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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32화 (3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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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누구니?

“갈저.. 갈저가 틀림없습니다요. 어이쿠..”

학자는 홍 무관의 뒤에 숨어서 벌벌 떨며 말했다. 산해경에 통달했다고 큰소리를 치는 학자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데려온 자였다.

“갈저는 동차사경에 나옵니다. 북호산이라는 곳에 사는데, 생김새가 이리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요.”

학자는 붉은 머리에 쥐 눈을 하고 소리는 돼지와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을 잡아먹는 놈들이니 조심하셔야.. 허어억..”

학자는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괴물을 보고는 다시 홍 무관의 뒤로 숨었다. 사방에서 괴물이 덤벼들었는데,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서예주는 괴물을 막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는 잘 막고 있군요. 그리 강한 놈들이 아닌 가 보죠?”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쪽을 보면..”

홍 무관은 다른 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성흥 상단의 조사단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쪽과는 달리 무척 고전하고 있었다.

“막아라! 물러서지 마라!”

은홍명이 뒤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무사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괴물이 주는 공포함은 무지막지했다. 사람을 상대했다면야 이렇게 피해가 나오지 않았겠지만, 무사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괴한 형상에 이상한 소리를 내는 괴물. 보기만 해도 질겁해서 손발을 제대로 놀리지 못했다. 그런데 쓰러진 무사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자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공포에 움직임은 더욱 둔해졌고, 그럴수록 피해는 늘어났다. 이럴 때는 고수가 나서서 분위기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은홍명은 나서지 않았다. 아직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으니까.

그 역시 괴물에 대한 공포는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자기만 손해 아닌가. 그러니 뒤에서 큰소리만 쳐댔다. 다른 고수들도 비슷한 심정으로 나서지 않았고.

“이상하군요. 우리 쪽 무사들이 더 실력이 좋은 건가요?”

“지금 상황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원보 상단의 조사단 쪽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괴물을 막는 무사들 표정이 굳어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막을 만하다는 자신감 같은 것도 살짝 엿보였다.

그 중심에는 진혁이 있었다.

“천위가 앞으로. 왕칠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방어만 해요.”

진혁은 괴물을 막으면서 천위와 왕칠, 목세강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괴물이 쳐들어왔을 때는 성흥 상단의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진혁이 뛰어들자 조금씩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진혁의 방어가 눈부셨다. 괴물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주변에 있는 다른 무사를 돕기까지 했다.

그렇게 진혁 주변이 안정되자 한천위와 왕칠, 목세강에게 이야기를 했다. 셋은 진혁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고, 삽시간에 괴물과 대치하는 곳 전체가 안정되었다.

“세강 아저씨. 제가 이놈들 밀쳐낼 테니까 아까처럼요.”

눈빛을 주고 받은 진혁과 세강은 곧바로 움직였다. 진혁은 앞에 있는 놀 두 마리의 공격을 이화접목으로 받은 후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해서 뒤로 밀어냈다.

목세강은 진혁이 공격을 받을 때부터 검에 내공을 집중해서 강기를 뽑았다. 그리고 진혁이 놀 두 마리를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강기가 빛을 내뿜는 검을 휘둘렀다.

- 촤아아악~

놀 두 마리의 머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치솟았다. 머리가 있던 목 부분에서 솟구치는 엄청난 녹색 피. 괴물의 몸뚱이가 땅바닥에 쓰러졌고, 저 멀리 날아간 머리도 땅에 떨어졌다.

공격을 막고 밀어내고 괴물의 머리가 허공에 뜨고. 두 사람의 합격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무사들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할 수 있다. 별거 아니다. 괴물을 막을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조금 위험해져도 동료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조사단 사람들의 방어는 점점 단단해지고 두꺼워졌다. 괴물들도 그런 걸 눈치챘는지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저쪽을 도와주죠.”

진혁의 말에 사람들은 주춤거렸다. 자신들을 멸시하고 힘으로 누르려 한 자들이었다. 물을 뜨지 못하게 한 건 자신들을 죽이려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혁도 그런 사정을 잘 안다. 하지만.

하지만 저쪽 사람들 수가 많단 말이다. 사람이 많으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도 많다는 말이고. 그래도 우리 편 반감을 사면 곤란하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괴물에 죽게 내버려 둘 겁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쉽사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진혁은 언젠가 우리가 저들과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이 그냥 지나쳐 가는 걸 상상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거기에 목세강과 한천위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윗놈들이 나쁜 거지 아래 사람들이야 무슨 죄야.”

“그래요. 그래도 사람이 괴물에 잡혀 먹게 생겼는데 보고만 있을 수야 없지.”

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하는 자들이야 때려죽이고 싶다. 어떻게 물을 먹지 못하게 할 수가 있나. 하지만 아랫사람들이야 여기나 거기나 같은 처지다.

“씨벌. 그래. 같은 밑바닥 인생끼리 도와야지.”

지휘부가 위기에 처했다면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괴물에 당하고 있는 건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검을 들고 달려갔다.

그러다 시체를 보았다. 괴물들에게 물어뜯긴 처참한 시체. 그걸 보자 눈이 돌아갔다. 그건 적의 시체가 아니라 동료의 시체였다. 같은 처지, 비루하게 살아가는 동료의 시체.

무사들은 미친 듯이 달려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아아아!!”

성흥 상단의 무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뒤에 있는 고수들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느낌.

죽을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지만, 죽음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물이 났다. 이대로 가면 저 흉측한 괴물의 이빨이 자신을 씹어 먹을 것이다. 씨발. 이렇게 죽는구나.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아!!”

“사람들을 구해라아!!”

가슴이 뜨거워지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힘이 생겨났다. 검을 휘둘렀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몸짓을 있는 힘껏 보여주었다.

성흥 상단의 무사들은 처음 보았다. 괴물들이 당황했다.

“크워어어~”

괴물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뒤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는 걸 보고는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갑자기 연체동물처럼 몸을 흐느적거렸다. 죽지 않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괴물을 몰아낸 상대편 무사들이 검을 치켜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아아!!”

무사들도 같이 함성을 질렀다. 검을 번쩍 들고 상대를 쳐다보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무사들은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상대는 더 크게 조리를 질렀다. 다행이라고.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뜨거운 감정이 가슴을 태웠다. 양쪽 무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저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눈물이 났다. 하지만 다들 웃고 있었다.

뜨거운 함성이 밤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산을 뒤흔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

진혁은 연이어 들어오는 포인트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번에 갈저라는 괴물을 막은 건 목세강과 진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성흥 상단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고 말한 것도 그들이라고 알려졌다.

전투가 끝난 후부터 아침까지는 같은 조사단 사람들의 포인트가 들어왔고, 오후부터는 상대 무사들의 포인트인 듯했다. 오후에 이런 사실이 그쪽에 알려졌으니까.

‘역시 숫자가 많아야 한다니까.’

한 칸이 이미 찼고, 두 번째 칸도 절반 정도 찬 상태. 그리고 놀을 죽인 후에도 마나가 흡수되었다.

‘괴물을 죽이면 마나를 흡수하는 거야. 그러면 내공도 늘어나는 건가? 아니면 흡수된 마나는 몸을 활성화하는 데 사용되는 건가?’

그건 확실치 않았다. 오크 한 마리나 놀 몇 마리 잡은 마나가 얼마나 되겠는가. 마나를 흡수했지만, 그게 내공으로 변하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크흠.. 물.. 가져가시오.”

양측 무사들은 조금 가까워졌다. 성흥 상단에서도 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지 못했다. 어제 원보 상단의 활약을 보고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위쪽의 신경전은 팽팽했다. 진혁은 그런 양측을 모두 응원했다. 둘이 싸울수록 진혁에게는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갑자기 서예주가 진혁을 찾았다.

“어제 활약한 건 들었어요.”

“그저 동료들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서예주의 표정을 살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갈저의 공격을 굉장히 손쉽게 막았다고 하던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집중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분들이 잘 도와주셔서..”

진혁은 목세강과 한천위가 주로 활약했고, 자신은 수비만 좀 했다고 말했다.

“아닐세. 내가 봤는데 공격을 무척 잘 받아내더군.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말이야.”

홍 무관의 칭찬이 어쩐지 칭찬 같지 않게 들렸다. 감시당하는 느낌이랄까. 하수인데 어떻게 어제와 같은 무위를 보일 수 있느냐는 질책처럼 들렸다.

“사문의 무공 때문에 그런 모양입니다. 공격을 흘리거나 받아넘기는 수법이 많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현천문은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런 수법들이 발달했다. 이게 진혁의 논리였다. 딱히 책 잡힐 만한 구석이 없는 논리.

하지만 서예주는 무엇이 그리도 의심스러운지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갈저를 상대할 때 전체적으로 지휘를 한 건 당신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지휘라기보다는 제가 수비를 하고 있으니까 전황이 잘 보여서..”

지시 맞다. 현천문의 무공은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공이다. 마나를 사용하고. 그 효용을 오늘 똑똑히 확인했다.

현천문의 무공은 괴물들의 마나를 뒤흔들어 방어력과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손을 살짝 보면 사람들이 괴물을 상대하기 쉬워진다.

목세강이 많은 괴물의 목을 날린 것도 그 덕이 컸다. 그냥 막 싸우면? 그러면 싸움이 좀 어려워졌을 거다. 물론 그런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전부 그러더군요. 당신이 지휘를 하는 덕에 손쉽게 이겼다고 말이에요.”

“손발이 잘 맞은 덕분입니다. 고수 분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기도 했고 말입니다.”

목세강이나 한천위의 공으로 돌렸다. 나머지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적절한 구라를 섞어서. 혹시나 알아보더라도 절대로 들키지 않을 구라여서 마음 놓고 했다.

다 듣더니 수고했다고 했다.

“저기. 원래 일행과 같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손발도 잘 맞고.”

실적을 보여주었으니 혹시 바꿔주지 않을까 싶어서 얘기해 봤다. 바꿔주지 않았다. 나쁜 년.

그러면서 앞으로는 회의 때 참석을 하란다. 뭔가 아는 것 같으니까 최대한 부려 먹겠다는 거겠지. 악덕 사장 같으니.

뭐. 정보를 많이 알아서 나쁜 건 없으니까. 봐준다.

그래서 다음 회의부터 진혁도 참석하게 되었다. 사람들 모두가 진혁의 활약을 알아서인지 불만을 표시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반겼다. 앞으로 괴물을 숱하게 상대해야 하니까.

“천수에서 정비를 한 후 북쪽 길을 잘 아는 길잡이를 찾아보도록 하죠.”

천수에서 북쪽이라면 기존 상단이 다니는 길이다. 서예주는 기존 루트를 따라가다 중간에 새로운 루트를 찾으려는 모양이었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괴물들을 최대한 비껴가겠다는 의미였다. 사람들도 모두 동의하는 듯했다.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직접 본 후라 더 그런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천수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전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왜? 모두가 예스 라고 할 때 노 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리고 그쪽이 훨씬 좋다니까. 이 멍청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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