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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 1단계 포인트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 2단계가 진행됩니다.
이런 쓰벌. 이게 뭐야? 진혁은 목세강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냅다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어?’
포인트를 다 채우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1단계이고 2단계가 있단다. 그럼 3단계, 4단계도 있는 거야? 아우우!!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알려 줬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메시지가 보였다.
- 2단계 진입. 흡수 제한이 해제되고 *#$가 개방됩니다.
아. 또 저런다. 개방된다는 걸 보니 중요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보인다. 글자가 깨져 보이는 것 같았다.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어야 물어보지. 망한 회사 게임 하는 느낌이다. 문제가 있어도 항의할 수 없는.
진혁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고는 눈을 감았다. 목세강의 상황 같은 건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생각 좀 정리하자.’
진혁은 멍한 상태였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2단계라니. 그리고 흡수 제한은 뭐지? 개방된 건 또 뭐고? 알 수 없는 것투성이.
‘일단 2단계 뒤도 있다고 생각하자. 설사 이번 단계가 끝이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분명히 포인트를 다 모으고 두 개의 팔찌가 있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건 확실하다. 진혁은 팔찌를 슬쩍 보았다. 초록색이 희미하게 보였다. 2단계 넘어오고도 포인트가 조금 쌓인 거다.
‘그냥 여기 살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맘에 안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적응하면 살만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무공도 강하겠다. 돈도 많겠다.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잖아. 이 몸으로 살다가 문제 생기면 철각패도 몸으로 가서 해결하면 그만이고.
위기가 오더라도 다른 몸으로 피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죽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팔찌에 선명하게 보이는 7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9라는 숫자가 보였었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깊은 탄식 소리가 들렸다. 목세강이 내뱉은 거였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후우우..”
앞을 보니 목세강이 연신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결국, 문을 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혁에게 호의가 듬뿍 담긴 시선을 보냈다.
“자네 덕분일세. 뭔가 단서를 찾은 것 같네.”
“축하드립니다.”
“이거 참. 자네한테는 계속 신세만 지는걸?”
진혁은 사부님께 들은 게 생각나면 바로 말을 하겠다고 했다.
“정말 자네 사부님은 대단한 분이군.”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진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목세강은 혀를 차면서 물었다.
“아니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어쩌다가..”
“산속에서 사파 인물을 만나셔서..”
진혁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했다. 현천문에 처음 방문해서 했던 말이었다. 산속에서 사파 인물을 만나 양패구상했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렸다. 대충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현천문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원덕강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혁이었다. 사부님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런 걸 배웠다고 하니 모두 인정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먼. 내가 공연히 이야기를 꺼낸 것 같으이.”
“괜찮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더군요.”
이런 일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그 감정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그 말에 목세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군가를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걸 인정해야 해. 그렇지않으면 결국 자신까지 그 감정에 잡아먹히니까.”
목세강은 사부를 잃은 경험을 떠올리는지 목소리에 비탄의 감정이 섞였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조만간 내가 한 분 소개를 시켜줌세. 자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야.”
“좋은 인연이라면 저도 환영입니다.”
“가서 좀 쉬지. 곧 일어나야겠지만, 그래도 눈을 좀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네.”
맞는 말이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밝아오는 기미가 있었다. 지금 잠을 청해도 잘해야 두 시진이나 잘 수 있을까? 하지만 계속 뜬눈으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터.
둘은 천천히 걸어서 객잔으로 다시 돌아왔다.
***
‘역시 포인트가 모이는 게 느려.’
포인트가 쌓이는 속도를 확인을 해봤다. 예전 같았으면 한 칸의 절반 정도가 찼을 메시지가 떴는데, 지금은 10%나 찼을까? 물론 정확하게 계산한 건 아니었지만, 체감상 그랬다.
‘이걸 다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이전에는 10칸 채우는 걸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쉬엄쉬엄해도 금방 차올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만만하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포인트를 팍팍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제 본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비슷한 나이의 노인이 한 명과 함께. 진혁은 그 노인도 고수일까 싶어서 재빨리 정보를 확인했다.
- 진원휘 (남, 92세) ... ... ... 내공 없음.
이건 또 뭐야? 하아. 이제는 이런 것까지 깨져 보이는 건가? 나중에는 아예 아무것도 못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야 없지.
“할아버님 또 뵙네요. 어디 가시나 보죠?”
“늙은이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겠나. 운동삼아 슬슬 걸어 다니는 게지. 헐헐..”
“옆에 분이 어제 만나신다는 그 친구분이신가 보죠? 안녕하세요?”
진혁은 솔직히 놀랐다. 92세. 이 시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나이다. 진혁이 있던 시대에서도 92세에 이렇게 정정하게 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림인이니 그렇다고 쳐도 진원휘라는 노인은 내공도 없다. 그런데 지팡이도 없도 허리도 꼿꼿했다. 눈빛도 살아있었고 정신도 또렷해 보였고.
그냥 봐서는 아무도 90세가 넘었다고는 생각지 않을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 이 친구가 내가 얘기했던 그 젊은이야.”
“호오.. 이 친구가?”
노인의 말에 진원휘가 호기심을 보였다.
‘엄청난 고수와 친구인 걸 보면 이 노인도 보통 노인은 아니겠지.’
진혁은 두 노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걸 물어보지는 않았다. 게다가 곧 출발한다는 연락이 와서 자리를 떠야 했다.
“할아버지. 곧 출발한다고 하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게.”
“날씨 더우니까 밖에 너무 오래 계시지 마시구요.”
“그려그려. 자네도 몸 조심하라고.”
진혁은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런 진혁을 쳐다보면서 두 노인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가?”
“자네 말대로 성품은 좋아 보이는구먼.”
“그렇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좋다는 말만 하더구만.”
“그러면 둘 중 하나지.”
노인이 진 노인을 쳐다보았다. 둘이 어떤 건지 말해보라는 시선으로.
“세상에 없을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던가. 아니면 사람들을 전부 속일 정도로 약삭빠른 놈이던가.”
“그런가?”
“어디 내가 좀 알아봐 줄까? 아니. 말 나온 김에 내가 애들 시켜서 좀 알아봄세.”
“이런.. 자네도 호기심이 동한 게로구만.”
진 노인은 빙긋 웃었다. 자하 검선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더구나 현천문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관부와 친밀하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었으니까.
특히나 진원휘 같은 거대 상단을 이끄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금황보검을 가지고 있는 현천문이라면 인연을 맺어 둬서 나쁠 것 없지.”
금황보검. 태조가 하사한 보검으로 역모만 아니라면 어떠한 죄라도 한 번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런 용도보다는 태조가 직접 하사했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새로 부임하는 현령들이 현천문주를 불러 인사라도 한 번 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한편, 진혁은 이동하면서 포인트를 모을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흡수 제한이 해제된 건 무언지. 새로 개방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아니. 도대체 뭐야? 뭐가 그동안 흡수되지 않았다는 거지?’
게다가 개방되었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막혀있었다는 건데.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게 포인트가 찔끔찔끔 오르니 더 그런 듯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게 있어도 찾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고 그랬는데, 지금은 짜증이 났다.
‘이게 원효대사 해골 물이구나. 상황이 바뀌니까 이렇게 달라지네.“
진혁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걸 모두 지우고 계획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돈황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인원도 많이 가야 할 거야. 소수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거기 껴서 돈황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인원도 많고 중간에 상황도 많을 거라고. 그러면 포인트를 얻을 기회도 많을 거야. 게다가 돈황에 가서 팔찌의 주인도 한 번 만나보고.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
그렇게 결론지은 진혁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이 길을 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부근에 괴물이 나타나서 출입을 막고 있답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돌아서 가려면 빙 둘러서 가야 하니 적어도 열흘은 더 걸린다. 마진량 표국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이곳 책임자가 누구라고 하던가?”
“태수가 직접 와있다고 합니다.”
괴물이 출현했다는 건 외적의 침략을 받은 것만큼 중대한 일이다. 장안 태수가 직접 와 있는 것도 이상할 것 없었다.
“장안 태수라면 우리가 선을 넣을 수 있잖나.”
“그게 문제가 좀..”
태수가 얼마 전에 바뀌었단다. 그런데 하필 태수가 무림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자라는 거였다.
직접 선을 대던가 안 되면 백령 진인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던 마진량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그런 자가..”
그렇다고 열흘이나 걸리는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 방법을 찾으려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코앞이 장안인데.”
“그러게나 말이야. 빨리 일 끝내고 술이나 퍼마시려고 했더니만.. 쯧쯧..”
사람들은 모두 아쉬워했다. 목세강도 마찬가지였다. 술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는데, 그의 귀로 전음이 들렸다.
- 이놈아. 잠깐 이리 와보거라.
목세강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일어서서는 태사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이었다.
“왜요?”
“이놈 봐라? 잘하면 태사부 치겠다?”
“맨날 이상한 거만 시키시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목세강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이번엔 또 어떤 기괴한 일을 시킬지 걱정하면서. 그런데 자하 검선의 말을 뜻밖이었다.
“지금 장안 태수로 와 있는 사람이 원덕강과 친분이 있는 녀석이야. 그러니 하진혁이라는 녀석을 통하면 지나갈 수 있을 게야.”
목세강은 빤히 자하 검선을 쳐다보았다. 표행을 돕기 위해서 이러는 건 절대로 아닐 테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뭐가 이놈아.”
“그렇잖습니까. 그냥 이런 걸 알려줄 리가 없잖아요.”
어제만 해도 잊고 있었다. 예전 자하 검선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걸. 하지만 백령진인이 가지고 있는 보검을 보여주는 대가로 심부름을 시킬 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또 어떤 처녀에게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클클. 그런 게 아니다. 이놈아.”
“하아.. 설마 결혼을 한 아낙은..”
쉿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목세강이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공격을 피할 줄 몰랐던 자하 검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 봐라?”
“예.. 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소손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자하 검선은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다 말을 이었다.
“백령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테지. 내가 알려준 거라고 언질하면 알아서 할 게다.”
목세강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알았다고 했다. 목세강이 자리를 뜨자 자하 검선이 중얼거렸다.
“어떤 놈인지는 이런저런 상황에 자꾸 밀어 넣어 보면 알겠지.”
목세강은 이 사실을 백령진인에게 슬쩍 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은 장안 태수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