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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성장하는 비법?
진혁이 꺼낸 건 풀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풀은 이 지역의 일부 약초꾼들만 아는 거라고 하더군요. 약초꾼들은 괴초라고 하던데, 이걸 지니고 있으면 괴물들이 잘 덤비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사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개중에는 벌떡 일어나서 진혁에게 다가가는 자도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진짜야?”
“어디. 나 좀 보자고.”
“어떤 풀인데? 이름이 뭐라고?”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호기심을 보이는 자도 있었고,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저 풀이 뭔지만 알 수 있으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아니면 떼돈을 벌 수도 있고.
진혁은 일어나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일단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시죠.”
진혁은 한껏 기대를 부풀린 다음 좋지 않은 면을 말해주었다.
“같은 풀이라도 어떤 건 효과가 있고, 어떤 건 없답니다. 제가 몇 번 해보았는데 사실이더군요.”
게다가 완벽하게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갈저 같은 작은 괴물에게만 효과가 있고 큰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괴물이라도 굶주렸거나 흥분한 상태면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진혁이 거기까지 말하자 사람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러 가지로 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는 풀과 아닌 풀을 구분하는 방법을 우연히 알아냈습니다.”
실망했던 사람들의 표정에 다시금 기대감이 감돌았다.
실제로 이 지역 약초꾼들이 괴초라고 하는 이 풀을 쓴다. 사혈련에서 데려 온 세 명의 약초꾼. 그중 한 명이 유난히 깊은 곳까지 돌아다녔는데, 그걸 철각패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약초꾼에게 상냥하게 물어서 알아낸 거였다.
그 약초꾼은 이 풀을 잔뜩 가지고 다녔다. 어떤 게 효과가 있는지 모르니까. 그런데 진혁은 보고서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마나를 품고 있으면 효과가 있고, 아니면 없는 거였다.
“어떻게 구분을 하는 거요?”
진혁은 대답 대신 풀을 손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진혁의 손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진혁은 손가락을 가지고 풀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위쪽에 있는 풀에는 물방울 같은 게 맺혔고, 아래쪽에 있는 풀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여기 물방울 같은 거 보이시죠? 물방울이 맺힌 위에 있는 게 효과가 있는 겁니다.”
“그건 어떻게 한 거죠?”
여자의 목소리. 서예주의 질문이었다. 홍 무관이 직접 가서 보시는 게 좋겠다고 해서 나와본 길이었다. 진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거니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사문의 심법을 사용한 겁니다. 내공이 아주 미약하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서예주는 진혁을 쳐다보았다. 진혁의 말은 상당히 많은 걸 내포하고 있었다. 현천문의 심법으로 그걸 가려낼 수 있다? 그렇다면 효과가 있는 풀을 가려내는 건 현천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천문의 심법으로만 구분이 가능한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저도 우연히 알아낸 거니까요.”
진혁은 자신만만했다. 다른 심법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도 한 거다. 물론 이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마나 스톤. 하지만 그건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
서예주는 진혁에게 이야기를 좀 하자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에요. 당연히 아시겠죠?”
“예. 괴물로부터 어느 정도는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요.”
서예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원하는 걸 얘기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드리겠어요.”
진혁은 대답 대신 물었다.
“이 풀, 그러니까 효과가 있는 풀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치를 따질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걸 얘기하라고 한 거에요.”
서예주는 어떤 걸 말해도 그 가치에 미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시겠지만, 지금은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원보 상단을 통째로 드려도 모자랄 것 같아요.”
“흐음..”
진혁의 생각도 비슷했다. 하지만 서예주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대신 이번에 사주로 통하는 길을 뚫게 되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원하시는 보상을 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서예주는 그 정보를 독점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먼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나중에 다른 상단에 팔아도 된다고 했다.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가치를 속이지 않고 제대로 알려주고 협상을 하려 하고 있었다.
‘하기야 내가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 그러는 걸 수도. 그렇다고 지금 나를 어쩌지는 못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지나치게 좋은 조건 같습니다.”
“아니요. 제대로 된 가치죠.”
서예주는 속임수를 쓰는 상인은 큰 상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이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알면 누가 저랑 거래를 하려고 할까요?”
순진한 거야? 아니면 나에게 잘 보여서 싸게 받으려고 하는 거야? 이거 헷갈리는데?
진혁은 서예주의 생각과 달랐다. 저건 아주 원론적인 말이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늘리고. 그렇게 돈을 모으고 그 돈을 바탕으로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렇게 해서 세력을 키워나가면 거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진혁이 본 상인은 거의 그랬다. 이곳에서 본 상단도, 예전에 있던 곳의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평판이나 신의? 그런 건 광고에나 써먹는 거였고, 실제로 그런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그 극소수 중에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아주아주 극소수였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였지.’
“정말 이 사실을 다른 상단에 팔아도 된다는 겁니까?”
“그거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서예주는 이건 자신이 탐을 낼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걸 독점하려고 했다가는 원보 상단 같은 건 공중분해 되어버릴 거다.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고.
정말 별거 아닌 것으로도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괴물에게서 안전할 수 있는 그런 큰 이권은 감당할 수 없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어차피 자신은 손해 볼 게 없다. 진혁은 조금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니까 같이 고생을 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나눠주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사주까지 가는 데 성공을 하면 모두가 그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예주는 이상한 눈으로 진혁을 쳐다보았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본인은 그 정도로 만족하겠다는 건가요?”
“예. 정말입니다. 저도 우연히 발견한 건데 큰 재물을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진혁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금액만을 더 달라고 했다. 그것도 그런 걸 하나도 바라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 할까 봐 넣은 조건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계약서를 작성할 거예요.”
“물론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모두가 같이 이익을 얻는 겁니다.”
서예주는 진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거짓말. 진실이 아니야.’
제대로 보았다. 진혁은 이것도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같이 이익을 얻는 걸 바란다는 건 그냥 인사치레 같은 말이다. 나중에 밥 한번 먹자는 것 같은. 하지만 서예주는 그걸 바로 눈치챘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서예주는 별다른 말 없이 찬성했다. 자신도 손해 볼 게 없으니까.
***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진혁이 풀을 선별해서 나눠주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갈저가 습격하지 않았다.
조사단은 정찰을 통해서 괴물의 마을과 같은 위험한 곳만 피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정말 괴물이 전혀 없는 지역을 지나는 것 같았다.
“허어. 이 풀이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같은 괴초라고 해도 진혁의 검사를 받지 않으면 위험했다. 어떤 지역에 있는 괴초는 전혀 효과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조사단은 지형과 괴물들의 마을 같은 걸 자세하게 기록하면서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는 데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혁은 고맙다는 인사를 무척 많이 들었다. 상단주와 계약한 내용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같이 고생했는데 당연한 거죠. 그리고 그런 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분명히 말하지 말라고 했다. 진짜다.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왕칠에게 말해주었다. 왕칠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비밀이라고 하면서 알려주었고.
수다를 잘 떠는 왕칠에게 왜 말해주었겠나. 정말 말을 하지 않았으면 당황했을 거다.
그렇게 포인트를 꾸준하게 벌었는데, 이제는 약발이 떨어졌다. 그러니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
“가야지?”
“예. 전보다 많이 나아지셨어요.”
왕칠은 히죽 웃으면서 빨리 가서 수련을 해야겠다고 떠들었다. 그러자 성흥 상단에 고용 되었던 무사들이 관심을 보였다.
진혁이 무공을 봐주는 걸 왕칠이 떠들고 다녀서 대부분 다 알았다. 그런데 꼭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무공이란 건 조금만 잘못 봐줘도 큰일 날 수 있는 거야.”
“맞아. 고수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봐주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의심의 눈초리. 진혁을 다소 고깝게 보는 녀석들이었다.
처음에야 다들 고마워하고 그랬지. 그런데 다들 진혁 진혁 하니까 심사가 뒤틀리는 자들이 생겼다. 진혁은 그런 자들이야말로 집중 공략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까가 빠가 되면 무서운 법이거든.
진혁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안전한 것만 알려드리니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진혁의 말에 다른 무사들이 동의했다. 지금까지 문제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왕칠은 진혁에게 뭐라고 한 게 화가 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문제는 개뿔. 실력만 좋아지더만.”
“하이고. 고수가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 무사는 피식 웃었다.
“세상에는 고수 천지겠구만. 어?”
그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듯 쏘아붙였다.
“왜 고수가 거대 문파에서 많이 나오는 줄 알아?”
소리가 조금 커지자 주변에 있는 무사들도 귀를 기울였다. 무사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거긴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그 나이에 맞는 걸 좋은 스승이 가르치지.”
그건 그 문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거다. 게다가 영약도 꾸준히 복용한다. 영약이라고 소림의 대환단이나 천년 하수오 같은 건 아니다. 몸에 좋은 약이고 내공 증진에 다소 도움이 되는 약 정도.
하지만 그것도 꾸준히 쌓이면 무시할 수 없다. 명문으로 불리는 문파의 후지기수가 나와서 중년의 사파 거두를 물리치는 게 다 그래서 그렇다.
명문의 후지기수는 20대 초반이라도 내공이 20년 이상인 경우가 많으니까. 반면에 사파는 어떤가? 40세 정도가 되더라도 내공이 30년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명문에서 배운 녀석들은 고수들과 어려서부터 엄청난 훈련을 한다. 물론 훈련과 실전이 다르긴 하지만, 고수나 맞수와의 끊임없는 대결은 무인을 빠르게 성장시킨다.
비슷한 내공 수위. 하지만 내공의 정순함은 명문의 후지기수가 우위. 무공의 수준도 명분의 것이 대부분 높다. 그래서 사파의 거두가 강호초출에게 죽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헛된 꿈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
“압니다. 저도 잘 알죠.”
진혁이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들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엄청난 무학의 천재. 하지만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내공만 받쳐주었더라도 훨씬 고수 소릴 들었을 거다.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어떤지.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뭔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진혁은 가만히 말했다.
“제가 대단한 걸 해드릴 수는 없어요. 제가 무슨 신선도 아니고 말입니다.”
진혁이 웃으며 말하자 분위기가 약간 부드러워졌다.
“저도 해보니까 조금은 나아질 수 있더라구요.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요?”
사람들은 상상했다. 진혁이 얼마나 무공을 열심히 파고들었으면 지금처럼 박학다식하게 되었을까.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을 거다. 그래서 지금처럼 되었을 거다.
왕칠이 조용히 일어섰다.
“뭐 나야 아무리 노력해도 절정 고수가 되지는 못하겠지. 에이. 절정 고수가 뭐야? 일류 무사도 어려울 거야. 그런데 말이지..”
“확실히 전보다는 나아졌거든. 난 그래서 계속 하고 싶어. 꼭 일류가 못 되면 어때? 그냥 지금보다만 좀 나아지면 되는 거 아냐?”
무사들은 진혁을 쳐다보았다. 희망. 그들의 가슴에는 희망이란 불씨가 싹을 틔웠다. 진혁이 일어나며 말했다.
“다들 같이 가시죠. 제가 되는 데까지는 봐 드릴 테니까요.”
“아이고. 그러자고. 어디 이런 기회가 흔해?”
진혁과 무사들은 함께 움직였다. 그날따라 밤늦게까지 검 휘두르는 소리와 남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 장소에는 가끔 가만히 서서 뿌듯해 하는 모습과 나지막하게 웃는 소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