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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화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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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국에서 생긴 일.

괴물?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 세상에 괴물이 어디 있어? 그런데 괴물이 정말 나타났어.

기이하게 생기고 엄청나게 흉폭했어. 도망치면 된다고? 어디로 도망을 쳐? 사방천지에서 다 나왔는데. 중원, 파촉, 오월은 물론이고, 하북이나 새외에서도 괴물이 나왔다고.

사실 예전 기록을 보면 비슷한 일이 있기는 해. 어디서 누가 봉황을 보았다거나, 신기하거나 흉측한 생명체가 나타났다거나. 그럴 때마다 왕조가 크게 흥하느니 망하느니 하는 말이 돌았지.

대충 감이 오지? 그런 거 다 조작이야. 조작.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어. 실제로 괴물이 나타났다니까. 그걸 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괴물에 잡혀먹힌 사람도 부지기수였어.

아비규환이란 말이 떠오르더군. 상황이 그렇게 되자 황실이 움직였어. 이런 지경인데 황실은 뭐하는 거냐면서 반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

군대가 움직였고, 사람들은 기대하며 지켜보았지. 그런데 군대는 괴물들을 퇴치하지 못했어. 괴물의 수가 워낙 많기도 했지만, 괴물 중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놈들도 있었거든.

생각을 해보라고. 키가 2장이 넘고 칼이나 창으로 아무리 찔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괴물을 어쩌겠어?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자 어쩔 수 없이 군대는 퇴각해야 했어. 물러나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지

난감해진 황실이 손을 내민 곳은 바로 무림이었어. 무림! 공중을 날아다니고 검강을 사용하는 무공의 고수들이 있는 곳. 그들이라면 괴물을 처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하지만 아니었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그냥 간단하게 한 가지 예를 들어줄게. 화산파라고 있어.

화산파가 어떤 곳이야. 9파 1방 중 한 곳이며, 고수들이 즐비한 거대문파잖아. 5악 중 서악에 해당하는 화산에 터를 잡고 있고. 그런데 그 화산에 괴물이 나타난 거야.

처음에야 놀라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더라고. 그만큼 자신들의 무공을 믿었겠지. 무공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착각이었어. 괴물과 실제로 붙어 본 화산파 장문인은 깨달았지. 이대로 가면 몰살당한다는 걸. 그래서 급히 대피령을 내렸고 화산파 전체가 도망치기 시작했지. 그런데 그 과정에서 괴물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사건이 생긴 거야.

무극 진인이라고 있거든. 화산파 최고수 중 한 명이었는데, 그가 교충이라는 괴물에게 당해 처참하게 죽은 거야.

무림은 경악했지. 무극 진인이면 검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무림 최고수 중 한 명이었거든. 하지만 검강으로도 교충을 베지 못했다더라고. 아니. 베는 건 고사하고 큰 상처를 입히지도 못했대. 화산에서야 쉬쉬했지만, 어디 세상에 비밀이 있나.

무림에서 검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런데 검강을 쓰고도 괴물을 당할 수 없었단 말이야. 그러니 무림인도 괴물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게 되었지.

가끔 미친놈들 있었어. 자기 무공 과신하면서 괴물 잡겠다고 설치는 놈들. 다 뒈졌어. 아무튼, 화산파는 도망쳐 화산 근처에 있는 화음이라는 곳에 본거지를 차렸지. 그리고는 곧바로 괴물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퍼트리기 시작했어.

화산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괴물들이라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 화산파가 약해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나마 체면이 살잖아.

괴물에 관한 건 삽시간에 세상에 퍼졌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그리고 사람들은 기록을 뒤지다 괴물들이 산해경에 기록된 괴물과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지. 교충이란 이름도 사람들이 산해경을 보고 붙여진 거야.

상고시대의 괴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괴물. 세상 끝날 것 같았지. 괴물에게 전부 잡아먹힐 거란 소문도 돌 정도였으니까.

다행인 건 세상을 휩쓸 것 같던 괴물들의 확산이 갑자기 멈추었다는 거야. 일정 지역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다 죽었을 테니까.

***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살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어. 그래. 맞아. 이것도 다 괴물 때문이야.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게 필요하지. 쌀이나 밀은 물론이고 약초나 소금 등등 엄청나게 많거든. 예전에야 수송하던 길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괴물들이 있잖아. 그놈들 서식지를 피해야 하는데, 이게 또 지형이 너무 험하면 안 되거든.

그래서 물자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어. 수로를 이용하면 되지 않으냐고? 모르는 소리. 물에서 습격하는 괴물도 있다고.

그래서 아주 큰 규모의 상단이나 표국만 떼돈을 벌고 있어. 이해가 안 된다고? 괴물이 있으니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그건 세상 잘 모르는 소리야. 들어보라고.

괴물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시무시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야. 개중에는 약한 놈들도 있지. 그런 놈들이 있는 지역 중에는 큰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면 괜찮은 곳도 있다는 거야. 놈들도 자기보다 강할 것 같으면 덤비지 않는다는 거지.

대형 상단이나 표국은 그런 곳을 찾아내서 움직였어. 물론 그런 지역은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야. 간혹 그런 지역에서도 괴물의 습격이 있기도 했으니까.

대형 상단은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대비를 하면 되는지 파악했어. 거기에 맞춰 호위 인원을 꾸려 피해를 최소화했지.

물론 작은 상단이나 표국도 그 길을 따라 움직이기도 했어. 결과? 뻔하지. 몰살당하는 것 말고 뭐가 더 있겠어? 규모도 작고 고수도 적어. 정보도 없어. 괴물들한테 다 당했지.

그래서 중소 표국과 상단은 근거리를 오가는 값싼 의뢰를 받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대형 상단과 표국, 이 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야. 그 시장까지 지들이 먹으려고 들어오네?

생각해봐. 사람들이야 기왕이면 대형 상단이나 표국에 일거리를 맡기지.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

그런 상황이라 수많은 중소 표국과 상단이 망했어. 그만큼 일자리는 줄어들었지. 반면 거대 상단이나 표국은 거래와 이익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점점 더 세를 불려 나갔고.

그러니 물가는 자꾸 올라서 먹고 살기는 어려워지는데, 일자리는 없어. 죽을 맛이지. 반면에 돈 많고 힘 있는 놈들은 계속해서 돈을 쓸어담고. 세상 참 뭐 같지? 그런데 언제는 안 그랬겠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 그리고 미래에도.

***

“이런 썅.. 무슨 인간들이 이렇게 많아?”

한천위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표국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라니. 스무 명 정도를 뽑는다고 했는데, 대충 눈에 보이는 사람만 훑어보아도 족히 오백 명은 되어 보였다.

오늘이 사흘째이니 이전에 다녀간 사람도 있을 테고, 오늘만 해도 시험을 보고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발은 이틀 뒤까지이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술을 좀 한다는 사람은 넘쳤고, 일자리는 없었다. 한천위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제법 지났건만 줄은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있자니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까부터 속이 좀 이상했다.

‘젠장. 아까 먹은 게 얹혔나?’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시험에서는 가진바 무공을 선보여야 하니 있는 돈을 다 털었다. 뭐라도 좀 먹어야 기운을 내서 보여줄 거 아닌가. 그런데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니 속에서 탈이 난 것 같았다.

‘씨.. 아우.. 이거 심상치 않은데?’

배가 따끔거리고 식은땀이 나는 게 탈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았다. 객점에서 썩은 걸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음식 재료도 워낙 구하기 어려워서 썩은 걸 파는 곳도 많다고 했다.

‘이번에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

천위는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경험이나 실력이 상당해 보이는 사람도 눈에 여럿 보였다. 중소 상단이나 표국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낭인으로 떠돈 지 제법 된 자들일 것이다.

그런 자들은 넘쳐난다. 이런 지역의 작은 표국에 9파 1방의 본산 제자도 간혹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몸 상태가 최상이라고 하더라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 천위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그런데.

“안색을 보니 어디가 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자신과 비슷해 보였는데, 무인이라기보다는 얼굴이 허여멀건 것이 선비처럼 보이는 자였다. 천위는 그를 슬쩍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까 먹은 게 얹혔는지 속이 좀..”

“혹시 뱃속을 바늘이 콕콕 찌르는 것 같고, 몸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머리도 좀 어지럽고.”

천위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증상을 족집게로 집어낸 것처럼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 그걸 어떻게..”

좋지 않은 거야 표정이나 안색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증상까지 이렇게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형장. 혹시 의원이슈?”

“그런 건 아닌데.. 의술을 조금 알긴 합니다. 저기.. 제가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천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을 아는 자를 이런 상황에서 만난 건 행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왜 표사를 뽑는 자리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안색을 살피고 맥을 짚더니 품에서 침을 꺼냈다. 자신이 손을 좀 써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된다고 했다.

목에 손가락을 넣어 먹은 걸 게워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몸 상태가 나빠지는 걸 막아야 할 판인데 도움을 준다니 고마울 수밖에.

정말 신기했다. 침으로 무슨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몇 군데 톡톡 찌르고 몇 군데 혈을 누르고 문지르고 했다. 그런데 남자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점점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히려 몸이 개운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여전히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찬물로 등목하고 난 느낌이랄까. 천위는 눈을 껌뻑이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실력이 놀랍기도 했고, 이런 의술을 가진 사람이 표사를 뽑는 자리에는 왜 나왔는지 이상해서였다.

“어떻습니까? 좀 나아지셨습니까?”

“아.. 예.. 이제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사내의 공대에 천위는 저절로 말이 공손해졌다.

“형씨 의술이 대단한 것 같소이다. 아니 침 몇 방에 그렇게 아프던 게 싹 없어지다니.”

“나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사내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다행이라는 진심이 묻어나는 얼굴. 천위는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쉬운 세상이 아니다. 다들 힘들고 어려웠으니까.

어떻게든 상대가 가진 걸 빼앗고 훔치려고 혈안이 된 세상인데 이렇게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걱정해주고 위하다니. 천위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정말 고맙소. 정말 고마워요.”

천위는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으리다. 내 꼭 갚을 것이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사내는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다소 겸연쩍어하는 모습. 이런 칭찬이 무척이나 어색한 듯해 보였다. 천위는 세상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감격했다.

‘그래.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드문 사람이야.’

천위는 이것도 인연인데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고는 통성명을 했다.

“나는 천위라고 하오. 한천위. 검을 주로 쓰고. 어디 출신이라고 하기는 좀 뭐 한데..”

사부를 따라 여기저기 떠돌면서 낭인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사내도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는 하진혁이라고 합니다. 저도 검을 주로 쓰고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현천문이라는 작은 방파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현천문?”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파가 무림에 얼마나 많겠는가.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으리다. 내 꼭 갚을 것이오.”

이럴 때가 중요한 타이밍이다. 여기서 표정이나 행동이 자연스러워야 앞에 있는 인간이 더 감동하게 된다. 진혁은 최대한 감정 조절에 신경쓰면서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어색한 미소와 손짓. 겸양하는 표정과 겸손한 느낌의 말투. 이제는 이런 것에 익숙했다. 자연스러운 연기. 역시나 상대는 넘어왔다. 곧바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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