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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3화 (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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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국에서 생긴 일.

대장궤는 답답했다. 지금까지 상대방을 설득하겠다고 말을 계속 섞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알아서 꺼지라고 계속해서 신호를 주는 거였다. 보통은 이 정도 하면 알았다고 하고는 물러섰다. 그런데 이렇게 눈치 없이 나오면 직접 말해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직 강호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대장궤는 잠시 표두와 눈을 맞추고는 말을 이었다.

“강호인은 무공으로 말하는 법이지. 그게 강호의 법도요.”

“맞는 말이다. 입 아프게 말로 떠들 필요가 없지. 어디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라!”

표두가 눈을 부라리며 앞으로 나섰다. 누구든 나서기만 하면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얼굴을 한 채. 워낙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니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한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지금 나서면 마헌량 표두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안 봐도 뻔했다. 본보기로 아주 떡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래야 체면도 서고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쉬우니까.

마헌량 정도면 이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이름이다. 그런 마헌량과 손속을 제대로 나눌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렇게 뙤약볕에서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정말 이가 갈리도록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게 하수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으니까. 그런데 누군가 힘을 주어 말했다.

“나도 이건 아닌 것 같소.”

한천위였다. 자신이 마헌량보다는 부족할 것 같았지만, 이런 식으로 짓밟히는 게 싫었다.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차라리 나가서 깨지더라도 한 번 검을 맞대보고 싶었다.

‘뭐야? 저 인간은?’

진혁은 황당했다. 이 상황에서 나서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나섰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하니까. 진혁은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다. 물론 속으로.

‘이 아저씨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려?’

진혁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한 번 가르침을 받아보겠습니다.”

갑자기 침묵이 감돌았다. 대장궤나 표두도 멍한 표정이었고, 나서던 한천위도 마찬가지였다. 진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강호의 법도가 그렇다니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오히려 난처해진 건 표두와 마헌량이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허.. 이거 참..”

마헌량은 대장궤에게 하소연을 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며칠 일어나지도 못하게 흠씬 두들겨 팼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서생 같은 자를 그리 심하게 다루기도 뭐했다.

“강호가 어떤 곳이라는 걸 제대로 알려주시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하기야 계속 저리 살다가는 험한 꼴이나 당하겠지.”

“그렇지. 그러니 쓴맛을 제대로 보여주시게. 그게 저 자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니.”

마헌량은 결심을 굳혔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가르침을 내려주겠다고. 그는 진혁에게 무기를 고르라고 말했다. 마헌량이 손짓을 한 곳에서는 나무로 된 무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50초를 버티면 내 실력을 인정하고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하지.”

목검을 쥐고 자신의 앞에 선 진혁에게 이야기했다. 자신을 상대로 50초를 버틴다면 너만큼은 갑급 표사로 인정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진혁은 다른 걸 물었다.

“제가 50초를 버티면 여기 계신 분들이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겁니까?”

“허허.. 시험을 치른다고?”

마헌량은 정말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선 것이 갑급 표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기 위해서?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진혁이 갑급 표사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것이 억울해서 나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정하게 모두가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주장했다. 사람들은 진혁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실력만 인정받으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 기회를 주려고 저럴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피어올랐다.

“잘해보게!”

누군가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무런 면식도 없는 자신들을 위해서 한 사람이 나섰다는 생각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결을 앞둔 두 사람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뜨거운 공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조심하게. 검에는 눈이 없으니.”

마헌량은 준비를 마친 후 경고를 했다. 길게 끌지 않을 생각이었다. 쓸데없는 기대감은 싹부터 잘라버리는 게 좋다.

강호는 실력이 계급인 법.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어야 사람들을 다루기도 편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 따악. 딱. 딱. 따다다닥.

둘의 목검이 부딪쳤다. 진혁은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냈다.

‘이놈 뭐야?’

마헌량은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자세나 검을 받아내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제대로 검을 수련한 게 보였다.

“그렇지!”

“잘한다!”

한 초식을 나누었음에도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진혁의 실력도 보통이 아닌 듯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헌량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목검을 움켜쥔 팔에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올라오더니 커다란 기합 소리를 냈다.

정말 폭풍처럼 몰아쳤다. 하체를 훑는 듯하다가 갑자기 위서 내려찍는 검격이 보였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옆이나 뒤쪽으로 움직여 공격을 날리기도 했다.

“오오~!”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진혁이 너무나도 손쉽게 마헌량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공세 속에 의연하게 검을 휘두르는 진혁은 바로 자신이었다.

강자에게 두들겨 맞고 업신여김을 당했다. 그래도 아무 소리도 못 했다. 힘들고 위태롭게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그래서 진혁을 응원했고, 그의 선전이 통쾌했다. 진혁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검이 진혁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면 소스라치게 놀라 주먹을 꽉 쥐었다. 어깨를 얻어맞을 뻔했을 때는 저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고.

하지만 대결은 팽팽했다. 마헌량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애송이를 상대로 망신을 당한다는 생각에 눈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마헌량은 내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저거.. 저거..”

“야. 이. 씨.. 이거 내공까지 쓰는 건 너무한 거 아냐?”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까처럼 막상막하의 대결이 아니라 진혁이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힘겨워 보였다. 숨을 헐떡이면서 정말 간신히 간신히 검을 받거나 피하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얼굴에 땀이 흥건했고, 주먹을 너무 꽉 쥐어서 핏기가 없어진 자들도 있었다. 어떤 자는 자신이 마헌량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혁은 속으로 다른 색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손쉽게 막는 걸로 보이면 안 되지? 이 정도가 좋아. 힘겹게. 아주 위태롭게.’

엄청난 응원 소리. 뜨거운 함성. 그런 소란에 표국 안에서도 사람이 나와 대련을 구경했다.

“저 자는 누굽니까?”

“현천문의 하진혁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젊은 청년의 물음에 대장궤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국주가 모셔온 사람이었다. 무당의 후지기수이자 무림맹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인물. 대장궤는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확인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현천문이요?”

“이 부근에 있는 작은 방파입니다. 예전에는 성세를 누리기도 한 모양인데, 지금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마진량 표국주가 대신 대답했다.

“그런가요? 움직임을 보니 고절한 무공 같은데.. 그런데 저 자는 내공이 없는 건가요?”

“그럴 수밖에요. 현천문이 지금처럼 된 게 다 심법 때문이니까요.”

마진량 표국주는 현천문의 심법은 내공이 쌓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내공이 쌓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아니. 그러면 그걸 내공 심법이라고 말할 수가 있나요?”

“허허.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용한 게지요.”

무당의 황서군은 신기하다는 듯 진혁을 쳐다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움직임을 보니 상승 무공인 것 같긴 했지만, 내공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황서군은 별난 일도 다 있다고 하면서 표국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대결을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 세 초식이 지나면 50초가 됩니다.”

진혁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최대한 힘든 표정을 하면서. 사실 마헌량 표두 정도는 쉽게 이길 수도 있다. 무공의 깨달음 차이가 어마어마했으니까. 이화접목만 잘 사용해도 몇 초식만에 상대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고수처럼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감동이 덜하다. 철저하게 약자여야 한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 하지만 의기 하나로 부당함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

‘그래야 감동 만빵이지.’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세 초식밖에 남지 않았으니 마헌량은 독하게 나올 것이다. 표국을 대표하는 표두가 표사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과 비겼다고 하면 개망신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마헌량이 내공을 있는대로 끌어모으는 게 보였다.

‘이 개자식이. 누굴 죽이려고.’

생각보다 내공을 많이 끌어올리고 있었다. 물론 다치거나 할 일은 없다. 마헌량보다 훨씬 윗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상대가 저렇게 내공을 무식하게 끌어올리면 자연스럽게 연기하기가 어렵다.

내공을 끌어올리면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쉽게 말해서 모든 스탯이 증가한다고 보면 된다. 민첩성이나 힘은 물론이고 파괴력도. 사람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는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장내를 주시했다.

- 쉬이잇~

- 빠아악!!

정말 마헌량은 바람처럼 움직였다. 내공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보일 정도. 진혁은 간신히 몸을 피하면서 검을 막았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은 채 뒤로 주르륵 밀렸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했다.

“아아~”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걱정 어린 탄식.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진혁은 자세를 잡다가 조금 비틀거렸다. 이 정도에서는 살짝 비틀거리는 게 좋다. 너무 과하지는 않게 조금만.

자신이 당한 것처럼 분해서 눈가가 붉어지는 사람도 보였다. 진혁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초식 남았습니다.”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헌량이 이를 가는 소리. 하지만 그가 분노하고 강하게 휘몰아칠수록 좋다. 핍박받는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포인트가 많이 나올 테니까.

- 파아악~ 타다다다다다악. 뻐어어억!

마헌량은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공격. 정말 있는 힘껏 공격했다는 게 느껴졌다.

‘치사한 새끼. 자신보다 훨씬 하수와 싸우면서 경고도 안 하냐.’

진혁은 공중으로 붕 뜬 채 날아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한 그는 입가에 살짝 핏기가 보이도록 했다.

“어어~”

“어떻게 된 거 아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씨발. 대련인데 너무하는 거 아냐?”

“내공도 없는 것 같던데 사람을 저렇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당장 들고일어날 것처럼 굴었다. 마헌량도 살짝 당황하는 눈치.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하게 되었다. 진혁은 잠깐 그런 소란이 지나가도록 놔두었다.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진혁은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렵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비틀거렸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게 보였다.

“한 초식 남았습니다. 한 초식.”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소협. 이제 됐소. 그만합시다.”

“이러다가 사람 잡겠소. 이거 말립시다.”

‘이 사람들이. 지금 이 고생을 왜 한 건데 그만둬?’

진혁은 짜증이 났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오히려 떨리는 팔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마헌량에게 말했다.

“약속은 지키시기 바랍니다.”

한 초식을 더 받아내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라는 말. 사람들은 울컥했다. 사실 혹시나 해서 갑급 표사에 지원하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기회가 온다 한들 합격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제는 기회를 얻어도, 얻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나서주었고, 이런 고초를 겪었다는 걸로 모든 게 다 된 거였다.

마헌량은 고민하다 눈매를 날카롭게 하고는 강한 공격을 날렸다. 쓰러뜨리든 아니든 어차피 비난받을 거다. 그럴 바엔 확실하게 쓰러뜨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수를 썼다.

절대로 피하거나 막지 못할 최고의 초식을.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손에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검끼리 부딪쳤는데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파리한 얼굴, 헝클어진 머리. 옷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늠름하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50초를 버텨낸 거였다.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아아!!”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함성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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