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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최고시다.
‘가만. 이 자식이 착각한 거 아냐?’
어제 돈을 거절하면서 태수와는 별다른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오늘 모두에게 길을 여는 걸 확인했고.
그래서 나와 손 태수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만약 친분이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표국이야 사협으로 튀어버리면 그만이다. 사협의 관리들은 모두 표국과 친분이 있는 자들이니까.
성흥 상단도 마찬가지. 이들은 그냥 표국과 계약한 대로 한 거라고 하면 된다. 장안 태수에게 발고를 한다?
‘표국과 상단은 완벽하게 계약서를 작성했겠지. 조사를 해도 소용없을 확률이 높아.’
세력이 있고 돈이 있는 놈들이다. 이런 일에는 도가 튼 놈들. 시간만 하염없이 흐를 테고 결국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장안 태수가 아무리 죄를 입증하려고 해도 그럴 틈을 주지 않을 거다.
“지금 받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할 테니 그렇게 아시오.”
상단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힘없이 하나둘 돈을 받아들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은 침울 그 자체였다.
“마누라 신발하고 애들 옷이라도 사줄까 했는데..”
쟁자수 지씨가 돈을 쥔 손을 처량하게 쳐다보았다. 다들 별말이 없었다. 신발을 질질 끌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사협으로 갑시다. 가서 못 받은 거 제대로 받아냅시다.”
한천위가 억울했는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사협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가다가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간다고 돈을 받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도 없고.
“술이나 먹자고.”
자조 섞인 목소리. 다들 그 말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싸구려 술집을 향해서.
“이대로 끝낼 건가? 어? 이렇게 당하고 말 거냐고.”
한천위가 진혁에게 다가와 따지듯 물었다.
“이대로 끝 낼 수는 없습니다. 이건 옳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사협의 관리들은 표국의 손을 들어줄 테니까. 목세강이 다가와 한천위를 달랬다.
“일단 우리도 같이 가세. 하 표사라고 무슨 수가 있겠나. 작정하고 벌인 일을..”
한천위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만나기만 하면 뼈를 뽑아서 두들겨 패겠다며 성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천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사실 표국 입장에서야 큰돈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시끄러워지느니 돈을 주는 게 훨씬 나을 건데..”
“돈만 보자면야 그렇겠지.”
목세강은 돈 때문은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감정 싸움이야. 우리가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지.”
“거기다가 자기들 건드리면 이런 꼴이 난다는 본보기도 보여주고 말이죠.”
진혁이 거들자 목세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천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우!! 세상에는 왜 이렇게 개 같은 새끼가 많은 거야?!”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쓰레기보다 못한 새끼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그런 새끼들이 잘 먹고 잘산다는 거다. 이건 아니지.
가만. 이놈들이 상단과 일을 마치고 나간 후에 어딜 갔을까? 오늘 바로 장안을 떴을까?
“그건 아마 아니겠지. 그놈들도 어디선가 술을 마시겠지. 뭐 우리보다야 좋은 곳에서.”
“그렇겠죠?”
그동안 그 고생을 했는데 오자마자 장안을 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연히 어딘가 숙소를 잡고, 술집에 갈 거다.
우리가 그들을 찾을 거라는 생각도 하겠지? 장안에서 마주치면 곤란할 테니까. 그렇다면 꼬리를 붙였겠네?
진혁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감시자가 어디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내공을 사용하면 가능한데, 그러면 목세강이 눈치를 챌 것이다.
‘뭐. 좀 이따 알아보지.’
그런 조무래기 알아내는 거야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이곳은 장안 아닌가. 철각패도의 몸도 여기 있었다.
“빨리 와아. 오늘은 다 잊고 취해보자고.”
왕칠이 멀리서 손짓했다. 벌써 한 잔 마셨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
‘어서 움직여라. 표국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게.’
진혁은 술을 마시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철각패도 소환! 일행이 자리 잡은 곳 근처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한 놈이 눈에 딱 들어왔다.
그런데 모두가 자러 갈 때까지 감시할 생각인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당신들도 술 좀 그만 먹고 잠 좀 자라. 자!’
끝까지 남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몇 있었다. 개중에는 한천위와 왕칠도 있었다. 완전히 취해서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이었지만, 더 먹자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는 아니었지만, 일하고 돈 못 받은 경험 많다. 그럴 때마다 술도 많이 펐다. 하지만 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몸만 축나고, 다음날 머리만 아프지. 속도 쓰리고.
그렇게 퍼마시던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가 정리되자 감시자가 움직였다.
‘그래. 그래. 어서 가라.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면상 한 번 보게.’
감시자는 주변을 간혹 살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짓. 공중에서 그놈을 보고 있는 철각패도의 입장에서는 우스운 일이었다.
한참을 가다 도착한 곳은 제법 비싸 보이는 술집이었다. 따라가 보니 별채를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런 새끼들일수록 지들 먹고 즐기는 데는 돈을 펑펑 쓴다니까. 여자까지 끼고 아주 난리가 났다.
“여기가 숙소를 정했다는 거구만. 오케이. 신명 나게 마시고들 있으라고.”
철각패도는 위치를 기억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서예주가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서예주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협.”
“오늘 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여자의 감이라고 생각해두세요.”
서예주는 방긋 웃었다.
가슴이 진탕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와. 이거 잘못하다가 심장마비 걸리겠는데? 정신차리자. 정신!!
“항상 같이 있던 무사는 어딜 간 건가?”
“홍 무관 아저씨 말씀하시는 거군요. 잠시 볼일이 있어서요.”
서예주는 차를 내왔다.
“사주로 가는 일 말인데..”
사주, 즉 돈황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예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사람들을 모으고 있답니다. 능력 있는 분들을 모시고 있어요.”
“그래. 많이 모았나?”
서예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직은요. 혹시 대협께서도 관심이 있으시면..”
“아니. 나는 갈 생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각패도는 갈 생각이 없지.
실망하는 눈초리.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고수를 찾고 있다면 내가 몇 명 알려줄 수는 있지.”
“정말이요?”
서예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이 더욱 크게 보였다.
“커흠.. 나도 어쩌다가 들은 이야기이니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럼요. 절대로 하지 않을게요.”
진혁은 목세강을 알려주었다. 목세강은 큰 문파의 장로급은 되는 실력이다. 손쉽게 볼 수 없는 고수. 서예주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덤으로 한천위의 이름도 말했다. 목세강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천위도 상당한 실력자는 분명했다. 발전 속도도 빠르고.
“그 둘만 얻어도 한결 나을 거야. 특히 목세강이라는 자. 그자는 반드시 끌어들이도록.”
“예. 대협. 그 정도 고수라면 애원을 해서라도 끌어들여야죠.”
“혹시 자금이 모자라면 얘기해라. 어느 정도는 더 지원할 수 있으니.”
사혈련 장로의 재산은 어마어마했다. 사혈련의 자금 중에서 비자금으로 빼돌린 게 어마어마했다. 서예주에게 주기로 한 금자 십만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자금보다는 고수가 절실해요. 중간에 괴물을 상대할 수도 있으니..”
“고수를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겠나. 그리고 고수가 많이 필요할 정도의 길이라면 이미 그른 거야.”
진혁은 오히려 가려는 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길잡이나 정찰을 잘하는 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건 이미 찾고 있답니다. 그래도 조언 감사드려요.”
“그런가?”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홍 무관이라는 무사가 있을 때는 그래도 덜 어색했는데, 둘이만 있으니 뭔가 어색했다.
“크흠.. 황실에 있는 팔찌는 어찌 되었나?”
“아. 그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걱정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알아낼 테니까요.”
“아니다. 그렇게 조급하게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진혁은 여유가 좀 생겼으니 천천히 알아봐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
“돈황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이지?”
겨우 생각해 낸 질문이었다.
“그게.. 사실 저와 정혼할 뻔했던 사람이랍니다.”
“정혼?”
“예. 그런데 제가 워낙..”
워낙 뭐? 말을 왜 끊어? 여자들은 참 이상해. 말을 하다가 만단 말이야. 그러면서 나중에 왜 그걸 모르냐고 한다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창피해서 말씀드리기가..”
발그레해진 뺨을 감싸 쥐고는 서예주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모기가 왱왱거리는 것 같은 작은 소리로.
“제가 너무 박색이라고 그 집에서 퇴짜를 놓아서..”
뭐? 박색? 그러니까 못생겨서 딱지를 맞았다는 거야? 어떤 새낀지 눈깔이 삐었구나. 절세 미녀를 몰라보고. 하기야 이 시대 미녀라고 하는 애들 보니까 하나같이 동글동글하고 풍성하더라.
반면에 서예주는 늘씬하고 서글서글하다.
“누군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 없군.”
철각패도의 말에 서예주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보였다.
- 서예주로부터 11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엥? 이건 또 뭐야? 아니 포인트를 얻어서 좋기는 한데.
당황스러웠다. 철각패도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와 단둘이 한 공간에, 그것도 딱히 할 말 없이 있는 게 얼마나 불편한 건지 경험 없는 사람은 모른다.
그것도 여자가 엄청난 미녀일 때는 그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어허..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벌써 가시게요? 조금 더 있다 가셔도 됩니다. 대협.”
그 순간 다행스럽게도 홍 무관이라는 자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크흠.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철각패도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경직된 걸음을 걸었다. 서예주가 배웅을 나가겠다는 걸 홍 무관이 말렸다. 철각패도는 알아서 갈 테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예? 그럼요.”
“하아. 다행입니다.”
“왜요? 저분이 무슨 나쁜 행동이라도 할까 봐 그러세요?”
“아가씨! 저자는 흉악한 인간입니다. 사파의 거두라고요.”
“에이. 사파라고 다 나쁜 사람인가요. 그리고 저분 나쁜 분은 아니에요. 약간..”
“약간.. 약간 뭐라는 말씀이신지.”
“에이.. 아니에요.”
“아니. 말씀을 끝까지 하셔야..”
홍 무관도 여자를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진혁은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가 폐부를 훑고 지나가니 차분해졌다. 진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하아.. 그래. 이제 할 일을 하러 가야지.”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을 것이다. 안심하고 있겠지. 자기들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떠들었겠지. 킬킬대면서.
“세상이 니들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 지금까지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다를 거야.”
철각패도는 속도를 높였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던 그는 목표 지점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근처 건물에 내려앉았다. 살포시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아직도 술을 마시는 자가 두엇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방으로 갔을 것이다. 대부분 여자를 끼고.
“좋은 꿈 꿔라. 내일부터는 악몽을 마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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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하루 2편씩 연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