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 / 0150 ----------------------------------------------
빠르게 성장하는 비법?
진혁은 지금까지 사냥했던 곳을 벗어나 더 강한 몬스터를 찾아 움직였다. 놀이나 오크의 마을 위치를 보면 대강 짐작이 되었다.
“놀이 가장 바깥이고 조금 안쪽에 오크가 있는 형태니까..”
오크 마을보다 안쪽으로 가면 더 강한 몬스터가 있을 거다. 진혁은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기대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는 건 오크나 놀이 이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는다는 말. 다시 말해 포식자가 살고 있다는 거다.
진혁은 포식자가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서 계속해서 움직였다. 혹시나 기척이 느껴지는지 살피면서. 그렇게 한동안 움직였는데.
“오~ 이거 굉장한데?”
숲이 끝나고 바위와 모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그저 바위와 모래였으니까. 하지만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자연의 풍광이 던져주는 장엄함. 진혁은 저절로 하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뭐지? 신기루인가?”
저 멀리 모래 중간중간에 커다란 돌기둥 같은 것이 보였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이상 이곳에 돌기둥이 있을 리 없었다.
“옛날 궁궐터 같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기둥이 솟아있는 곳에서는 무언가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혁은 저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각이 달랐다. 숲의 사각거림이 모래의 푹신함으로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숲의 그늘과 초목의 싱그러운 향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금은 따가운 햇빛과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열기가 폐부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감각보다 눈앞에 보이는 기이한 돌기둥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서양 신전의 기둥 같은데..”
어떤 양식인지는 잘 모른다. 코린트? 이오니아? 뭐 대충 그런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생각나지는 않았다.
손으로 기둥을 만졌다. 까끌까끌한 표면. 돌가루가 조금 떨어졌다. 진혁은 주변을 살폈다.
아무런 규칙도 없고 특별한 모양도 아니었다. 그저 돌기둥이 여기저기 쑥쑥 나 있었다. 마치 숲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굵기와 높이도 모두 달랐고, 무언가 무늬 같은 게 새겨져 있는 것도 있었다. 기둥 간의 거리도 제각각이었다.
“가만. 이곳에 어떤 괴물이 있다고 했었는데?”
약초꾼 중에 가장 깊이 돌아다닌 자. 괴초의 효능을 아는 그 약초꾼이 말했었다. 괴물이 동료 약초꾼을 잡아먹는 걸 보았다고.
“알유?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 약초꾼은 알유라고 하면서 덜덜 떨기만 했다. 머릿속에 없는 이름이어서 그게 어떤 괴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쿠어어어엉!”
굵고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덩치의 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무언가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모래 먼지를 흩날리며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몬스터.
몬스터가 가까이 다가오자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뿔을 가졌고, 거대하고 단단한 몸뚱이. 흉폭한 기세로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는 괴물.
“소?”
산해경에는 알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소처럼 생긴 데다 몸이 붉고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말 다리가 달렸고, 사람을 잡아먹는다.
미노타우르스였다. 포악한 성격에 사람을 잡아먹는 미궁의 마물. 그 거대한 몬스터는 진혁을 발견하고는 크게 울부짖었다.
“쿠어어어엉!!”
키가 4미터도 넘어 보였다. 압도적인 크기. 게다가 손에는 배틀액스를 들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생긴 거대한 도끼. 배틀액스가 진혁보다도 큰 것 같았다.
‘어이. 이건 좀 아니잖아. 그런 무기까지 드는 건..’
- 후우웅~
미노타우르스는 다짜고짜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기중기로 들어올려야 할 것 같은 배틀액스를 소 새끼는 야구 방망이처럼 휘둘렀다. 진혁이 몸을 피하자 배틀액스는 돌기둥을 때렸다.
- 콰아아앙!
커다란 돌기둥의 일부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터져나갔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튕겨 나간 돌조각에 맞아도 어디가 부러질 것 같았다.
돌조각이 그 정도인데 저 도끼에 찍히면 어떻게 되겠나. 진혁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오크나 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녀석에게 비교하니 오크 전사는 유치원생 같은데?”
진혁은 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자세를 잡았다. 진혁이 요리조리 피하자 미노타우르스는 화가 치미는 듯 더욱 거칠고 난폭하게 날뛰었다.
- 푸화아아아악~
도끼가 바닥을 찍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며 모래가 치솟았다. 모래의 파도가 덮치는 느낌.
“무식한 새끼. 진짜 저거 맞았다가는 골로 가겠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진혁은 도끼를 피하며 기회를 보다 미노타우르스의 뒤를 잡았다. 스읏 하는 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발목을 노리고 날아가는 검.
하지만 미노타우르스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놀림이 재빨랐다. 점프를 하면서 살짝 피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 촤앗!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달랐다. 베어지는 감촉이 아니라 살짝 튕겨나는 기분?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금은 베어졌는데, 그러다 말고 튕겨난 느낌이었다.
미노타우르스의 허리춤에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녹색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겉에만 난 상처인 듯했다.
괴물. 정말 괴물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괴물이니 무림인들이 밀렸지. 마나를 사용하는 자신도 상당히 버겁다. 그런데 내공만 쓰는 무림인들? 저 도끼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을 거다.
목세강이랑 붙으면 결과가 어떨까? 진혁은 내공만 사용하는 목세강이라면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코팅된 검을 가지고 붙는다면? 그러면 조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도 이놈한테 점수를 더 줄 것 같은데? 목세강이 밀릴 것 같아.”
빠르고 강했다. 엄청난 전투력. 그렇다고 둔하거나 느린 것도 아니다. 도끼로만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주먹과 몸, 뿔로도 공격을 해왔다.
목세강이 경지에 이른 강자인 건 분명했지만, 이놈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몬스터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상급 몬스터의 위엄.
충분히 상대할 만해. 활성화가 덜 되어서 겨우 상대하고 있는 것뿐.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놈들은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
확실했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덤빈다면 버겁겠지만, 한 마리는 잡을 수 있었다. 진혁의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쿠어어엉~”
구슬픈 소리를 지르며 미노타우르스가 쓰러졌다. 거대한 마나의 물결이 진혁을 덮쳤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시원한 느낌.
- 능력의 $# %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세 마리째.
여전히 숫자 부분이 깨져 보였지만,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쭉쭉 늘었다.
놀아니 오크를 잡을 때는 이게 느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활성화가 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였다. 그런데 미노타우르스는 아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가 늘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5%, 10%씩 확확 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증가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크나 놀을 수백 마리 이상 잡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진혁은 심호흡을 하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이고.. 좀 쉬었다가 해야겠다. 효과는 확실한 데 이거 확실히 힘은 드네.”
허기가 졌다. 오크나 놀은 아무리 상대해도 지치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 놈은 한 마리만 상대해도 진이 쪽 빠졌다.
진혁은 불을 피워 넣고는 미노타우르스의 몸을 뒤졌다. 워낙 덩치가 커서 마나 스톤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진혁은 한참을 뒤진 후에야 마나 스톤을 찾을 수 있었다. 붉은빛을 띠고 있는 마나 스톤.
- 상급 마나 스톤
상급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희귀한 마나 스톤.
[................................................]
그리고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자세히 보려 하면 아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확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레벨인가? 아니면 활성화?”
이제는 욕하는 것도 지쳤다. 그냥 때가 되면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화를 내고 난리를 쳐봐야 혼자 미친놈 되는 거다. 그냥 계속 레벨도 올리고 활성화도 하다 보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런 엄청난 괴물도 잡을 수 있고.”
진혁은 검을 들어서 미노타우르스의 살을 조금 베어냈다. 배가 출출했기 때문이었다.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불에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이 떨어지면서 기가 막힌 냄새가 퍼졌다. 미노타우르스의 고기는 무척 맛있었다.
혹시나 먹고 잘못되면 어쩔까 싶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소고기 중에서 최고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덩치가 워낙 커서 한 마리만 잡으면 수십 명이 먹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진혁은 고기를 먹으면서 며칠만 더 이놈들을 잡고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웅.. 죽이네. 죽여.”
입에서 그냥 녹았다. 탄력 있는 살코기에 적당한 기름기가 있어서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혁은 맛을 즐기며 고기를 뜯다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낮고 묵직한 울음 소리. 쿵쿵거리는 소리. 또 한 마리가 이쪽으로 온다는 표시였다.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같이 다니지는 않나? 꼭 한 마리씩 다니네?”
멀리서 오고 있는 녀석도 한 마리였다. 자기들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
하기야 누가 이놈들에게 덤빌 수 있을까. 만나면 도망치기 바쁠 거다. 그러니 사냥을 위해서라도 여럿보다는 혼자 다니는 편이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놈들에게는 재앙인 거다. 이렇게 한 마리씩 와 주면 진혁으로서는 고마울밖에.
“어서 와라. 경험치야. 너는 특별히 안 먹어 줄게.”
진혁은 편의상 몬스터를 잡고 얻는 걸 경험치라고 불렀다. 포인트와는 또 다른 개념이었으니까.
미노타우르스는 기세등등하게 왔고 거칠고 포악한 기세를 내뿜었다. 한동안 모래 먼지와 돌조각을 날리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쿠어어엉~”
다른 놈들과 똑같은 구슬픈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그런데 이놈은 무언가가 달랐다. 그 녀석이 쓰러지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반짝이는 게 보였다.
“어? 뭐지?”
진혁은 반짝거린 게 무언지 싶어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모래 사이에서 팔찌 같은 걸 하나 찾았다.
- 미노타우르스의 반지
미노타우르스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마법 반지.
동료로 인식된 개체에게 영향을 준다.
공격력 +3%
방어력 +3%
공격속도 +3%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반지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아이템이었다. 비현실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몬스터도 나오는 데 아이템이라고 없겠냐.”
웃기는 건 팔찌가 아니라 반지라는 거였다. 쓰러진 미노타우르스의 손가락에 가져다 대보았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마법 아이템이었다. 진혁이 자주 하던 게임용어로 하자면 광역 버프 아이템? 물론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동료로 인식된다는 건 뭔지. 허용 범위가 있는 건지. 일정한 조건이라는 건 또 뭔지. 하지만 보이는 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다.
“게다가 성장형 아이템이야. 그렇다는 건 이거 잘 키우면 엄청난 건데..”
진혁은 팔찌 같은 반지를 들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손가락에 가져다 대보기도 했다.
“그냥 팔에다가 껴야 하나?”
그런데 그 순간 반지가 쏘옥 작아져서 손의 크기에 맞게 줄어들었다. 진혁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래애~. 마법 아이템이라잖아. 뭐가 이상하겠냐.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러엄~.”
진혁은 그냥 인정했다. 뭔들 말이 안 되겠어. 몸도 두 개고 무림에 몬스터가 나오는데. 그래. 막장 게임 한다고 생각하자. 진혁은 그 자리에 앉아서 식은 고기를 마저 먹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왜? 달도 한 세 개쯤 뜨지?”
진혁은 투덜거리면서 고기를 먹었다.
“뭐. 고기 맛은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