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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도 있기는 한데..
조사단 무사들의 실력이 갑자기 늘었다. 진혁이 돌아와서 분위기가 확 살아난 덕에? 아니면 그동안 수련한 것이 꽃을 피울 타이밍이 되어서?
다들 왜 그런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의 실력이 한결 좋아졌다는 거였다.
가장 바닥에 있던 무사들이 치고 올라오자 조금 윗줄이라고 생각하던 무사들이 긴장했다. 어? 이거 봐라? 하면서 수련하고. 그 위도, 그 위도.
그렇게 다들 갑자기 수련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쉬면 낙오할 것 같은 분위기?
“하 표사가 무공을 봐줘서 그런 거지. 그냥은 어림도 없는 일이야.”
목세강이 중얼거렸다. 홍 무관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단 중에서 무공과 관련해서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을 꼽으라면 이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둘 다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고된 수련 끝에 성취를 이루는 게 무공이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고수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어느 경지까지 이르러서는 계속 올라가는 문을 두드리던 사람. 그런 사람 중에서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무공이 늘게 되는 거다.
“고수와 하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모두 갑자기 실력이 느는 건..”
“어디 가서 말했다가는 사기꾼 소리 듣기 딱 좋지요.”
둘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이었다. 둘의 말대로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있다. 게임과 비슷하다. 저레벨에서는 레벨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고레벨로 올라갈수록 어렵고.
하지만 이렇게 수준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동시에 쭉쭉 성장하는 건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그 중심에는 진혁이 있었다.
“참 신기한 친구야. 저런 걸 알려주려면 본인이 위에서 내려다봐야만 알 수 있는 건데..”
목세강이 말했지만, 홍 무관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저런 가르침은 나이 지긋한 고수나 가능한 경지로 보였다. 그것도 무학을 평생 파고들어 아주 박학다식해야만 가능한.
그런데 진혁의 나이는 이십 대 초반이다. 정말 기이한 일. 더구나 목세강 자신도 도움을 받았다.
진혁은 사부가 생전에 해준 말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무학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그런 게 있는 것 같았다.
아니라면 이런 현상은 말이 되지 않았다. 목세강은 누군가 진혁의 능력을 안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납치하리라 생각했다.
문파의 전력이 급상승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있겠나. 목세강은 입단속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봤지? 봤지?”
한 무사가 사방으로 날뛰며 소리쳤다. 그의 검에는 은은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뽑아 올린 검강. 난리를 칠만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가 옆구리를 툭툭 쳤다.
“야. 저기..”
“왜?”
무사는 순간 흠칫했다. 동료가 가리킨 곳에 진혁이 서 있었다. 자신들의 실력이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성장할 수 없는 사람.
진혁은 내공이 거의 없어 검강을 만들 수 없다. 그렇게 알고 있는 무사는 갑자기 미안해졌다.
“저기..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아니에요. 축하할 일이죠. 그 느낌 잊지 않게 다시 해보세요. 초반에 몸에 잘 붙이는 게 중요합니다.”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진혁. 무사는 더욱 미안해졌다. 그는 이게 다 진혁 덕문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진혁도 마주 보며 웃었다. 마음속으로 포인트 감사히 받겠다고 하면서.
‘그리고 아저씨. 나 그렇게 하수 아니야. 내가 당신보다는 훨씬 강하거든?’
현천문의 무공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최적화가 되어 있는 무공이었다. 사람을 상대할 때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진혁의 무공 수위는 이곳에서 상위권이었다.
‘목세강 아저씨는 힘들고, 한천위 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
한천위가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만약 활성화가 100%가 되면? 그러면 목세강보다는 윗줄일 거다. 하기야 철각패도의 몸이 되면 목세강 정도는 찜쪄먹을 수 있으니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웃겼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 철각패도로 몬스터를 상대해 보았다.
와. 정말 힘들었다. 진혁으로 상대할 때는 우스웠는데, 철각패도는 아니었다. 오크 전사 상대하는 것도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미노타우르스하고는 싸우다가 도망쳤다.
내공과 마나의 차이가 그렇게 컸다. 그러니 철각패도는 무림인 전용, 진혁은 몬스터 전용으로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저기..”
“아. 어쩐 일이십니까. 상단주님.”
서예주에게 진혁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혹시 지금 시간이 되시나 해서요.”
“아. 저런.. 지금은 무사들 도와주는 시간이라서 시간을 내기가 좀..”
“그러시군요. 아까도 바쁘다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진혁은 양해를 부탁한다고 하고서 다른 무사에게 다가갔다. 서예주는 그런 진혁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
“홍 무관 아저씨. 그게 어디다가 뒀죠?”
서예주는 짐을 뒤지다 홍 무관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물었다.
“예?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그거요. 그거. 비상용으로 챙겨 온 거요.”
“설마 소청단 말씀하시는 겁니까?”
홍 무관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예. 그거 어디다 뒀더라? 여기에 같이 둔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왜 찾으십니까? 혹시 어디 다치신 데라도..”
서예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 표사님 드리려구요. 원기가 많이 상했다고 해서..”
홍 무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는 할 수 있다. 진혁을 죽을 뻔하게 만든 것이 미안했을 거다. 그 죄책감에 뭐라고 해주고 싶을 거고.
“아가씨. 하 표사에게는 그런 영단이 잘 듣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내공과는 달라서..”
“그래도 먹으면 몸에는 좋을 거잖아요.”
소청단이 어떤 물건인가. 무당의 태청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림에서 알아주는 영단이다.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 그런데 그걸 무슨 보약 취급을 하다니.
“아! 여기 있다.”
서예주는 금색 목갑을 찾아내고는 활짝 웃었다. 홍 무관은 그녀를 말리려고 했는데, 서예주는 후다닥 밖으로 뛰어 나갔다.
“후우.. 일단은 그냥 지켜보는 게 좋겠지?”
홍 무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려서부터 모셔와서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홍 무관이었다. 지금은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저기. 하 표사님.”
밖으로 나간 서예주는 하 표사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아. 죄송합니다. 상단주님. 지금은 괴초를 찾으러 가야 해서.. 혹시 급한 일이신가요?”
“아. 아니요. 그럼 일 먼저 하세요.”
괴초를 찾는 일도 조사단으로서는 중요한 일이다. 서예주는 목갑을 만지작거리며 멀어지는 진혁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좀 그런가? 내일 줘야겠네.”
서예주는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죄송합니다. 정찰을 나가야 해서.”
“죄송합니다. 무사들 무공 수련 때문에..”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서예주는 조금 서글펐다. 그동안 자신이 한 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피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잘못은 자신이 크게 했다. 그녀는 마음을 잡고 다시 진혁을 찾았다. 이번에는 대뜸 목갑을 내밀었다.
“저기 이거 복용하세요. 원기가 많이 상했다고 들었어요.”
“이게 뭐지요?”
“소청단이에요.”
진혁은 그 소리를 듣자 목갑을 다시 내밀었다.
“저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원기를 보충하고 내상에 효험이 크다고 들었어요. 그냥 복용하세요.”
“과분한 물건입니다. 나중에 중요할 때 사용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진혁은 끝끝내 목갑을 돌려주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소용도 없는 물건이었다. 내공이 아닌 마나를 사용하니까. 그것보다 이걸 받으면 곤란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오는 포인트가 또 줄어들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정말 간사하다. 그렇게 죽고 못 살 것처럼 굴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니 다들 그런 마음이 옅어졌다.
그래서 수련을 도와줄 때 일부러 엄하게도 했다가 힘들게 시키기도 했다. 그런 후에 조금 잘 해주면 효과가 좋아서였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약발이 떨어져 가는데 이런 걸 받으라고?’
소청단이 어떤 물건인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영단이다. 소림에 대환단과 소환단이 있다면 무당에는 태청단과 소청단이 있다. 쉽게 말하면 태청단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그런 걸 받았다가는 당장 사람들의 질시를 받을 거다. 설마 무공을 그렇게 봐주고 잘해줬는데 그러겠느냐고?
내기해도 좋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속으로는 다 그런 생각 한다. 내가 포인트로 사람 마음 확인해 봐서 잘 안다. 그러니 이런 영단을 받았다가는 포인트 받는 건 꽝이다. 그래서 거절했다.
‘게다가 가장 높은 사람하고 친하게 보이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되지.’
하지만 서예주는 자신을 일부러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살짝 흔들리긴 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
조사단은 큰 전투 없이 이동했다. 진혁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의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범위나 여러 가지 확인할 게 많은데..’
그렇다고 일부러 괴물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런 아이템이 더 있을 거야.’
진혁은 이 괴물들이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몬스터의 무기나 갑옷은 여기 물건이 아닐 거다. 그게 없는 놈들은 전투 중에 파괴가 되거나 그랬을 거고.
그래서 무기나 갑옷이 있는 놈도 있고, 없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마법 아이템. 분명히 다른 세상에서 온 놈들이다.
‘중심부를 확인할 걸 그랬나?’
진혁이 생각한 가상의 중심부가 있었다. 놀과 오크, 미노타우르스가 사는 곳을 지도에 그려보니 중심부라고 짐작되는 곳이 있었다.
거기까지 갔다 올 시간도 없고 굳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가지 않았을 뿐. 하지만 돌아갈 때는 한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저기 좀 봐.”
한천위가 진혁을 툭툭 쳤다. 진혁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저기가 사주인가?”
“글쎄?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이제 정말 대장정의 끝이 보였다. 물론 여기서 불빛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도 제법 시일이 걸릴 거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진혁은 마나를 감지해 보았는데, 이 부근에서만 약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는 건 이 너머에는 몬스터가 없다는 말.
그 다음 날, 조사단은 이 부근을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 흩어졌다.
“각각 맡은 지역 자세히 조사하고 다시 이곳으로 모인다.”
목세강과 소수 인원은 본대에 남았고, 나머지 인원은 네 무리로 나뉘어 흩어졌다.
이곳만 조사가 완료되면 새로운 길이 생기는 거다. 장안에서 돈황까지 이어지는 길이. 원보 상단만이 아는 길. 이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거래를 한 차례만 성공하면 된다. 그래서 상로를 확보했다는 걸 인정받으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물론 혼자 온전하게 먹을 수는 없을 거다.
“어디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4대 상단 중에서 한 곳과 손을 잡아야겠죠.”
홍 무관의 물음에 서예주가 대답했다. 성흥 상단이야 당연히 제외. 그녀는 천문 상단이나 구룡 상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서예주는 조사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특히 진혁이 포함된 일행에 계속해서 눈길을 주었다.
진혁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하루라도 빨리 돈황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볼 게 있어서였다.
“너무 멀리 온 거 아닌가?”
“뭐. 어차피 마지막인데, 최대한 자세하게 조사하면 좋죠.”
진혁은 괴물이 사는 마을이나 지형지물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꼼꼼하게. 그리고 손을 번쩍 들었다. 끝났다. 이제는 돈황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때.
-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들렸다. 응급 상황에서만 불게 되어 있는 호각이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대가 있는 곳이었다.
“이런. 위급 상황이야!”
“뛰어!”
진혁과 일행은 본대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