를 만들면..”
효능이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 수는 없다. 빼돌릴지도 모르니까. 무기를 만들 때까지 옆에서 지켜볼 수도 없는 일이고.
진혁은 쇳물을 식혀서 그 덩어리를 가지고 자리를 떴다. 얼마 후, 그 쇳덩어리는 철각패도의 손에 들어갔다.
***
“성흥 상단에서 연락이 왔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들을 돌려주면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요.”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잡혀 있는 무사들은 성흥 상단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사주 지부의 모든 전력. 이런 험악한 곳에서 무사들 없이 지낸다?
나를 잡아먹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짓이다. 그러니 돈을 내고서라도 데려갈 수밖에. 무사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쓸만한 무인을 구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나 이런 변방에서는. 그러니 방법은 하나다. 돈을 내고서라도 이놈들은 데려가는 것.
‘하지만 데려가 봐야 짐 덩어리지. 점혈을 풀 수 없을 테니까. 소림사 방장이 와도 어림없다니까. 한 이틀 지나면 풀릴 거라고 말은 해 놓았지만..“
사실은 일주일 이상 갈 거다. 여기서 문제. 무사들을 인계받으면 상단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점혈이 되었다고 새로 무사를 구할까? 아니면 며칠 지나면 점혈이 풀릴 거니 기다릴까.
답은 뻔하다. 철각패도는 지부장에게 조용히 답했다.
“넘겨줘라. 그리고.. 이들을 넘긴 다음 날 성흥 상단을 친다.”
“예? 넘겨 주고 말입니까?”
살짝 놀라는 지부장을 철각패도가 쳐다보았다. 당연한 말을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지.”
돈은 돈 대로 챙기고 복수는 복수대로 하고. 어차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것도 아니니 거리낄 것도 없다. 이 정도는 되어야 악당이라고 할 수 있지.
게다가 상단 놈들은 방심하고 있을 거다. 돈을 받고 풀어줬으니 공격할 거란 생각은 못 하겠지. 원래 빼앗기만 하던 놈들은 자신이 당할 거란 생각은 잘 안 하거든.
원래 악을 상대할 때는 더 크고 강한 악으로 상대하는 거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4대 상단 중 하나인데..”
지부장은 보복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4대 상단?”
멍청한 놈. 세상에 그런 거 다 따지면 당하고만 살아야 한다. 이래서 참아야 하고 저래서 굽혀야 하고. 그렇게 살다가는 허리를 펼 날이 없다.
철각패도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하더냐?!”
벼락 같은 호통에 사람들이 모두 찔끔했다. 철각패도는 강하게 힘주어 말했다.
“당한 걸 되갚아주지 않으면 영원히 시달린다. 영원히!”
왜 그러냐고? 건드려 봤는데 반항을 안 해. 오호라. 계속 건드려도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번만 참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지. 그런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임시 표사들도 그랬다. 원보 상단의 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당하기만 했다. 그렇게 반항하고 우리를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걸 보여줬는데도 계속 공격했다.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해도 찍어 누르려고 하는데 얌전하게 있어? 그러면 영원히 고통받는다. 그게 현실이다. 이곳에 거의 다 와서도 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철각패도는 무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이야기했다.
“철저하게 갚아준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그게 내 방식이다!”
거대한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 사혈련 사주 지부의 인원이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은 느꼈다. 곧 피바람이 몰아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감동과 쾌감도 있었다. 자신들이 당한 걸 복수하러 저렇게 대단한 고수가 직접 오다니. 이제 우리도 짓밟히면서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우리 손으로 복수를 할 수 있구나.
사혈련 무사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철각패도를 쳐다보았다.
“피의 복수를!!”
“피의 복수를!!”
철각패도는 얼마 전 희생당한 동료를 생각하며 목소리를 높였는데, 갑자기 사혈련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고 당황했다.
‘야. 니들 복수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
성흥 상단의 사람들도 그런 낌새를 느꼈다면 적어도 도망은 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을 넘겨받고 돌아가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설마하니 자신들을 건드릴까. 우리는 성흥 상단인데 누가 건드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방심은 혹독한 결과를 가져왔다.
“크아악!”
“웬 놈들이냐? 어? 어?”
무사들을 돌려준 다음 날, 사혈련 사주 지부는 성흥 상단을 공격했다.
“그동안의 우리가 받았던 혈채를 받으러 왔다!”
“전부 뒤져서 잡아내!!”
무사들이 흉흉한 기세로 상단 건물을 뒤졌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잡혀 나온 상단의 간부 한 명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왜? 우리라고 계속해서 당하고 있을 줄만 알았어?”
사혈련의 지부장은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무사들이 돌아왔다고 방심한 게 원인이었다.
돌아오면 뭐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성흥 상단에는 사람만 많았지,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거의 없었다.
“크아악!!”
“놔라. 이거 놓으라니까아..”
더구나 선봉에 있는 사람이 철각패도였다. 무사들 전원이 몸이 성해도 상대하기 힘든 고수다. 그런데 누가 철각패도를 막겠나. 사혈련은 순식간에 성흥 상단을 점령했다.
상단 사람들은 묶인 채 끌려나와 무릎을 꿇은 채 있어야 했다. 그들은 눈을 매섭게 뜨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니 놈들.. 이 소식이 전해지면 니들이 무사할 줄 아느냐.”
사혈련 무사들이 그런 상단 사람들을 한껏 비웃었다.
“아이고. 그런 거 걱정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지금 하고 있겠냐? 어?”
“이 멍청한 인간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라. 저기 장로님까지 여기 오신 걸 보면 모르겠냐?”
상단의 지부장은 고개를 돌려 철각패도를 보았다. 반항하는 무사에게 손짓을 하자 그 무사는 벽을 뚫고 사라졌다. 무시무시한 무공.
저 정도의 고수는 사주를 통틀어도 찾기 어려울 거다. 그런 자가 나섰으니 이미 상황은 끝난 거다.
지부장은 생각했다. 저 정도 고수를 할 일 없이 이곳에 보냈을 리가 없다고. 저 자가 여기 왔다는 건 사혈련이 이곳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겠다는 의사 표시라고.
그리고 본보기로 우리를 선택한 거다. 강한 세력 중 하나를 밟으면서 힘을 과시하는 것. 사파인 사혈련이 빠르게 자리 잡기에 좋은 방법이다.
“이거 생각보다 사태가..”
상단의 지부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자신들은 4대 상단 중 한 곳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항상 그렇다.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철각패도는 묶여서 나뒹굴고 있는 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들은 전부 노예로 삼는다. 그렇게 해도 할 말이 없는 놈들이다!”
상단 지부장이 펄쩍 뛰었다. 노예라니. 성흥 상단 사람인 자신이 노예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이런 법은 없소. 그래. 몸값을 낼 터이니 풀어주시오.”
이것들이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네? 그럴 생각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했겠니? 그리고 니들이 한 짓을 생각해라. 이놈들아. 니들은 이것도 과분한 거야.
“몸값을 내면 풀어 주지. 하지만 그전까지는 노예로 일해야 한다.”
몸값은 아주아주 비쌀 거다. 그 돈을 내느니 차라리 포기할 만큼. 그래야 교훈이 되니까. 아. 잘못 덤벼들었다간 저렇게 되겠구나. 이런 교훈 말이다.
죽이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이렇게 사람들이 두고두고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게 진정한 복수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볼 때마다 통쾌하게 생각할 거고.
이런 변방에는 힘들어서 사람들이 회피하는 일들이 무척 많다. 노예들이 주로 일하는 곳이 그런 곳이다. 위험하고 힘들어서 다들 하지 않으려는 일.
사주에는 노예가 많았다. 강력한 통치 권력이 없어서 더 그런 듯했다. 공공연하게 노예를 사고파는 시장도 있는 판이다.
노예가 죽으면? 그럼 그냥 끝이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상단 사람들은 모두 부들부들 떨었다.
“장로님. 이런 말씀을 여쭙는 게 송구하기는 하지만..”
사혈련 지부장은 철각패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들을 노예로 부리다가 죽기라도 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상관없다. 성흥 상단은 앞으로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러니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저들은 노예로 삼는다.”
성흥 상단을 완전히 축출한다는 말에 지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문제는 없다. 그는 사혈련 수뇌부가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러면 몰수한 재산은.. 헤헤..”
“가장 먼저 성흥 상단에 그동안 당한 자들에게 나누어준다.”
철각패도의 말에 지부장은 깜짝 놀랐다.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나 해서였다.
“이곳에 빨리 자리를 잡고 잡음이 덜 나려면 그 방법이 가장 좋다. 이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모두 밝히고 그걸 단죄한 게 우리가 되는 거다.”
지부장이 생각해보니 그럴싸했다.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할 거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다른 곳에서 시비를 걸 명분이 약해진다.
사혈련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 이번 일을 핑계로 다른 세력에서 공격해 오면 낭패다.
지부장은 그런 생각을 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철각패도 장로의 지시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돈을 받고 무사들을 넘겼다. 하지만 점혈을 해 놓아 손쉽게 상단을 접수했고. 그리고 이놈들은 노예로 부려 힘을 과시한다. 게다가 이들 돈으로 이곳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성흥 상단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을 얻어냈다. 피해는 하나도 없이. 과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사파의 거물이 되는 거구나.’
모든 역학관계를 꿰뚫고 적절하게 내린 명령. 지부장은 큰 소리로 감탄하며 말했다.
“크아.. 역시 장로님은 다르십니다. 제가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지부장은 성흥 상단에 당한 사람을 싹 찾아내서 재물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고.
“음.. 다른 상단에 적당히 약을 치고, 군에도 인사를 하고..”
“그런 건 알아서 해라.”
철각패도는 대답을 하면서 가만히 지부장을 쳐다보았다. 또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사실 포인트 때문에 그렇게 한 건데..’
내버려두자. 알아서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