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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23화 (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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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다 그렇지.

“그게 가능할까요? 아.. 대협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성흥 상단은..”

서예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성흥 상단이 손을 떼도록 할 수 있다니. 곁에 있는 홍 무관도 비슷했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철각패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돈과 권력. 성흥 상단은 그 둘을 모두 거머쥐고 있다. 황실과도 상당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성흥 상단은 천하 4대 상단 중 하납니다. 장안 태수라고 하더라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곳이지요. 크흠..”

평소에 철각패도를 좋지 않게 생각하던 홍 무관이 슬쩍 나섰다. 제대로 좀 알고 이야기를 하라는 투로.

4대 상단. 천하를 꽉 잡고 있다는 네 개의 상단을 말한다. 하북의 성흥 상단, 소주의 동정 상단, 호북의 천문 상단, 그리고 사천의 구룡 상단.

네 상단을 거치지 않고서 통용되는 물건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나 괴물이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는 네 상단의 위세가 더욱 강성해졌다.

“맞붙자는 말을 아니야. 그래서는 답이 없지.”

철각패도는 홍 무관은 무시하고 서예주에게 이야기했다. 홍 무관의 이마에 핏줄이 꿈틀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무시무시한 고수에게 뭔가를 할 방법은 없었으니까.

“상단의 일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지금 장안 태수를 이용해야 한다.”

“장안 태수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원보 상단은 작은 상단이다. 자금력이나 힘에서 모두 상대도 되지 않는다.

“그래. 지금 태수는 이전에 왔던 관리와는 성향이 좀 다르지.”

“예.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장사를 하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아야 한다. 태수의 교체와 같은 큰일은 당연히 신경을 쓰다. 새로 오는 태수는 어떤 인물이고 우리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따져본다.

원보 상단이 내린 결론은 다소 유리하다는 거였다. 원리원칙 중시하고 선정을 베푸는 관리이니까. 적어도 큰 상단의 만행이 조금은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잘 알겠지만, 손 태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고 있지. 비리에 얼룩진 분위기를 싹 바꾸고 싶어 한다는 말이야.”

“아.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상징적인 일이 필요하겠군요.”

철각패도는 흠칫 놀랐다.

‘아니. 몇 마디 안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대?’

정말 명석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완벽에 가까운 몸매에 저런 뛰어난 머리까지.

“맞아요.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나간 것에는 그런 의미도 있는 거겠죠.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니까..”

“그렇다. 이번에 발고가 들어간 건 알고 있지?”

서예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세강이 부탁한 하진혁이라는 사람이 한 거라 일부로 알아보기도 했다.

“그걸 더 키우면 된다. 태수가 나설 정도로 크게.”

“네? 저희 상단에서 그걸 어떻게.. 아아..”

또 알아차렸다. 정말 대단한 여자다. 너무 똑똑하면 부담스러운데.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군이면 정말 편하다. 알아서 움직이고 일을 잘 해결하니까.

“그러니까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야겠군요.”

“맞아. 그러면 자연스럽게 될 거다.”

홍 무관은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태수는 지금 그런 명분이 필요해. 조금만 목소리를 내도 바로 나설 거다.”

“상단의 힘을 전부 사용해서라도 그리해야겠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대협.”

서예주는 커다란 깨우침을 얻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철각패도는 다소 멋쩍어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나자 홍 무관이 다가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밀이냐고.

“성흥 상단에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그 사람들을 찾아서 발고를 하라고 설득할 거에요.”

홍 무관은 손을 내저였다.

“그런 거 성흥 상단에서 알았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게다가 누가 나서겠습니까. 보복당할까 두려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겁니다.”

“아뇨.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달라요.”

서예주는 몇 가지 상황이 다르니 분명히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태수님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이시니까요. 병사들을 끌고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았으니 생각이 좀 다를 거에요.”

“그래도 나서는 사람 없을 겁니다. 그렇게 나선다고 처벌을 받겠습니까? 다 빠져나갑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홍 무관은 결사반대라며 서예주를 설득하려 했다.

“그리고 태수는 바뀌지만 성흥 상단은 여기 계속 있을 거 아닙니까. 사람들도 그걸 아니까 입을 다무는 겁니다.”

서예주는 홍 무관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저 걱정해주시는 거 알아요. 맞아요. 대부분은 나서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히 발고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억울해서. 분하고 원통해서 정말 죽고 싶은 사람. 가슴에 맺힌 게 너무나도 아파서 그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 중에 누군가는 나설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이 아니면 영영 그런 걸 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손 태수와 같은 관리는 정말 보기 드물다. 언제 장안에 그런 태수가 올지 알 수 없는 일.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괴물이 나타났다고 하지 손수 나서서 백성들의 안전을 살폈다. 보통 관리가 그러겠나. 관청에 꼭꼭 숨어서 입으로만 떠들지.

그 후의 일도 그렇다. 그저 길을 꽉 막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안전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는 백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길을 터주었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손 태수가 선정을 베푼 일을 알려주면서 설득하면 분명히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서예주는 이미 발고를 한 사람이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가장 먼저 나서기는 좀 그렇지만 누가 했다고 하면 그 뒤를 따르는 건 덜 부담스럽거든요.”

“그건 맞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쪽에서 이 사실이 알게 되면..”

홍 무관의 말에 서예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들이 그냥 둘까요?”

홍 무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에요. 저는 그렇게 얌전하게 당해주지는 않겠어요.”

서예주의 의지를 확실하게 깨들은 홍 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면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런 사실은 무관인 그가 더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풀겠습니다.”

***

생각보다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발고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홍 무관은 물론이고 서예주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거다. 게다가 이번이 아니면 억울함을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우르르 나선 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홈쇼핑 멘트에 자신도 모르게 전화기를 드는 사람들처럼.

거기에다 이미 발고를 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발고가 들어오고, 상당수가 성흥 상단과 관련이 있자 태수가 나섰다. 장안 태수가 직접 나서자 성흥 상단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많은 사건이 전부 성흥 상단과 연관이 있다는 게냐!”

손 태수의 엄한 목소리가 관청에 퍼졌다. 서슬 퍼런 분위기에 다들 쉽게 나서지 못했다. 눈치를 보다 상단에서 자주 상납을 받은 관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사오니..”

“내가 사실 여부를 묻는 것이더냐?”

손 태수는 손으로 의자를 탕 쳤다.

“이렇게 많은 발고가 들어왔다는 게 정상으로 보이느냐? 내가 관리 생활을 여러 곳에서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봤느니라.”

백성들이 이럴 때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태수의 말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렇지만 아직 죄가 밝혀진 건 아니오니..”

“그러니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밝혀 어떤 억울함도 없도록 하여라.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살필 것이니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명심하라!”

서로 다 알고 있다. 태수는 관리 중에 상단에서 돈 받은 놈이 있다는 걸 안다. 관리도 기선 제압을 하려고 태수가 저러는 걸 안다.

적당한 사건이라면 밑에서 적당히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태수가 직접 나서게 되면 상단 편의를 봐주기 어렵다. 걸리면 끝장나니까.

그래서 손 태수가 직접 경고한 거다.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거다. 걸리면 각오해라. 이 말을 조금 돌려서 한 거다. 이 말은 상단에까지 들어갔다.

“아니. 갑자기.. 허허.. 별 거지 같은 경우가..”

성흥 상단의 장안 지부장은 헛웃음만 픽픽 내뱉었다. 태수가 깐깐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불똥이 자신에게 튀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였다.

지부장 정도 되면 분위기 파악이 빠른 사람이다. 그 정도 눈치와 상황판단력 없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한다.

“본점에 연락하고 근처에 모실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지?”

잘못하면 지부가 거덜 날 수도 있었다. 태수가 작정하고 노리는 것 같으니 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게 안전했다.

“무공 대사님이 종남산에 계십니다.”

“오오. 무공 대사님이? 그거 마침 잘 되었군.”

지부장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무공 대사라면 무림맹의 호법. 관부나 황실에도 두루 인맥이 있는 사람이었다. 장안 태수라고 하더라도 쉽게 볼 수 없는 인물.

무공 대사 정도면 바람막이로는 과분한 존재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일단은 연락하기로 했다.

“종남이면 바로 전서구를 날리면 되겠군.”

그리고 그 소식을 곧바로 원보 상단에도 전해졌다. 끄나풀이야 이미 심어 놓았으니까.

“무공 대사라니.. 이런 치졸한 놈들..”

무공 대사가 온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서예주는 자그마한 주먹을 꼭 쥐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 좀 일이 풀리나 했는데..”

성흥 상단이 준비하던 상로 개척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았다. 조사를 받게 되어 지부가 어수선하다 보니 일을 진행 시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 대사가 오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황실에도 영향력이 있는 거물 무림인이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라. 아마 오지 못할 테니까.”

철각패도가 지붕 위에서 중얼거렸다.

“무공 대사라. 재미있게 되었군.”

소림의 무공 대사. 무림맹의 장문인인 무원 대사의 사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소림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무공 대사라고.

그는 승려임에도 권력과 재물에 욕심이 많았다. 당연히 세간의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사형인 무원 대사를 무림맹의 맹주로 밀었다.

대신 자신은 호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다지는 작업을 했다. 황실과 관은 물론이고 군부와 강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인맥을 관리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둘 다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걸 보면 좋은 놈은 아니군.”

사혈련의 장로와 현천문의 원덕강. 둘 다 무공 대사를 싫어했다. 원덕강의 경우에는 여러 차례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형편없는 문파이고 쓸모없는 무공이라고 무시당한 적이 여러 번. 은근히 남을 깔아뭉개서 자신이 높아 보이는 걸 즐기는 인물이었다.

“종남산이라. 종남이면 이쪽 방향이지?”

철각패도는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허공은 먹물에 물들어 있는 듯했다. 달이 하늘에 있기는 했지만, 어둠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거의 기울어 희미한 빛줄기만 땅에 내려보내고 있었으니까.

철각패도는 한참을 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오늘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몸을 바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철각패도의 몸을 사용해 길을 나섰고, 해가 거의 저물어갈 때쯤 목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철각패도는 히죽 웃으면서 무공 대사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느긋하게 나무둥치에 앉아서.

무공 대사 일행은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내일까지는 장안에 도달해야 하니 서둘러라.”

“글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철각패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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