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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를 얻는 다른 방법.
왕칠의 현재 수준은 딱 삼류 무사였다. 삼류 중에서도 중간이나 갈까? 이번에 을급 표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오랜 낭인 생활의 경험이 컸다. 실력만 보았다면 떨어질 확률이 더 높았지.
그건 무공 실력을 보니 더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적할 곳이 너무 많았다. 이럴 때가 가장 힘들다.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
이럴 때는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게 좋다. 진혁은 자신의 능력을 알차게 활용했다.
“거기. 발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네요.”
그 사람이 무공을 펼치는 걸 보면 어디가 문제인지 표시가 되었다. 움직일 때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부분이 보였는데, 그럼 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거였다.
“어디. 여기?”
왕칠은 다시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무공을 봐주는 동안에는 동작을 멈추어도 붉은색 표시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정지된 상태에서는 간략한 설명도 보였다. 어떤 문제가 있으니 어떤 식으로 고쳐야 한다는 설명이.
“제가 볼 때 이 초식은 상대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초식이에요. 그러면 공격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발 방향 때문에 몸이 좀 비틀려 있거든요.”
그래서 힘이 분산되었다. 강력한 일격은 상대에게 확실한 타격을 가해야 한다. 동작이 큰 만큼 반격을 받을 위험성도 크니까. 그런데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은 어설픈 일격이라면? 조금만 더 고수를 만나면 살아남기 어려울 거다.
“발을 이쪽으로 하고 허리는 좀 더 펴구요.”
진혁은 자세를 잡아주고는 다시 초식을 펼쳐보라고 했다. 왕칠은 진혁의 말대로 잘 따랐다. 어디 이런 식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저 여기저기서 조금씩 배운 무공으로 지금까지 버틴 거였다.
그러니 이런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했다.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인생.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좀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었고, 적어도 실력이 형편없다는 손가락질은 받기 싫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공을 좀 봐줄 수 없느냐고 부탁도 많이 했다. 머리를 조아리고 돈을 주고 배우려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다 개새끼들뿐이었다. 비아냥거리고 무시했다. 돈을 받아도 정말 대충 알려주었고.
‘그런데 이 사람은 아니야. 이 기회를 잡아야 해. 꼭.’
벌써 알려주는 자세와 열정이 달랐다. 이런 식으로 자세하고 열심히 알려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소문은 들었다. 현천문의 하진혁이라는 사람이 친절하고 도움도 많이 준다고. 무공을 봐줘서 실력이 좋아졌다는 낭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하라는 대로 움직이니까 뭔가가 달랐다.
“좋네요. 훨씬 힘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그러니 속도도 빨라지고 공격도 매서워지고.”
“허어.. 정말 그래. 그런데 이상하게 좀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런데?”
왕칠의 말에 진혁은 웃었다.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겁니다. 지금까지 계속 움직여왔던 걸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어색할 밖에요.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시면 효과를 볼 겁니다.”
진혁은 친절하게 무공을 봐주었다.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설명까지 해가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 기억하시면 좋지만, 그것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진혁은 제대로 된 자세로 움직였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왕칠은 무언가에 홀린 듯 진혁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였다. 땀에 흠뻑 젖는 줄도 모른 채.
“그만하죠. 쉬어 둬야 표행도 하고 그럴 테니까요.”
“아..”
왕칠은 정신을 차리고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달의 위치가 아까와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이거 미안허이. 내가 시간을 너무 뺏었나 봐. 나도 모르게 흥이 나서.”
왕칠은 활짝 웃고 있었다. 잠깐 지도를 받았다고 갑자기 실력이 늘 리가 있나. 하지만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했다.
“이거. 내가 뭐라도 좀 줘야 하는데..”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혁은 별것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저 자신이 아는 걸 알려주었으니 사례 같은 건 필요 없다면서.
‘사례가 오가면 감동이 적은 법. 감동이 적으면 포인트도 적다.’
돈은 이미 많았다. 돈보다는 무조건 포인트. 이쯤에서 조금 더 감정을 긁어 줄 필요가 있었다. 진혁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전부 알려드린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정중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그 모습에 왕칠은 감격한 표정이 되었다.
강호에서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수가 무조건 위인 세상. 그런데 진혁은 실력이 자신보다 위이지만, 반말도 하지 않았고 무시도 하지 않았다.
진혁과 이야기를 하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이 사람이 나를 위하고 있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강호 생활을 하면서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감정. 왕칠은 말을 하려 했다.
고맙다고.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이야기하기도 전에 진혁이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잠을 청하러 움직이는 거였다. 왕칠은 멀어져가는 진혁의 등을 보면서 진한 감정을 느꼈다.
- 왕칠로부터 16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걸어가는 진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하지만 워낙 어두운 데다 대부분 잠들어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
다음 날, 왕칠은 유난히 진혁에게 친한 척했다. 왜 그러는지는 잘 알았지만,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자신이 표국 사람들에게 찍혔기 때문이었다.
왕 표사만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건 아니었다. 표국 사람들은 모두 진혁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내공도 없는 게 무슨 갑급이야? 을급도 간신히 될까 말까 하지.”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표사도 있었다. 누가 갑급으로 뽑아달라고 했나? 지들이 뽑아 놓고서는 공연히 시비였다. 물론 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거.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진혁은 표국 최고수인 마헌량 표두의 50초를 받아냈다. 그러니 일단은 갑급 표사로 뽑아야 했다. 내공이 없으니 을급으로 뽑는다? 아니면 탈락시킨다? 그렇게 되면 마헌량 표두는 그런 사람과 50초를 겨루고도 승부를 내지 못한 무인이 된다.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치욕. 그러니 갑급으로 뽑은 거였다. 그래 놓고서는 유치하게 이런저런 시비를 거는 거다. 하지만 진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분이야 정말 더럽다. 솔직히 말해서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녀석들이 알짱대니 욱하는 마음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렇게 나오는 만큼 포인트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나 참. 아니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나?”
왕 표사가 또 왕칠을 갈구고 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하라고. 이거 중간에 짜르던가 해야지.”
“아이고.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 먹여 살릴 수가 있다. 왕칠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머리를 쿡쿡 찔러도 웃었다. 그냥 웃었다. 속도 없는 사람처럼.
“거 너무한 거 아뇨?”
한천위가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저 아저씨 저번에 나설 때도 그러더니 성격 장난 아니네?’
표국의 괴롭힘이야 출발할 때부터 있어왔다. 그래도 다들 참았다. 돈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가끔 진혁이 교묘한 말로 엿을 먹이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놓고 이렇게 나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러면 포인트 얻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다.
“허. 이거 봐라?”
왕 표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더니 다가와서 가슴을 툭 쳤다. 아니. 툭 치려고 했다.
“같이 표행하는 식구끼리 이러지 맙시다.”
손을 움켜쥔 채 천위가 말했다. 왕 표사는 손을 빼내려고 용을 썼지만, 한천위가 여러 면에서 위였다. 힘으로나 내공으로나 무공 실력으로나.
“이거 안 놔? 아. 나 이런 근본 없는 새끼들은 이래서 받으면 안 된다니까.”
간신히 손을 뿌리친 왕 표사는 천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손을 쓰지는 못했다. 잠깐 드잡이질을 해 보고 자신이 질 거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그래서 입만 털었다.
“식구는 무슨 식구야. 니들은 그냥 잠깐 일하는 놈들이야. 어딜 같이 놓으려고 해?”
주변에 있는 임시 표사와 쟁자수들의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나서는 자는 없었다. 천위만 빼놓고.
“이봐. 말조심해. 표행을 같이 한다는 건 서로 목숨을 맡긴다는 거야.”
“하이고. 니들 목숨이나 잘 챙기세요. 지들 건사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뭘 맡겨. 맡기긴.”
왕 표사는 계속해서 비아냥거렸다. 천위는 멱살을 잡았고, 분위기는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왕 표사가 심하다 싶어서였다.
‘좀 이상한데? 이 정도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곧 알 수 있었다. 이놈들이 대놓고 자리를 한 번 마련한 거였다. 임시 표사들이 뭉치는 분위기이니 한 번 잡으려는 속셈인 듯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마헌량 표두가 나섰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모든 잘못은 한천위가 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는 거였다.
“아니. 저 사람이 먼저..”
마헌량 표두를 비롯한 표국 사람들은 작정한 듯 몰아붙였다.
“통제를 해야 하니 지시하고 관리하는 거야 있을 수 있지.”
“맞는 말일세. 거기에 일일이 이렇게 시비를 걸면 어떻게 하나?”
무슨 말을 하려고만 하면 잘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입을 막아버렸다. 그래도 천위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마헌량의 주먹뿐이었다.
- 퍼억!
주먹에 맞은 천위가 나가떨어졌다. 실력 차가 있으니 알아도 막기 어려웠을 텐데, 갑자기 주먹을 날렸으니 오죽하겠나. 천위는 입술을 꽉 물었지만, 충격이 큰 듯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진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오!”
“오호라. 이게 누구야.”
마헌량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
“대련에서 좀 봐줬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만. 주제 넘게 나서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크큭.. 몸에 뼈가 온전히 붙어 있으려면 쥐 죽은 듯이 있어.”
표국 사람들이 조소를 날리며 압박했다. 마헌량은 대놓고 내공을 끌어올리며 나서기만 하면 정말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를 풀풀 풍겼다. 하지만 진혁은 앞으로 나섰다.
“옳지 않은 일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
왕칠이 진혁을 껴안으며 속삭였다.
“자네. 이러다 죽어. 저놈들 작정하고 나왔다고. 이번에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니까.”
왕칠은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애원했다. 은인인 진혁이 험한 꼴을 당하는 걸 볼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혁이 주변을 보니 두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분노와 공포. 거기에 희망 같은 밝은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언제라도 이런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나설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들렸다. 표국 사람들의 표정은 벌레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반면에 임시 표사와 쟁자수들의 얼굴에는 미약하나마 온기가 서렸다.
“이놈이? 좋아. 내가 오늘 너와 대결을 해서 강호의 도리가 뭔지 알려주지.”
마헌량이 사람들을 제치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강호의 도리라는 명문을 내세웠지만, 찍소리도 못하게 완전히 찍어 누르겠다는 말. 그는 어깨를 돌리면서 걸어왔다.
하지만 진혁도 겁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웃기는 건 진혁이 나서자 마헌량이 다가오다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는 거였다.
“큭..”
누군가 그걸 본 모양이었다. 마헌량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하지만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도 계신 데 이게 무슨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