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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다 그렇지.
“누구냐?”
무사들이 소리쳤다.
“그거야 알 거 없고.”
철각패도는 몸을 가볍게 풀면서 앞으로 나왔다. 이들의 실력은 이미 확인하고 난 후. 위협이 될 만한 자는 없었다.
‘무림맹 사람이 여섯, 종남파 사람이 둘.’
그리고 무공 대사. 이렇게 아홉 명이 일행의 전부였다. 그들은 나무 그늘에서 나오는 철각패도를 보더니 곧바로 병장기에 손을 뻗었다.
사람을 외모만 가지고 판단하는 건 옳지 않지만, 그냥 딱 봐도 나쁜 놈이었다. 다르게 설명할 수 없는 외모와 얼굴.
“멈춰라. 무림맹 호법이신 무공 대사님이시다.”
“그래. 그거 알고 온 거야.”
철각패도는 개의치 않고 걸었다. 그러자 앞을 막아섰던 무사가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 챙
일제히 칼을 뽑았다. 선의로 온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풍기는 기세가 남달랐기에 그런 거였다.
“칼을 뽑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일단 조무래기들하고는 할 얘기가 없으니..”
사람들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핏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사라졌다. 어디로 움직였나 고개를 돌려 살피려는 데 갑자기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어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공통적인 생각을 했다. 무서운 고수구나. 이 작자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구나.
마혈을 눌린 것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목 윗부분은 좀 나았다. 고개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허허.. 시주는 누구시오.”
서 있는 사람은 무공 대사와 바로 옆에 있는 종남파 사람. 철각패도를 제외하면 단 둘이었다. 하지만 무공 대사는 여유를 잃지 않은 척했다.
척하는 게 분명했다. 눈알을 굴리는 거나 종남파 사람보다 살짝 뒤로 움직인 거나. 어떻게든 도망치거나 상황을 모면할 궁리를 하는 거였다.
“내가 소림에 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 말이야..”
“허허.. 무슨 사연이 있는지 소승이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무공 대사는 고상한 척을 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음흉하고 악랄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는 무슨 짓을 하고도 남을 놈.
“그거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나중에 손속을 나눠야 할 건데 서로 시간 낭비 하지 말자고.”
“허허. 시주. 그러지 마시고 소승과 차나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눠봄이 어떨는지요.”
차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차가 아니라 술이겠지.
“참 힘들겠어. 이 정도로 가면을 쓰고 살면 불편하지 않나?”
무공 대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평온한 기색으로 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구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대사님. 이런 무도한 작자와는 말을 섞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종남파 사람이 무공 대사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철각패도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연기라는 게 뻔히 보여서였다.
‘이 자식은 뭔가 바라는 게 있구만? 무림맹에 자리라도 하나 바라는 건가?’
그랬으니 종남산에서부터 이곳까지 따라왔을 거다. 재수 없는 놈. 권력자에게 빌붙어서 한 자리 꿰차려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보질 못했다.
- 퍼억!
이런 놈은 빨리 치우는 게 편하다. 철각패도는 딱 한 방으로 놈을 바닥에 눕혔다. 무공 대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놈은 처음 보겠지.
“이제 진솔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겠구만.”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시주는 강호의 법도도 모른단 말이오!”
무공 대사는 버럭 성을 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호의 법도가 뭔데? 아. 니들한테는 항상 상황이 유리해야 한다는 거? 그런 건 법도라고 하지 않아.
“법도? 강호에서는 무공이 법도 아닌가?”
“이런 무도한 자를 보았나.”
진혁은 살짝 의아했다. 무공으로만 보면 이렇게 큰소리를 치면 안 된다. 이놈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무공이 별로였다.
‘그렇다는 건 암수를 쓸 생각이란 거겠지. 뭐냐?’
독밖에는 없다. 그게 가루냐, 아니면 암기냐. 그것만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이렇게 대비를 하는 초절정 고수에게는 소용없는 짓이지.
“말이 많구나. 어디 덤벼 보거라.”
철각패도는 장단을 맞추어주며 상대가 수를 쓰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뭐야? 실력이 너무 형편 없는데?
철각패도가 적당히 상대해주고 있는 데도 상대는 정신을 못 차렸다. 어지간히도 수련을 안 한 모양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무슨 춤 추냐?’
그런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살짝 방심하게 하려고 그런 것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무공 대사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그러더니 소매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이 악적. 내 오늘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겠다.”
무공 대사는 암기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싼 티 나는 대사를 읊조리더니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이게 끝이야?”
무공 대사는 당황했다. 자신의 주먹을 잡고 있는 악적의 왼손. 그리고 악적의 오른손에 있는 암기. 악적이 자신이 쏘아 보낸 암기를 잡아낸 거였다.
“일단 좀 맞자.”
철각패도는 무공 대사의 몸을 샌드백처럼 두들기기 시작했다.
***
무공 대사는 장안에 오지 못했다. 장안으로 오던 중 괴한을 만나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잔머리는..’
진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공 대사에게 원한이 있는 자가 습격을 했다. 무공 대사가 나서서 제압하려 했다. 무공 대사가 괴한을 압도했다. 만약 암기를 쓰는 치졸한 수법만 아니었어도 무공 대사가 손쉽게 이겼을 거다.
암기에 당해 위기에 처한 무공 대사를 종남파의 사람을 비롯한 무사들이 결사적으로 나서서 구했다. 그 와중에 다들 큰 상처를 입었다.
이게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래서 언론이 중요한 거야.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하지만 무공 대사가 오지 못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 마지막 카운터 펀치만 날리면 된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술집에 와 있는 거고.
이런저런 증거와 증언들이 나왔다. 다만 결정적인 게 없었다. 원래 돈 있는 놈들이 그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잘 안다. 그래서 딱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을 해 놓는다.
“올 때가 되었는데?”
그 순간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철각패도는 혹시나 싶어서 사방을 다시 살폈다. 자신이야 대들보 위에 은신술을 쓰고 있으니 들킬 염려가 없고, 자신이 초청한 사람들도 쥐죽은 듯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나타난 사람들. 사협 표국의 두 형제와 성흥 상단의 사람이었다. 원래는 상단 안에서 만났는데, 조사를 뻔질나게 나오는 바람에 자리를 옮긴 거였다.
물론 그 내용을 철각패도가 알아내서 태수에게 투서를 했고. 태수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지금 이들이 예약한 옆방에 들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무공 대사님이 저렇게 되셨으니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아직은 괜찮다니까. 본점에서도 사람이 올 거야.”
마진량 표국주는 상당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손 태수가 조사할 것이 있다면서 사협 표국이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점혈을 한 것도 일단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 때는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얼마간이라도 장안을 떠날 수 없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게 잘 먹혔다.
“이제는 우리가 만나는 것도 위험하니..”
형제와 상단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갑자기 중단되었다.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다.
“이놈들! 당장 이자들을 포박하라!”
손 태수는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형제와 상단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변명했다.
“저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무슨 죄? 너희가 서로 만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걸 내 모를 줄 아느냐?!”
“아닙니다. 그건 오해십니다. 태수 어른!”
상대도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저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었을 뿐입니다. 저희와 관계된 곳을 관리하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자주 갖습니다.”
상단 사람은 끝까지 버티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래?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믿어주십시오. 태수 어른!”
상단 사람이 납작 엎드렸고, 표국의 형제도 따라 엎드렸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위로 들린 건 예상한 말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지금 내 귀가 잘못되었다는 게냐?! 내가 바로 옆방에서 똑똑히 들었느니라!”
손 태수의 말에 상단 사람이나 표국의 형제나 사색이 되었다. 손제형은 계속해서 엄하게 꾸짖었다.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힘없는 백성의 돈을 갈취했다. 그 죄는 중하다.”
“그것도 모자라 거짓으로 일관하며 관을 속이고, 이제는 본관까지 능멸하는구나. 너희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당장 이 자들을 끌고 가거라. 이자들의 죄를 낱낱이 밝혀 법의 엄중함이 어떤 것인지 본보기로 삼겠노라!”
끌려간 건 여기서 잡힌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흥 상단의 장안 지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다.
손 태수는 직접 사건을 살피며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에게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간 고초를 위로했다. 반면,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추상같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죄를 지은 자들이 고초를 겪어야 정상이거늘, 어찌 피해를 당한 힘없는 백성들이 더 괴로워해야 한단 말이냐. 앞으로는 본관이 두루 살펴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
***
“가는 곳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은 서예주 일행과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사협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는 길이 같아서 동행을 한 거였다. 하지만 서예주는 진혁의 말을 못 들었는지 그냥 스쳐 지나갔다.
‘이거 찍힌 모양인데?’
약간 오해가 있었다. 서예주는 진혁이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는 사람으로 오해했다.
사주로 가는 길에도 실력만으로는 낄 수 없는데, 목세강에게 청탁해서 자리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발고를 한 것도 태수와의 인연을 통해서 어떻게 돈을 받아내려 했다고 오해했고.
하지만 그런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야 편하지.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어우. 끔찍하다. 끔찍해.’
하진혁과 철각패도의 관계. 설마 둘이 동일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다. 누군가가 의심을 갖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피곤하니까.
진혁은 임시 표사 몇 명과 함께 구석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가는 길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장안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먼 앞쪽에서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괴물이라는 소리에 바짝 긴장을 한 채 도망칠 준비를 했다.
괴물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그게 상식이었다. 진혁도 다소 긴장을 하면서 사방을 주시했다.
다행스럽게도 소란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저 앞쪽에서 괴물이 나타난 모양이야. 어이구. 이거 이러다 무슨 일 나는 건 아닌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상황은 진정되었다. 병사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괴물의 수가 아주 적었단다. 몇 마리 되지 않아서 병사들이 모여들자 도망쳤다는 거였다.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다가 괴물을 만날까 두려운 거였다. 서예주도 고민했는데, 그녀는 길을 가는 걸 선택했다.
‘당연하지. 돈황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다 보면 숱하게 만날 게 괴물인데, 여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
그렇게 일행은 다시 움직였다. 설마 괴물을 만나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하지만 좋지 않은 생각은 늘 현실이 되는 모양이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이틀 정도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 괴물이 바로 근처에 나타났다. 일행의 눈에 모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