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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29화 (2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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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출발? 어. 그게 그러니까.

장안으로 떠날 채비를 마친 진혁은 현천문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걸어오는 진혁을 발견한 온 문주가 크게 웃으면서 손짓을 했다.

“하하.. 진혁아. 잠깐 이리 와보거라.”

온미령은 연신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귀에는 못 보던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어떠냐? 예쁘지?”

“예. 정말 잘 어울리네요.”

여자 귀걸이나 목걸이를 볼 줄은 몰랐지만, 분명히 잘 어울렸다. 진혁의 말에 온미령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요? 색이 너무 밝은 것 같은데..”

이런 말에 동의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렇지 않다. 잘 어울린다. 이 대답이 정답이다. 약간의 형용사나 감탄사가 가미되어도 좋다. 너무나도, 이야! 정말. 뭐 이런 말들이다.

그런가? 색이 좀 밝은 것 같기도 하네. 이따위 대답을 했다가는 평생 혼자 지내야 할 거다. 진혁은 정답을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허허. 그렇지?”

“그런데 아빠. 웬 귀걸이에요?”

온 문주는 딸이 귀걸이를 한 모습이 흡족한지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내 절친한 친우가 보내준 거란다. 황궁에 있는 친우인데 나랑은 아주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지.”

“황궁에요? 아빠가 황궁에 아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황궁에서도 아주 높은 사람이란다.”

온 문주는 호탕하게 웃었다.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긍에 아는 사람, 그것도 절친한 친우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덕강의 기억에도 그런 건 없었다. 진혁은 다소 허풍이 들어간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변변치 않은 문파의 문주. 황궁의 실력자. 접점이 없어 보였다.

온 몬주는 허풍이 센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관리 중에 아는 사람이 있나 보다 했다.

현천문이 관부와는 꽤 인연이 있었으니까. 딸을 쳐다보는 데 여념이 없던 온 문주는 온미령이 귀걸이를 두러 가고 나서야 진혁에게 신경을 돌렸다.

“그래. 이제 떠나려고 하는 게냐.”

“예. 다시 올 때까지 강녕하십시오. 문주님.”

진혁은 바로 나가려 했는데, 돌아온 온미령이 아쉬워하며 그를 붙잡았다.

“꼭 가셔야 해요? 위험하다면서요.”

“걱정 말거라. 내 다녀오면서 좋은 선물 사 가지고 오마.”

“선물은 필요 없으니 몸 잘 챙기세요. 대사형.”

조금 더 있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 진혁은 알았다고 하고는 재빨리 길을 나섰다.

장안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혁은 괴물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한 마리를 상대하 보았다. 그것만 가지고는 확실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크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나오기를 바랐는데, 코빼기도 구경할 수 없었다.

동행한 사람들은 산적도 괴물도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떠들었다.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행인 건 맞았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벌써 오나? 좀 더 있다가 오지 않고.”

“그러게요. 아직 출발하려면 날짜가 많이 남았는데.”

목세강과 한천위가 진혁을 반겼다. 말은 저렇게 해도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이고. 오셨네. 나는 우리 한 표사님 기다리느라고 목이 빠지는 줄 알았구만.”

왕칠도 진혁을 반겼다. 그는 오늘부터 좀 자신의 무공을 봐달라며 은근슬쩍 부탁했다. 목세강이나 한천위는 피곤할 텐데 공연한 부탁을 한다고 눈치를 주었지만, 진혁은 승낙했다.

“별로 피곤하지는 않아서요. 여기까지 정말 편하게 왔거든요.”

왕칠은 기뻐하면서 저녁에 보자고 했고, 목세강과 한천위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진혁의 도움을 받으면 확실히 실력이 빨리 늘었으니까.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른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진혁은 목세강, 한천위, 왕칠과 함께 수련을 했다. 봐 주는 시간이 제법 되긴 했지만,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각자 수련을 해야 할 시기였으니까.

더 알려줄 게 있긴 했지만, 그건 일단 지금 알려준 게 궤도에 오른 후에 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단계별 학습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성흥 상단이 계속 준비를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기색이던데?”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진혁은 목세강의 말에 다소 의아해 했다. 장안을 떠날 때만해도 그럴 만한 여력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그쪽에서도 이번 일을 무척 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럴 수도 있지. 만약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니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손 태수가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아주 납작 엎드렸지. 죄를 인정하고 처벌받을 사람은 받고.”

물론 책임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 밑에 있는 자들이 죄를 자복하고 처벌을 받았다. 꼬리 자르기. 그렇게 정리를 하니 손 태수로서도 더 손을 쓰기 어려웠단다.

“하기야. 그렇겠네요. 거기서 더 추궁하면 오히려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고.”

“그런 것 같아. 그래서 서 상단주가 요즘 아주 죽을 상이더라고.”

좋지 않았다. 상대가 좋은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성흥 상단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데에는 원보 상단이 피해자들을 들쑤신 것도 한몫했으니까.

그래서 더 이를 갈고 있을 거다. 처음 발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천문을 쓸어버리려고 한 놈들이다.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자에게 적당히 한다는 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

그게 그놈들이 자신의 돈과 권력을 지키는 방법이다. 철저하게 눌러버리고 파멸시켜서. 그러니 이번에 상로를 개척하는 데 따라나서는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적당한 위기는 내가 포인트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런 상황이면 골치 아프지.’

대놓고 다 죽일 생각을 하고 있을 건데, 그런 자들과 함께 가는 건 너무 위험했다. 서예주도 그걸 아니까 골머리가 아픈 걸 테고.

‘이거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는데?’

***

“허허.. 그래 인사차 왔단 말이지?”

“예. 먼 길을 떠나야 하니 인사라도 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진혁은 손 태수를 찾아갔다. 하지만 성흥 상단에 관한 건 일절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원덕강에 관한 이야기만 꺼냈다.

먼저 간 친우의 이야기에 손 태수는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가끔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자네도 혹시 퉁소를 불 줄 아나?”

“제가 퉁소를 불면 사부님께 누가 될 겁니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친구 솜씨야 가히 일절이라 불릴 만했지. 시간만 있으면 같이 연주를 했을 것인데..”

공무가 다망하니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손 태수는 아쉬워했다.

“그런데 내가 듣자니 성흥 상단도 같이 길을 간다지?”

“예. 이야기된 바는 없지만, 같이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흐음..”

손 태수는 진혁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성흥 상단이 따라나서는 일이 대해서 말이야.”

“원보 상단을 견제하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패악한 짓을 하기 위함입니다.”

손 태수는 진혁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나? 그런 건 나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성을 위하고 국법의 지엄함을 세우는 일이다. 사적인 부탁이 아니니 말을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태수님께 누가 될까 싶어서 그랬습니다. 좋은 뜻이라고 하더라도 구설에 오르내릴 수 있는 일입니다.”

옳은 일은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 흰옷에는 구정물 한 방울만 튀어도 지저분해지니까.

“게다가 태수님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말입니다.”

“푸하하.. 확실히 자네는 재미있는 친구야.”

손 태수는 무척 즐거워했다. 원덕강의 젊은 날을 보는 듯하다고 하면서.

“아니. 그 친구가 나이를 좀 먹었을 때하고 더 비슷한 것 같아. 자네 나이를 혹시 속이는 게 아닌가?”

손 태수는 적어도 불혹 정도는 되는 사람 같다고 했다. 불혹이면 40살을 말한다.

“그저 성격이 조금 신중한 것뿐입니다. 불혹이라니요. 저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아니야. 나이가 많아도 세상을 헛산 사람이 태반이지. 자네 같은 사람은 보기 어려워.”

손 태수는 기특하다는 듯 진혁을 바라보았다.

“내 그 작자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잘 알지.”

손 태수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건을 잘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연에 방비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맞는 말이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관리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을 해결하면 기록에 남는다. 하지만 방비하는 거? 그런 건 내세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일에는 소홀하게 된다. 하지만 손 태수는 역시 남다른 관리였다.

“태수님 같은 분이 관부에 많아져야 한다고 사부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허허. 그 친구가 내 얼굴에 금칠을 했구만.”

실제로 원덕강은 그런 생각을 늘 했다.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람이 관리로 있어야 한다. 진혁은 사소한 포인트를 얻었다는 메시지가 보였지만, 그것보다 이런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게 더 기뻤다.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 것 같습니다.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몸 성히 잘 다녀오려무나.”

얼마 후 성흥 상단은 감찰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상단 중 한 곳을 감찰하는 데, 이번에는 성흥 상단이 차례라는 거였다.

성흥 상단은 반발했다. 일전에 사건으로 조사를 다 받았는데, 또 감찰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표적 감찰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태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동안 성흥 상단만 계속해서 감찰에서 제외되었으니 이번에는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태수와 관리에게 돈을 써서 계속 감찰을 피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성흥 상단 장안 지부는 다시 바빠졌다. 다른 일에는 신경을 아예 쓰기 어려울 정도로.

“태수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이야. 이야. 쟤들 앞으로 엄청 피곤하겠다.”

한천위가 꼴 좋다며 웃었다.

“그동안 편하게 지낸 값을 하는 거죠. 이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어이구. 저기 서 상단주 표정도 활짝 폈네. 활짝 폈어.”

고개를 돌려보니 서예주가 환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고민되던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좋기도 하겠지.

그런데 진혁과 눈이 마주치자 조금 경계하는 것 같은 눈빛이 되었다.

왜? 내가 이거 다 해준 거나 마찬가지거든? 쟤는 왜 나만 미워하는 거야?

진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서예주도 멀리서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샐쭉한 눈매로 계속 쳐다보는 게 뭔가 수상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래. 계속 그렇게 해라. 사이 별로 안 좋은 게 포인트 따는 데는 좋으니까.

***

“멈춰라!”

경비를 서던 우락부락한 무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긴장했다는 표시를 팍팍 내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철각패도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사혈련에는 무슨 용무로 오셨소?”

“한 번 찾아오라고 해서.”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 경비 무사는 동료에게 안에 소식을 전하라는 수신호를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누가 찾아오라고 하셨는지..”

철각패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쳐다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경비를 서는 무사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실수를 했다가는 저 커다란 주먹이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도 남을 만한 얼굴이었고, 분위기였다.

경비무사는 이 자가 사람을 산채로 뜯어먹는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말은 자연스럽게 공손해졌고, 몸은 점점 뒤로 물러났다.

“손 까만 애가 그랬지.”

“설마.. 흑수 장로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사는 더욱 위축되면서 물었다. 철각패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도 부르는 모양이더군.”

무사는 허겁지겁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장로가 초빙한 손님이면 자신이 맞이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철각패도는 유유자적하게 주변을 살폈다.

‘돈황까지 가려면 이놈들하고 끈을 만들어 놓는 게 좋지. 그쪽에서는 이놈들 영향력이 좀 강한 편이니까. 정보 같은 것도 많이 알 테고.“

진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사혈련 본단이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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