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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45화 (4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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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라는 건 적당히가 없는 거다.

검은 형제단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든 철각패도는 다시 사혈련 지부에 들렀다. 그가 지부에 다시 나타나자 사혈련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다들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해 했다.

“무슨 일로 다시 오셨는지.. 헤헤..”

지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부장이라기보다는 아부 잘하는 똘마니 같은 느낌이었다.

“검은 형제단에 대해 조사해라.”

“저기.. 장로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검은 형제단은 세력이 워낙 강한 곳이라서..”

화들짝 놀란 지부장이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의 상황에 대해서 빠르게 털어놓았다.

“사실 사주는 지금 무법천지나 마찬가집니다. 군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영..”

사주, 그러니까 돈황의 현재 상황은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였다. 여러 세력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세력이 강한 데를 꼽으라면 네 곳 정도 됩니다요. 검은 형제단, 중원 4대 상단의 연합..”

그리고 서역 상단 연합, 토번왕. 검은 형제단이야 회족 전사 일부와 범죄자들로 구성된 무리였고, 이 지역을 사실상 휘어잡고 있었다. 상단 연합 두 곳은 말 그대로 상단 연합이었고.

“토번왕?”

“토번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있는데, 가르랑다라는 자가 스스로를 왕이라고 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습죠.”

들어보니 검은 형제단 가장 큰 세력이었는데, 토번왕의 세력이 커지면서 충돌이 찾아졌다고 했다. 반면 상단 연합 두 곳은 아주 느슨한 형태. 큰 문제는 함께 행동하지만 각자 움직이기도 하는 모양새였다.

군대는 유명무실했다. 병력이 워낙 적었다. 다만 건드렸다가 대규모 토벌군이 오면 곤란해서 적당히 체면은 세워준다고 했다.

사혈련? 사혈련은 이곳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워낙 살벌한 동네라서 세력을 키울 수가 없었던 거였다. 하기야 그러니까 저런 놈이 지부장을 하고 있겠지.

“검은 형제단 내부의 정보를 캐오라는 게 아니다. 검은 형제단에 불만이 있는 자들이 많을 거다.”

“그거야 물론입죠..”

이런 살벌한 동네에서 큰 세력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피를 많이 봤다는 거다. 그 기간이 오래되었으니 그만큼 당한 사람도 많다는 뜻.

“그런 자들을 통해서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라. 원한이 있는 만큼 이야기를 잘 해줄 테니까. 그리고 4대 상단의 연합은 알아볼 수 있겠지?”

“4대 상단이야 이래저래 알아볼 방법이 있습죠. 헤헤..”

상단과는 어떤 형태로든 거래도 하게 되니 정보를 알아볼 방법이 많았다. 철각패도는 성흥 상단을 중점적으로 알아보라고 했다.

“최근에 검은 형제단과 어떤 움직임이 없었는지. 새로 나타난 인물은 없는지 조사해라.”

“예. 알겠습니다. 장로님. 그런데..”

지부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지부장의 말에 다른 놈들도 궁금한지 슬쩍 철각패도를 쳐다보았다.

“내가 이른 거나 제대로 알아봐라. 쓸데없는 호기심은 명을 단축한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저희도 대비를 하든가 해서..”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워낙 큰 세력을 건드리려고 하니 똥줄이 타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잘못하면 자신들 목줄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그러는 거겠지.

“남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혈채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검은 형제단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는 없다.”

남쪽에서 있었던 일? 피의 대가? 지부장은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쉽사리 어떤 일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혹시 얼마 전에 있었던 사혈련 식구들의..”

사주는 무역의 중심지. 엄청난 이권이 모이는 장소다. 사혈련 같은 무리가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세를 좀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일단 수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몇십 명이 본단에서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걸 기존 세력들이 두고 볼 리가 있나.

검은 형제단에서 습격해서 몰살시켰다. 평소 같았으면 몰살까지는 안 시켰을 텐데, 시기가 좀 좋지 않았다.

토번왕이 세력을 키워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데까지 세력을 키운다? 그건 검은 형제단의 위신에 금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본보기로 몰살을 선택한 거다.

지부장은 철각패도가 사혈련에서 복수를 위해 보낸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찌었다. 다른 자들도 머리를 조아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의 복수를!”

“피의 복수를!”

사혈련 놈들이 갑자기 엎드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응? 뭐냐? 이놈들은?’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았다. 복수? 무슨 복수? 난 모르는데?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그냥 착각하도록 두는 편을 선택했다. 하는 짓을 보니 검은 형제단에 당한 게 있는 모양인데, 그 복수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움직이겠지.

철각패도는 거기에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정보를 캐면서 소문을 내라. 검은 형제단은 이제 곧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오오~”

사혈련 놈들이 철각패도를 우러러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구세주처럼 떠받들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사흘 뒤에 다시 오겠다.”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장로님!”

“명을 행하겠습니다. 장로님!!”

지부장과 사혈련의 무사들은 고개를 조아렸다가 들었는데, 철각패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당신들 뭐하는 거야? 조심해야 할 건 절정 초입에 이른 목세강이라는 자 하나고, 나머지는 대부분 이류라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가 흔들렸다. 찻잔이 넘어져 찻물이 흘렀다. 하지만 검은 형제단의 혈랑대 대주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단장님까지 직접 행차를 하신 자리에서 나를 개망신 당하게 해?”

“저기.. 대주.. 잠시 고정하시지요.”

성흥 상단의 지부장은 죽을 맛이었다. 자신은 정말 본단에서 내려온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대로 정보를 주면서 의뢰를 한 거다.

“중간에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착오는 무슨 착오! 이런 걸 상단에서는 착오라고 하나?”

하지만 혈랑대 대주는 분을 삭히지 못했다. 성흥 상단에서 건네준 정보대로라면 전멸을 시키고도 남았어야 했다.

이 일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장안에서 사주로 통하는 새로운 길. 그것도 지금까지 다녔던 상로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되는 길. 그건 곧 엄청난 돈을 의미하는 거였다.

상인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래서 검은 형제단에서 의뢰를 받았다. 성흥 상단과 이익을 나누기로 하고서. 그런데 습격을 해보니.

“이런 찢어버릴 놈을 봤나. 절정 고수가 하나둘이 아니었어! 게다가 일류라고 보이는 무사들이 상당수였고. 이런 중요한 정보를 속여?”

변수를 감안해서 충분한 전력을 이끌고 갔다. 그런데도 형편없이 밀렸다. 상대가 너무 강해서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전력으로 습격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아직 기회는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기회는 무슨 기회? 이미 사주 근처까지 왔는데 뭘 어쩌라고?”

그렇게 소리는 질렀다. 하지만 검은 형제단에서는 재차 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주로 통하는 새로운 길? 그런 보물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야 있나. 확보만 하면 돈이 쏟아질 게 뻔한데.

상단 지부장은 대화를 하다가 그런 눈치를 챘다. 지부장이 어디 장사 하루 이틀 한 사람인가.

‘하아. 이 새끼들. 우리 빼고 지들이 다 먹으려는 거구만.’

속 보이는 짓이었다. 하지만 사진들이 정보를 잘못 건네준 건 사실. 게다가 원보 상단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그러니 검은 형제단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상하겠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우리하고 거래를 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지부장이 사정하자 혈랑대 대주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제대로만 처리를 해주시면 저번에 이야기한 것보다 일 할을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일단은 원보 상단 사람들을 잡아서 새로운 길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다른 상단으로 넘어갔다가는 난리 난다. 약간의 이익을 저들에게 더 주더라도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했다.

“일 할? 웃기는 소리.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르나본데..”

혈랑대 대주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조사단의 전력이 얼마나 강한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절정 고수가 최소한 서넛은 되고 대부분 일류 고수라는 점을 강조했다.

“야. 이 씨.. 검은 형제단 전체가 나서야 할 정도야. 그 정도로는 일하기 어렵지?”

“그러면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 겁니까?”

“삼 할은 더 받아야겠어.

지부장은 개새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원래 제시했던 금액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거기다가 새로운 길을 통한 이득의 일정 비율을 보장해 주었고.

그 정도면 현재 검은 형제단이 벌어들이는 금액 보다도 많을 거다. 그런데 거기에다 삼 할을 더 달라고 해?

협조는 얻어야 했지만,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면 손해만 본다. 지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삼 할은 너무 많습니다. 저희도 남는 게 있어야죠.”

“뭐? 그럼 지금 얘기를 깨자는 거야?”

혈랑대 대주는 소리를 질렀다. 계약을 깨도 좋다는 듯이. 하지만 성흥 상단 지부장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누가 분탕질을 좀 쳤다는 말이 있던데..”

“어허.. 분탕질은 무슨.. 그건 전사들이 없는 사이에 어떤 미친 새끼가 왔던 거고..”

검은 형제단이 골치 아파하는 것 중 하나였다. 토번왕도 신경 쓰이는데, 어떤 미친 놈이 와서는 검은 형제단 본거지를 공동묘지로 만들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쉬쉬했지만, 말이 퍼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검은 형제단을 지워버리겠다고 했단다. 그런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녔다.

“알지요. 암요. 그래도 골치가 아프실 수 있으니 저희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부장은 은근한 투로 말했다.

“저희가 이곳 군 책임자와 친하지 않습니까. 군대가 좀 힘을 쓰면 어지간한 놈들은 쉽게 움직이기 어려울 겁니다.”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계약을 깰 생각은 없었다. 대주와 지부장은 조금씩 의견 차이를 좁혔고, 결론에 도달했다.

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합의를 했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만났다는 건 몇몇 사람들이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확실히 성흥 상단하고 검은 형제단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

사혈련의 지부장은 철각패도가 오면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만. 그런데 검은 형제단을 상대하려면 인원이 많이 필요할 텐데.. 정예부대는 나중에 도착하겠지?”

“그렇겠죠. 에이. 설마 장로님이라고 해도 혼자서 그 놈들을 다 상대할 리가 있나요.”

“그렇지? 그래. 지금 고수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겠지.”

사혈련 무사들은 곧 정예고수들이 온다고 생각하며 크게 웃었다.

***

“속도를 높이자?”

“그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사주에 도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혁은 그렇게 제안했다. 돌아가는 걸 보니 또 습격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서예주는 진혁의 말에 찬성했다. 의견에 일리가 있기도 했고, 진혁의 의견이었다는 것도 컸다. 서예주는 최근 진혁의 말이라면 모두 수용했다.

“그럼 오늘은 야영을 하지 않고 바로 이동하고 속도도 조금 높이는 걸로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일 저녁이면 돈황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검은 형제단의 습격을 피할 수 있을 거고.

진혁은 일단 조사단을 안전하게 한 다음 복수전을 할 생각이었다. 물론 철각패도의 몸으로.

“저기.. 하 표사님은 잠깐 남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정말 급한 일이..”

진혁은 난처한 표정을 하고는 천막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어쩌겠나 급하다는데.

한숨을 쉬는 서예주를 홍 무관이 다독였다.

“아가씨. 언젠가는 하 표사도 진심을 알아줄 겁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시지요.”

“아니에요. 저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셨는데.. 제 탓이에요.”

서예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용서를 빌고 오해를 풀겠다고 말했다.

그 시각, 진혁은 정말 급한 일이 있었다. 그는 후다닥 뛰어 후미진 곳으로 가서는 곧바로 팔찌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진혁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같은 시각 돈황 근처 바위틈에서 철각패도의 몸이 나타났다.

“이놈들 잡으려면 빨리 움직여야겠는데?”

철각패도는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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