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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대처하는 방법.
멀리서 커다란 인영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 광경이 상당히 웃겼다. 옷도 시커멓고 얼굴과 손도 새까맸다. 그래서 눈동자가 둥둥 떠오는 것 같이 보였다.
“본인은 사혈련의 갈맹이라고 하는데.. 귀하는?”
상대도 고수라는 걸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고수가 여러모로 편하긴 하다. 알아서 수그리고 들어오니까.
그나저나 갈맹이라. 꽤나 유명한 이름이다. 사혈련의 3대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 금검 교무국, 혈도 임평백, 그리고 흑수 갈맹.
“철각패도라는 허명으로 불리고 있소.”
“아.. 귀하가 철각패도..”
갈맹도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 검은 손은 독공을 익혀서 저리된 거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서 정파의 고수들도 한 수 접어준다는 자.
“그런데 이곳은 무슨 일로 온 게요?”
“왜? 내가 오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 건가?”
갈맹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혈련을 대표하는 고수. 그런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나온 자는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개의치 않았다. 상대방의 무공에 관해서도 빠삭했고, 자신의 윗줄이라는 게 확실했으니까. 사혈련 장로의 기억에 다 들어 있었다. 게다가 갈맹의 신상정보도 보였다.
- 갈맹 (남, 49세) 사혈련의 장로. 내공 수위 53년.
그래. 저 정도면 세상에 무서운 거 없겠지. 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야. 일단 신상정보가 보이면 나와 동급이거나 하수란 이야기.
동급이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 두 고수의 무지막지한 경험과 무학에 대한 이론, 거기다가 깨달음까지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갈맹의 눈초리가 심상치가 않다.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면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런 모습.
“혹시 사혈련에 들어 올 생각은 없소?”
“사혈련에?”
“그렇소. 사혈련에 온다면 귀하를 높이 대접할 거요.”
철각패도 이름이 제법 유명해지긴 했나 보다. 하기야 그동안 때려잡고 다닌 놈들이 어디 한들이어야지. 게다가 대부분 정파 관련 인물들이다. 9파 1방과 관련 있는 인물도 여럿 있었고.
‘그러니까 딱 자기네 스타일이라 이거지.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사혈련이 세가 너무 약하긴 해.’
무림맹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9파 1방이나 5대 세가의 한 곳보다는 강성한? 뭐 그런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최고수 중 한 명이었던 장로가 사라졌다. 죽은 걸로 알 거다. 무림에서야 사라지면 죽은 거지 뭐.
그러니 고수를 영입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철각패도 정도면 최소한 장로 자리는 줄 거다. 하지만 진혁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말할 필요는 물론 없지.
“그런데 사혈련의 장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여긴 무슨 일이요?”
“흐음.. 그건..”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여긴 딱히 분쟁 지역도 아니고, 이권이 크게 걸린 곳도 아니다. 그런데 사혈련의 장로인 자가 있다?
‘이거 혹시 표행하고 연관된 거 아냐? 그때 습격했던 놈들이 사혈련 놈들이고?’
대답을 못 하고 그냥 넘어가려는 꼴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건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하기야 황서군 같은 자가 올 때부터 이상했다니까.
“혹시 사협 표국과 관련된..”
“허어.. 아니 그걸 어떻게..”
“나도 우연히 들은 거요. 그러면 이거 같은 생각으로 모인 거구만.”
블러핑을 했다. 아는 척하면서 미끼를 던지니 고민하던 갈맹이 은근히 이야기를 해왔다. 협력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협력? 그게 가능하겠소?”
“그 물건만 우리에게 주면 대신 돈이나 보물은 얼마든지 주겠소.”
하긴 철각패도가 보물이나 돈을 밝힌다고 소문이 났지.
“사실 그 물건이 귀하에게는 그리 큰 소용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귀하는 괴물들과 싸울 일이 없으니까.”
괴물? 이건 무슨 소리지? 잠깐 고민하는 척하면서 정리를 해보았다. 그러니까 사협 표국에서 나르고 있는 물건은 괴물과 싸울 때 필요한 물건이라는 말이다.
“그거야 모르는 일. 괴물을 상대할 때 필요한 거라면 천금을 주고도 살 사람이 있을 터. 아니. 성을 하나 통째로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 같은데..”
미끼를 갈맹이 덥석 물었다.
“그만한 재물은 우리가 주겠소. 하지만 일단 물건을 차지하고 나야 재물이든 뭐든 얘기를 할 거 아니오.”
갈맹은 물건만 차지할 수 있다면 정말 뭐든 해줄 것처럼 말했다.
‘웃기고 있네. 이 새끼. 물건만 차지하면 죽여버리려고 덤벼들 거지? 내가 니들 어떤 캐릭턴지 모를 것 같냐?’
계속 망설이는 것 같자 갈맹은 좀 더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 물건은 무림맹에서 파견된 고수들이 지키고 있어서 아무리 귀하라고 하더라도 어려울게요. 그러니 우리 힘을 합칩시다.”
“황서군 정도는 내가 미리 간을 보기는 했는데.. 그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갈맹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소. 하지만 그 물건을 옮기는 데 황서군 한 명만 보냈겠소? 비밀리에 물건을 지키고 있는 고수들이 더 있소. 그들이 진짜배기지.”
이놈들이 다 알고 있구나. 하긴. 그랬으니까 내가 물건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믿었겠지. 그건 그렇고.
이런 썅. 임시 표사를 뽑은 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표행에 합류시키기 위한 거였잖아? 하기야 그런 귀한 물건을 움직이니 나머지는 다 버려도 좋다는 식으로 나온 거겠지. 아니 애초부터 버리는 용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어.
아까웠다. 이런 걸 미리 알았다면 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라고 모든 사람의 정보를 살펴보지는 않는다. 가끔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보는 정도.
그런데 황서군보다 고수들이 몰래 포진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우.. 이게 다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 그래. 그 몸이 100%였다면 대번에 알아챘을 텐데.’
완전히 활성화가 되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대놓고 고수가 기운을 숨기고 있으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약 객잔에서 손을 쓰려 했다면 그자들이 나섰을 거요.”
“흥!! 그런 놈들 몇 놈이 나선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만만치 않은 놈들이오. 우리가 습격을 할지도 미리 알고 있었소.”
역시나 습격을 한 놈들은 사혈련이었다. 그런데 갈맹은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대로 간다면 물건을 탈취하기 어려우니 내 도움을 받으려 하는 거였다.
‘이 사람아. 그건 안 되지. 난 내일이면 합류를 할 건데 너를 어떻게 도와줘?’
그 물건이 중요한 건 아니다. 내가 필요한 건 포인트! 그러니 니들하고 협력을 할 일은 없지. 하지만 굳이 척을 질 일은 없으니까 대충 둘러대야겠다.
“그렇다면 더욱 같이 움직일 수는 없지. 나는 나대로 움직이겠소.”
“허어.. 그러지 말고..”
“대신. 물건을 만약 차지하게 되면 사혈련에 먼저 기회를 드리지. 그 정도면 좋지 않겠소?”
갈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좋소!”
갈맹은 이 일이 아니더라도 꼭 사혈련에 한 번은 들리라고 당부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흑수 갈맹은 철각패도가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걸 느낀 듯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비바람 막을 지붕 정도는 필요한 법이지. 알겠소.”
“잘 생각하셨소.”
그렇게 여운만 살짝 남겨 놓고 자리를 뜨려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물건이 정확하게 어떤 거요? 나도 대략적인 정보만 들은 터라..”
“흐음.. 이건 기밀이기는 한데..”
사혈련에서 같이 지낼지도 모르는 사이. 거기다가 꼭 영입하고 싶은 고수. 게다가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떤 물건이라는 건 안다. 갈맹은 이야기해주어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
“검이라고 하오. 괴물을 벨 수 있는 보검.”
갈맹과 헤어지고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서 작살을 내려고 하던 놈들을 찾아가는 대신 운기조식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괴물을 벨 수 있는 보검? 그렇다면 이 난리가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물건이다. 검강으로도 상처를 내기 어려운데 괴물은 벤다? 도대체 괴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왜 자신이 이곳에 떨어진 시기와 비슷한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걸까.
누군가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보면 처음부터 다 설명해주고 그러던데 뭐가 이따위야? 알 수 없는 것투성이고.’
진혁은 일단 보검이 어떤 건지도 좀 알아보고 서예주와 빨리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팔찌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
표국과 합류하기 위해 사람들은 평소보다 조금 속도를 높였다. 다들 표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했다.
“표국도 속도를 높일 수 있으니 연락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혁은 누군가 가서 전령 역할을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동의했다.
“그건 그래. 그럼 누가 가는 게 좋을까?”
“제가 가죠.”
진혁이 나서자 다들 좋다고 했다. 진혁은 곧바로 말을 타고 달렸다. 그리고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표국 일행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누군가 말을 타고 다가오자 경계를 하다가 주인공이 하진혁이라는 걸 알고는 놀라워했다.
“뭐라? 남은 사람들이 표물을 가지고 오고 있어?”
“그렇습니다.”
마진량 표국주는 놀란 표정이었다. 아니. 조금 귀찮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하지만 표물을 살려서 온다는 데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용케 살아남았군. 정말 다행일세.”
마진량은 크게 기뻐하는 연기를 했다. 역시나 표국주를 할 만한 인물이었다.
“피곤할 텐데 좀 쉬게.”
진혁을 배려하는 듯한 태도. 하지만 표국 사람들의 분위기는 진혁을 환대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런 씨.. 정말 너무하네. 손을 잡고 감격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행이라는 표정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완전히 무관한 사람의 일처럼 굴었다. 오히려 약간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 이 자식들이 정신을 못 차렸네? 철각패도 한 번 또 출동해?
‘관두자. 원래 이런 놈들인데 공연히 힘 뺄 필요 없지. 하지만 알아둬라. 니들 위험에 빠졌을 때, 절대 도움은 바라지 마라.’
진혁은 그리 생각하면서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어떤 놈들이 무림맹에서 나온 놈들인가 살폈다. 정보를 살피니 어떤 사람들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시험을 보지 않고 대부분 갑급 표사가 된 인물들이었다.
‘그때 뒷문으로 들어간 놈들이구만.’
그들이 뒷문으로 들어가서 소란이 있었고, 진혁이 마헌량 표두와 50초를 겨뤘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하고 따로 움직인다 싶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만.’
그냥 낙하산이라고 생각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온 고수들이라니. 내공 수위가 대부분 황서군 보다도 높았다.
그것도 몇 명만 보이는 걸 보니 몇 명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중을 해서 기감을 감지하니 몇 개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러니 모를 수밖에.’
지금 상태로는 엄청나게 집중해야 겨우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검은 어디 있는 거지?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저 사람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겠어. 이 중에서 가장 고수 같으니까.’
등짐을 지고 있는 자였다. 내공 수위는 흑수 갈맹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
- 백령진인 (남, 53세) 무림맹 도검당주. 내공 수위 51년.
호오. 무림맹의 도검당주님께서 직접 오셨구만. 하기야 이 정도 물건을 옮겨야 하니 당주급 정도는 와야겠지.
무림맹의 6당 중에서도 무력을 담당하는 도검당. 그 도검당의 수좌인 곤륜파의 백령진인. 이 임무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온 자들도 대부분 도검당의 무인들이겠군.
진혁은 지그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드디어 헤어졌던 두 무리가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감동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언성이 오갔으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한천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