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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5화 (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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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능력.

“있어보자. 어디 몸 좀 풀어볼까?”

철각패도의 몸을 한 진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내공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달리는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현천문의 제자로 있을 때는 철저하게 약자여야 했다. 내공은 거의 없는. 그러니 답답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없고,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달릴 수도 없었다.

휙휙 지나가는 주변 풍경. 다른 세상에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공이 좋긴 좋아.”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왕 표사가 깐족대는 걸 참고 넘기자니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니 정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후련했다.

한참을 달리던 진혁은 언덕에 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공이 몸을 타고 도는 게 느껴졌고, 몸 전체에서 기운이 불끈불끈 솟았다. 진혁은 잠시 숨을 고르며 처음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를 떠올렸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지.’

길을 가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눈앞에 이상한 빛이 나타났다.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그 빛에 잡아먹혔고, 화아악 빨려들어 정신없이 어디론 가로 움직였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그러다 뭔가 보인다 싶었는데, 그게 두 고수가 산속에서 싸우고 있는 거였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두 고수가 막 양패구상을 하는 찰나. 두 고수가 막 죽어가는 순간, 그 장소에 진혁을 삼킨 빛과 함께 나타났다. 진혁과 두 고수는 엄청난 섬광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되었고, 두 사람은 진혁에게로 흡수가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내공도 대부분 진혁에게 들어왔다. 두 고수 중 한 사람은 현천문의 최고 어른 격인 인물이었다. 다른 인물은 사파 연합인 사혈련의 장로였고.

둘 다 1 갑자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둘의 내공이 서로 다른 탓인지 각각의 몸은 다른 종류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진혁의 몸에는 현천문 고수의 내공이. 철각패도의 몸에는 사혈련 장로의 내공이.

“1 갑자의 내공.”

진혁은 손에 내공을 모으고는 옆에 있는 바위를 내리쳤다. 단단한 바위에 새겨진 선명한 손자국. 이것이 1 갑자의 위력이다. 아마 강철로 된 문이라고 하더라도 손으로 찢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내공 심법으로 60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니 어마어마한 내공이다. 진혁은 지금까지 다니면서 자신보다 강한 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진혁의 몸은 활성화가 덜 되었는지 내공을 전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철각패도의 몸은 1 갑자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나야 좋지. 그런데 그때 그 노친네는 정말 그 정도 고수였을까?”

철각패도로 움직이면서 지금까지 정말 거침없이 행동했다. 무서울 게 없었다. 1 갑자라는 내공은 건 강호에서도 최정상급이다. 게다가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나 경험도 풍부했고.

하지만 한 번. 정말 딱 한 번 조심한 적이 있었다. 시비가 붙기 전에 상대 실력을 확인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는데, 한 명의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는데, 그 사람은 어떤 정보도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일단은 조심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은 무당의 전대 고수라는 거다. 진혁은 자신보다 고수인 경우 정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가정이었다. 그 후로는 그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디 그런 고수가 세상에 널렸겠는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병장기 소리가 들렸다.

사실 돌아다니면서 싸움 나는 거 자주 본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려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뭐야? 이러면 안 갈 수가 없잖아?”

진혁은 급히 바위에서 엉덩이를 떼고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진혁이 발을 떼자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위에 새겨진 손자국만이 그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

“이놈들. 존귀한 분이 계신 곳이니 썩 물러가라. 지금 물러간다면 지금까지의 무례는 없던 일로 해주겠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마차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팔과 다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산공분의 효과로 내공이 흩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그러십니까. 얘들아 존귀한 분이 계시단다. 잘 대접해 드려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적들은 킥킥대며 웃었다. 당연히 뭔가 있어 보이는 마차라서 털려는 거였다. 이런 마차를 타고 다닐 정도라면 어떤 경우든 돈을 톡톡하게 뜯어날 수 있을 터. 그래서 비싼 산공분까지 사용했다.

산공분. 흡입하거나 먹고 나면 일시적으로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약이다. 사실 산적들이 무공이 뭐 그리 높겠는가. 막살던 놈들 아니면 살기 어려워서 산적이 된 농부나 그런 사람들일 텐데.

그러니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산공분은 무림인을 상대할 때는 필수. 산적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눈치를 살피다 외쳤다.

“슬슬 약 기운 돌았을 거 같으니까 정리하자.”

그 말에 산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위무사 서넛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산적은 50여 명은 되어 보였다. 게다가 칼을 들고 맞설 생각도 아닌 듯했다. 밧줄이나 그물 같은 도구를 잔뜩 가지고 있었다.

“비겁한 놈들.”

마차 위에서 소리를 친 남자의 말에 산적 두목이 코웃음을 쳤다.

“이거 세상 아실 만큼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원래 세상이 이런 겁니다. 정정당당 같은 건 무관에서 대련할 때나 찾으쇼.”

“네놈들은 강호의 도리도 모른단 말이냐?”

“강호의 도리?”

두목은 피식 웃었다.

“그거. 니들이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거잖아. 무공 쎄고, 내공 강한 놈들한테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니들만 잘 먹고 잘살자는 거 아냐. 우리가 왜 그런 거에 맞춰 줘야 허냐고.”

마차 위의 남자는 무어라 대꾸하려 했지만, 두목이 말을 막았다.

“내공으로 약 기운 뽑을 시간 버는 거 같은데, 우리도 장사 한두 번 하는 거 아니거든? 얘들아. 시작해라.”

호위 무사의 우두머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여기를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퍼엉 퍼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거구의 사내가 손에 든 도로 땅바닥을 탁탁 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공을 사용하고 있는지 내려칠 때마다 땅이 움푹 파였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마치 자신이 지금 오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티라도 내려는 듯이.

철각패도는 그렇게 마차와 산적 사이를 향해 걸어갔다. 산적 중 한 명이 물었다.

“누구냐?”

“나? 길 가던 사람.”

진혁은 계속해서 땅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면서 걸었다. 누가 봐도 나 무공 좀 하는 고수라는 티를 팍팍 내는 모습.

“대협. 도움을 주시면 저희가 충분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호위 무사의 우두머리가 재빨리 말을 걸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겉모습만 보자면 산적 두목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경황이 없었다.

그러자 산적 두목도 재빨리 말을 걸었다. 값비싼 산공분까지 썼는데, 건지는 게 없으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것 보시게. 보아하니 같은 바닥 사람 같은데 사정 좀 봐주시게. 내 따로 사례는 하지.”

하지만 철각패도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마차 앞까지 걸어왔다. 사람들은 철각패도가 가까이 다가오자 점점 더 위압감을 느꼈다.

거대한 몸집에 험악하다 못해 살벌하게 느껴지는 얼굴. 거기다 난폭한 기세. 도로 땅을 내려칠 때마다 움푹움푹 파이는 걸로 봐서 무공도 상당한 듯 보여서 더욱 공포스러웠다. 진혁은 마차 앞까지 와서는 걸음을 멈추고는 산적 두목에게 말했다.

“니들은 꺼져!”

아주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에 내공을 실어서인지 멀리 떨어져 있는 산적 졸개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렸다. 느렸지만, 싸늘하고 흉험한 기세를 실은 말투.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모습을 살피더니 수군거렸다.

“철각패도..?”

“아! 요즘 무자비하게..”

철각패도라는 말에 산적뿐 아니라 호위무사들은 긴장한 모습을 한 채 검을 들었다. 무자비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뒤엎고 다니는 사파의 고수. 정사를 가리지 않고 수틀리면 죽여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철각패도는 최근 가장 악명을 떨치는 사파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알았으면 니들은 그만 가봐. 여기 있는 사람들 하고는 내가 얘기 좀 해야겠으니까.”

“아니 그게 무슨..”

산적 두목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좀 아닙니다. 이 바닥에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데..”

철각패도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이 이런 거 처음 알았어? 알 만큼 아는 사람이 왜 이래?”

철각패도의 말에 갑자기 마차 속에서 킥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까 산적 두목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게 웃겼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우리도 산공분도 쓰고 해서 이대로 가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사정 좀 봐 주시면..”

상대가 철각패도라면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 덤벼들어도 몰살당한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하지만 철각패도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각자 목을 자기 손으로 들게 해 줄까? 어이. 거기. 산공분 뿌리려고 준비하는 놈. 너부터 해줄까 하는데..”

철각패도는 손가락을 한 곳을 가리켰다. 산적 두목이 있는 부근이었다. 그 말에 두목과 옆에 있던 산적이 흠칫 놀랐다. 둘만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몰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철각패도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오햅니다. 그냥..”

“됐다. 니들 인육 팔고 그러는 인간말종까지는 아니라서 그냥 두는 거니까 좋게 말할 때 그냥 가라. 내일 뜨는 해는 봐야지.”

사실 이 바닥 말이 워낙 험하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철각패도가 한 말은 아주 부드러운 축에 속한다. 하지만 산적들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꼈다. 잠시라도 지체했다가는 자신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철각패도는 산적들을 쓱 훑어보더니 앞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쳐다보았다. 흐읍 하는 기합소리와 힘차게 뻗는 주먹. 그와 동시에.

- 퍼어어엉

폭약이 터진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든 사람이 경악을 했다. 산적도, 호위무사들도. 철각패도는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딱 다섯까지 센다. 너무 짧다고 하지 마라. 손가락이 다섯 개밖에 없어서 그런 거니까.”

“하나.”

그가 손을 하나 접자 산적들이 일제히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

“감사합니다. 대협.”

호위무사의 우두머리가 철각패도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했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속셈이 뻔히 보였다. 우두머리라는 녀석이 마차와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고, 나머지 호위무사들은 마차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여차하면 우두머리가 자신을 막을 동안 도망가려는 속셈.

“감사하는 것치고는 무척이나 분주한 움직임인데? 급하게 어디 가야 하나 봐?”

“아.. 그게..”

우두머리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어했다. 하는 꼴을 보니 정말 양지에서 힘든 일 하지 않으면서 살아온 것 같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듣지 않고 항상 대접만 받으면서.

우두머리는 쭈뼛거리면서 주머니 하나를 내놓았다. 묵직해 보이는 게 제법 넣은 것처럼 보였다.

“저. 저희가 준비한 사례인데..”

“그런 건 됐고.”

진혁은 단번에 거절했다. 돈 같은 거야 넘칠 만큼 있다. 사혈련 장로가 대단하기는 한가 보다. 아니면 그 놈이 돈 욕심이 많았던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은지 그 놈 보물창고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지금은 금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혹시 이 팔찌하고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나?”

진혁은 자신의 팔찌를 슬쩍 보여주었다. 검은색에 은은한 광택이 있는 팔찌. 특이한 점이라면 중간중간 홈이 있다는 거였다. 정확하게 10개의 홈.

포인트를 모을까 생각 중이던 진혁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 때문에 이들을 구해주었다.

‘새로운 팔찌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여기 있단 말이지?’

하지만 우두머리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호위 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팔찌를 봐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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