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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6화 (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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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능력.

당연히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 모른다고 했으니까 뻔하지 않은가.

“물론!”

묵직한 철각패도의 음성. 마차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갈 단서라.. 집.. 다들 잘 있겠지?’

집을 떠나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누가 그랬던가. 정말 그랬다. 평소에야 집이 딱히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은 이상하고 불편한 것투성이였다. 일단 먹고 자는 게 맞지 않아서 무척이나 고생했다. 아직도 마찬가지였고.

음식은 죄다 향이 강하고 맛도 이상했다. 라면이나 고추장 팍팍 넣은 비빔밥, 얼큰한 찌개와 김치. 그런 음식들이 정말 먹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가득가득 고였다.

잠자리도 불편했고, 옷도 짜증 났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인터넷이 없다. 처음에는 진짜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 빨리 돌아가자. 여기에 더 있다가는 미쳐버릴 거야.’

맛있는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지금과 같은 미친 짓을 하는 거다. 포인트 빨리 모으고 단서 다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좀 보여주시겠어요?”

“음?”

상념에 빠져 있던 진혁에게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차 문 앞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것도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미녀가. 늘씬하게 쭉 뻗은 몸에 청순하고 가녀린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솔직히 놀랐다.

‘이야~ 사람이 많다 보니까 미녀가 있긴 있구나.’

이곳 인간들은 정말 취향이 독특했다. 미녀라고 떠받드는 여자를 보면 다들 돼지였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조금 풍만한 정도면 이해한다. 글래머러스한 것도 매력이니까. 그런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키 작고 피부도 좋지 않은데 살집이 어우.. 그런 여자들에게 미녀라고 들이댔다. 진혁 입장에서는 전부 미친놈들로 보였다.

반대로 진혁이 미녀로 생각하는 여자들은 푸대접이었다. 뭐. 그런 여자를 거의 본 적 없지만, 눈앞에 있는 여자가 딱 두 번째였다.

“이것이오.”

진혁은 팔찌를 빼서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팔찌를 쳐다보았는데, 눈빛이 변하는 걸 보니 뭔가 아는 듯했다. 그런데 호위 무사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호위 무사치고는 어설프면서도 과한 반응. 철각패도의 악명을 들어서 불안해한다는 거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초짜같이 굴다니.

‘원래 호위 무사를 하던 자들이 아니군. 하기야 산적에게 지금 돌아가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개소리를 할 정도니.’

이 여자가 누구길래. 진혁은 이들의 정체가 궁금해 정신을 집중했다.

- 서예주 (여. 20세) 원보상단의 단주.

호오. 이것 봐라? 나이도 어린데 상단의 단주? 그런데 호위 무사라는 자들이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해? 게다가 대부분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느낌.

‘뭔가 사연이 있군. 대단한 집안이나 권력자의 여식? 아니면 세도가였다가 몰락한 집?’

팔찌를 본 서예주는 무척 놀랐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본 적이 있소?”

“예. 이것과 똑같은 물건을 본 적이 있어요. 하나는 색이 약간 다른 것 같긴 한데..”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는 색이 달라?

“하나? 이것과 같은 걸 여러 개 봤다는 말인가?”

“예. 제가 본 건 두 개예요.”

진혁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 세계로 떨어진 사람이 자신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반가워야 할 상황이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니 말도 잘 통할 테고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데 갑자기 얼음물로 목욕한 것 같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서늘한 느낌이 전신을 확 훑으면서 지나간 느낌이었다.

“두 개라.. 그래. 그 물건들은 지금 어디 있지?”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서예주는 팔찌를 내밀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나는 황실에서 만난 사람이 보관하고 있었어요.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하나는 어떤 사람이 팔에 차고 있었구요. 색은 이것과 좀 다른 것 같았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팔찌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것도 혼란스러웠고, 색이 다르다는 것도 그랬다.

“그게 누구지?”

“그건.. 그건 이야기해드리기 어렵네요.”

내 표정이 싸늘해졌다. 호위 무사들이 긴장하며 칼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손짓 몇 번에 다 쓰러질 녀석들이었으니까.

“이런.. 이런.. 이봐.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이나?”

진혁은 사파의 거두 행세를 제대로 했다. 인상을 구기면서 기세를 살짝 끌어올리자 앞에 있는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정보를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 챙. 챙. 챙.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하지만 서예주가 손을 들자 다시 검을 검집에 넣었다. 무사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는데, 한결같이 불만 가득하고 불편한 표정이었다.

서예주라는 여자의 말에 절대적인 복종을 하는 분위기. 이런 관계는 강호에서는 쉽게 보기 어렵다. 대충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군부나 황실, 혈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강호 세가.

“현명하군. 니가 저 놈들 목숨을 살렸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서요. 저는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직접 봤다면서.’

“황실에 있는 건 우연히 본 거예요. 저도 황실의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귀물이라고만 들었어요.”

진혁은 여자를 살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것도 비슷해요. 팔에 있는 것만 보았지 누구인지는 듣지 못했으니까요. 황실에서 그 물건을 본 후라 기억에 남았던 거구요.”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진혁은 날카롭게 노려보며 서예주를 압박했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흠칫 물러섰고, 얼굴은 더욱 파리해졌다.

“제가 이 상황에서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제 물건도 아닌데요. 오히려 전부 이야기하고 뭐라도 도와달라고 청하는 편이 더 유리하죠.”

맞는 말이긴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작은 단서를 얻었다.

‘도와달라고 청한다?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가 보군.’

단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이래서야 팔찌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서예주는 주변을 살피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호오. 이것 봐라? 머리가 비상한데?’

서예주는 조금 있으면 손님이 올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늘씬한 미녀가 머리까지 똑똑하다니. 역시 세상은 불공평한 거였다.

“손님이 올 걸 알고 있군.”

“어. 알고 계셨나요?”

“그런 놈들 하는 짓이 뻔하지.”

진혁은 씨익 웃었다. 이런 곳에서 산적질을 하는 놈들 대부분 뒷배가 있다. 근처 도시의 관부의 유력자나, 호족, 무림 방파. 개중에는 현령이나 백도로 행세하는 놈들도 있다.

다 썩었다. 백도라고 세력 키운 놈 중에 정의롭고 올바른 인간 보질 못했다. 하기야 이렇게 혼란스럽고 암울한 시대에 착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사람도 죽여서 뜯어먹는 시대인데.

“저기..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제가 사례는 톡톡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아봐 드릴게요.”

솔깃한 제안이었다. 아마도 철각패도의 강력한 무력이 필요한 듯했다.

“글쎄.. 별로 내키지 않는군.”

하지만 거절했다. 보아하니 상대가 더 급해 보이는데 쉽게 승낙할 이유는 없으니까. 게다가 몸이 두 개라는 사실도 있었고. 게다가 표행 중이라 시간을 낼 수가 없다.

이게 몸이 두 개라도 24시간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로도는 그대로다. 잠을 못 자면 두 몸 다 피곤해진다. 그러니 빨리 일 처리하고 자야 한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아니. 내가 나중에 찾아가지.”

진혁은 초승달이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는 공간을 쓱 훑어 보고는 이야기했다.

“이제 가보라고. 난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진혁은 어서 떠나라고 손짓까지 했다. 무사들은 아무것도 빼앗거나 죽이지 않고 자신들을 보내주는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철각패도의 소문은 전혀 달랐으니까.

사람을 죽이거나 피떡으로 만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 자. 재물이나 보물이 보이면 빼앗은 흉악한 놈. 이게 철각패도에 대한 평이었다. 그러니 저런 이상한 눈초리를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이 새끼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내가 무슨 살인광이냐?’

내 기준은 간단하다. 포인트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놈들만 처리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개 같은 짓 한 놈들만 손봐준다. 그러면 그 새끼들한테 당한 사람들이 천벌을 받았다면서 좋아하지.

‘그리고 그게 포인트로 나에게 온다 이거야.’

서예주는 무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다 고개를 돌려 외쳤다.

“원보 상단을 찾아오세요. 지금 장안으로 가고 있고, 거기서 한동안 있을 거예요.”

‘장안? 사협 표국의 표행도 최종 목적지가 장안인데?’

자연스럽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하면서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끈적끈적한 기운을 주시했다. 욕망이라는 괴물에 잠식된 더러운 기운.

철각패도가 엄청난 재산과 강호의 기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에 달려오는 거다. 자신이 죽을지 모르고 불로 뛰어드는 놈들. 이번에 오는 놈들이 내가 원하는 놈들이다.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놈들.

서예주는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철각패도는 거대한 산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고 번개가 내리쳐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웅장하고 장중한 기세. 그녀는 철각패도가 어쩐지 사파의 인물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홍 무관 아저씨. 저 사람 강하죠?”

“철각패도 말씀이십니까. 아가씨. 강한 정도가 아닙니다.”

홍 무관이라고 불린 호위 무사의 우두머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살벌하고 난폭한 기세를 가진 자입니다. 저런 기세를 가진 걸로 봐서 저 자의 심성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 너무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으시는 게..”

서예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저런 자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은 아낄수록 좋다. 적어도 그녀가 살아왔던 곳에서는 그랬다.

- 크아아악!!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이어서. 서예주는 진저리를 치며 귀를 막았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들리는 거라곤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뿐. 희미한 달빛 사이를 가르며 마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예주는 몰랐지만, 그 광경을 커다란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

‘운기행공을 하고 났더니 그래도 좀 괜찮네.’

일을 모두 마치고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온 진혁은 목이 마른 걸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섬주섬 보따리를 뒤져 물을 다시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왕칠이었다. 아마도 번을 서다 진혁이 일어나는 걸 보고는 온 모양이었다.

“혹시 잠에서 깼으면 잠깐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싫었다. 지금은 좀 자두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진혁은 갑자기 저쪽 세상에서 좋아했던 유재석 생각이 떠올랐다. 착하고 매너 좋게 사는 건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웃으면서 대답했다. 왕칠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털어놓았다.

“아까 말한 거 말이야. 무공을 봐주기도 한다는 거..”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무슨 일인지 알았다. 지금 자기 무공을 좀 봐달라는 거였다.

‘어쩔 수 없지.’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 철각패도로 스트레스도 좀 풀었겠다, 운기행공도 했으니 잠을 조금 덜 자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번을 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끝났어. 교대하고 오다가 자네가 일어난 것 같아서 온 걸세.”

이런 재수 없는. 조금 나중이나 조금 먼저 일어날걸. 썅. 하지만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무공을 봐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 왕칠 (남, 39세) 임시 을급 표사. 내공 수위 8년

- 성장 가능 등급 : 이류 무인.

‘오호라. 이거구나. 레벨 오르고 나서 생긴 능력이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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