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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30화 (3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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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출발? 어. 그게 그러니까.

사혈련의 위세는 무림맹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강했다. 돈황까지가는 길이 대부분 그랬다. 그나마 공동파가 있는 공동산 부근 정도가 조금 나았고, 나머지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

전에도 그랬는데, 괴물이 나타난 후로는 더욱 심해졌다. 그런 곳에서 사혈련은 위세를 떨쳤다.

사혈련의 본단은 장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중에 있었다. 그래서 돈황으로 출발하기 전에 찾아온 거였다.

“그대가 철각패도요?”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길래 그냥 들어갈까 하는 참이었다. 안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냥 딱 봐도 한가락 하게 생긴 놈이었다.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 그러는 너는 누구지?”

“너?”

꼬장꼬장할 것 같은 인상의 남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대의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사혈련의 장로이자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듣던 대로 성격이 개차반이군.”

사파 사람에게 성격 더럽다는 소리는 욕이 아니다. 사파는 정파보다 힘이 우선시 되는 사회. 그런 곳에서 성격이 더럽다? 그건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다.

“내가 물어본 건 내 성격이 아닌데?”

“그랬었군. 나는 임평백이요. 강호 동도들이 혈도라고 부르기도 하지.”

혈도 임평백. 사혈련의 3마 중 한 사람. 전에 만났던 흑수 갈맹보다 반수 정도는 위라고 알려져 있다.

‘싸움에 미친놈. 도에 피가 마를 날이 없다고 해서 혈도라는 별명이 붙었지.’

대결에서도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대충 싸우는 건 진정한 승부가 아니라나? 워낙 호전적이라 정파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인 자다.

실력이 있다고 하는 자와는 빠우고 싶어서 안날이 난 놈. 특히나 도를 쓰는 사람에게는 더했다.

하지만 진혁은 알고 있다. 이렇게 투귀 같은 놈이 남들은 모르는 은밀한 취미가 있다는 사실을. 뭐. 그걸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한 번 오라고 해서 들리긴 했는데, 대접이 영 시원찮군.”

“대접이야 어느 정도 되는 자인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아닌가.”

그래. 이렇게 나와야 사혈련이지. 역시 화끈한 곳이야. 오늘 대접 잘 받을게. 진수성찬 내오도록 해주마.

철각패도는 피식 웃었다.

“길게 말할 거 없겠군. 가지?“

“그런 성격은 마음에 드는군. 자 이쪽으로.”

임평백의 안내를 받으며 철각패도는 사혈련 안으로 들어갔다.

“자 시작하지.”

연무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철각패도는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 행동에 혈도 임평백의 미간에 줄이 생겼다.

“도를 뽑지. 후회하지 말고.”

스산한 겨울바람 같은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고..”

잠시 뜸을 들인 철각패도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도를 뽑으면 너는 다치는 걸로 끝나지 않아.”

“미친놈. 언제까지.. 그렇게 입을.. 나불댈 수 있는지.. 보겠다..”

고수는 고수였다. 말을 하면서 신형을 날렸는데, 언제까지라는 말을 할 때 이미 철각패도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한줄기 선이 주욱 이어지는 것 같은 잔상을 남기면서.

입을.. 이라고 말을 할 때 그의 혈도가 철각패도를 두 번 그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있던 자리를 그었다.

있는지.. 라고 말할 때는 사라진 철각패도의 신형을 뒤쫓아 가면서 목을 향해 도를 날렸고. 보겠다.. 라는 말이 끝나기 전에 광풍처럼 도를 휘둘러 철각패도를 도막에 가두려 했다.

내공이 없는 자는 뭐가 번쩍번쩍하는 것만 보았을 것이다. 숨을 한 번 쉬기도 전에 이루어진 상황. 혈도 임평백은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좋군. 아주 좋아..”

철각패도는 손뼉을 크게 두 번 쳤다. 혈도 임평백의 실력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고, 지금 상황에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다.

무력시위를 하려면 적당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조무래기들은 수백을 상대해 봐야 임팩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혈도 임평백은 아주 좋은 상대였다.

- 콰앙!

소리만 들렸다. 갑자기 철각패도의 거대한 몸뚱이가 사라지더니 땅에서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혈도의 신형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 터엉!

- 드드드드윽

- 쿠구궁!!

- 퍼억!

이상한 소리와 엄청난 바람, 그와 함께 뿌연 먼지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은 어찌 된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고.”

사람들은 목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머리를 조아렸다. 3마 중 나머지 두 명. 금검 교무국과 흑수 갈맹이었다.

“은홍명을 개 패듯 두들겼다는 건 믿지 않았는데, 이걸 보니 믿지 않을 수 없군.”

둘은 다른 자들이 보지 못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철각패도는 진각을 밟으며 몸을 날렸다. 콰앙 하는 소리는 그때 난 거였다.

임평백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몸뚱이 어딘가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임평백도 만만한 자가 아니다. 곧바로 몸을 움직여 피했고, 바로 반격을 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도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쳐내며 각법으로 임평백을 쓸어갔다. 터엉 하는 소리는 도를 손바닥으로 쳐낸 소리. 드드득 하는 소리는 철각패도의 다리가 벽을 부수며 지나가는 소리였다.

거기까지였다. 철각패도의 다리는 간신히 피했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막지 못했다. 장력에 적중된 임평백은 도로 몸을 지탱하며 간신히 서 있었다.

“제가 나왔어야 했는데 좀 늦었군요.”

흑수 갈맹이 나섰다. 저 정도 고수라면 정중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게 사혈련의 장로라고 하더라도.

게다가 흑수 갈맹은 세 장로 중에서 가장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 갈맹은 철각패도를 접객실로 안내했다.

“괜찮나?”

“퉤~”

금검이 다가와 묻자 혈도는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저 인간하고는 붙지 않는 게 좋겠어.”

“호오~ 그 정도?”

투귀라고 불릴 정도로 호전적인 임평백이다. 그런 혈도가 싸움을 마다했다. 하기야 교무국이 보기에도 비슷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한 수 정도 윗줄이 아니라 아예 그보다 훨씬 위. 금검 교무국은 어쩌면 저자가 사혈련주보다도 강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원하는 건 다 얻었군.”

철객패도는 사혈련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사혈련주는 자리에 없어서 못 보았지만, 이야기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철각패도가 실력을 보여준 게 컸다. 그 정도 고수면 어떤 곳에 가도 대접받는다. 세 장로는 이 무지막지한 고수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혈도는 좀 퉁명스러웠지만, 나머지 두 장로는 호의적이었다.

거기에는 무공 대사와 은홍명을 두들겨 팬 것도 크게 작용했다. 적의 적은 친구다. 무공 대사와 은홍명을 떡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무림맹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

그렇다고 철각패도가 사혈련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일단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아주 모호한 말로 마무리되었다.

사혈련의 장로들도 사혈련주가 없는 상황에서 확정을 지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런 것도 없이 철각패도를 보낼 수도 없는 일. 그래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혈련의 정보망이나 조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거면 땡이지.’

그나저나 사파는 사파네. 하여간 이 새끼들은 더티해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자고 해 놓고서는 꼬리를 붙여?

철각패도는 갑자기 속도를 높였다. 미친 듯한 속도. 추적자는 화들짝 놀라서 쫓아가다가 이내 포기했다. 이 속도를 감당할 수도 없고,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위험했다.

저렇게 달리는 건 자신의 정체를 알았다는 거다. 그래도 붙으려 하면 손을 쓸 거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보고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철각패도는 꼬리를 떼어내고 달리다 적당한 자리가 되었다고 판단되자 바로 몸을 바꿨다.

“이제 왔어?”

“제가 조금 늦었나요?”

한천위와 왕칠은 자신들도 얼마 전에 왔다고 했다.

“다녀온다던 데는 잘 다녀왔고?”

“예.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잘 해결되었네요.”

다들 뭔지는 몰라도 잘 되었다고 축하해주었다. 진혁이 하는 일이니 분명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올바르고 약자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철각패도가 사혈련의 임시 장로 비스무리한 게 된 것도 다 사람들 돕기 위함이니까.

‘그나저나 거기서도 임시직이네?’

진혁은 상단에서도 임시직이었다. 대부분이 임시직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곳에서도 정규직은 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전부 모이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새로 좀 오는 모양이던데요.”

철각패도가 준 자금 덕분인지 사람들을 꽤 모았다. 개중에는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규모가 늘어난 만큼 잡일을 하는 사람도 많이 필요해졌다.

덕분에 조사단은 상당한 규모가 되었다. 전체 인력이 500명을 넘어섰다. 말이 500명이지 그 사람들이 먹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중간에서 관리를 할 사람들을 정한 모양이야.”

“조직이 커졌으니 당연히 필요하겠죠.”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고 진행할 수는 없다. 체계화, 조직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조금 이상하게 흘러갔다.

다음날 진혁 일행도 원보 상단에 들렀는데, 진혁만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뭐지? 내가 일행이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

서예주도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같이 다녀야 수련할 때 진혁의 도움도 받기 쉬우니 그리 한 거였다.

“내가 한 번 이야기를 해 보지.”

목세강이 서예주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정을 변경해 줄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죄송해요. 목 대협. 사람을 나누다 보니 이게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꼭 같이 있어야 하나요? 어차피 같이 움직이는데 상관없지 않나 싶어서요.”

서예주는 정말 공정하게 배분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잘 아시잖아요. 이런 거 하나 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또 누군가는 부탁을 해 오고.. 그래서 그러니 양해를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흐음.. 그런 사정이 있으시다니..”

목세강은 입맛을 다시며 나왔다. 저건 핑계였다.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리가 있겠나. 하지만 서예주는 고용주다. 고용주가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싸울 수야 있나. 아예 조사단에서 빠질 생각이 아니라면.

“그렇게 되었으니까 눈치껏 해야할 것 같은데?”

“하이고. 이거 좀 그러네. 막사가 다르고 소속도 다르면 불편한데..”

진혁은 서예주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자신만 똑 떨어뜨려 놓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내가 가는 곳에는 서예주의 심복이 있겠군.’

이해는 하면서도 입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걸 기회로 만들면 된다. 이런 식으로 오해를 사고 그럴수록 더 유리하다.

조사단 인원만 500명이 넘는다. 이 사람들과 가면서 포인트만 꾸준히 모을 수 있으면 머지않아 팔찌를 채울 수 있을 거다.

“고용된 입장이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기회 봐서 움직이도록 하죠.”

“그래야겠구먼. 그래도 이거 아쉬운데..”

그렇게 진혁은 일행과 떨어져 움직이게 되었다. 진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각패도의 몸으로 서예주를 찾았다.

서예주는 반색을 하며 반겼다.

“대협. 그러지 않아도 한번 뵈었으면 했습니다. 사주로 떠나면 오래 뵙지 못하니..”

“간혹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사주는 아니지만 여러 곳을 좀 다녀야 할 수도 있어서..”

“아. 정말요? 다행이네요.”

서예주는 활짝 웃었다. 철각패도는 슬쩍 운을 떼 보았다.

“내가 아까 슬쩍 들으니 목세강이 무슨 불만이 있는 것 같던데..”

“아.. 아무래도 하진혁이라는 자가 좀 수상해서 제가 일부러 일행과 떼어놓았어요.”

이 아가씨야. 그거 아니야. 그 사람 좋은 사람라고. 너 도와줄 구세주란 말이다. 이 멍충아.

“목세강이 원하는 거면 들어주는 게 어떤가?”

“그자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어요. 얘기해 보니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그건 제가 잘 처리했답니다. 대협.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서예주는 방긋 웃었다.

이 여자가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 가지고. 아니라고.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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