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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를 얻는 다른 방법.
‘아우. 저 새끼는 빨리 이야기를 하지.’
진혁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황서군이 이곳 상황을 알 수 있게 소리를 보내고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근하게.
무림맹의 각주이고 무당파의 본산 제자다. 이런 상황을 몰랐으면 모를까 못 본 척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려줬다. 소리를 보내서. 깨달음이 중요하지 내공은 많이 필요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계속 할 필요도 없었다. 말소리를 들은 황서군이 유심히 이쪽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았으니까. 결국, 황서군이 표국주에게 말을 했다. 조금 전에.
표국주야 손을 봐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겠지만, 어쩌겠나. 어렵게 모신 고수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표행 중에 분란이라니. 다들 당장 멈추게.”
표국주는 크게 호통을 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입 모양을 보니 거친 사내들끼리 있으니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듯했다. 황서군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듯했고.
마헌량과 표국 사람들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번에 걸리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말을 하면서.
‘이 사람들아.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니들 조심해.’
만약 황서군이 끝까지 나서지 않았으면? 그러면 실력을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그만이다. 만만치 않다는 정도만 보여주면 적당히 끝낼 수 있으니까. 표행 중인데 생사결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참. 아니 어떻게 사람이 달라도 저렇게 다르지?”
“그러니까 말이야. 표국 사람들도 하 표사님 같으면 얼마나 좋아?”
쟁자수들이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게 들렸다. 약자를 위해서 강자에게 맞서는 사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야 좋아할 수밖에 없지. 그것도 겸손하고 품성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더욱. 역시나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주르륵 보였다.
잠시 휴식이 끝나고 표행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휴식 시간.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빨리 마치고 같이 쉬면 되지요.”
진혁은 쟁자수의 일을 곧잘 거들었다. 큰 걸 돕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다가 물건 하나 얹어주고, 물 마시라고 내미는 정도?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도 포인트가 짭짤했다. 진혁의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햐. 저 진혁이라는 표사는 정말 사람이 좋아.”
“이를 말인가. 무공이야 말이 많지만, 인품으로는 최고지. 으이그. 저기 저 놈들은 손가락으로 일만 시킬 줄 알았지..”
쟁자수는 물론이고 같은 임시직 표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만발이었다. 항상 당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진혁과 같은 사람이 나서서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밑바닥 인생끼리 경쟁이랍시고 못 잡아먹어서 난리였다.
“아니. 자네는 무학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으이.”
“그러게. 언제부터 무공을 익혔는데 이렇게 박식한 거야?”
낭인과 같은 사람들은 먹물 티 내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러워야 하겠지만. 하지만 진혁은 조금 달랐다. 아는 걸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언제 물어봐도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겸손했다.
표행 도중에 쉴 때나 저녁이 되면 항상 진혁의 주변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걸 보고서 표국 사람들은 진혁을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그런 생활을 하자니 스트레스가 계속 쌓였다. 그렇게 쌓인 건 번을 서지 않는 날에 시원하게 풀었다. 밤에 철각패도의 몸으로.
***
“이놈. 니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청운장이라는 장원의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나? 무사할 것 같은데?”
철각패도는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그가 모아놓은 보물들을 살폈다. 이 보물들을 가질 생각은 없다. 근처 빈민들에게 뿌릴 것이다. 금이나 은, 은자나 동전이 적당했다.
상당히 무겁긴 한데 내공을 사용하면 산더미 같은 양을 짊어지고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었다. 지금까지 개 같은 짓을 해서 재산을 모은 놈을 털면 항상 그렇게 했다.
조금 이상한 건 누군가가 빈민에게 돈을 주었다는 소문이 난 적이 없다는 거였다. 그저 철각패도가 재물을 탐하고 수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만 났다. 아. 물론 특별한 물건들은 따로 챙겨서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 놓았다.
“내가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
철각패도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거든? 그러니까 기다려. 챙길 거 먼저 다 챙기고 손 봐 줄 테니까.”
장원 주인이라는 놈은 꽤나 개새끼였다. 인근 농부의 땅은 고리대금으로 빼앗고, 소작농으로 부려 먹었다. 반반한 딸이 있으면 가지고 놀다 팔았고, 반항하는 자는 죽였다.
도망치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놈이 근처 도적패와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부하고도 연결이 되어 있었고, 무관하고도 관계가 있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곧 있으면 태을 무관에서 사람들이 올 거다.”
“태을 무관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종남파의..”
“아. 그놈 말 참 많네. 이봐. 종남파 장문인이 오면 내 상대가 될 것 같은가? 그러니 헛된 희망은 버려.”
철각패도는 대충 짐을 싼 다음 장원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인간이 악할 수도 있지. 그 정도는 이해한다. 그런데 말이야.”
그는 장원 주인의 턱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도라는 게 있는 거야.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도까지 가면 그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남의 고통은 손톱만큼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의 아픔은 잘 느끼는 모양이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장원의 주인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고래고래 내질렀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할 말을 계속 했다.
“앞으로는 죽 같은 것만 먹어야 할 거야.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마.”
“너 때문에 굶어 죽은 사람도 있어. 그런데 죽이라도 먹게 해 주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리고..”
이번에는 다리를 잡았다. 장원의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소리가 났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이번에는 견딜 수 없었는지 장원 주인은 기절했다.
“쯧쯧. 왜 살려두는지도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냥 죽으면 너무 편하잖아. 그동안 지은 죄가 있는데.”
그런데 그 순간 방문을 걷어차면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태을 무관에서 온 놈들인 듯했다. 아까부터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철각패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이런 악적. 오늘이 너의 제삿날인 줄 알거라.”
청색 무복을 입은 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어이. 내가 왜 악적이야? 악적은 너희들이지. 니들이 이놈하고 붙어먹으면서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한 거 내가 아는데?”
정말 알고 있다. 하오문에 의뢰해서 정보를 받았거든. 가능하면 포인트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놈을 골라야 했으니 의뢰를 해야 했다.
가능하면 원성이 자자한 놈. 사람들이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한을 많이 산 놈들을 찾았다. 그중 한 패거리가 이놈들이었다.
“그런 궤변에 우리가 넘어갈 성 싶으냐?”
다른 놈이 소리쳤다. 궤변? 단어 뜻이나 알고 말하는 건가? 그런데 정말 이놈들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놈들은 불리한 기억은 저장되지 않는 뇌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전부 사이코패스던가.
고리대금 수금도 하고 반항하는 놈 잡아 죽이는 데도 관여한 놈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뻔뻔한지. 예나 지금이나 작은 권력이라도 있는 놈들은 뻔뻔하게 행동하는 교육이라도 따로 받나 보다.
“빨리 와라. 내가 니들 잘못을 니들 뼉다구에 새겨줄 테니까. 뼈가 아플 때마다 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반성하라고 그러는 거다. 잘 알아둬라.”
철각패도는 거대한 주먹을 움켜쥐면서 눈을 부릅떴다. 기운을 끌어모으자 옷이 펄럭이기 시작했고, 산발한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면서 펄럭거렸다.
***
개운했다. 쓰레기들 상대할 때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봐줄 여지가 없는 놈들이었으니 마음껏 두들기면 그걸로 끝이었다. 상황이 거의 정리되어 갈 때쯤 서 있는 녀석 중 누가 그랬다.
“악독한 놈. 너도 결국 우리와 똑같이 될 거다. 니가 뭔데 우리를 심판하느냐. 니가 뭔데!!”
악만 남은 녀석이 그리 소리쳤다. 이렇게 당하는 게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그런 모양인데 진혁은 대답했다. 너희들은 원래 심판을 받았어야 하는데 알량한 권력을 사용해서 처벌을 피한 거 아니냐고.
국법을 어기고 갈취와 폭행, 살인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청운장이나 태을 도관은 관부와 한통속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그 벌을 대신 내려 준 거다. 그러니 억울해 하지 마. 원래 받을 벌은 받은 거니까.”
뭐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걸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는 주먹과 발을 마저 휘둘렀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진혁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몸을 옮기고 나면 이상하게 목이 마르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을 바꾸면 목이 말랐다.
‘영혼이 이동하는 것도 힘이 들어서 목이 마른 건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몸이 바뀌는 건 원래 있던 몸이 사라지면서 영혼? 정신? 그런 게 다른 몸으로 이동하는 거였다. 그런 현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한쪽에서 몸이 사라지자마자 다른 몸이 나타나는 거다.
처음에는 기절할 뻔했다. 분명히 고수 두 명이 양패구상하는 곳에 떨어졌는데,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의 옷가지와 다른 물품은 전부 남아 있었는데 몸만 감쪽같이 사라진 거였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이 세계에 관한 것들과 두 사람에 대한 지식이 저절로 떠올랐다. 살펴보니 몸도 조금 바뀐 걸 알 수 있었고.
이상한 팔찌가 손목에 있다는 걸 안 것도 그즈음. 우연히 거기에 기운을 집중하니 까무라칠 일이 생겼다. 갑자기 정신이 어지럽더니 원래 있던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게다가 아까와는 다른 몸이었고.
‘그래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괜찮은 편이지.’
두 개의 몸을 오가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했는데, 그건 쉽게 극복했다. 어차피 이런 세상에 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셨다. 누가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또 왕칠인가 했는데, 이번에는 한천위였다. 그 역시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크흠.. 미안한데..”
미안하면 말을 하지 마! 그리고 헛기침은 다들 왜 하는 건데? 강호의 무슨 약속 같은 거냐? 하지만 진혁은 정중하게 말했다.
“편하게 이야기하시지요.”
“허허. 이거 미안스러워서.. 저기 나도 무공을 좀..”
천위는 사부에게 무공을 전부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그 사부라는 자도 윗사람에게 전수받지 못한 게 있었고. 그렇게 온전하지 못하게 배운 것이 한천위의 콤플렉스였다.
같이 지내다 보니 천위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뭐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강자라고 해도 굽실거리는 걸 싫어했고. 만약 진혁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절대로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죠. 왜 이야기를 하지 않나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 얘기를 하는 데 말입니다.”
진혁은 빙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실제로도 임시직 표사들은 시간만 나면 진혁에게 들러붙었다. 무공을 좀 봐달라면서. 언제 이런 기회를 잡겠느냐는 생각에 다들 아주 열정적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딱 두 사람. 여기 있는 한천위와 그날 갑급 표사에 합격한 인물. 목세강이라는 자였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겠지.’
마헌량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니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했다.
‘시범 케이스에 걸린 거지.’
너희들 실력은 형편없으니 까불지 마라. 그렇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임시 표사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 갑급이 딱이고, 개중에 천위가 걸려든 거였다. 사건 직후 천위는 분한지 이를 박박 갈았다. 그래서 이런 결심을 한 듯했다.
“가시지요. 저쪽에 보니 괜찮은 장소가 있던데..”
둘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