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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2화 (1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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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대처하는 방법.

진혁은 사람들을 계속 독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진혁의 소리를 듣고는 힘을 내서 달렸다. 저곳까지만 가면 살 수 있다는 일념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진혁이 힐끗 보니 표국주와 황서군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건 산적들을 막을 표국의 주축 세력은 거의 빠져나갔다는 말이다.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 힘없는 자들이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빨리!!”

진혁은 달려오는 사람에게 손짓했다. 왜냐하면, 많은 산적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오기 시작해서였다.

이 상태로는 산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저렇게 많은 수의 산적들이 이쪽으로 온다면 이곳도 피로 흠뻑 젖을 게 뻔했다. 진혁은 큰소리로 외쳤다.

“표국 사람들은 전부 앞에 빠져나갔으니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합니다. 어서 이리로!!”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에게도 잘 들릴 정도로. 아직 살아있는 임시 표사나 쟁자수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진혁 쪽으로 달려왔다.

‘그래. 빨리 움직여라. 중요한 건 앞쪽에서 다 가지고 갔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진혁이 소리를 지른 건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외침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산적 대다수가 표국주가 도망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쪽에는 그들이 원하는 물건이 없으리라 판단했으니 당연한 일. 진혁은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산적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일부는 진혁 일행을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했는지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어림없다!!”

진혁은 앞쪽으로 달려나가 산적을 막았다.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한천위가 옆에서 함께 싸우다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 빠져야 해. 더는 버틸 수 없어.”

“그럼 저 사람들은?”

진혁은 앞쪽에서 혼비백산 한 채로 도망쳐 오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버리고 가자고?”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살 사람은 살아야지!”

둘의 목소리가 다 커졌다.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 나 살자고 저 사람들 못 본 척하면 우리 버리고 도망친 표국 사람들과 뭐가 달라?!!”

진혁은 그 말과 함께 앞으로 뛰어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장엄한 모습에 천위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에이. 씨발.”

천위도 같이 앞으로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던 한 사람. 갑급 표사 목세강도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더니 이내 앞으로 뛰어 나갔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살려달라는 간절함. 달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담긴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산적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진혁을 보았다.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며 빨리 뒤로 도망치라고 하는 진혁. 옷이 피로 물들고 여기저기 상처가 보였지만, 자신들에게 어서 피하라고 말해주는 진혁. 그런 진혁의 옆을 한천위와 목세강이 지키고 있었다.

“아으윽..”

쟁자수 한 명이 달려오다 발을 삐었다. 절룩거리면서 걸어오다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탈한 표정.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눈동자. 그런 쟁자수를 향해 진혁이 앞으로 뛰어 나갔다.

“지씨 아저씨. 일어나요.”

진혁은 천위에게 손짓을 했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달려오는 한천위. 진혁은 쟁자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저씨. 이번에 돈 받아서 애들 뭐 사준다면서요.”

“애들?..”

애들 이야기가 나오자 나이 먹은 쟁자수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진혁은 천위에게 부축해서 데려가라고 말했다. 천위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셋이서 겨우 막고 있었다. 지금 달려오는 산적도 제법 수가 되었고.

“괜찮겠어?”

“적당히 하다 피할 테니 먼저 가세요.”

한천위는 잠시 망설이다 움직였다. 그는 부죽을 하고 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진혁이 위험한지 살피기 위해서. 조금 위험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목세강의 도움을 받아 잘 막고 있었다.

진혁은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산적들을 노려보았다. 땅을 디디고 있는 굳건한 다리. 옷은 엉망이었지만,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런 진혁을 보며 목세강이 말을 툭 내뱉었다.

“자네 제법이군.”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분명히 내공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 없이도 이 정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자신은 내공을 써서 이 정도 버티고 있다. 순수하게 체력만으로 움직였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진혁이라는 녀석은 버티고 있었다.

‘정신력? 아니면 그만큼 혹독한 수련을 한 건가?’

진혁이 내공이 거의 없고, 현천문의 심법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옆에서 싸우는 동안 내공을 사용하는 걸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내공이 없는 걸 보완하기 위해서 엄청난 수련을 한 거라 짐작했다.

‘이런 친구가 여기서 쓰러지게 할 수는 없지.’

목세강은 검에 내공을 조금 더 불어넣었다.

***

얼마나 칼을 휘둘렀을까. 계속 산적을 막아내면서 도망쳤다. 생각보다 거센 저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털어봐야 별것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산적의 추격이 멈췄다.

사람들은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더 움직인 후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무조건 걸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당장에라도 산적들이 쫓아올 것만 같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진혁이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꿈에서 깬 것 같은 표정. 대부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로가 갑자기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표국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고, 모두가 임시 표사와 쟁자수 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혁의 곁으로 모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안으로 가는 것도..”

뒤쪽에 있는 표물은 대부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인원으로 장안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저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다들 진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혁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상황을 살피던 목세강이 말을 던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표국과 다시 합류하는 건데..”

“이 인원으로요? 어이구. 그건..”

산적에게 혼비백산해서인지 다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진혁의 생각으로도 본진과 합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어딜 가나 비슷할 겁니다. 사협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안전하겠어요?”

표행을 절반 정도 왔다. 위험이야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니 앞으로 가나 돌아가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사람들은 돌아가기를 더 바라는 듯했다.

진혁은 목세강에게 물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글쎄... 이건 그냥 내 생각이기는 한데..”

목세강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원래 이곳에는 산채가 없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아마도 습격을 한 놈들은 다른 곳에서 온 놈들일 게야.”

“맞습니다. 저도 이 산에 산채가 있다는 건 못 들어 봤거든요. 묵었던 객잔 주인도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이 부근을 잘 아는 듯한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는 건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안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놈들은 이곳에는 더는 볼 일이 없으니까.”

진혁도 동의했다. 아까 적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산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르니 불안해했다. 혹시라도 산적이 새로 자리를 잡은 걸 수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아까의 기억이 있으니 가기 싫은 거지. 공포는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니까.’

규모도 작아졌으니 이제 습격을 받으면 끝장이라는 생각. 그게 남아있는 한 표행을 하기란 어렵다. 진혁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저는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다 소용없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도 위험은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거기다가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요?”

진혁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표물이 줄었으니 인력이 충분합니다. 그러니 미리 앞쪽에 위험이 있는지 살펴보고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요?”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자는 제안.

“그러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포기하는 걸로 하죠.”

“그거 괜찮겠군.”

목세강이 거들었다. 거기에 한천위까지 나서서 자신도 그게 좋겠다고 하자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 명이 산적들을 막아내는 걸 봤다. 셋이 나서면 어쩐지 안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이. 그러지. 이대로면 한 푼도 못 받을 거 아냐. 까짓거 합류하게 되면 돈 더 내놓으라고 하자고.”

“맞아. 어차피 이거 배상금이 세배잖아. 그거 물어주는 것보다야 우리한테 조금 더 주는 게 표국도 이익이지.”

안전하게 움직인다. 돈도 더 받을 수 있다. 두 가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진혁 일행은 표국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

목세강의 말대로 위협은 없었다. 그래도 꾸준이 정찰을 하면서 위험이 없는지 살폈다. 그 임무는 주로 목세강이 했다. 일행 중에서 가장 고수라는 생각에 진혁이 부탁한 거였다. 목세강은 군말 없이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사람들도 계속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마음을 놓았다.

왕칠과 한천위는 밤마다 진혁의 도움을 받아 수련에 매진했다. 왕칠도 이번에 죽을 뻔한 탓인지 사뭇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고, 한천위는 뛰어난 오성 때문인지 실력이 쭉쭉 늘었다.

수련을 도와주고 잠을 청하러 자리로 가는 진혁에게 번을 서던 목세강이 말을 걸었다.

“심심한데 잠시 얘기 나눠도 괜찮겠나?”

그러지 않아도 정체가 궁금하던 진혁은 목세강의 옆에 앉았다.

“자네는 궁금하지 않나?”

궁금했다. 정체가 뭐길래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지. 진혁의 생각에 목세강은 황서군 보다도 고수였다. 산적과 싸울 때 분명히 보았다. 선명한 검강으로 산적의 몸을 두 조각 내는 광경을.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으시는 건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겠죠.”

“허허..”

목세강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네는 무인 같지가 않아. 선비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지.”

“그런데 참 묘하단 말이야. 자네 무공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야.”

무공의 경지라는 게 나이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목세강은 20대 초반의 진혁이 저 정도 경지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다른 사람들 알려주는 것도 그래. 아. 내가 몰래 들은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게.”

“아닙니다. 들으셔도 상관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목세강은 진혁의 지적이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그렇게 못해. 아니. 내 사부도 그 정도는 못할 거야.”

“과찬이십니다. 그저 책으로 공부를 한 건데..”

진혁은 사문에서 내려오는 책을 보고 익힌 거라고 뻥을 쳤다. 물론 목세강은 믿지 않았다. 그건 책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거라고 하면서.

“책으로 그런 걸 다 알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고수 아닌 자가 어디 있겠나. 그리고 이론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풍부한 경험 없이는 불가능해.”

목세강은 단정지어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나이에 그 지식이나 모든 게 설명이 안 돼. 그게 가능하려면 역시 그것밖에는 없는데.. 혹시..”

눈초리가 이상했다.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설마하니 내 정체를 아는 건가? 팔찌를 가진 사람이 또 있다고 했는데 목세강도? 짧은 시간에 별난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목세강의 말은 전혀 다른 거였다.

“혹시 반로환동한 선배님이십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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