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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를 얻는 다른 방법.
진혁은 한천위와 함께 이동하면서 슬쩍 목세강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실력을 숨기고 있는 고수. 진혁이 보기에 목세강은 마헌량 표두보다도 고수였다. 그런 자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임시 표사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뭐. 강호를 떠도는 사람 중에서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 거야 본인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진혁은 일단 천위의 무공을 봐주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크흠.. 그럼 시작할 테니 잘 부탁하네.”
천위는 무척이나 긴장한 듯 몸이 굳어 있었다. 남에게 자기 무공을 보이는 게 조금 불편한 모양이었다.
“생사대적과 마주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긴장하십니까. 그냥 편안하게 하세요.”
진혁은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었다. 천위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기세가 조금 변했고, 곧바로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기세가 변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 한천위 (남, 24세) 임시 갑급 표사. 내공 수위 15년
- 성장 가능 등급 : 절정 고수.
‘절정 고수?’
잠재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여기서 하는 말로는 오성이 뛰어나다고 하던가? 어쨌든 제대로 배우면 상당한 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거다.
절정 고수는 절대로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9파 1방과 같은 큰 문파들도 절정 고수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거대 문파의 시스템이 어떠한가. 기재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뽑아서 좋은 스승들이 가르친다. 거기다 각종 영약이나 약초를 장복하게 하고. 그런데도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자는 많아야 열 명 내외다.
내공이 절정고수 급에 오른 자가 많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공만 많다고 절정고수가 될 수는 없다. 무학에 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걸 깨우치지 못하면 절정고수가 아니다.
‘반대로 깨달음을 얻었어도 내공이 형편없는 경우도 절정 고수가 아니지.’
내공과 무학에 관한 깨달음.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절정 고수가 된다. 그런데 한천위는 절정 고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뭐가 이상한가?”
진혁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천위가 움직임을 멈추고 물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물론이지. 도움받는 처지인데 뭘 숨기겠나. 뭐든 물어보라고.”
진혁은 눈에 보이는 걸 바로 물어보았다.
“혹시 이 무공을 처음 만드신 분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혹시 그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지 않으셨던가요?”
“아니.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한천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 사실은 사부와 자신, 둘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보법이나 움직임을 보니 그런 의심이 좀 들어서요. 지금 펼치신 무공은 고절한 무공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진혁은 말을 살짝 끌었다. 한천위는 안달이 나서 대답을 재촉했다. 지금까지 계속 의문을 품었던 걸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그는 항상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내가 다른 무관이나 문파 제자보다 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실력에서 밀릴까. 왜 무공을 펼치면 답답함이 느껴지고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어서 말해보게. 숨 넘어가겠어..”
“이상해서 추측을 해보니 혹시 다리가 불편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진혁은 천위에게 다가가서 설명했다. 자세를 잡아보라고 하고는 손으로 부위를 짚어가면서.
“여기서 말입니다. 허리가 이렇게 약간 굽고 상체가 낮아지면 힘이 제대로 검에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자세를 알려주었다. 자세가 제대로 되자 붉은색으로 되어있던 표시가 사라졌다.
“움직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른발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거나 빨리 땅에서 떼는 경우도 많더군요. 오른발에 중심이 실려야 할 때 왼발에 실리는 경우도 있고 말입니다.”
진혁은 이 무공을 창시한 사람이 자기 신체 조건에 최적화된 무공을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사정은 제대로 모른 채 형식만 전해져 내려왔다. 여기까지가 메시지에 보이는 정보.
“한 문파의 일을 이렇게 경솔하게 언급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맞아. 사부에게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래.”
천위의 사부는 술만 마시면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단다. 원래 자신이 배운 무공은 엄청난 것인데, 위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지금 이 모양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개파조사가 몸이 불편했다는 말도 들었다.
천위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혁이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임만 보고서 그런 걸 전부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소림이나 무당의 장문인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진혁은 눈치를 살피다 말을 이었다.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알려준 것이니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제가 아직 부족하니 그냥 참고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잠깐 보고 무공의 기원까지 알아내는 사람이 부족하다니.”
천위는 펄쩍 뛰었다. 사실 진혁이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꿈에 몰랐다. 그냥 의술 좀 알고 기본기가 아주 좋은 무인이라고 생각했다.
마헌량 표두와의 대결에서 50초를 버틴 건 물론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마헌량이 처음부터 실력을 발휘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력이 이 정도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몇 마디 얘기를 해보니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사람은 천재다. 천재도 보통 천재가 아니라 천고의 기재. 천위는 정신을 집중해서 진혁의 설명을 들었다.
“조금 더요. 허리를 곧게 쫙 편다는 느낌으로.. 예..”
“거기서는 움직임이 장중하고 묵직하게.”
“기운을 모은다고 생각하다가 회전할 때 한꺼번에 터트린다는 식으로..”
천위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진혁의 말대로 움직이니 그동안 느꼈던 답답함이나 불편함은 하나도 없었다.
한없이 개운하고 검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원래 검이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갑자기 내공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에 기운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더니 사지백해로 청량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검과 자신. 이 세상에는 그 둘만 존재했다. 그렇게 한천위는 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이야. 역시 기재는 기재라는 건가? 바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진혁은 절정 고수가 될 사람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고 생각했다. 천위는 지금 깊게 자신 안으로 몰입한 상태. 자신이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를 것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천위는 한 단계 레벨업을 할 거다. 게임이나 실제 삶이나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레벨업이라는 것도 그렇다. 실력이라는 게 조금씩 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진혁의 생각은 아니었다.
‘단계를 올라서는 건 한순간이야.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 엄청난 실력 상승이 있지.’
진혁은 혹시나 누가 방해를 할까 싶어 주변을 단속했다. 폭발적인 천위의 기운을 감싸 지금 자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지금 방해를 받으면 평생을 후회한다. 일생일대의 기회. 그걸 놓치게 할 수는 없다.
‘이게 얼마나 큰 포인트를 줄 건수인데..’
진혁은 눈에 기운을 모으고 사람들이 자는 곳을 훑었다. 모두가 아무런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황서군이었다. 국주가 초빙한 무당파의 고수.
‘아. 맞다. 저 자식은 그래도 나름 고수지.’
진혁이 대부분 차단해서 밖으로 빠져나간 건 아주 미약한 기운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황서군은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진혁은 더욱 강하고 세심하게 천위의 기운을 감쌌다. 그러자 일어나려고 하던 황서군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운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차단해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거다. 그냥 자라.’
진혁의 생각대로 황서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잠을 청했다. 진혁은 씨익 웃으면서 한천위가 무공을 펼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위의 각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쉬지 않고 무공을 펼치던 천위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른한 표정에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모든 걸 불태웠다는 듯이.
진혁은 히죽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천 조각 하나를 남긴 채. 이제는 내버려 두어도 위험은 없으니까. 자리로 돌아온 진혁은 누운 채 천위를 살폈다.
천위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듯했다.
무공을 봐달라고 하고는 이곳에 왔고, 가르침을 받았다. 갑자기 이상한 경험을 했고. 몸에서 전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있었던 곳과는 다른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느낌. 그런 생각을 하던 천위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인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기연. 진혁이 없었다면 지금의 각성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급히 진혁의 모습을 찾았다. 진혁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천 조각 하나가 묶여 있는 걸 보았다.
- 지켜보다 괜찮을 듯싶어 자러 갑니다. 축하합니다.
천에 목탄으로 적힌 담백한 문장. 순간 울컥했다. 진혁은 끝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전에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몹쓸 사람. 인사라도 받고 갈 것이지..”
콧등이 짜르르했다. 엎으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런 호의를 베풀겠나. 대단한 사이도 아니고 그저 오가다 만난 사이인데.
물론 그런 인사치레 싫어한다는 거 안다. 사례를 하려고 해도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됐다고 말할 것이다. 다른 표사들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
“고맙네. 고마워. 내 정말 이 은혜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갚겠네.”
진혁은 사부나 마찬가지다. 천위는 무인으로서 더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그는 천천히 진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절을 올렸다. 이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드디어..”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했다. 이것이 얼마 만에 보는 객잔인가. 제대로 된 음식과 편한 잠자리가 있는 곳.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환호했다.
“키야.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겠구만.”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노숙을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여 일 이어졌으니 다들 지칠 만도 했다.
“여기 음식도 괜찮다니까. 크으.. 술이라도 한잔 하면 진짜 죽이는 건데..”
“어림도 없는 소리. 술은 장안이나 가야 할 테니까 꿈 깨라고.”
표행을 할 때 술은 절대 금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당연한 일. 그 외에도 금하는 것들이 많았다. 객잔이라고 해도 창기가 있는 곳은 피했다. 새로 생긴 객잔이나 주인이 바뀐 객잔도 피했고.
잠을 잘 때도 무기를 놓지 않았다. 그럴 정도이니 술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도 다들 딱 한 모금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입맛을 다셨다.
“자. 자. 오늘은 음식은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테니 다들 어여 준비하라고.”
마헌량 표두가 표사에게 지시를 하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표국주와 황서군 같은 주요 인물과 함께.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객잔에 머물 때는 수레와 물건을 한곳에 모아 놓는다. 중요한 물품은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따로 보관하기도 하고. 물론 객잔에 묵을 때도 번을 선다. 밤에 누가 훔쳐갈 수도 있으니까. 노숙을 할 때보다는 경계가 덜하긴 하지만.
그리고 물건을 모으고 정리하는 것과 번을 서는 건 임시직 표사들의 몫이다.
“니미. 더럽네. 더러워.”
“어허. 이 사람이. 이런 거 한두 번 겪어? 갑자기 왜 그래? 흰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이나 하자고. 그래야 우리도 뭐 좀 먹지.”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바삐 움직였다. 여러 사람이 움직이자 일은 빨리 마무리되었다.
“하이고. 우리 하 표사님은 항상 우리 일까지 도와주시면서도 싱글벙글이시네.”
“같이해서 빨리 끝내면 좋은 거죠.”
진혁은 힘을 쓰면서도 활짝 웃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하지만 진혁이 웃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