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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누구니?
031
출발 전, 같이 지낼 사람들의 얼굴과 확인하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너희들을 책임질 위막군이라고 한다.”
싸늘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말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패력도..”
패력도 위막군. 낭인 중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자였다. 일류 고수와 절정 고수의 사이에 있는 실력자. 그 정도 실력이면 어디든 정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낭인들의 단체를 만들려 했다.
‘머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
하지만 단체를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실력 있는 자들도 포섭해야 하고, 따르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그러려면 명성과 자금이 필요한 법.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에 상당한 돈을 받고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았을 사람이었으니까.
‘윗자리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자네가 하진혁인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하대를 했다. 물론 이런 정도에 감정을 드러낼 진혁은 아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진혁은 그가 왜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상단 사람이야 감시자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낭인이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뭐야? 저 새끼는?’
바로 전까지만 해도 이번 조사단의 행보가 순탄하리라 생각했다. 사혈련에 간 일도 잘 풀렸고. 하지만 일행과 다른 곳에 배정을 받으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좋다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닌 거야? 분명히 이렇게 위쪽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포인트를 얻기는 좋은데..’
그런데 기분은 좀 드러웠다.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버는데 사람들한테는 욕을 먹는 느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다들 내 명령에 잘 따르기 바란다. 그러면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알았나?”
삼십여 명 정도 되는 자들이 알았다며 구시렁거렸다. 주로 낭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다.
준비를 마친 조사단은 장안성을 빠져나왔다. 500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무척 소란스러웠다. 사연이 제각각인 여러 무리가 모였으니 일사불란하게 통제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
관리를 맡은 자들이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예주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뭉칠 수밖에 없으니까.
괴물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뭉치지 않는다면 다 죽는다. 만약 그때도 물썽을 피우는 자가 있다면, 상단에서 먼저 손을 쓸 거다. 지금이야 빠지겠다는 자들이 있을까 내버려두고 있을 뿐.
그런데 장안을 빠져나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뜻밖의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어이고. 이런 우연이 있나.”
성흥 상단의 사람이 먼저 서예주에게 아는 척을 했다. 서예주의 표정에 그늘이 드리웠다. 이들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자신들보다도 많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뵙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것도 인연인 것 같은데 같이 가지. 방향도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야.”
비슷한 게 아니라 같다. 이들은 무조건 원보 상단을 따라갈 테니까. 서예주는 화가 치밀었지만, 웃는 얼굴로 상대했다. 화를 내봐야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속은 썩어들어갔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왜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진혁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곧 알 수 있었다. 두 무리는 중간에 같은 장소에서 쉬게 되었는데, 왕칠이 정보를 물어왔다.
“내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장안이 아니라 근처에서 따로 모였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흐음.. 놈들이 머리를 좀 굴렸네요.”
장안에서 일을 벌이면 태수와 정면으로 붙어보자는 말밖에 안 된다. 그래서 본점에서는 사람을 파견해서 근처에 조사단을 따로 꾸린 거였다.
“허유.. 많이도 왔네. 우리 두 배까지는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배 반은 넘을 것 같은데?”
대충 봐도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큰일이 나게 생겼다. 진혁은 목세강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래도 여기서 말빨이 서는 사람은 목세강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네가 여기 소속인가? 자꾸 이러면 곤란해?”
위막군이 진혁에게 다가와 차갑게 내뱉었다. 그가 속한 사람들이 뭉쳐 있는 곳은 바로 옆.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무리 책임자의 말이다.
“잠시 이야기를 할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나도 아는 사람이 많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싶지. 하지만 여기 놀러 온 게 아니지 않나.”
위막군은 여전히 차갑게 말하며 빨리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진혁은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리로 돌아온 진혁은 멀리 있는 성흥 상단쪽을 바라보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진혁이 나는 얼굴도 있었다.
‘마진량과 마헌량 형제도 있네?’
사협 표국의 두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자원해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성흥 상단에 지은 죄가 있으니 억지로 끌려 온 듯했다.
‘뭐야? 저 사람은 저렇게 움직여도 되나?’
종남의 은홍명도 모습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고수가 추궁과혈을 해주었거나 영단이라도 처먹은 모양이다.
하기야 장문인과 친척인 데다 실세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옆에 조금 젊은 고수의 얼굴도 보였다.
“장세문 아냐?”
“어디. 진짜네. 정말 종남의 장세문이네?”
무림에는 4룡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 젊은 신진고수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들. 다들 30대 초반이었는데, 일전에 본 무당의 황서군도 4룡 중 한 명이었다.
황서군과 장세문. 나머지 두 명은 화산의 문승강과 남궁세가의 남궁천우. 이렇게 네 명이 4룡이다.
‘그리고 3봉도 있고. 하여간 이런 거 이름 붙이는 거는 정말 좋아한다니까.’
3봉은 아미의 손초령, 제갈세가의 제갈효민, 당문의 당소혜를 일컫는 말이었다. 진혁은 그들의 얼굴을 대부분 알았다. 원덕강이 천하를 돌아다닐 때 본 적이 있어서였다. 종남의 장세문도 그래서 얼굴을 알았다.
‘이거 심각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저들까지 보인다는 건 끌어모을 수 있는 고수는 전부 끌어모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고수를 더 모았을 거다.
하지만 출발일이 코앞이니 급히 부를 수 있는 곳은 종남 밖에는 없었을 거다. 거리상 장안에서 가장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어지간하면 은홍명은 오지 않았을 거다. 얼마 전에 그런 망신을 당하고 크게 다치기까지 했으니까. 게다가 장세문이 누구인가. 종남의 미래라고 불리는 신진 고수다.
성흥 상단이 독하게 마음먹은 거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대가를 주고 데려왔을 거다. 그리고 성흥 상단은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아니. 여기 물이 당신들 거라도 되는 거요? 기다리라니?”
이동할 때 물은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다. 근처에 물을 받을 샘이 있어서 사람들이 몰렸다. 그런데 성흥 상단 사람들이 막았다.
“귀가 먹었나? 우리가 다 뜰 때까지 기다리라니까 그러네.”
“아니. 여럿이 떠도 충분한데 그럴 이유가 없지 않소.”
휴식을 취한다고 마냥 쉬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는 잠시 머물다 이동을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꼴을 보니 나중에 물을 뜨라는 게 아니라 물을 뜨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지만, 원보 상단의 조사단 사람들은 참았다. 아직은 물도 충분했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기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성흥 상단의 조사단은 쉴 때마다 물을 선점하고 원보 상잔의 조사단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뭐가 말인가?”
“왜 물을 뜨지 못하게 하는 거요?”
홍 무관이 나서서 항의했다. 하지만 상대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아냥거리면서 조롱했다.
“아니.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뒤에서 수작을 부리면 우리만 당하는 거 아닌가.”
서예주는 그 소리를 듣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장안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이러는 거였다. 사람들을 부추겨 발고를 하게 한 걸 지금 되갚아준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칼을 뽑고 한바탕 할 수는 없는 일. 서예주는 사람들을 불러 현재 상황을 확인했다.
“물이 얼마나 있죠?”
“내일까지야 문제가 없는데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저희도 비슷합니다.”
물은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한다. 이동 경로를 확보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원의 확보다. 아무리 이동이 편하고 길이 좋아도 물이 없으면 곤란하다.
“저들이 출발하고 난 후에 저희가 물을 채우면 어떨까요?”
서예주는 욕을 할 뻔했다. 저들이 먼저 출발할 리가 있나. 당연히 이 조사단이 움직여야 따라 움직일 거다.
“예정대로 이동합니다. 만약 내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저쪽 책임자와 만나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도록 하죠.”
일단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서예주는 저들이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은 장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 손을 쓰지는 않을 거다. 만약 손을 썼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 성흥 상단이 끝장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걸 관이 가만히 넘기지는 않을 테니까.
성흥 상단뿐이 아닐 거다. 이곳에 고수를 많이 보낸 종남도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그러니 괴물들이 나오는 곳까지 가서 어떻게든 기회를 볼 거다. 그 전에 조사를 포기하고 돌아가면 그건 그것대로 좋고.
서예주는 한스러웠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철각패도가 떠올랐다. 그가 있었다면 조금은 상황이 바뀌지 않았을까 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서예주는 성흥 상단의 책임자를 만났지만, 해결점을 찾지는 못했다. 비켜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협상은 밤까지 이어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이거 이대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목세강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적인 전력은 상대가 우위였다. 아마도 이쪽 전력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추어 조사단을 꾸린 모양이었다.
아쉬웠다. 괴물을 상대하면 무언가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리가 멈췄다.’
새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생명체가 숨을 죽였다. 무척 좋지 않은 징조. 목세강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조짐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었다. 종남의 은홍명과 장세문, 그리고 한천위가 그랬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진혁도 이런 낌새를 알아챘다.
“어딜 가나?”
진혁이 천막 밖으로 나가려 하자 위막군이 그를 막았다.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둘러보려고 합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이상이 있으면 알아서 지시가 내려오겠지.”
위막군은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진혁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이런 썅. 이 새끼 그냥 제껴 버릴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밟아버릴 수 있는 놈이 까부니 짜증이 났다. 상단주에게 잘 보이려고 이러는 모양인데 그러다 너 죽어. 이 븅신아. 지금 괴물들 온다고. 이런 무능력한 회사 부장 같은 새끼.
쩝.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무슨 일이 있다면 미리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훗.. 있다고 해도 그걸 니가 어떻게 알고?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고 잠이나 쳐 자라.”
진혁은 일단 참았다.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누군가 천막을 확 열어젖히고는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괴물이 올지 모르니 빨리 짐을 꾸리고 대비해!”
그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급히 짐을 챙겼다. 정말 난리였다. 괴물이라는 소리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움직였다.
‘거봐. 이 새꺄. 내가 미리 대비하라고 했지?’
진혁은 가장 먼저 짐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괴물이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진혁에게는 아니다.
반갑다. 괴물아. 이번엔 누구니? 오크? 고블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