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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33화 (3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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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누구니?

이해한다. 천수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 거기는 괴물들이 득시글댔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자는 거다.

“천수에서 북로로 가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쪽은 그래도 괴물이 나오는 지역과 아닌 지역 정도는 구분되어 있어서..”

맞는 말이다. 그쪽은 그래도 조사가 많이 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괴물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성흥 상단하고 같이 움직이고 있단 말이다.

“사실 괴물도 위험하지만, 저쪽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남쪽 길로 가는 편이 좋다는 판단입니다.”

저쪽이 누굴 말하는 건지야 다들 알 거다. 성흥 상단. 지금이야 조심하는 분위기이지만 언제 칼을 겨눌지 모른다. 그러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괴물을 상대하는 건 더 잘하는 것 같으니 그편이 오히려 덜 위험할 거라면서. 사람들이 갑론을박했다.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저들을 떼어놔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차라리 남쪽 길로 가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괴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래도 성공만 한다면..”

서예주는 내 말에 동의한 듯했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남쪽으로 가는 게 위험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일단 이곳 사람들에게 정보를 좀 얻어보도록 하죠. 그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사단은 현지인을 통해 여러 정보를 모았다. 진혁도 철각패도의 몸으로 사혈련 지부에 들러 정보를 알아냈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쪽은 지옥이란다.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요. 그럼요. 헤헤..”

사혈련 지부장이 비굴하게 웃으며 비위를 맞추려 했다. 적당한 아부는 사회생활의 윤활유라고는 하지만, 지부장의 인상이 워낙 더러워서 기분은 별로였다.

“그래도 그쪽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있을 건데?”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알게 모르게 오가는 자들이 있다. 지부장은 뒤를 쳐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아는 놈 있으면 빨리 얘기하라는 눈치. 한 놈이 나서며 말했다.

“약초를 캐는 놈들이 그쪽을 잘 안다고는 합니다만..”

“데려와봐.. 아. 중요한 거 물어볼 거니까 아주 정중하게 모시고 오도록.”

지부장이 닦달을 했고, 밑에 있는 놈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철각패도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말을 툭 내뱉었다.

“좀 빨리 데려와라.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좀 빨리 얘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차를 내오고 지부장이 이쪽 분위기나 사정에 관해 입을 열심히 털었다.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을 다 해주어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기업의 사외 이사가 지방의 작은 지점을 방문한 느낌이랄까. 지부장은 눈치를 살피며 알아서 기었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역시 사파는 무공 강하고 인상 더러울수록 먹어준다는 걸.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약초꾼을 세 명이나 데려왔다. 남쪽으로는 자기들도 멀리 가지는 못한단다. 괴물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은 것도 있다고 했다.

대부분 쓸모없는 정보였는데, 개중에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있었다. 확인 과정이 좀 필요했지만. 철각패도는 사혈련 지부를 나와 객잔으로 향했다. 서예주가 묶고 있는 바로 그 객잔으로.

“대협.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요.”

“이쪽 사혈련 지부에 볼일이 좀 있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지부에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다.”

철각패도는 지도를 내밀었다. 괴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과 괴물 마을의 위치 등이 기록된 지도였다. 방금 만든 티가 좀 났다.

“아.. 어떻게 아시고 이런 걸..”

“얘기는 들었다. 갈저를 잘 막아냈다면서.”

“대협께서 추천해주신 목세강이라는 고수가 큰 힘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하진혁이라는 인물이 활약을 했는데..”

서예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는 저쪽에서 심은 첩자가 아닌가 하고 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속셈이 있어서 접근 한 자 같아요.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거든요.”

기가 막혔다.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믿을 수 없다니. 사실 능력을 다 보여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드러내면 아예 내쫓으려고 하겠는데?

“내가 알아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서예주가 놀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런 것까지도 알아보았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철각패도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내가 투자한 사업이니 망하면 큰일 아니냐. 이게 다 돈을 위해서 그러는 게다.”

성공해야 원금도 돌려받고 이문도 크게 남길 수 있으니 신경 쓰는 건 당연한 거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손해 보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서.

“저도 잘 안답니다. 반드시 성공해서 제 꿈도 이루고, 대협께 받은 은혜도 다 갚을 거예요.”

서예주가 방긋 웃었다.

“그러니 더욱 의심스러운 자는 조심해야죠.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허허.. 음..”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냐.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진혁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철각패도까지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워낙 빠르니까.

다음날, 서예주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남쪽으로 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큰 동요가 일었다. 사람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아니. 누가 거기로 길을 잡는답니까? 나는 못합니다.”

“괴물 소굴로 들어가겠다고? 난 빠지겠소.”

이탈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는데도 서예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진혁은 흥미로웠다. 어제 지도에 적어준 것 중 한 가지만 말해도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을 텐데,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아예 믿을 만하고 의지 강한 사람들로만 추리겠다는 건가?’

아니면 성흥 상단을 의식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중에 누가 스파이인지 모른다. 여기서 정보를 깠다간 바로 그쪽 귀에 들어갈 터. 물론 그쪽에도 스파이가 있겠지.

이런 것만 봐도 서예주는 보통 여자는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탈했다. 그리고 그건 성흥 상단의 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으로 간다고 하니 대량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은홍명과 장세문도 이탈했다. 종남파 무인 중 일부는 남아있었지만,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동행을 거부한 거였다.

“하이고. 당연한 거지. 원래 가진 게 많은 놈들이 몸조심은 드럽게 한다고.”

“그나저나 괜찮으려나? 그쪽은 완전히 괴물의 바다라고 하던데..”

한천위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목세강은 무조건 따라간다고 했다. 괴물을 많이 상대할 수 있으니까.

“자네들은 빠져도 돼. 나야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건 없네.”

목세강은 대단히 위험한 곳이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왕칠은 빠지고 싶은 눈치였다. 누군가 빠지겠다고 하면 바로 따를 것 같은 분위기.

“저는 갈 겁니다. 저도 가야만 하는 곡절이 있어서.”

“하 표사가 가면 나도 가야지. 뭐 설마 죽겠어?”

한천위는 호탕하게 웃었다. 가면서 같이 수련이자고 하면서. 그러자 왕칠도 남겠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잘들 있으시게.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진혁을 은근히 감시하고 괴롭혔던 위막군. 그는 목세강과 한천위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위험하다 싶으니 빠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끝까지 재수 없이 굴었다.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주변에 낭인들을 거느라고 다녔다. 저렇게 있어 보이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실속 있는 사람 못 봤다.

“그런데 넌 누구지?”

한천위가 조금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막군이 진혁을 괴롭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말에 위막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같이 고생한 사이에 말이 심하군.”

“고생? 글쎄? 나는 갈저와 싸울 때 본 기억이 없어서 같이 고생했는지 모르겠는데?”

한천위는 한껏 비아냥거렸다. 사실 위막군은 갈저를 상대할 때도 밥맛이었다.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 채 상황을 구경만 했다.

뭔가 대단한 척은 다 했지만, 실상 보여준 건 아무것도 없는 자. 위막군은 그런 자였다.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사람들을 이끌고 가버렸다.

“친분이라는 건 저렇게 친한 척하고 인사 몇 번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지.”

목세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느끼고 있었다. 서로를 믿고 있다는 것을. 그건 말을 하거나 표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피가 난무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 그런 곳에서 상대방의 뜨겁고 듬직한 등을 느꼈던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느낌.

네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

“막아!”

“빨리 옮기란 말야. 이놈들아. 다 죽고 싶어?”

역시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갑자기 갈저의 습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일전에 갈저 숫자의 수십 배는 되어 보였다. 습격을 일찍 알아챈 덕분에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 듯했지만, 무시무시한 괴물의 수에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왕칠 아저씨 빠지고 천위가 들어가.”

진혁은 가장 선두에서 갈저를 막으며 지휘에 여념이 없었다. 좁은 길목을 택해서 방어에만 집중했다.

“우리도 이제 슬슬 피하면 될 것 같은데?”

한천위가 일행이 멀리 피한 것을 확인하고는 진혁에게 이야기했다.

“오케이. 그러면 내가 신호하면 공격을 퍼붓고 바로 빠집니다.”

“오케이?”

말이 헛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급하니 나중에 둘러대야겠다.

“준비하고.”

진혁은 재빨리 앞에 있는 갈저들을 밀쳐내기를 반복했다. 마나를 진탕시켜 갈저의 방어력과 움직임을 낮추는 작업. 대충 작업이 끝나자 큰소리를 쳤다.

“자. 갑니다.. 아직.. 아직.. 아지이익.... 지금!!”

진혁의 신호에 사람들이 일제히 공격했다. 목세강은 강기를 끌어올리고 있다가 앞으로 튀어 나가며 엄청난 기세를 퍼부었다.

녹색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잘린 팔과 목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진혁은 놀이라고 알고 있는 갈저들의 괴성이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빠져!!”

갈저들이 주춤하는 걸 본 진혁의 외침. 사람들은 일제히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진혁도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진혁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어? 저 돌은?’

놀의 시체에서 나온 돌 하나. 작은 녹색 돌이었는데, 진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돌이 마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마나 스톤. 저건 마나 스톤이야.’

진혁은 그걸 집어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어어?! 뭐해? 빨리 빠져. 위험하다고.”

한천위가 그렇게 소리치더니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 소리에 목세강과 왕칠도 방향을 바꾸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생각하거나 계산하고 움직인 게 아닐 거다. 그냥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 사람은 진혁에게 달려왔다.

“괜찮아요. 갈저 하나가 발을 잡아서 처리하느라 조금 늦은 겁니다.”

마나 스톤을 품에 넣은 진혁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향해 달려갔다. 그제야 마음을 놓았는지 달려오던 세 사람은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진혁이 오기까지 기다려주었다.

“깜짝 놀랐잖아.”

한천위가 웃으면서 진혁의 어깨를 탁 쳤다. 진혁은 마주보며 웃다가 우측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보다 저쪽은 이번에도 고생하는 것 같은데..”

“신경 꺼. 저 새끼들 어차피 우리 잡아먹으려는 놈들이니까.”

성흥 상단의 조사단은 이번에도 피해가 큰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우러 갈 수도 없다. 거리고 거리지만, 갈저의 수가 너무 많았다.

진혁은 그것보다 마나 스톤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마나 스톤을 잘 활용하면 괴물을 상대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진혁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앞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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